▣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43- 뼈를 깎는 아픔 그 이후

영광도서 0 607

소설을 읽을 때 주제를 찾으려면 사건이 제대로 터진 다음인 절정과 결갈 부분에서 찾아야 한다. 대부분 사건을 중요시 하지만 사건이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일어나게 마련이기 때문에 본질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터진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서로 차이가 생긴다. 이런 사건 해결방식에 각자의 삶의 방식이나 지혜가 드러난다.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과 지혜를 잘 들여다봐야 그 소설의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삶도 터진 사건을 해결하면서 인생은 무르익고 삶의 경험을 지혜로 바꾸며 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술은 수술뿐이었다. 이후가 더 문제였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지혜를 찾을 게제도 아니었다. 인내밖에 없었다. 수술이 당장 끝났지만 입원할 수도 없었다. 무조건 퇴원이었다. 수술하고 한 시간도 채 안 되어서 쑤시는 몸을 이끌고 병원을 나섰다. 상처 치료를 위해서 다음날 다시 와야 하지만 일단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픔을 참고 버스를 타러 갔다. 간신히 버스에 올라 집으로 가는 길, 철정 검문소를 지나면서부터 비포장도로라 덜컹거릴 때마다 수술 부위를 감싸고 아픔을 참아야 했다. 80리길을 버스로 그리고 내렸다.

 

집에까지 8킬로미터 고갯길을 올라야 했다. 물론 대부분 신작로이긴 했다. 어쩌다 사람이 지날 때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몸을 펴고 걸었다. 사람이 없을 땐 몸을 웅크리고 걸었다. 그래야 고통이 덜했다. 그날의 길은 다른 날의 걸보다 무척 멀었다. 옷차림, 특별히 새 옷이 없었기에 좀 우스꽝스럽겠지만 민방위 옷을 입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지만 엄마도 아버지도 덤덤한 분들이었기에 그저 상투적으로 병원에 다녀온 일을 물으셨고 내 대답 역시 무덤덤한 모범 정답을 말씀드렸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대략 나무를 베어다 짠 앉은뱅이 책상다리를 잡고 간신히 일어나 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내리막 신작로는 더욱 힘들었다. 상처가 당장 터져 나올 듯싶었다. 전날과 같은 과정으로 병원에 가서 수술대신 수술한 부위 점검을 받았다. 고름이 조금 더 나왔으면 짜내고 수술부위를 점검받았다. 그 다음날부터는 간격을 벌려 일주일에 두세 번 병원에 점검을 받고 이주가 넘어서야 실밥을 풀면서 병원에서 해방 되었으나 하필 길을 걷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수술부위에 충격을 받아 고름이 조금 나와서 다시 병원에 가서 점검을 받았다. 상처부위를 좀 짜내고 소독을 해주었고, 그 후로 다행히 잘 아물어 수술에서 완전히 해방 되었다.

 

전쟁 같은 고통은 끝났지만 여전히 그날의 상처는 남아,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내 몸엔 배꼽이 둘인 듯 그곳이 움푹 들어가 있다. 그 상처와 함께 뼈를 깎아야 했던 내 삶의 큰 사건을 보냈다. 그랬다. 사건은 사건이되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은 참고 견디는 도리밖에 없었다. 아마도 소설이라면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었겠지. 소설과 삶이 다른 지점은 아마도 이 부분일 것이다. 소설가가 사건해결을 바꿀 수 있도록 유도할 테니까. 아마도 죽을 순간까지 잊을 수 없을 뼈를 깎는 아픔, 병원을 오가며 견뎌야 했던 고통을 견뎌야 했던 순간들, 다시 그런 순간이 온다면 지금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땐 젊음의 객기거나 용기 덕분에 견뎔 수 있었을 것이다. 때로 풋풋한 젊음이 부러운 이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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