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 숨겨진 역사의 비밀, 안토니오 꼬레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수만 명의 조선인을 일본으로 끌고 가 마카오와 인도 고아 항, 유럽 대륙에까지 노예로 팔아버렸다. 그 당시 일본의 잔혹상을 우리는 현존하는 ‘귀무덤’ ‘코무덤’을 통해 인식했을 뿐 우리의 조상이 노예무역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본의 나가사키 항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조선인 포로수용소가 존재했고 지금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곳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나가사키 항을 통해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의 숫자만 해도 수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안토니오 꼬레아였다.
1932년 성공회 아뇰드 신부가 〈일본 아시아학회지〉에 조선인 노예 안토니오 꼬레아의 존재와 그에 관한 실화를 발표했고, 일본 역사학자 야마구치 박사도 〈임란 중 포로의 행방-조선포로 매매의 예〉라는 논문에서 안토니오 꼬레아를 비롯해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와 헐값으로 팔려나간 조선인 노예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근거하고 있는 역사적 문헌이 바로 중세기 이탈리아의 부유한 무역상인의 아들인 프란체스코 까를레티가 저술한 〈동서인도 여행기(영문판: 나의 세계일주기)〉이다. 현재 로마의 안젤리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책에서 그는 임진왜란이 한창인 1597년 부친과 함께 나가사키 항에 입항했으며, 그때 일본인으로부터 조선인 노예를 샀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나는 12스키우드(30엔)에 조선인 5명을 매입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세를 주고 인도 고아 항까지 가서 4명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피렌체까지 함께 왔으며, 그는 지금 로마에서 살고 있는데 이름은 안토니오 꼬레아이다.”라고 증언하였다.
하마터면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질 뻔했던 안토니오 꼬레아의 실체가 이 짧은 기록을 통해 역사적 증거로 남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안토니오 꼬레아의 실존에 대한 증거는 여럿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17세기 바로코 회화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드로잉화 〈한복 입은 남자〉의 주인공이 바로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것이다. 1987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최고가로 매입한 LA의 폴게티 박물관은 그림의 제목을 〈코리언맨-안토니오 꼬레아〉로 확정해 소장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의 산간마을인 알비시에는 안토니오 꼬레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탈리아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마을 한가운데에 태극 문양을 소재로 한 〈꼬레아 광장〉을 만들고, 한국인과 이탈리아인이 손을 맞잡고 있는 〈만남의 탑〉도 세웠다. 그들은 한국인처럼 매운 음식을 즐기고, 오이를 소금에 절여 먹는 등 한국의 식문화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의 정월 대보름 풍습과 유사한 문화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는 일본군 고니시 유기나가 장군의 종군신부로 1년간 한반도에 머물렀으며, 같은 예수회 신부인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와 함께 일본의 잔혹상과 조선인 노예무역에 대해 항의하는 회의를 일본에서 개최하고 바티칸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고하였다. 또한 그는 오천여 명의 조선인 포로에게 영세를 주는 등 조선에서 최초로 포교 활동을 한 서양인 신부이기도 하다. 이러한 세스페데스 신부의 활동을 기리는 기념관이 소설 〈돈키호테〉의 고장인 라만차 지방에 세워져 있는데 그곳에 태극기도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증거들 속에서 이제 안토니오 꼬레아가 부활하고 있다.
400여 년 전 참혹한 전쟁 속에서 자행된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일본군의 노예무역,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된 수많은 한국인들의 비참한 운명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들의 아픈 넋을 위로하고, 잘못된 역사의 악습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획되었고, 창작되었다.
■ 저자의 말
나는 이 위대한 조상의 이야기가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이 되는 2014년에 완성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4백여 년 전에 이탈리아로 팔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안토니오 꼬레아의 외로운 영혼 앞에 이 책을 바치고 싶었다. 그리고 아득한 고대부터 서로 피를 나누고 문화를 함께 즐기며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던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앞으로는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고 평화롭게 지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가 후기〉에서
▣ 작가 소개
저자 : 정준
1956년 부산에서 출생했으며, 희곡을 썼던 선친의 영향을 받아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그동안 소설집 『반환점없는 마라톤』(1988), 장편소설 『나비처럼 날다』(2001), 에세이 『송강 정철과 함께 걷는 관동별곡 8백리』(2013), 『열정이 없으면 꿈도 없다』(2014) 등을 펴냈고, 정풍송 작곡 설운도 노래인 〈땅끝에서〉(1999)의 노랫말을 작사했다. 1999년에 1년 동안 해남에 머물면서 “땅끝마을”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 신지식인이 되었으며, 2001년에는 제3회 함평나비축제 공식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교보문고와 철도청 후원으로 “정준 작가와 떠나는 나비열차”를 진행했다. 2008년에 박세직 전 88올림픽 조직위원장과 함께 (사)세계걷기운동본부를 설립하고 현재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800리 걷기축제〉의 총기획자로서 2009년부터 매년 이 대회를 고성군과 함께 개최하고 있다. 현재, 역발상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지구촌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문화운동을 기획하고 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혼례식장에 찾아온 섬나라 불청객
나고야의 봄 축제와 심야의 음모
오무라 만의 조선인 포로수용소
탈출
사랑하는 은아
서양인 선교사와 조선인 간호사
항해의 시작
폭풍우 속의 해적선
여기는 남부 이탈리아
꼬레아에서 온 검투사
꿈속의 나폴리
로마에서의 첫 만남
아드리아 해의 진주, 베네치아
뜻밖의 해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나폴리에 나타난 조선인 씨름꾼
기사 안토니오 꼬레아
작가 후기
■ 숨겨진 역사의 비밀, 안토니오 꼬레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수만 명의 조선인을 일본으로 끌고 가 마카오와 인도 고아 항, 유럽 대륙에까지 노예로 팔아버렸다. 그 당시 일본의 잔혹상을 우리는 현존하는 ‘귀무덤’ ‘코무덤’을 통해 인식했을 뿐 우리의 조상이 노예무역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본의 나가사키 항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조선인 포로수용소가 존재했고 지금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곳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나가사키 항을 통해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의 숫자만 해도 수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안토니오 꼬레아였다.
1932년 성공회 아뇰드 신부가 〈일본 아시아학회지〉에 조선인 노예 안토니오 꼬레아의 존재와 그에 관한 실화를 발표했고, 일본 역사학자 야마구치 박사도 〈임란 중 포로의 행방-조선포로 매매의 예〉라는 논문에서 안토니오 꼬레아를 비롯해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와 헐값으로 팔려나간 조선인 노예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근거하고 있는 역사적 문헌이 바로 중세기 이탈리아의 부유한 무역상인의 아들인 프란체스코 까를레티가 저술한 〈동서인도 여행기(영문판: 나의 세계일주기)〉이다. 현재 로마의 안젤리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책에서 그는 임진왜란이 한창인 1597년 부친과 함께 나가사키 항에 입항했으며, 그때 일본인으로부터 조선인 노예를 샀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나는 12스키우드(30엔)에 조선인 5명을 매입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세를 주고 인도 고아 항까지 가서 4명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피렌체까지 함께 왔으며, 그는 지금 로마에서 살고 있는데 이름은 안토니오 꼬레아이다.”라고 증언하였다.
하마터면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질 뻔했던 안토니오 꼬레아의 실체가 이 짧은 기록을 통해 역사적 증거로 남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안토니오 꼬레아의 실존에 대한 증거는 여럿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17세기 바로코 회화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드로잉화 〈한복 입은 남자〉의 주인공이 바로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것이다. 1987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최고가로 매입한 LA의 폴게티 박물관은 그림의 제목을 〈코리언맨-안토니오 꼬레아〉로 확정해 소장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의 산간마을인 알비시에는 안토니오 꼬레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탈리아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마을 한가운데에 태극 문양을 소재로 한 〈꼬레아 광장〉을 만들고, 한국인과 이탈리아인이 손을 맞잡고 있는 〈만남의 탑〉도 세웠다. 그들은 한국인처럼 매운 음식을 즐기고, 오이를 소금에 절여 먹는 등 한국의 식문화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의 정월 대보름 풍습과 유사한 문화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는 일본군 고니시 유기나가 장군의 종군신부로 1년간 한반도에 머물렀으며, 같은 예수회 신부인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와 함께 일본의 잔혹상과 조선인 노예무역에 대해 항의하는 회의를 일본에서 개최하고 바티칸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고하였다. 또한 그는 오천여 명의 조선인 포로에게 영세를 주는 등 조선에서 최초로 포교 활동을 한 서양인 신부이기도 하다. 이러한 세스페데스 신부의 활동을 기리는 기념관이 소설 〈돈키호테〉의 고장인 라만차 지방에 세워져 있는데 그곳에 태극기도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증거들 속에서 이제 안토니오 꼬레아가 부활하고 있다.
400여 년 전 참혹한 전쟁 속에서 자행된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일본군의 노예무역,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된 수많은 한국인들의 비참한 운명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들의 아픈 넋을 위로하고, 잘못된 역사의 악습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획되었고, 창작되었다.
■ 저자의 말
나는 이 위대한 조상의 이야기가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이 되는 2014년에 완성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4백여 년 전에 이탈리아로 팔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안토니오 꼬레아의 외로운 영혼 앞에 이 책을 바치고 싶었다. 그리고 아득한 고대부터 서로 피를 나누고 문화를 함께 즐기며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던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앞으로는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고 평화롭게 지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가 후기〉에서
▣ 작가 소개
저자 : 정준
1956년 부산에서 출생했으며, 희곡을 썼던 선친의 영향을 받아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그동안 소설집 『반환점없는 마라톤』(1988), 장편소설 『나비처럼 날다』(2001), 에세이 『송강 정철과 함께 걷는 관동별곡 8백리』(2013), 『열정이 없으면 꿈도 없다』(2014) 등을 펴냈고, 정풍송 작곡 설운도 노래인 〈땅끝에서〉(1999)의 노랫말을 작사했다. 1999년에 1년 동안 해남에 머물면서 “땅끝마을”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 신지식인이 되었으며, 2001년에는 제3회 함평나비축제 공식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교보문고와 철도청 후원으로 “정준 작가와 떠나는 나비열차”를 진행했다. 2008년에 박세직 전 88올림픽 조직위원장과 함께 (사)세계걷기운동본부를 설립하고 현재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800리 걷기축제〉의 총기획자로서 2009년부터 매년 이 대회를 고성군과 함께 개최하고 있다. 현재, 역발상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지구촌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문화운동을 기획하고 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혼례식장에 찾아온 섬나라 불청객
나고야의 봄 축제와 심야의 음모
오무라 만의 조선인 포로수용소
탈출
사랑하는 은아
서양인 선교사와 조선인 간호사
항해의 시작
폭풍우 속의 해적선
여기는 남부 이탈리아
꼬레아에서 온 검투사
꿈속의 나폴리
로마에서의 첫 만남
아드리아 해의 진주, 베네치아
뜻밖의 해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나폴리에 나타난 조선인 씨름꾼
기사 안토니오 꼬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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