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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도서정가제가 ‘답’이다

영광도서 0 496

올해 출판시장을 다소 식상하게 표현하자면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을 겪었습니다. 출판 산업의 생산·유통·판매 지표가 크게 악화되어 이구동성으로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출판 생태계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 12월9일 대한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연구소 공동 주최로 ‘한국 출판의 위기 극복 방안 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출판물류업체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한 연구자는 “지난 4년간 평균 10%씩 매출이 감소해왔다. 특히 1만부 이상 출고 도서의 총 출고부수와 종수는 지난 4년 사이에 절반 이상 감소했다. 1000부 미만 출고 도서의 경우는 출고부수는 소폭 감소했지만 종수는 18.3%나 늘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른바 베스트셀러의 판매부수와 종수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2009년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9개월 만에 밀리언셀러에 오른 이후 2010년의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2011년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2012년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스님) 등의 책이 해마다 밀리언셀러에 오르는 기간을 단축해왔지만 실제로 1만부 이상 팔리는 책의 종수는 크게 줄었다는 것입니다. 올해 밀리언셀러에 오른 책은 세 권 합쳐 100만부를 돌파한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유일합니다. 출판사들의 극단적인 베스트셀러 중심주의가 한계에 다다라 사실상 밀리언셀러가 실종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다른 도매 기구의 한 간부는 “현재 전국적으로 (교양도서의) 신간을 전시하는 서점은 200개 안팎”이라며 “공공기관과 지역 서점 간 도서납품 의무화 등을 통해 지역 서점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때 5700개로 정점을 찍었던 서점 수는 현재 문방구를 겸하는 서점까지 포함해 1700여개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출판사가 신간을 펴내도 책을 진열할 서점이 없습니다. 그러니 갈수록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온라인서점의 초기 화면에 책이 노출되는 것을 최고의 마케팅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서둘러 온라인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장 잘나간다는 온라인서점의 MD(머천다이저)는 책의 겉모습만 대강 훑어보고도 “이걸 책이라고 만들었어요?”라거나 “이 책이 팔린다고 생각하세요?”라며 핀잔을 일삼았지만 수많은 영업자들이 오로지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모욕을 감수했다지요.

하지만 모두가 모욕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출판사들은 책 광고의 90% 이상을 온라인서점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러니 광고를 많이 하는 출판사, 책 출고가를 대폭 낮춰주는 출판사, 각종 이벤트 비용을 잘 부담하는 출판사들과의 ‘협조’는 잘 이뤄졌습니다. 추천을 빙자한 광고를 심하게 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벌금을 물기도 했지요.

저는 지난 10월29일에 출판, 유통, 작가, 소비자단체 및 주요 업체 대표들이 모여 ‘책 읽는 사회 조성 및 출판 유통질서 확립 자율 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사재기의 주범인 온라인서점들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를 그만두라”고 비판했습니다. 일반 교양서를 도서정가제 예외도서인 실용서로 둔갑해 과다 할인을 하거나 출간된 지 18개월이 지난 도서를 과다하게 할인하는 행위도 사실상 ‘유사 사재기’입니다. 사재기가 의심 가는 도서를 적발할 때 증거로 삼는 것의 대부분은 온라인서점의 판매데이터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4대 온라인서점의 대표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번의 협약에서 아주 특별했던 것은 “출판·유통업계는 유통과정에서 불건전 유통 행위를 조사할 수 있도록 ‘건전 유통 감시인’ 제도를 두기로 한다”는 조항이었습니다. 온라인서점 안에 건전 유통을 감시하는 외부인을 두자는 것을 협약안에 넣어야 할 만큼 온라인서점이 책 사재기 범죄의 공동정범 혹은 방조자로 여긴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제가 좀 심한가요? 하지만 책값에 대한 불신이나 베스트셀러에 대한 의심이 책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요? 게다가 출판인들이 정말 우려하는 것은 승승장구하던 온라인서점들의 매출마저 폭락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는 감히 주장합니다. 이제 한국의 출판사들이 온라인서점 몇 개 살리려고 고혈을 짜내는 일은 하루빨리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출판생태계를 살리는 최상의 길은 완전 도서정가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지금 정가의 10% 이내에 모든 할인과 경품을 포함시키는 불구의 도서정가제가 국회에 상정되어 있습니다. 이 법안만이라도 수정 없이 통과되기를 정말 많은 출판인들과 서점인들이 간절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온 가족이 서점에 방문해 서로 책을 고르는 기쁨을 누리는 일이 늘어날 것입니다. 각자가 책을 고른 이유를 밝히는 일만으로도 엄청난 공부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늘어나면 책의 다양성, 창의성, 의외성이 점차 늘어날 것입니다. 양질의 책을, 언제 어디서나, 값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출판사들은 경쟁적으로 책값을 내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요. 제발 서둘러 법을 통과시켜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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