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왜 지금 마리 앙투아네트인가?
끊임없이 소설, 영화, 만화로 만들어져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그녀의 이야기를 왜 우리는 지금 다시 꺼내는가? 무엇보다 우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폭풍 같은 사랑, 호사스러움이 극에 이른 사치, 끝 모르게 어두운 음모와 배신, 복수의 달콤함, 고통스러운 죽음 등 온갖 전율적 요소들이 다 갖추어진 그녀의 인생은 영원한 낭만주의 서사이다.
열 네 살의 어린 나이에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시집 와 최고 권력자의 아내로 사치와 호사의 극치를 누리다가 38세에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처참한 죽음, 예쁘고 발랄한 소녀가 백발의 초라한 노파로 변하는 인생무상(人生無常), 스웨덴 장교 페르센과의 순수하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가슴 떨리게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 신성 로마 제국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女帝) 사이에서 막내인 열다섯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분방하고 활달하며 사교적이고 화려한 성격이었다. 희고 고운 피부와 탐스러운 머리,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고, 복장과 머리 손질에 관심이 많아 패션과 유행을 선도했다. 당시 프랑스 왕실은 왕비가 옷을 갈아입는 것과 화장하는 모습까지도 모두 공개하여, 베르사유 궁전은 왕비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매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어쩌면 이런 가시성(可視性)이 적국 출신의 왕비라는 약점과 함께 사치하는 왕비라는 악의적 소문의 근원이 되었는지 모른다.
왕비를 정치적으로 재판했다는 것 자체가 선례가 없는 일이었다
프랑스는 중세 이래 살리카 법전의 지배를 받는 나라로, 여자의 토지 상속권이나 왕위계승권이 아예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나라였다. 여왕이 있었던 영국과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여왕의 존재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여성이 통치할 권리를 아예 기본법에서 제외시킨 국가에서 왕비를 정치적으로 재판에 회부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여왕을 인정했던 영국에서 조차 국왕을 재판할 때는 아내를 제외하고 국왕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왕비를 재판한 선례는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그런데 왜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치적 재판을 받았는가? 더구나 정치적 범죄로 처형된 남편 루이16세와는 달리 전혀 정치와 상관없는 완전 포르노그라피에 근거하여 기소되고 처형되었는가?
정치적 재판인데 근거는 포르노그라피였다
프랑스 대혁명은 거의 전적으로 포르노그라피 덕분에 성공한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구체제 하에서도 선정적인 팜플렛이 기승을 부리면서, 도래할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포르노그라피가 대세를 이루었다. 혁명 후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악의적이고 천박하게 된 포르노그라피가 온갖 추악한 외설적 언사로 그녀를 조롱하고 비하하였다.
왜 그랬을까?
여자였기 때문이다.
1789년 혁명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포르노그라피는 노래와 우화, 가상 전기와 고백, 연극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논문’,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자궁의 분노’,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 처녀성 상실부터 1791년 5월 1일까지’, ‘프랑스의 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은밀하고 방탕하고 추잡한 삶’ 등 대충 제목만 훑어보아도 책의 내용이 얼마나 저열하고 악의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첫 번째 연인으로 추정되는 독일 장교를 비롯하여 자기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애욕적인 포옹을 하고 있는 삽화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의 로앙 추기경과 라파예트, 바르나브 등도 왕비의 성적 파트너로 등장했다. 발기 불능인 국왕을 대신하여 아르투아와 폴리냑이 왕비를 상대하고 있는 채색 판화도 있고, 두 여자와 한 남자가 3인 1조를 이루어 섹스를 즐기는 삽화도 있었다.
여성이라고 여성의 동지도 아니었다. 당시의 여권운동가인 루이즈 드 케랄리오(Louise de Keralio)는 ‘프랑스 왕비들의 범죄’라는 팜플렛에서 왕비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남녀를 열거한 후, 왕비를 “정치적 타란툴라 독거미”라거나 또는 “피의 맛을 본 후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는 암호랑이”에 비유했다.
시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이 연인이라는 소문과 함께 이미 혁명 이전부터 떠돌아다니던 근친상간 이야기는 급기야 시할아버지인 루이 15세와도 성적 관계가 있었다는 얘기로 소문의 강도가 높아졌다. 추잡함의 상상력은 인륜의 선을 넘어, 왕비에게 “가장 더러운 쾌락인 근친상간의 열정”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친아버지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였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친 아버지와도 근친상간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아홉 살짜리 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주장이 뻐젓이 근엄한 재판관의 판결문에 등장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서 처형한 결정적 죄목이 이것이었다.
혁명 세력은 근친상간이라는 인류의 금기까지 내세우지 않고는 그녀에 대한 단죄를 도저히 정당화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역사상 최초의 여혐(女嫌, misogynie)의 희생자라고 우리가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정치적 영역에서 여혐의 희생자가 된 사상 최초의 공적 여성이었다.
국왕에 대한 조롱은 고작해야 오쟁이 진 남편(부정한 아내의 남편)이었는데 이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끈질기고 추악한 성적 비하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국왕에 대해 인격적인 중상비방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당시 일반인들의 저변에 깔려있던 생각, 즉 권력과 통치는 남성의 것이라는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아버지 죽이기가 인류의 기원
현재 우리 사회의 과열된 여혐 논쟁을 전혀 지지하지 않지만, 여성에 대한 무시와 비하(卑下)가 수 만년 인류 역사의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1913)에서 우리는 그 기원을 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집안의 모든 여성을 독점하고 그에 항의하는 아들들을 쫓아냈다. 불만을 품은 아들들은 공모하여 함께 힘을 뭉쳐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몸을 먹었다. 이른바 ‘희생제의(犧牲祭儀)’라는 이 최초의 행위 속에서 아들들은 죽은 아버지의 몸을 먹음으로써 아버지와의 동일화를 완수했다. 이런 일을 저지른 형제들은 곧 죄의식을 느꼈고, 그리하여 두 가지 터부를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행위를 속죄하려 했다.
첫 번째는 어떤 특정의 동물을 정해놓고, 그것이 아버지를 대신하는 것으로 상정해 놓은 다음 부족 구성원들에게 이 짐승을 죽이는 것을 금한 것이다. 즉 토템 동물을 죽이는 것에 대한 터부였다. 토템 신앙의 기원이다.
두 번째는 근친상간에 대한 터부였다. 아버지가 사라져 이제는 자유롭게 된 딸들을 그 어떤 형제도 소유할 수 없게 하기 위해 형제들은 한 집안 내의 여성을 범하지 않을 것을 서약했다. 그리고 그것을 강력하게 규제하기 위해 근친상간을 무서운 금기로 만들었다. 평화롭게 함께 살려면 형제들은 이전에 아버지가 거느리던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만 했다. 이러한 터부를 제도화함으로써 형제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난 후에 당면한 주요 문제, 즉 여성들을 둘러싼 상호간의 경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식인과 근친상간이라는 두 가지 금기는 이렇게 해서 인류의 문명을 여는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각기 종교와 친족 제도를 발생시켰다. 정신의 깊은 내면에서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과 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욕망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이 두 가지 금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시대에서 형제들의 시대로
가부장제란 아버지가 절대 권력을 갖고 통치하는 가족 시스템이다. 그것을 국가로 확대시켜 국왕은 백성들의 아버지로, 신민은 왕의 아들 딸들로 상정했다. 절대주의 이념의 왕정 체제는 결국 가부장제의 정치적 버전인 셈이다. 그런데 혁명을 통해 그 왕을 신민이 죽였다. 다시 말해 아버지를 형제들이 죽인 것이다. 이제 가부장제의 모델은 형제애의 모델로 대체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3대 구호를 동양권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博愛)’라고 번역했지만, 실상 ‘박애’의 프랑스어인 fraternite는 ‘형제애’이다. ‘형제간의 사랑’이라는 이 한마디 말에서 우리는 프랑스 대혁명이 가부장제에 기반한 정치적 부권(父權)의 종언을 뜻한다는 것을 단숨에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은 아버지에 대항해 ‘형제들’이 벌인 성공적인 투쟁이었다는 것을 이 단어 한 마디가 보여주고 있다. 이제 아버지의 시대는 종료되고, 아버지를 죽인 형제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형제애라는 혁명 슬로건에서 배제된 자매, 즉 여성은 혁명 후에 어떤 정치적 위치를 갖게 될까? 프로이트가 아버지의 살해 이후에 발생한다고 예상했던 문제, 즉 여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결국 해결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임이 판명되었다. 가정과 국가에서 남성과 분리된, 그리고 남성과는 다른, 그러면서도 불평등한 여성에게 어떤 역할을 주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프랑스 혁명을 성공 시킨 남성 공화주의자들을 괴롭혔다. 처음에는 동등한 상속과 이혼의 자유 등을 허용했지만 곧 여성의 정치 참여를 금지했다. 1793년에 여성 클럽은 법률로 금지되었고, 1795년 봄 국민공회에 대한 대중들의 봉기에서도 여성들은 입법부의 방청석에서 배제되었다. 모든 정치적 모임에 참가하는 것이 금지된 것은 물론 길에서도 여성들은 다섯 명 이상 모이는 것이 금지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야말로 진정 여혐의 희생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물론 여성의 권리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프랑스의 초기 여권론자들 역시 왕비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들은 남자들과 함께 왕비를 마구 공격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마리 앙투아네트와 여성의 지위 문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녀가 그토록 처절하게 당한 것은, 여자에게 공적인 역할을 부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형제들의 공화국에서 왕비는 가장 활발하게 공적 활동을 하던 가장 중요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다시 불러 낸 것은 1년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최고 공적 여성에 대한 정치적 여혐(女嫌)의 사례가 그녀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저 : 엔도 슈사쿠
Shusaku Endo,えんどう しゅうさく,遠藤 周作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가톨릭 신자인 이모의 집에서 성장하였으며, 이모의 권유로 열한 살 때 세례를 받았다. 게이오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 가톨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결핵으로 인해 2년 반 만에 귀국한 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5년에 발표한 『하얀 사람』(白ぃ人)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으로 신쵸샤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고 일본의 대표적 문학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엔도는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후, 유럽의 〈신의 세계〉를 경험한 〈나〉가 결국 동양의 〈신들의 세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자전적 소설 『아덴까지』를 발표했는데, 그 6개월 뒤에 『백색인白い人』을 발표하였고, 또 6개월 뒤에 『황색인黃色い人』을 발표했다. 그리고 백색인으로 1955년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다. 『아덴까지』의 작품 의식을 기반으로 한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 역시 엔도가 유럽과 동양의 종교문화의 차이로부터 겪은 방황, 갈등의 요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또한 〈백색인〉과 〈황색인〉은 인간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악과 선의 대립만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신이 절대적 가치를 갖는 서구인 〈백색인의 세계〉에서도 그 신을 믿는 인간과, 그 신을 부정하는 인간이 상호 존재하고 있으며, 이 둘 역시도 항시 대립하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은 설혹 신을 부정하며 신과 격렬히 투쟁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투쟁을 통해서 이르게 되는 어떤 섭리에 대한 고백성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작품은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66년에 『침묵』(沈默)을 발표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96년 타계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종교소설과 통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문학의 거장이자 일본의 국민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침묵』, 『예수의 생애』,『내가 버린 여자』, 『깊은 강』 등 다수가 있으며 1996년 9월 29일 서거. 東京 府中市 가톨릭 묘지에 잠들어 있다.
역 : 김미형
KIM Mee-Hyoung,金美亨
서강대에서 독문학을, 영남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메디치의 음모』,『지진 해일이 왜 일어날까요?』, 『종유석은 왜 거꾸로 매달려 있을까요?』,『Contemporary Art of China and Japan』, 『박서보- 화업 60년』, 『열정능력자-열정이 능력이다』, 『김호득』 등이 있다.
목 차
편집자의 글 - 6
폭풍우가 다가오다 - 18
폭풍우 - 34
반란이 아니라 혁명 - 50
위기가 닥쳐오다 - 66
스파이 - 87
계획 - 103
탈출의 밤 - 119
운명의 갈림길 - 143
파국 - 160
튈르리 궁 - 177
유폐 - 204
9월 학살, 그리고 4개월 뒤 루이 16세 처형 - 224
영원한 사랑 - 240
가장 고통스러운 날 - 256
재판 - 277
최후의 아침 - 314
역자 후기 - 340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