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소설과 수필로 만나는 새로운 백석
한 권에 담긴 백석 문학의 다채로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자 후대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흰 바람벽이 있어」 「여우난골족」 등의 빼어난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백석이 처음 문단에 이름을 알린 것이 1930년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였고 그뒤로도 그가 시 창작 틈틈이 여러 편의 소설과 수필을 남겼다는 사실은 그 문학적 중요성에 비해 비교적 덜 언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명실상부한 백석 연구의 권위자인 고려대 고형진 교수가 공들여 완성한 『정본 백석 소설·수필』은 백석이 남긴 네 편의 소설과 열두 편의 수필을 정확한 정본으로 갈무리하고 친절한 낱말 풀이와 해설을 보태 백석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백석이 산문 장르에서 이룬 또다른 문학적 성취를 온전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해준다.
고형진 교수는 1983년 학계 최초로 백석 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이래 30여 년간 백석의 문학세계를 깊이 연구해온 백석 연구의 선구자로서, 2007년 『정본 백석 시집』으로 백석 시의 가장 신뢰받는 정본을 확립하고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 등 백석 시 해설서와 백석 시어 사전 『백석 시의 물명고』 등을 펴내며 백석 시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그 작업의 연장이라 할 『정본 백석 소설·수필』은 10여 년에 걸친 자료 조사와 연구를 종합한 성과로, 『정본 백석 시집』과 더불어 시와 소설, 수필을 아우르는 백석 문학의 정본을 확정한 뜻깊은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오랜 백석 연구에 바탕한 면밀한 정본 작업
고형진 교수는 ‘책머리에’에서 그동안 백석의 산문을 소개한 책들이 없지 않았지만 정확한 기준 없이 소설, 수필, 평문 등을 단순히 모아놓기만 하고 정작 문학성 짙은 산문은 빠뜨려 그의 산문문학의 정수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음을 지적한다. 또 작품의 일부 어절이 잘못 인식되거나 누락된 경우가 많고 엄정한 기준 없이 발표 당시와 현재의 맞춤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하여 표기함으로써 작품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는다.
백석 작품의 정본을 확립하는 일은 단순히 원본의 오탈자를 바로잡거나 현대어로 바꾸는 작업과는 다르다. 시와 마찬가지로 산문에서도 백석은 의식적으로 방언과 옛말을 살려 쓰는 일이 많았는데, 이러한 백석의 문학적 특징을 온전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원본의 낯선 표기 중에서 작가의 의도가 담긴 표현을 당시의 맞춤법이나 관습, 또는 착오에 따른 표기와 구별해 엄밀한 기준에 따라 표기를 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발표 당시의 맥락과 백석의 작품세계 전반을 고려해 작품의 장르와 성격을 확인하는 일도 이에 포함된다.
『정본 백석 소설·수필』은 『정본 백석 시집』과 마찬가지로 백석의 소설과 수필 작품의 원본 지면을 일일이 재검토하고 정확히 판독해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이를 현재의 맞춤법에 맞추어 표기하되 백석 고유의 어휘와 표현을 살려 백석의 산문 작품이 지닌 문학적 향취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리고 백석이 구사한 토속어나 조어 등을 자세히 풀이해 백석의 풍요로운 문학세계에 오늘날의 독자들이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백석 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로서 백석의 어휘와 표현적 특징에 정통한 고형진 교수의 그간의 연구 성과와 경험이 이 작업의 곳곳에 깊이 스며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정본 백석 소설·수필』은 백석의 소설과 수필 작품이 지닌 문학적 의의를 현재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복원하여 옛 작품을 오늘날에 맞게 되살린 귀중한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백석의 시와 함께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의 산문 작품
백석은 시와 마찬가지로 소설과 수필에서도 허투루 쓴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 소설은 물론이고 수필에서도 문학적 형식을 중시해 한 편 한 편을 단 하나뿐인 독립적인 예술작품으로 완성해낸 그의 소설과 수필은 초창기 우리 산문문학의 폭과 수준을 크게 드높인 것이었다.(‘책머리에’, 13쪽)
『정본 백석 소설·수필』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하고 친절한 해설이다. 백석 문학에 대한 축적된 연구와 면밀한 작품 독해를 바탕으로 한 고형진 교수의 해설은 백석의 소설과 수필 한 편 한 편을 그의 문학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조망 속에서 읽어냄으로써 백석 산문문학의 정수를 또렷이 보여준다.
해설에서 고형진 교수는 「단풍」 「당나귀」 등의 수필이 시로 잘못 간주되곤 한 것을 발표 지면의 성격과 작품의 표현 양식을 면밀히 검토하여 바로잡고, 수필 「가재미·나귀」에서 보인 가자미와 나귀에 대한 애착이 얼마 뒤 발표한 시 「선우사膳友辭」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바탕이 되었음을 확인하며 백석 산문의 문학적 의미를 그의 시와의 연관 속에서 짚어낸다. 그의 산문을 이효석, 김기림, 김동리 등의 당대 작품들과 나란히 비교하는 대목도 백석의 문학사적 맥락과 개성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작품 발표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그와 연관된 백석의 전기적 사실을 적절히 짚어주는 점도 작품 이해에 긴요하다. 백석이 소월을 비롯해 정주 오산학교에서 맺은 인연들을 추억하는 수필 「소월과 조선생」에 대한 해설은 근대 초기 우리 문학과 역사에서 오산학교가 차지하는 위치를 확인하게 해주며, 「슬픔과 진실」 「조선인과 요설」 등 만주 시절 백석의 신문 기고문은 당시 만주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의 현실과 백석이 처한 상황을 알려주는 해설을 통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백석이 네 편의 소설을 통해 보여준 독특한 형식적 시도이다. 그는 문단 등단작인 「그 모母와 아들」에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문을 소설의 중요한 축으로 삼는 개성적인 형식을 보여주었으며, 「마을의 유화遺話」와 「닭을 채인 이야기」에서는 동물뿐 아니라 무생물까지 의인화해 묘사하여 생동감 있는 장면과 서사를 만들어냈다. 또 「사생첩의 삽화」에서는 그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병치하는 독특한 형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가 시에서 보여준 독자적인 양식적 성취가 소설 장르에서도 또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서사성과 그의 소설이 보여주는 시적 묘사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석은 소설과 수필에서도 시에 못지않은 독특한 문학적 향취를 품은 소중한 유산을 우리 문학에 남겨놓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들을 사랑한 시인의 친근한 면모를 새삼 확인하고, 한편으로 그간 눈여겨보지 못했던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백석의 문학을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정본 백석 소설·수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일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백석
1912년 7월 1일(음력 추정)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의 외모는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을 봐도 그의 모습은 매우 모던하다.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모양은 참 특이하다. 1930년대에 그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이란 얼마나 현대적인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시쳇말로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이다.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
1918년(7세),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다. 동문들의 회고에 따르면 재학 시절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9년 오산 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의 바뀐 이름)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성 생활을 시작한다.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 작품과 논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1935년 8월 30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잡지 ≪조광(朝光)≫ 편집부에서 일한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다.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발기인은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 등 11인이었다. 1936년 4월,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간다.
1940년 1월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1940년도에 들어와 백석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시적 반경도 역사적·지리적·정신적으로 대단히 깊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한다. 1946년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10월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남한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취한 1988년까지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완전히 매몰되고 만다.
한국전쟁 직후 백석은 평양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 문학 번역 창작실’에 소속되어 러시아 소설과 시 등의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다. 19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96년 1월 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엮은이 : 고형진
고려대 국어교육과와 동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UC 버클리 객원교수를 지냈고, 현재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시인의 샘』 『현대시의 서사지향성과 미적 구조』 『또 하나의 실재』 『백석 시 바로 읽기』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 『백석 시의 물명고』 등이, 엮은 책으로 『정본 백석 시집』이 있다. 2001년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다.
목 차
책머리에 백석의 소설과 수필의 전개과정
1부 수필
해빈수첩海濱手帖
해설 삶의 세 가지 풍경과 새로운 문학의 신호탄
마포
해설 마포 포구의 근대와 반근대
편지
해설 편지로 쓴 사랑과 고향 풍속
가재미·나귀
해설 명시의 씨앗이 된 함흥의 두 벗
무지개 뻗치듯 만세교-정화릉 숲 위에 갈매기 날고
해설 함흥의 냉미冷味와 풍류와 토박한 아름다움
단풍
해설 아름답지만 사랑하기 싫은 것
동해
해설 동해의 흥취와 그리운 사람들
입춘
해설 달, 저녁, 음력, 그리고 겨울 사랑
소월과 조선생
해설 오산의 힘, 민족의 지도자
슬픔과 진실-여수 박팔양씨 시초詩抄 독후감
해설 시인의 자세와 인간의 품성
조선인과 요설-서칠마로 단상의 하나
해설 말에 담긴 인간의 품격과 광복의 전망
당나귀
해설 조용한 성품이 지닌 높은 품위
2부 소설
그 모母와 아들
해설 욕망의 서사와 소문의 활용
마을의 유화遺話
해설 장면의 서사적 구성
닭을 채인 이야기
해설 동화적 상상력과 우연한 일들의 연쇄
사생첩의 삽화
해설 그림과 이야기의 문학적 병치
원본
海濱手帖
麻浦
편지
가재미·나귀
무지개뻐치듯萬歲橋
丹楓
東海
立春
素月과曺先生
슬품과眞實
朝鮮人과饒舌
당나귀
그 母와아들
마을의遺話
닭을채인이야기
寫生帖의 揷話
백석 소설·수필 연보
백석 연보
낱말 풀이 참고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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