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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가꾸는 '문화 공간'

영광도서 0 329

부산광역시 진구 부전동 397. 부산 최대의 서점으로 손꼽히는 영광도서가 자리잡은 곳이다. 지하 1층 지상5층의 매장 건물. 그 곁에는 사랑방’이란 이름의 별관이 있고, 부산서적도매단지에 500평짜리 대형 물류창고까지 따로 갖춘 부산 서점의 얼굴마담이다. 그러나 이곳이 지난 68년 10대 가출소년에 의해 1.5평짜리 허름한 고서점에서 출발한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지난 16일 만난 김윤환 사장은 “곧 출간될 내 인생 이야기”이라며 ‘천천히 걷는 자의 행복’이란 책 표지를 보여줬다. “33년 만에 이렇게 크게 성장했는데 천천히 걷다니요? 빨리 뛰셨겠죠.”

함안에서 태어나 먹을 게 없어 가출했던 그는 부산 외곽의 고서점에서 책을 사다 시내 서점에 팔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고 했다. 1.5평 짜리 고서점이 기술서적 전문서점으로 크고 다시 지금의 종합서점으로 크는 사이 그가 지킨 원칙은 ‘계산없는 판매가 계산없는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

“지방 사람들은 문화적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도 서울의 대형서점처럼 모든 것을 구비하기 어렵죠. 저는 부산에서도 원하는 책은 뭐든 구할 수 있는 서점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팔리지 않는 책도 구비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부산시민들에게 ‘영광은 교보 못지 않다’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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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지상 5층 별관까지 4층은 무료 사진 전시장으로 다양한 강좌.행사로 화제 만발

‘책장사는 되지 않겠다’는 그의 결심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서점 4층의 사진전시장 ‘영광갤러리’는 사용료와 입장료를 받지 않아 ‘판매용’이 아닌 사진까지도 전시된다.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다 보니 전국적으로도 꽤 유명세를 탄다. 사랑방에서는 여러 무료강좌가 열린다. 한문서당, 소설창작, 서예학당, 어학강좌 등이 지역문화 진흥에 관심 많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꾸려지고 있다. 

독서주간 행사 때는 1000권의 책을 무료로 나눠주는데 이중 400권은 유지와 사회단체들이 내놓는 책으로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지역사회의 참여도가 높다.

‘저자와의 대화’와 ‘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독서토론회’는 영광도서의 대표적 문화행사들. 독서감상문과 독서토론회 내용은 책으로도 여러 권 묶여 나왔다. 특히 93년 3월부터 지역 문인 모임인 ‘오늘의 문예비평’과 함께 매달 여는 독서토론회는 유홍준 정호승 하성란 이문구 신경숙 신경림 이문열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과 지방 독서애호가들의 만남의 자리로 자리를 굳히며 부산의 책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고 있다.



[조선일보 2001.4.21 /부산=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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