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8773

나를 돌아보는 시간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고 - 

 

                                                                                                                                             이미경

 

내 결혼식 때도 아버지 장례식 때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의식이나 형식을 왜 나는 그리 무시했을까?’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으면서 내게 던진 질문이다. 

 

“너 결혼은 했냐?” 결혼 한지 십년쯤 지났을 때 우연히 만난 선배의 물음이었다. 결혼했다는 대답에 그는 “아무도 니 결혼 소식 모른다 ”며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 고 의아해했다. 신나서 하는 결혼식이 아니어서 일수도 있지만 결혼 할 즈음 당시 만나고 있는 친구들에게만 딱 연락을 했다 .그때 1년 이내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연락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 상을 당했을 때도 내가 자주 함께 만나 모임을 하고 있던 친구 딱 6명에게만 그것도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발인 전 날 밤 9시에 연락을 했다. 

 

어린 시절 명절 때도 큰집 제사가 끝나서야 밥만 먹으러 갔다. 집안 전체가 기독교라서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도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축제 같은 결혼식에도 나는 거부감을 느꼈을까? 형식적인 절차나 의식에 대한 거부감은 형식과 틀을 더 중요하게 여기던 권위적인 사회에 대한 반발심 같은 게 작용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 해 본다. 

 

요즘은 상이 났다는 연락이 오면 일정을 조절해서 참여한다. 아버지 장례식 이후 생긴 변화 같다. 더 정확히는 친구의 49제를 다녀온 후 생긴 변화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좋은 교통 편한 병원에서 이뤄졌다. 목사님이 오셔서 찬송가를 부르고, 사람들이 오면 밥을 내고, 술을 내고, 친척들이 오면 인사를 하고, 그리고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모시고 그렇게 간단하게 장례식이 끝났다. 장례식때 나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의 49제, 친구로서는 첫 부고에 49제에 참여 했다. 49제가 엄숙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나는 엄청 울었다. 몇 십 년 보지 못했던 친구의 죽음 앞에서 나는 친구의 명복을 빌다가 어느새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무심히 보냈는지. 슬퍼할 분위기나 시간을 가지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요즘은 장례식이나 제를 지내거나 49제가 있으면 참여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그 자리에서 애도하고 있는 나를 만난다. 가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 만나서 서로 친구해서, 또 자식 삼아서 잘 지내라고 제를 지내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그곳에서 우리 아버지 외롭지 마시라고.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으면서 울었다. 울면서 인정한다. 이제야 인정한다. 우리 아버지도 고독사였음을. 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아서 1층 쪽방에 아버지께서, 2층에는 어머니께서 떨어져 살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집에서 사시지 않았냐고, 아무리 사이가 안 좋으셨지만 엄마가 아버지를 챙기셨을 거라고 지금껏 애써 변명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께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많이 외롭고 무서웠으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고독이 죽음에 이를 수 있음을.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고독임을 인정한다. 젊은 시절 참 화려하게 사셨던 아버지. 좋은 일도 많이 하셨지만 집안의 경제적인 책임을 어머니께 떠 맡기셨던 아버지. 긴 시절 다른 여자들을 어머니보다 더 챙기셨다고 넋두리하던 엄마는 정말 나이 들어서 아버지를 돌보시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러시면 자식들이라도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이틀 전 아버지 좋아하시는 깻잎이랑 오이김치랑 감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 경미한 차 접촉사고가 나서 가지를 못했다. 엄마가 밥도 잘 챙겨주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고 무거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장례식장에서 주검으로 만났다.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천국으로 가셨을거라고 위로했다. 그때 나는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는 가시는 길도 많이 외로웠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버지의 부재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도 않았고, 또 아버지의 유품도 우리 손으로 정리하는 시간도 가지지 못했다. 이 책에 나오는 고독사한 주검들의 공통점이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 정리되지 못한 환경에서 생활한다는 점이였다. 사실 아버지의 방도 점차 쓰레기장처럼 변해가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우리들이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는 핑계로 정리 한번 해 드리지 못한게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자주 자주 가서 밥도 해드리지 못한 거, 청소도 못 해드린 거, 아버지게 사죄드린다. 

 

내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나의 나이듦과 지금 환경이라면 나도 고독사 할 것 같은 나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친구의 49제라는 의식을 통해서였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인도의 시궁창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만들고,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이야기했을 때 참 감동이였지만, 성녀라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속에 등장하는 유품정리사들을 보면서는 죽음에 대해 죽음의 존엄함에 대해 내 문제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요즘 죽음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렵고 무겁기만 하던 마음이 조금 정리 되는 듯하다. 내 주변 관계를 또 정신없이 살면서, 생각도 내 주변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이 참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럼 그 사람들 아빠한테 되게 고맙겠다. 길 잃으면 무섭고 싫은데 아빠가 길 찾아주는 거잖아. 근데 왜 아빠를 무서워해?” 유품정리사이자 이 책의 저자 김새별의 어린 딸아이의 말이다.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누구한테도 환영받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한다는 유품정리사들의 일. 죽음도 우리의 일상일 수 있음을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고,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이제 가는 이들을 배웅해주는 유품정리사들이 존중받는 그런 날들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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