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
이디스 워턴이 자신의 삶을 딛고 이룬 예술적 성취
이디스 워턴은 1862년 1월 24일 뉴욕의 명망 높은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디스 뉴볼드 존스. 1866년부터 6년간 유럽 각지에서 머물며 유년시절을 보냈고, 아버지의 서재를 드나들며 문학적 재능을 키웠다. 1878년 첫 시집을 자비로 출간하고 『애틀랜틱 먼슬리』에 시가 게재되나 결혼 전까지 창작 활동은 이어갈 수 없었다. 바로 이듬해 관행보다 일찍 뉴욕 사교계에 데뷔하게 되고, 1885년 열두 살 연상인 에드워드 워턴과 결혼했다. 남편 테디와는 여행을 즐기고 건축과 저택을 애호하고 개를 사랑하는 취향을 공유하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1890년 단편소설 「맨스티 부인의 눈에 비친 세상」을 문예지 『스크리브너스』에 발표하고 1899년에야 첫 단편집을 출간한다. 1901년 레녹스에 ‘마운트’라는 저택을 직접 설계해 짓고, 유럽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역사, 미술, 건축 등에 대해 다수의 글을 집필했다. 1902년 헨리 제임스를 만나 문학적 동지로 평생을 교유했다. 1913년 테디 워턴과 이혼하고 프랑스에 거주하며 제1차세계대전 상황에서 구호 활동을 벌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20년 출간한 『순수의 시대』로 이듬해 여성 작가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해마다 작품을 선보이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다 1937년 8월 11일 프랑스에서 타계했다.
『순수의 시대』는 이디스 워턴이 57세에 집필한, 작가의 삶에서 분수령이 되는 작품이다. 이보다 앞서 발표한 『이선 프롬』(1911) 『암초』(1912) 『여름』(1917) 등의 소설에 자전적 요소가 투영되어 있기는 하나, 『순수의 시대』는 생득적인 뉴욕 상류층이라는 좁디좁은 사회적 관계망 내에서 관습에 억눌려 작가 아닌 사교계 일원으로서 결혼에 집중해야 했던 젊은 날과 이어진 불행한 결혼생활, 외도임에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몰두했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 연인 등 자신을 옥죄고 소모시켜온 관계들로 인해 삶에 드리워진 어둠을 소재로 완성한 워턴만의 “고전 비극”이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생애와 더불어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대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해 작가로서 목표로 한 위대한 예술적 성취를 거머쥔 작품이다.
1920년 작품이 출간되자 출판사는 뉴욕 오페라하우스의 휘황한 광경에서 시작해 파리에서 끝나는 소설이라 줄거리를 소개하며 엘런 올렌스카의 이혼 주장은 과연 정당한가를 묻는 문장을 홍보 문구로 썼다. 1921년 퓰리처상 선정 위원회는 “미국 사회의 건전한 분위기를 잘 그려내고, 최고의 습속과 남성상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야 한다”는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이기에 『순수의 시대』를 첫 여성 작가의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또한 당대를 이미 대표하던 두 “천재 작가”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래드와 비견된다는 상찬을 받기도 했다. 이후로 냉혹한 시간의 흐름에도 작품은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평가들은 도금시대(The Gilded Age)의 풍속과 전후 급변한 사회상을 면밀히 기록해낸 소설로 손꼽았고, 특히나 1993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연출을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출간된 지 백 년이 흘러도 평단과 대중 모두의 사랑받는 위대한 미국 문학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1921년 퓰리처상
뉴스위크 선정 ‘역대 최고의 명저 100’
모던라이브러리 선정 ‘20세기 100대 영문학’
무지와 위선이 만든 삶의 실제와 허상을 가르는 심연
그 사이를 풍요롭게 채운 아이러니와 로맨스의 정교한 향연
뛰어난 연애소설로서 『순수의 시대』는 1870년대 뉴욕 상류층 세 남녀의 연정과 결혼을 다룬다. 주인공 뉴런드 아처가 새하얀 피부에 투명한 눈동자를 지닌 스물한 살의 메이 웰런드와 막 약혼한 때, 메이의 사촌 올렌스카 백작부인(결혼 전 이름 엘런 밍곳)이 폴란드 귀족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뉴욕으로 돌아온다. 새로운 경향과 예술에 대한 너른 이해, 열린 생각과 합리적인 사고를 자신해온 뉴런드 아처는 유럽에서 성장해 자유분방하며 솔직한 엘런을 다시 만나 매료된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나 개성보다 관습과 예법을 중시하는 뉴욕 사교계는 “그렇게 유럽 사람 같아진 것도 당연”하다며 엘런을 “특이한 외국 여자”로 규정하고, 밍곳 가문은 이혼을 원하는 엘런의 의사에 반해 부와 지위가 보장된 남편에게로 돌아가도록 은밀하게 단합하며 변호사인 아처를 내세워 엘런을 회유하게끔 만든다. 아처는 연민과 열정으로 엘런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몰라서 끝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냉담하고도 막아낼 수 없는 상황에 떠밀려 결국 메이와 결혼하게 된다. 아처는 그렇게 엘런을 잃은 후 자신의 “너무 많은 것이 허비되고 망가졌”으며 “운명에 묶여 꼼짝할 수 없다”는 회환으로 남은 생을 보낸다.
『순수의 시대』에 대한 초기 리뷰들은 관행에 준해 익명에 따른 것이 대다수였으나,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는 기명 리뷰를 통해 독자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섬세하고도 애절한 로맨스만큼이나 작품 내에서 강력하게 기능하는 아이러니를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워턴의 작품들 중 ‘삼각관계 3부작’으로 묶이는 『이선 프롬』 『암초』를 모두 옮긴 손영미 원광대 영문과 교수 역시 워턴이 사용한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고전 비극의 본질은 어떤 대상이나 현실에 대해 주인공이 갖고 있는 정보의 오류나 부족,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오판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여러 층위의 아이러니가 비극의 대표적인 수사학적 장치로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삼각관계 3부작’의 『이선 프롬』과 『암초』에도 아이러니가 자주 등장하지만, 『순수의 시대』는 그야말로 수많은 아이러니를 동원해 아처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해설 중에서) 특히나 이디스 워턴이 회고록에서 “나의 캐릭터들은 반드시 그들의 이름과 함께 온다”고 밝힌 바대로, 뉴런드 아처, 메이 웰런드, 엘런 올렌스카 백작부인 이 세 캐릭터의 이름들에 담긴 아이러니에 대한 분석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해준다.
딜레탕트인 뉴런드 아처는 섬세한 안목으로 세상의 변화를 인지하고 그와 대조되는 옛 뉴욕 사교계의 관습과 위선을 꿰뚫어보며, 뉴욕 사교계라는 상형문자 같은 세계 안에서 평생 사소한 것들을 완벽하게 관리해오면서 얻게 된 헛된 권위만 깃든, 팽팽하고 평온해 보이는 얼굴들과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박제된 그들의 삶을 인지한다. 그리고 메이 같은 젊은 여성들이 선대 할머니들의 음모를 통해 인위적인 순수함, 상상력을 거부하는 정신과 경험을 배척하는 마음이 만드는 그런 순수함을 지니도록 길러졌음을 안다. 그러한 앎을 지녔으나 뉴런드 아처는 사회 변화에 동화되지 못하고 그 변화를 스스로 이루어낼 자질도 없는 한계를 지닌 주인공이다. 그러한 한계로 인해 그는 결국 사랑하는 여인인 엘런 올렌스카가 속한 세계로 나아갈 수 없었고, 평생 곁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온 아내 메이의 내면도 엿보지 못한 채 정말 무미건조한 삶 속에 스스로를 갇히게 만든 현대 비극의 주인공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디스 워튼
미국의 소설가. 1862년 1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가족 모두 유럽으로 옮겨가 몇 년간 지냈으며, 이때부터 워튼은 이야기를 즐겨 만들고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지낼 때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았는데, 워튼은 당시 그 나이의 소녀들이 알아야 하는 예절과 패션 등에 대해 억압적이라고 느끼며 거부감을 가졌다.
열한 살 때 단편소설을 써서 어머니에게 보여주었지만, 그녀는 딸의 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어머니는 워튼이 결혼할 때까지 소설 읽는 것을 금지했고, 그녀는 이 지시를 따랐다. 1879년 워튼은 《뉴욕 세계》라는 잡지에 필명으로 시를 게재했으며, 사교계에 정식 데뷔를 하기도 했다. 1885년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결혼했으나 이듬해부터 남편이 급성 우울증을 앓았고, 워튼 자신도 우울증과 천식으로 고생했다.
가든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던 워튼은 마흔 살에 미국 매사추세츠 주 레녹스에 있는 자신의 땅에 ‘더 마운트(The Mount)’를 직접 디자인했는데, 그녀의 디자인 안목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소설 몇 편을 완성했으며, 헨리 제임스 등과 함께 미국문학계의 인물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남편의 정신질환은 고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더 타임스》 기자인 모턴 풀러튼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이혼한 후로는 줄곧 유럽에서 지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워튼은 파리에서 실업상태인 여성들을 위한 바느질 작업실을 열었다. 같은 해 가을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공해 파리에 벨기에 난민들이 넘쳐날 때, 워튼은 이들을 위한 미국 호스텔 설립을 도왔는데, 이곳은 피난민을 위한 쉼터, 식사 및 옷 등을 제공했다. 이후 헌신적인 전쟁 구호 활동에 대한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15년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래드, 토머스 하디, 장 콕토, 월터 게이 등 유럽과 미국 예술가들의 에세이, 예술, 시, 음악을 표현한 『집 잃은 자의 책(The Book of the Homeless)』을 편집해 판매한 뒤, 그 수익을 전쟁 난민을 위해 썼다. 1920년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를 발표해 다음해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1923년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파리 교외
에 정착한다. 193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기쁨의 집(The House of Mirth)』 『나무의 열매(The Fruit of the Tree)』 『이선 프롬(Ethan Frome)』 『암초(The Reef)』 『여름(Summer)』 자서전인 『뒤돌아보며(A Backward Glance)』 등의 작품을 남겼다.
옮긴이 : 손영미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영문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수료 후 미국 오하이오 주 켄트 주립대학교 영문과에 진학, 석사학위를 받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간시(時間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강사로 근무했다. 1995년부터 원광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The Challenge of Temporality: The Time Poems of Emily Dickinson』,『English in Action』,『서술이론과 문학비평』(공저), 옮긴 책으로『여권의 옹호』,『이선 프롬』,『암초』,『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여섯 살』,『훌륭한 군인』,『교수처럼 문학 읽기』(공역),『현대 서술이론의 흐름』(공역),『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트로이 전쟁』등이 있다. 영문학 안에서는 서술이론(narrative theory), 페미니즘, 유토피아 문학, 사상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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