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를 읽고 -
전예지
그리운 아빠.
딱 한 번만,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꿈에 나와 주었으면..하고 바랐던 게 벌써 다섯 달 전의 일이네요. 빈소에 안치된 영정사진을 보며 참으로 많이 기도했는데, 아빠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게 마음에 자꾸 남아서 꿈에서라도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아직 아빠를 제대로 보낼 준비가 난 안 되어 있는 걸까요.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렇듯, 지나온 시간은 참으로 빠르기만 해요. 아빠를 보내고 다섯 달이 지나는 동안, 나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모르겠어..
처음 일주일은 참 많이 울었는데.. 운전하는 도중에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동안에도, 하루 일과가 끝나고 자리에 누웠을 때에도, 율에게 이유식을 만들어 줄 때에도 계속 눈물이 흘러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절대, 결코 울지 않고 아빠의 49재 자리를 지키겠다고 맘먹었는데.. 약하기만 한 큰딸은 또 내내 눈물만 흘리고 말았네요.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을 강하게 견딘 엄마에게 참으로 미안할 만큼, 나는 많이도 울었네요.
다음날부터였을까요, 그리고 두 번의 계절을 맞이하는 동안, 아빠, 난 단 한 번도 난 울지 않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슬픔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믿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왔던 시의 글귀가 가슴에 아프게 박히면서 다시 또 눈물이 마구 났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자주 읽었던 시였는데 왜 그렇게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시처럼 박히던지.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신 오지 못하는 파촉 삼만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지켜 본 입관 때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라서 그랬나 봐요. 아빠의 마지막 모습,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렇게 마지막을 지켜봤는데..그 순간이 자꾸 떠올라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답니다. 다신 오지 못하는 먼 길을 떠난 아빠. 어쩌면 난 아빠를 완전히 보내는 것이 두려워 내 기억의 문을 닫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기억을 닫고 그렇게 꾸역꾸역 내 하루를 살아냈던 건 아닐까요. 그제서야 비로소 아빠를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율을 위해 나는 상처와 마주해야 한다고 용기를 냈어요.
힘겹게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 내 안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털어 놓았습니다. 끅끅 소리내어 울기도 했구요. 선생님께서는 그저 제 어깨를 어루만져 주시고 제 울음을 다 받아 주셨지요. 그리고 상담실을 나가려는 제게 건네주신 쪽지 하나.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그냥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문을 닫으려는 찰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꼭 천천히 읽어 보세요.”
누구나 상처를 지니고 있고, 아픈 기억으로 인해 힘들어하지만 모두 자신의 상처가 제일 크다고 생각하죠. 책을 덮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어요. 상처받은 이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사실 아직 제게는 크게 와 닿지가 않았답니다. 이별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의 치유에 도움이 되었다는 책이나 영화들도 하나씩 찾아봤지만 아직 제게는 시간이 필요한 듯해요.. 물론 그들에게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겠죠? 그렇다면 아빠, 저에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아빠를 오롯이 보내려면, 전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유년시절 내게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아빠.. 다소 엄하고 강한 엄마의 눈치를 항상 보며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던 아빠의 등에 숨어 있었던 소녀시절도 생생하고, 놀이동산에 놀러가서 반짝이는 가짜보석이 달린 왕관을 머리에 씌워주며 환하게 미소 지으시던 아빠 얼굴도 눈에 선해요. 고등학교 때, 엄마 몰래 삐삐를 개통했던 제게 첫 호출번호를 남겨주었던 것도 아빠였지요. 임용에 합격했을 때.. 그 누구보다 당신의 딸을 자랑스러워하고 축하해주셨던 아빠의 얼굴도 아른거립니다. 그리고, 동시에.. 암투병을 하면서부터 슬픔이 많아졌던 아빠의 눈빛도 여전히 제 맘에 남아 있습니다. 딸에게조차 아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지난 4년 반 동안의 기억은 참 많이도 시리네요. 손녀딸이 태어나도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단 한 번도 안아주지 못했던 외할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서글펐을까요.
아빠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해서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오랫동안 아팠던 아빠에게, 더 많이 고맙다고 말하고 더 많이 존경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자꾸 내 맘에 남아서, 그래서 아직도 나는 아빠를 마음에 안고 있나 봐요.
아빠, 사랑하는 아빠, 보고싶은 아빠.
시간이 지나면 저도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겠죠? 아픔이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제 모습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그때까지, 많이 미안해하고 많이 그리워하고 많이 생각할게요.. 늘 그랬듯이, 제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실거죠? 그리고 제가 제 안의 상처를 덜어내면.. 꼭 꿈에 나와서 따뜻하게 한 번만 안아주세요. 안녕, 안녕.
-2014년, 10월의 마지막날. 큰딸 드림.
Chapter
- 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저자특별상(일반부) - 박상현 /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 대상) - 주동훈 / 가야고2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 금상) - 박소희 / 부산교대 부설초4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저자특별상(학생부 - 은상) - 강지운 / 목포초 5학년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를 읽고
- 일반부(대상) - 배가브리엘 / <너무 애쓰지 말아요>를 읽고
- 학생부(대상) - 이은지 / 부산성모여고 2학년 <교황 프란치스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
- 일반부(금상) - 전예지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를 읽고
- 일반부(금상) - 정지홍 /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읽고
- 학생부(금상) - 김규리 / 혜화여고 1학년 <정말지 수녀의 바보 마음>을 읽고
- 학생부(금상) - 정소민 / 금곡고 2학년 <광인 수술 보고서>를 읽고
- 일반부(은상) - 김수자 / <느리게 더 느리게>를 읽고
- 일반부(은상) - 안압지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를 읽고
- 학생부(은상) - 박예민 / 휘경여고 2학년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읽고
- 학생부(은상) - 서여리 / 경혜여고 1학년 <광인 수술 보고서>를 읽고
- 학생부(은상) - 장서영 / 부산국제고 2학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고
- 일반부(동상) - 김미양 /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을 읽고
- 일반부(동상) - 김서영 /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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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부(동상) - 최선길 / <느리게 더 느리게>를 읽고
- 학생부(동상) - 금소담 / 남문초 6학년 <스무고개 탐정과 마술사>를 읽고
- 동상(학생부) - 김수아 / 센텀중 2학년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이은혜 / 해연중 3학년 <광인 수술 보고서>를 읽고
- 동상(학생부) - 이해형 / 화명중 2학년 <교황 프란치스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을 읽고
- 동상(일반부) - 최아영 / 석포초 4학년 <스무고개 탐정과 마술사>를 읽고
- 일반부(은상) - 이미경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