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01회 - " 책에 빠졌던 정조와 이덕무 이야기 "

영광도서 0 231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은 예로부터 독서의 계절로도 손꼽힌다. 조선후기 정치와 문화의 중흥을 이끈 왕 정조(正祖:1752~1800, 재위 1776~1800)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독서광이었다. 경연에서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함에 있어서 막힘이 없었다는 정조. 그 비결은 철저한 독서와 공부였다.

선정 베푼 독서광 정조·'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다양한 서적을 읽었음은 그의 문집인 '홍재전서'의 기록에서 나타난다. '내가 춘저(春邸:세자궁)에 있을 때 평소 책에 빠져 연경에서 고가(故家) 장서를 사왔다는 소식이 있으면 문득 가져와 보라고 하여 다시 사서 보았다.… 경사자집(經史子集)을 갖추지 않는 것이 없는데, 이 책들은 내가 다 보았다'는 장면은 정조가 뛰어난 정치를 펼 수 있었던 원동력 중의 하나가 끊임없는 독서였음을 알 수 게 한다.

정조의 어록인 '일득록(日得錄)'에는 독서에 대한 정조의 열정을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 발견된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을 때 마다 반드시 과정을 정해 놓았다. 병이 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과정을 채우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았다. 왕이 된 후로 폐기하지 않았다'거나,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서만 책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어진 여건에 맞춰 짬짬이 읽어도 좋은 공부가 될 수 있다'고 하여 독서를 예찬하였다. '독서하는 맛은 오래 될수록 더욱 좋아 읽어도 읽어도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기록이나, '나는 글 읽는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한다. 한밤중에 등불을 밝히고 무릎을 쳐서 박자를 맞추어 글을 읽노라면, 악기를 연주하는 것 못지 않다'고 한 것, '눈 내리는 밤에 글을 읽거나 맑은 새벽에 책을 펼칠 때 조금이라도 나태한 생각이 일어나면 문득 달빛 아래서 입김을 불며 언 손을 녹이는 선비가 떠올라 정신이 번쩍 뜨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한 대목에서는 독서를 체질화한 정조의 모습을 생생하게 접할 수가 있다.

정조 시대 규장각에서 검서관으로 활약한 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스스로 책에 미친 바보라 하였다. 이덕무의 30년 지기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이덕무의 아들 광규(光葵)로부터 행장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붓을 들었다. '늘 책을 볼 때면 그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꼭 베끼곤 했다. 그리고 항상 작은 책을 소매 속에 넣고 다니면서 주막이나 배에서도 보았다. 그래서 집에서는 비록 책이 없었지만, 책을 쌓아둔 것과 다름 없었다. 평생 동안 읽은 책이 거의 2만 권이 넘었고, 손수 베낀 문자가 또한 수백 권이 되는데 그 글씨가 반듯하고 아무리 바빠도 속자(俗字)를 쓴 것은 한 글자도 없었다'고 하여 책에 파묻혀 살아간 친구의 삶을 정리하였다.

이덕무는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癡)', 즉 '책만 보는 바보'로 불리는 것을 즐겼다. 그의 문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실려 있는 '간서치전(看書痴傳)'에서 이덕무는, '목멱산(木覓山: 남산) 아래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살았는데, 어눌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였으며, 성격이 졸렬하고 게을러 시무(時務)를 알지 못하고, 바둑이나 장기는 더욱 알지 못하였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변명하지 않고, 칭찬을 하여도 자긍(自矜)하지 않고 오직 책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아 추위나 더위나 배고픔을 전연 알지 못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21세가 되기까지 일찍이 하루도 고서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적었다. 그러나 동창·남창·서창이 있어 동쪽 서쪽으로 해를 따라 밝은 데에서 책을 보았다. 보지 못한 책을 보면 문득 기뻐서 웃으니, 집안 사람들은 그의 웃음을 보면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을 알았다'고 하여, 책보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은 자신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람들이 지목하여 '간서치'라 하여도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의 전기를 써 주는 사람이 없기에 붓을 들어 그 일을 써서 '간서치전'을 만들고 그의 성명은 기록하지 않는다'고 하여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라고 자부했음이 나타난다.

독서력과 지식, 조선후기 정치·문화 중흥의 힘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서 책만 보았던 바보, 이덕무. 그러나 이덕무는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왕성한 독서력과 다양한 분야에 두루 능통했던 해박한 지식은 조선후기 지성사를 풍요롭게 하였다. 이덕무의 능력을 알아본 정조 역시 책을 늘 곁에 두고 체계적인 독서를 하고, 그 성과를 정책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독서의 성과는 조선후기 정치, 문화의 중흥을 이끄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 지면서 가을이 깊어짐을 실감하는 계절이다. 가을날 독자들의 풍성한 독서벽(讀書癖)을 기대한다.

[부산일보 2013.10.21 부일시론 - 신병주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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