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생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상실의 고백
1996년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심윤경,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박민규, 《표백》의 장강명, 《다른 사람》의 강화길, 《체공녀 강주룡》의 박서련, 《코리안 티처》의 서수진, 《불펜의 시간》의 김유원 등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린 많은 작가를 배출하며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최지월의 《상실의 시간들》은 2014년 당시 “짙은 여운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읽는 내내 남는다” “울고 싶은 마음이 된 채로 이 곡조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나지막하지만 힘이 있는 작품” 등의 평을 받으며, 246편의 경쟁작을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상실의 시간들》은 주인공 석희의 관점으로 엄마의 사십구재에서 탈상인 100일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그린 소설이다. 육체적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 되기까지, 누구나 언젠가는 목격해야 하는 부모의 죽음을 다큐멘터리처럼 매우 사실적으로 서술한다. 평범한 사람이 겪는 평범한 죽음을 둘러싼 현실적인 조건과 고민 등을 실감 나게 표현한 이 소설은, 어찌할 수 없음의 수동적 슬픔보다는 충분한 애도를 통해 죽음 이후로 나아가기 위한 능동적 슬픔의 힘을 느끼게 한다.
삶을 지속한다는 건 끊임없이 낯설어지고, 새로워지고, 고독해지는 일이다. 형제도 자라서 타인이 되고, 타인이 만나서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은 다시 서로를 헤아리지 못하는 타인으로 변해 헤어진다. 만난 사람은 헤어진다. 40년이나 알아온 엄마와 나도 이제 헤어졌다. 이별만이 인생이다. _본문 중에서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애도의 기록
《상실의 시간들》은 엄마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49일이 지난 지금, 농도 짙고 축축한 슬픔보다는 평범하고 지극히 건조한 일상이 꾸역꾸역 밀려들어온다. 주인공 석희에게는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는 대신 살아 있는 아버지와 말싸움하고, 같이 병원을 드나들고, 아버지 혼자 집안일을 할 수 있도록 삶을 정비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다. 만성신부전과 고혈압이 있는 아버지는 강도 높은 식이요법을 해야 한다. 먹어야 하지만 먹지 말아야 하는 모순 속에서, 정기적인 출퇴근 없이 연애소설을 쓰는 석희는 당분간 모시게 된 아버지와 매일 전쟁을 치른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진 후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엄마는 사망진단서를 받기까지 ‘환자’인 채로 대기 중이었다. 잠옷 차림으로 미간을 잔뜩 찡그린 엄마를 응급실 구석에 그대로 둔 채, 아버지는 대기실에서 아내의 죽음을 처리해줄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석희와 그의 동생 은희가 의사의 서명을 받고 장례식장의 이용객이 된 뒤에야 엄마는 비로소 장례 의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석희는 수많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황망한 정신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빈소의 종류와 조문객을 위한 식사 메뉴 등을 골랐다. 남 앞에서 울지 않는 석희를 보고, 엄마의 교회 친구들이 몰려와 범인을 색출하듯 심문했으며, 아버지 쪽 친척들은 아내 없는 아버지의 앞날을 걱정해 울부짖었다.
43년간 아버지와 함께한 엄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낸 것일까.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고향을 떠났고, 석희가 세 살 때 이사 온 원주에서 삶을 마친 엄마. 10년쯤 전에, 엄마는 심부전을 판정받았다. 엄마의 심장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아빠의 퇴직과 소희 언니의 결혼과 이민, 석희의 불안정한 생활, 은희의 박사 진학 등이 있었던 시기와 맞물린다. 아버지는 명령과 복종이 익숙한 군 생활을 33년이나 했다. 집에서는 언제나 부재했던 아버지를 두고 엄마는 아빠를 ‘애국자’이자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훌륭한 가장’이라고 했다. 어떤 일에서건 아버지의 판단이 가족 전체를 위한 최선으로 여겨졌다. 그런 아버지가 퇴직한 직후 엄마의 생활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평생 도맡아온 살림에 대한 권한을 뺏겼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여겼던 자식들의 삶이 알 수 없는 사물로 변해버렸다. 몸은 쇠락해가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들이 일상에서 벌어진 것이다.
처음부터 엄마가 엄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스물세 살 엄마는 스물아홉의 아버지를 맞선에서 만났고, 키가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긴 아버지에게 시집을 가기로 결심했다. 여자 형제 중에 국민학교를 나온 건 엄마뿐이었고, 시골 마을에서 엄마는 양장 학원을 다니는 일등 신붓감이었다. 부모님을 조른 끝에, 67년에 쌍꺼풀 수술도 한 엄마. 아버지를 따라 낯선 도시에 새롭게 적응해야만 했고, 아버지에게만 의존하며 세 아이를 홀로 키운 엄마. 아름다운 물건을 골라 아름다움 그 자체에 찬탄을 보내던 엄마의 삶은, 돌이켜 볼수록 짧기만 하다.
인생이란 영원할 것 같은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 그것이 결국 찰나였음을 깨닫는 여정이 아닐까. 찰나생 찰나멸. 그 안에서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가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상실의 시간들》은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이 글을 2년 전에 겪은 어머니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마음의 혼란을 벗어나보고자 쓰기 시작했다. 내 어머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사회나 국가에 혹은 역사나 공공의 영역에 휘황찬란하게 기록될 만한 업적이나 이렇다 할 이름을 갖지 못하고, 그저 가족들을 사랑하고 가까운 친구들과 어울리며 한평생을 보낸 뒤에, 그 어떤 사회적 상징이나 의미를 지닌 사건에도 휘말리지 않고 자연스러운 이유로 돌아가셨다. 수년이 지나면 가족들 외에는 아무도 어머니를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세상의 다수는 평범한 사람이니, 평범한 죽음 또한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로서 소설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한 이유로도 썼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지월
1972년생. 지구인. 쥐띠. 오형. 게자리.
국적 대한민국. 고향 원주.
서울여대 문헌정보학과 졸업.
사서. 그리고 작가.
목 차
상실의 시간들
작가의 말
개정판 작가의 말
추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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