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기존 권위에 맞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작가들
무뢰파 작가란,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의 혼란기에 반속(反俗), 반권위, 반도덕적 언동으로 시대를 상징한 일련의 작가들(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다카미 준, 오다 사쿠노스케, 다나카 히데미쓰)을 말한다. ‘파’라고는 하지만 동인지나 결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시 중의 억압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공감을 담아 명명한 이름이다. 그들은 1930년대 중후반부터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보했으며, 반속 · 반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무뢰적 자세도 그 시기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으며, 전후 그것이 단번에 분출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크게 나누면 2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강적인 자세로 파멸을 향한 생활의 무뢰에 무게를 두었던 작가와, 기존 리얼리즘에 대한 부정에서 새로운 방법의 추구에 무게를 두었던 작가가 있다. 전자로는 다자이, 사카구치, 오다, 다나카 등이 있으며, 후자로는 다카미, 이시카와 준, 이토 세이 등이 있으나 무뢰파로서의 주류적 존재는 전자들이었다. 그 이름의 유래는 다자이의 ‘나는 리베르탱입니다. 무뢰파입니다. 속박에 반항합니다. 때를 얻은 듯한 얼굴을 하는 자들을 조소합니다.’(판도라의 상자)에 있다고 한다. 생활과 표현, 양면에서 반속을 관철시키려 했던 그 자세를 문학적 성실함으로 보아 지금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이 책에는 그처럼 치열한 삶을 살았던 무뢰파 작가들의 단편소설 가운데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중심으로 수록 작가마다 2편씩 선별하여 실었다. 단, 다자이 오사무는 우리나라에도 이미 전집이 나와 있기에 2작품 모두 처음 소개하는 작품은 아니며, 다나카 히데미쓰의 「여우」도 예전에 소개된 적이 있으나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기에 다시 실었다.
일본의 혼란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무뢰파 작가들의 삶과 문학은 단순히 기존 권위에 대한 부정과 도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혼란기 일본에서의 인간적 고뇌를 상징하는 것이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순수한 인간의 몸부림이었다. 순수한 인간이었기에 혼란 속에서 그 고뇌는 더욱 컸던 것이리라. 그들의 고뇌를 함께 경험하시기 바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사카구치 안고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는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 현 니시오하타(西大畑)에서 지방 정치가이자 한시인(漢詩人)이던 진이치로와 그의 후처인 아사 사이에서 열세 형제 중 열둘째(5남)로 태어났다. 이름은 병오년에 태어난 5남이라는 의미에서 헤이고(炳五)가 되었다. 안고라는 필명은 중학교 한문 시간에 선생님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두운 놈’이라는 의미로 ‘안고(暗吾)’라는 별명을 붙인 데서 유래했다.
1925년 스무 살 때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소학교 분교의 대용 교사(자격증이 없는 교원)로 근무했으나 안온한 교사 생활보다 구도자의 길에 대한 동경이 커져, 1926년 3월 도요대학 인도 철학과에 입학했다.
1930년 아테네 프랑세즈의 문우들과 동인지 ≪말(言葉)≫을 창간해 이듬해 제2호에 데뷔작 <찬 바람 부는 술 창고에서(木枯の酒倉から)>를 발표했고, ≪청마(?い馬)≫로 동인지명이 바뀐 후 <고향에 부치는 찬가(ふるさとに寄する讚歌)>, <바람 박사>,<구로타니 마을> 등을 발표해 마키노 신이치(牧野信一)의 절찬을 받고 참신한 주제와 기법으로 무장한 신예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의욕적으로 수작을 발표했다.
1945년 일본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을 두 눈으로 지켜보겠다며 도쿄에 남아 있던 안고는 1946년 ≪신조(新潮)≫ 4월호에 <타락론>을, 6월호에 <백치>를 발표했다. 살기 위해서 인간은 타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락의 정점을 찍음으로써 진정한 구원을 찾을 수 있다는 <타락론>은 패전 후의 혼미 속에서 재빨리 전후의 본질을 파악하고 통찰했다는 점에서 일약 전후 문단의 총아가 되었다. 이때부터 안고에게는 집필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외투와 푸른 하늘>, <여체>, <사랑을 하러 가다> 등 종래의 육체를 사상(捨象)한 사상이나 관념에 맞서, 육체 자체가 사고하는, ‘성의 사상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안고는 오다 사쿠노스케(織田作之助),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이시카와 준(石川淳) 등과 함께 신희작파, 무뢰파라고 불리며 전후 난세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유행 작가, 평론가가 되었다.
<돌의 생각>, <벚꽃이 만발한 벚나무 숲 아래> 같은 걸작을 썼고, 결혼 후 아내의 헌신적인 모습을 슬프게 그린 <파란 도깨비의 훈도시를 빠는 여자>, 전후 풍속을 파헤친 <금전무정> 등을 썼으며, 한편으로 <도경(道鏡)>, <오다 노부나가> 같은 역사 소설, ≪불연속 살인 사건≫(제2회 탐정 작가 클럽상) 같은 추리 소설에도 도전했다.
1949년 2월 수면제와 각성제 중독 증상이 심해져 도쿄대학 병원 신경과에 입원했다. 일상생활에서 광포하고 착란적인 행동이 이어진 가운데, 1950년부터 2년간 전후 문화와 메이지 개화기 문화의 경박성을 비판하며 토착적인 인간성을 파헤친 문명 비평서 <메이지 개화 안고 포물첩(安吾捕物帖)>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했다. 그와 동시에 ≪문예춘추≫지에는 천황제, 공산당을 비롯한 터부에 도전하며 <안고 항담(安吾巷談)>(문예춘추 독자상)을 연재하는 등 독자적인 문명론을 전개했다. 또 일본의 고대사를 연구해 천황가가 조선계라는 것, 조선의 역사가 일본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지적한 독자적인 고대사를 구상해 <안고 사담(安吾史譚)>, <안고 신일본 지리>, <안고 신일본 풍토기> 등 탁월한 사관을 전개했다. 이른바 ‘안고물(安吾物)’로 일컬어지는 이 연작 문명 비평서는,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통쾌히 해소하며 독자들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얻어 안고는 인기 평론가로서 일세를 풍미했다.
1953년 8월 장남 쓰나오(綱男)의 탄생으로 비로소 자신이 일가를 이루었음을 실감한 후, 고대사의 웅대한 구상과 함께 원풍경에 유래하는 창작 활동에 의욕을 불태우던 안고는 1955년 2월 17일 아침 자택에서 뇌출혈로 급서했다. 향년 49세. 안고의 죽음에 대한 반향은 전후 최대의 유행 작가로서의 명성에 비해 쓸쓸한 것이었으나, 1970년 무렵부터 젊은이들에게 재평가를 받으면서 안고는 대대적으로 부활했다.
지은이 : 다카미 준
1907년에 후쿠이(福井) 현의 지사인 사카모토 산노스케(阪本?之助)의 서자로 후쿠이 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다카마 요시오(高間芳雄).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30년에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노동운동에 참가했다가 1933년에 검거되어 전향했다. 유치 중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달아나 이혼했다. 전향과 가정붕괴의 이중고 속에서 쓴 「잊지 못할 옛 친구」가 제1회 아쿠타가와(芥川) 상 후보작이 되어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요설적 설화형식을 주장하여 기성 리얼리즘의 극복을 추구했으며 장편 「어느 별 아래서」와 평론 「문학 무력설」로 인텔리 작가로서의 독자적 지위를 구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현대사의 동란 속에서 자신을 상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쟁 전후에 쓴 일기가 귀중한 기록으로 남았다. 일본근대문학관 창설과 자료수집에 진력했다.
지은이 ; 다자이 오사무
본명 쓰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아오모리현 북쓰가루군 가나기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오모리중학교, 히로사키고등학교 재학 중 문예지를 창간해 대지주인 자기 집안을 폭로하는 《무간나락》과 《지주일대》, 고등학교 교장의 비리에 반발하는 학생운동을 다룬 《학생군》과 같은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1930년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해 도쿄 생활을 시작했으며 학교보다는 글쓰기에 전념하며 손수 만든 문예지에 여러 소설을 발표했다. 1936년 첫 창작집 《만년》을 출간하며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지만 주목받지는 못했다. 1939년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 후 《달려라 메로스》, 《여학생》, 《정의와 미소》 등을 발표하며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전쟁 시절에는 《쓰가루》, 《옛날이야기》, 《우대신 사네토모》와 같은 여행기와 시대물을 발표하며 국가의 검열을 피했다. 1947년 《사양》을 출간하며 전후 사상적 공허감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듬해 1948년 다자이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 《인간 실격》을 완성하고, 책의 출간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연인과 함께 강에 뛰어들어 서른아홉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인생에서 다섯 번째 자살 시도였다.
지은이 : 다나카 히데미쓰
도쿄에서 출생하여 어머니의 집안인 다나카 가에 호적을 올렸다. 가마쿠라에서 성장했으며 와세다(早?田) 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 대학 재학 중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조정선수로 출장했다.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올림포스의 과실」을 썼다. 주재원으로 있던 당시 경성(현, 서울)에서의 체험, 형님의 영향으로 입당한 공산당에서의 체험, 애인과의 신주쿠에서의 생활이 문학의 배경에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수면제 중독에 걸렸으며 1949년 11월 3일에 다자이의 무덤 앞에서 자살했다.
지은이 : 오다 사쿠노스케
오다사쿠(織田作)라는 애칭으로 널리 불리는 오다 사쿠노스케는 1913년 오사카 덴노지 근처 뒷골목 튀김집의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1931년 제3고등학교, 현 교토대학에 입학하나 졸업시험 도중 객혈하여 졸업하지 못한 채 1934년 오사카를 떠나 전지요양에 나선다. 그리고 이때부터 극작가를 지망하며 극본 집필에 몰두한다. 하지만 이윽고 스탕달에게 큰 영향을 받아 1938년 단편 「비」를 발표하며 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이후 오사카로 돌아와 기자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꾸준히 소설 집필을 이어간다. 1939년 발표한 「속취」가 최고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지명되고, 이듬해 7월 발표한 「부부단팥죽」이 제1회 가이조샤 문예추천작에 당선되며 소설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전쟁이 시작되어 장편 『청춘의 역설』이 발매 금지 처분을 당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지만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등과 함께 사회통념, 기성 사상 일체에 반발하며 고유의 직관을 추구하는 무뢰파 작가로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간다. 1946년 12월 대량의 각혈을 일으키며 점차 상태가 악화하여 이듬해인 1947년 1월 33세 나이로 요절한다. 빠르고 경쾌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와 희극을 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돋보이는 오다사쿠의 작품은 7년밖에 안 되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오다 사쿠노스케 문학상이 제정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7년, 사후 60년 이 지난 뒤에야 전시 중 발표하지 못한 단편 「부부단팥죽 속편」 원고가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옮긴이 : 박현석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 및 직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출판을 시작했다. 번역서로는 『붉은 수염 진료담』, 『계절이 없는 거리』, 『사부』, 『엽기의 끝』,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그럼, 이만…… 다자이 오사무였습니다』, 『그럼, 안녕히…… 야마자키 도미에였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나쓰메 소세키 수상집』 외 다수가 있다.
목 차
* 사카구치 안고
요나가 아씨와 미미오 / 전쟁과 한 여자
* 다카미 준
신경 / 인간
* 다자이 오사무
후지 백경 / 비용의 아내
* 다나카 히데미쓰
사요나라 / 여우
* 오다 사쿠노스케
비 / 속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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