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구 페미니즘만 아는 것은 반만 아는 것이다!
아시아 여성들이 치러낸 전쟁, 그 아픈 역사를 다룬 페미니즘 다큐소설
3 월 2 5 일 무크티는 긴 공포의 밤으로 들어섰다. 그것은 어둡고 베훌라 (Behula, 힌두교 성전 시바 푸라나와 중세 벵갈의 서사 문학의 주인공으로 남편의 목숨을 구한다) 의 신방처럼 뚫을 수 없지만 뱀의 여신 마나사는 뜨거운 복수의 숨결로 밀랍 칠을 한 작은 구멍을 열었다. 그 순간 서로 다른 연령대의 두 여성은 바늘이 통과할 만한 작은 구멍으로 들어선다.
매리엄은 침대 아래에 의식을 잃고 누워 있다. 그녀는 폭발의 소음이 있었다는 것 말고는 그 밤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무크티는 매리엄이라고도 알려진 매리의 변신을 그려보고 싶어 한다. 이전의 그녀 정체성을 마멸시키고 비랑가나 (본래는 용감한 자, 라는 뜻이었으나 전후에 비하적으로 ‘화냥년’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게 한 28년 전의 전쟁이 무크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중략)-
“선별 처리하라.”
무전기를 통해 명령이 내렸다. 선별 처리하라는 것은 벵골인들을 없애버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단독 명령으로 집단 학살이 시작되었다. -(중략)-
“아주 좋아. 이제 잘 들어라. 첫째, 통행금지가 실시된다고 공표하라. 그리고 방글라데시 국기를 단 집들은 처벌을 각오하라고 말하라. 또한 시내 어느 곳에서도 검은 기가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공표하라. 바리케이드를 쌓는 자는 누구라도 보이는 대로 즉석 에서 총살될 것이다. 바리케이드 주변 지역에 있던 사람들은 기소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에 있는 집이라도, 반복한다.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모든 집을 전부 그냥 철거한다.”
- 『작전명 서치라이트』의 ‘서치라이트 작전’ 중에서
비랑가나의 본래 뜻은 “용감한 전사”라는 의미.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방글라데시 정치 지도자, 세이크 무집이 독립 후 연설에서 “당신들은 우리들의 어머니, 용감한 비랑가나입니다”라고 칭송의 의미로 이야기했으나 대중들에게는 ‘창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환향녀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원래 뜻과는 다르게 ‘화냥년=창녀’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과 같은 맥락. 독립전쟁이 끝난 후 국가적 차원에서 이 비랑가나들의 결혼과 재활을 위한 사업을 실시했으나 그 어느 것도 비랑가나 개개인들에게는 성공적인 결과를 안겨주지 않았다.
결국 비랑가나 개개인들은 자신들이 비랑가나였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거나 혹은 비랑가나로 창녀가 되거나, 국가가 주도하는 재활사업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버티며 개인적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범들에게 사죄와 위자료를 받는다는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비랑가나들은 그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쏟아낼 수 있는 회담,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살아낼 수 있는 연대와 전범재판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흥미에 맞게 부각되고 잊혀지는 일이 반복되며 결국은 잊혀지는 슬픈 운명을 보여준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그 여자, 매리엄
이 다큐소설의 주인공은 매리엄이다. 매리엄은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대학생으로 지식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동생을 고향에 보내고 혼자 다카에 남아 있다 적군인 파키스탄 군인에 붙잡혀 ‘비랑가나’가 된다.
이 소설은 철저하게 매리엄의 시각과 목소리로 방글라데시의 독립전쟁, 공산주의, 민주화 운동 그리고 산업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전쟁의 시기에 남성들은 영웅이 되거나 전범이 되거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반면 굶어 죽을 걱정 없고 배운 만큼 배운 지식인을 포함한 얼마나 많은 다양한 여성들이 어떻게 ‘비랑가나’에서 ‘창녀’로 전락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승리한 남성들만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전쟁이라는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어떤 남성들은 어떻게 사라지고 또 몇몇은 어떻게 위장해 살아남는지, 살아남은 이들은 무엇을 잃은 채 살아냈는지 여성의 시각으로 담백하면서도 신랄하게 이야기한다.
그런 까닭에 매리엄은 그 자체로 방글라데시를 상징한다. 두 강국에 의해 착취당하고 독립과 자주를 이뤄냈음에도 가족과 연인 등 가까운 모든 관계에서 소외당하거나 배척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홀로 생존할 수 없이 외롭고 위태로운 존재, 매리엄.
지금 대한민국의 뜨거운 미투 열풍 속에서 2차 가해 등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의 자연과 문화가 소설 속 이야기가 되다
- 부레옥잠 : 이 소설 속에서는 흙탕물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는 엉켜있어 잘 걷어내기 어려운, 혼란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부레옥잠이 여러 번 언급된다.
- 선대리 습지 : 길을 잃을 위험을 내포하는 지역의 이름이다. 전쟁 전후의 과정에서 매리엄을 비롯한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선대리 습지를 거쳐가며 목숨을 잃거나 길을 잃는다. 혹은 인생의 주요한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꼭 거쳐가는 지역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 반얀나무 : 방글라데시의 상징적인 나무로 역사를 기억하는 어떤 존재에 대한 의인화 된 표현으로 등장한다.
- 사리 : 벵골의 힌두교를 상징하는 여자들의 옷으로 얼굴과 몸을 가릴 수 있는 커다란 천인데 파키스탄 군인들은 벵골 여인들의 사리를 빼앗고 벵골 남편들은 사리를 돌려주며 부모나 가족이 비랑가나 딸을 찾으러 올 때 반드시 지참하고 오는 물건으로 그려진다.
지독한 개연성을 가진 캐릭터들의 이야기
매리엄
주인공.
1971년 다카에 남아 있다 파키스탄군에 잡혀 비랑가나가 된다.
무크티가 매리엄에게 말한다.
“그 시절 많은 여성이 그 상황에서 자살했습니다.”
“오! 그렇지만 나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는 살 생각을 했어요. 나는 전쟁이 끝난 후에 자살을 생각했어요.”
몬투
.매리엄의 남동생. 독립 전쟁 게릴라부대원으로 활약하다 전사한다.
“매리 누나, 만약 우리가 서로를 잃어버리면 찾지 마.
그냥 인력거 잡아타고 직접 집으로 가.”
아베드 자한지르
.독립전쟁을 핑계로 임신한 매리엄을 버리는 매리엄의 첫 연인.
전쟁이 끝나고 파키스탄 여자와 결혼하는 기회주의자.
“내 셔츠부터 놓아줘, 매리.
이런 행동은 나쁜 여자들한테만 걸맞는 행동이야.”
골람 모스토파
매리엄의 외삼촌. 정치경제적 야망이 있는 독립 전쟁의 전범.
“매형, 이제 곧 라자카르와 자유투사들이 같은 샘에서 물을 마시는 것을 볼 거예요. 상황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아요. 우리가 가슴에 어떤 원한을 갖고 있던 간에 모든 무슬림들은 형제들입니다. 파키스탄과 힌두교도들은 서로 다른 나라예요. 방글라데 시는 보너스로 온 거예요. 여기 오늘은 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이시티아크 소령
매리엄을 가두고 떠나는 파키스탄 군인.
“나는 당신과 얘기해야 해. 정말 개 같은 전쟁이야. 말하지 않으면 난 죽을 것 같아.”
라미즈 세이크
독립전쟁 당시 혼자 쓰러져 있던 매리엄을 데리고 피난한 남자. 살인범죄자로 전범인 하지 샤힙의 부하였으나 매리엄과 함께 피난 다니는 과정에서 자유투사들에게 쫓기다가 파키스탄 군인에게 잡혀 고문당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결국 자신을 ‘자유투사’라고 착각하며 고문당하다 살해당한다.
“골람 호세인, 나는 그대처럼 방글라를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오늘 내 마음에 슬프고도 갈등 많은 내 조국보다 방글라가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이냐?”
투키
매리와 같은 날 비랑가나가 되어버린 노퉁가온의 하녀.
“의류 공장 사장은 무슨 배짱으로 우리를 착취한 건지, 참! 그래, 나 비랑가나야, 허! 이리 온, 이리 온, 꼬꼬댁! 꼬꼬댁! 매리 언니, 이 하얀 반점이 있는 암탉이 알을 낳으려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자리를 찾고 있거든요.”
모노와라 비검
매리엄의 어머니.
“어리석은 짓 하지 마라, 아가야. 알라신은 바보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에게 네 가슴을 주어라. 그렇지만 결코 집 문서는 넘기지 마라. 이건 네 거다. 오직 너만의 것이다. 그걸 기억해라.”
아베드 사미르
매리엄이 이혼 후 그녀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되는 시인.
“이게 당신네 여자들 문제야. 심지어 사랑마저도 줄자로 재고 싶을걸.”
아누라다
매리엄과 같이 붙잡혀 있었던 비랑가나들 중 한 명으로 정치적 예언을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다우라트디아’라는 사창가에서 ‘라다라니’라는 이름의 창녀로 죽는다.
그때 아누라다가 그녀의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뽑아 얼굴 앞에 놓고 예언했다.
“이 머리카락이 앞으로 증언을 하게 될 거야.”
하지 샤힙
매리엄이 다카에 살 때 같은 거리에 살던 정치인. 심판받지 않은 독립전쟁 전범 중 하나.
“자, 들어봐, 이 개야. 너 마누라 없이 지낼 수 있어, 허? 너는 강제로 너하고 같이 있게 하려고 살인까지 했잖아. 아냐? 말해봐! 걔들이 어떻게 지내? 마누라와 애새끼들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잖아. 여자 없이 어떻게 지내, 어?”
베이비
전쟁이 끝난 후 자원봉사를 하다가 매리엄을 알게 되어 무크티와 이어주는 과부.
베이비는 무크티에게 말했다.
“그들은 나라에 엄청난 것을, 마지막 방울까지 쥐어짜며 바쳤어요. 그러나 역사는 그들의 기여를 기억하지 않아요.”
몸타즈
전쟁이 끝난 후 매리엄과 결혼하게 되는 비즈니스 맨.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아. 당신의 시어머니나 시누이가 당신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면 좋겠어? 만약 그들이 당신을 1971년의 창녀라고 부르면 그때는 뭘 어떻게 할 건데?”
작가 소개
지은이 : 샤힌 아크타르
방글라데시 코밀라 출생으로 다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소설가로 데뷔한 후 방글라데시 여성작가 들의 작품집을 편집, 출판하기도 했다. 현재 Ain-o-Salish Kendra(ASK) 인권기구에서 일하고 있다.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전명 서치라이트 : 비랑가나를 찾아서(The Search)』의 ‘매리엄 이야기’는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때 여성들이 겪은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그들의 용기, 비통함 그리고 사랑 찾기의 여정과 배신 등을 솜씨 있게 풀어놓 았다. 이 작품은 2004년 방글라데시의 최우수도서상인 프로돔 알로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 유숙열
이브 앤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 입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과 『힐러리 미스터리』 『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등을 번역했다. 그 외에 『한국에 페미니스트는 있는가』 『엄마 없어서 슬펐니?』 시집 『외로워서』 『나는 일하는 엄마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의 저자이며 현재 이프북스 대표.
목 차
옮긴이의 말 / 지워진 역사, 찾아낸 상처
주요 등장인물 소개 / 매리엄 외 23인
습지의 미로
매리라고도 알려진 매리엄의 이야기
서치라이트 작전
다카를 떠나며
낙원으로부터의 추락
전쟁 개시, 세 번째 달
정조, 사리 그리고 속옷
전사
아누라다의 일기
생존자들의 회담
미래의 계획들
인터미션
붉은 장미, 실크 사리, 순백의 침대시트
구출 단계
항복, 항복: 중요한 발표
오늘날까지도 우린 널 잊지 않았어
비랑가나 사무실
이상적인 박물관
베어진 배꼽, 깨어난 청춘
아버지와 아들
공원 대신 집, 잔디 대신 매트리스
귀환
황금기
모녀양장점
오, 내 영혼의 짝
라다라니는 그냥저냥 괜찮다
결혼
민중 법정인가 아니면 해방 전쟁인가
생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비랑가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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