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9125

프란치스코 교황, 영원한 우리의 위로자 

- <교황 프란치스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을 읽고 - 

 

                                                                                                                                             화명중학교 2학년 이해형

 

요즘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이번 교황을 주목하고 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스스로도 청빈하고 바른 삶을 살아가며 다툼과 분쟁이 있는 곳에 화해와 평화를 주려고 하는 그의 행로는 비단 천주교인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 놀라움과 위로를 준다. 이 책은 그러한 교황의 여러 말들을 담았다.

 

먼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들 몇 가지를 나누고 싶다. 먼저 ‘집’에 관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족적인 느낌이 드는 단어이며 따스함, 정, 사랑을 일깨운다고 하였는데 이는 나도 그러한 것 같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생명이 자라는 삶에서 결정적인 장소라고도 하였다. 나는 이렇게 따뜻하고 가족적인 느낌이 드는 집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시험을 마치고 결과도 예전에 비해서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집이라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단어를 이 책의 글을 접하면서 위로가 많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나를 반겨주는 따뜻한 느낌이 드는 집과 가족들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또한 집의 다른 의미도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집은 점점 단순히 자러 가는 곳으로만 전락해나가고 있다. 왜냐하면 밤새 어딘가에서 놀러갔다가 잘 때 되면 오기 때문이다. 호주, 뉴질랜드 등 외국에서는 밤에 상점 등이 일찍 닫아 일찍 집으로 가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차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정다운 가족애에서 단지 잠자러 가는 공간으로 집은 의미가 위축되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나는 큰 안타까움을 가졌다. 이러한 현대 우리나라의 문화를 보면서 나만이라도 집을 가족들이랑 함께 보내는 따뜻하고 정다운 공간으로 다시 회복시켜야 되겠다고 생각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라고 한 이유를 밝힌 부분도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교황명은 교황으로 뽑힌 후에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청빈, 겸손, 평화의 성인으로 잘 알려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생각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이름을 교황명으로 택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완전히 교황처럼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세상에 모두가 다 성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의 모습을 보면 앞에서 말했듯이 종교적인 믿음에 국한되지 않고 언행의 일치와 스스로 낮아지는 그의 태도 등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지금 세상은 심한 빈부격차, 각종 다툼과 혼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하는 것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 교황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존경심을 줄 것이 분명할 것이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타나내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생각들이 내게 없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 것일까?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다른 생각들이 있어서 이 책에 관한 생각을 잘 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든다.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복잡하게 살았고 쫓기는 듯이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쫓겨 와서 생각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나는 알 수 없을 정도였던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한 가지만은 확실한 사람인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감동과 위로를 주고 늘 낮은 자를 위해 일할 사람이라는 것 말이다. 또한 글을 쓰다 보니 최근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면서 그가 세월호 사고에 대한 위로를 나타낸 것 또한 기억이 난다. 그는 차에서 내려서 직접 세월호 유가족들과 만나고 유가족들이 만든 십자가를 로마까지 직접 들고 갔다. 말로만 세월호가 안타깝다 대학 특례로 보상 해주겠다는(사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도 아니다)정치인들과 대조시켜 보니 교황의 그러한 모습이 더 빛나 보이는 것 같다. 세월호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또한 밀려오는 듯하다. 그는 어떻게 이러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들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겪는 아픔이 어떤 것이고 어디에서 나오는 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러하였기에 그가 그러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는가 생각을 해보았다. 

 

그도 처음부터 성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여러 상황들이 자신에게로 점점 다가오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그가 성인이 되어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본받아 발로 뛰면서 낮은 자들을 위한 일들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나는 지금 교황 프란치스코, 그와 같은 사람이 언제 또 나오게 될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성인 같은 사람이고 우리 기억에 오랫동안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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