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타임》 선정 ‘1923년 이후 명작 100선’, “작가들이 좋아한 작가” 리처드 예이츠
중산층 부부의 위선적인 삶을 통해 폐쇄적인 미국 사회의 일면 보여 준 작품
“그녀는 이제 침착했고 차분했다. (……) 진심으로 원해서 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언제나 오직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 나는 한 번도 예이츠의 책을 읽고 나쁜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는 늘 진실만을 썼기 때문이다. ─ 스티븐 킹
▶ 이 세대에 쓰인 최고의 소설 중 하나. ─ 커트 보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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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후 풍요로워진 미국 사회 중산층의 허와 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날 수 있을까
1961년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출간한 이듬해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1999년 《보스턴 리뷰》에 스튜어트 오난이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며 “작가들이 좋아한 작가”라는 찬사와 함께 사후 대중의 관심을 받은 작가, 2005년에는 《타임》 선정 ‘1923년 이후 명작 100선’에 포함되고, 2008년에는 케이트 윈즐릿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흥행 성공으로 또다시 역주행하여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호명받은 리처드 예이츠의 대표작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2차 세계 대전 후 유례가 없이 풍요로워진 미국 사회의 중산층 문화를 통해 당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미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상대에게서 구하려고 한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 때문에 이들은 결코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불능의 관계에 놓여 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뉴욕시 외곽 지역에 해당하는 코네티컷주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정착했다. 에이프릴은 한때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지금은 전업 주부. 2차 세계 대전 막바지 프랑스 전선에 복무한 경험이 있는 프랭크는 자신을 이상주의적 경향이 강한 지식인으로 생각하며 순전히 가정을 꾸리기 위해 로봇처럼 직장 생활을 한다고 믿고 있다. 교외 지역에서 중산층의 삶을 살면서도 이들은 체제에 순응하며 허위적인 삶을 사는 이웃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프릴은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프랭크를 주저앉히고 있다며 파리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과연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날 수 있을까?
냉담과 연민이 뒤섞이면 희비극이 된다. 이 희비극은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제목이 붙으면서 ‘미국의 역사’라는 한 차원 더 높은 의미망으로 편입된다. 소설의 배경인 로렐은 뉴욕시 바로 북쪽 스탬퍼드시 근처 코네티컷 남부다. 미국에서는 독립 전쟁을 ‘혁명 전쟁(The Revolutionary War)’이라고 부르는데, 이 독립전쟁의 발원지가 이곳이다. 이 지역은 뉴잉글랜드의 핵심이고 이른바 ‘양키’ 문화의 중심지다. 그러므로 제목의 ‘레볼루셔너리(revolutionary)’는 ‘회전’이 아니라 ‘혁명’과 관련된 단어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이 단어는 형용사로서 ‘혁명에 가까운’이나 ‘혁명과 관련된’을 의미할 수도 있고, 명사로서 ‘혁명가’를 가리킬 수도 있다. ‘로드(Road)’가 일반 명사로서 ‘통행을 위한 길’을 가리킨다면, ‘레볼루셔너리’는 형용사가 되어 ‘최신 시스템을 갖춰 절대 파손되거나 얼어붙지 않는’과 같은 ‘혁명적인’ 또는 ‘혁신적인’이라는 말을 가리킬 것이다. 하지만 제목의 ‘로드’는 일반 명사가 아니라 ‘도로의 행정 분류상의 명칭’으로서 ‘비교적 좁고 짧은 도로’의 주소를 나타낼 때 흔히 쓰이는 명사다. 따라서 ‘레볼루셔너리’는 ‘로드’를 수식하는 명사로서 둘이 합쳐져 프랭크 에이프릴 부부가 사는 집의 주소지를 가리키고, ‘레볼루셔너리’는 왕정을 타파하고 공화정을 수립한 미국 독립 전쟁 참가자로서 ‘혁명 투사’ 또는 ‘독립 전사’를 의미하는 명사가 된다.
■ 유럽에는 있고 미국에는 없는 것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들, 자신과 타인에게 냉소적인 이들
대개 ‘음모’를 폭로하는 소설에서는 전지적 삼인칭 시점의 화자가 줄거리를 중립적인 목소리로 전달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화자는 주인공까지 포함한 등장인물 모두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인데 이 점이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이자 가치다. 『레볼루셔너러 로드』는 두 주인공의 경우만 국한해서 본다면 일종의 성장 실패기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성장을 방해하는 세력 혹은 성장을 실패하게 만드는 힘은 흔히 사회 자체 혹은 사회적, 역사적 정황이다. 이런 식의 전형적인 줄거리에서는 주인공이 이들 적대적인 세력에 맞서고, 투쟁하는 결과가 전체의 결말을 결정한다. 영웅적으로 이겨 내거나, 처참하게 실패하거나, 아니면 ‘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탈출하거나. 그런 전형적인 이야기에서라면 화자는, 중립적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개 주인공에 대해 우호적이다. 그래야 독자들이 주인공의 투쟁에 더 관심을 기울일 테니까. 그런데 이 소설은 좀 다르다. 이 책의 화자는 줄거리의 전 단계에 걸쳐 회의적이다. 말하자면 등장인물과 그들의 배경 혹은 적대 세력이 되는 사회 자체 모두에 대해 냉소적인 셈이다.
프랭크와 에이프릴 두 주인공 자신들도 냉소적이다. 두 사람은 교외 신흥 주택 지역에서 가장은 벌고 아내는 전업 주부인 핵가족을 이루어 전형적인 젊은 중산층 부부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현재의 삶을 부정한다. 뉴욕시에서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과거의 보헤미안적인 삶을 떠나 현재의 ‘중산층 지옥’에 떨어진 것은 ‘두 아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다. 자신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다. 그들의 눈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 ‘평범함을 강요하는’ ‘절망적인 공허’ 속 중산층의 삶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찬양하는 얼빠진 인간들이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그나마 자주 어울리는 가족은 셉과 밀리 부부다. 그렇지만 주인공 부부는 이들도 은근히 무시한다. 중산층 삶에 대한 혐오의 정도가 자신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실에 대해 냉소적인 이 부부에게는 대안이 없다. ‘절망적인 공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에게는 이 폐허를 보람찬 삶의 현장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없다. 이런 그들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이곳을 ‘뜨는’ 것이다. 미국은 유럽의 식민지로 출발했다. ‘유럽의 대안’을 건설한다는 거창한 이념과는 별개로 미대륙 식민지 개척민들은 ‘먹고살 만’해지면 언제나 유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실제로 ‘용기 있는’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호기롭게 파리로 날아가 얻을 수 있는 것, 1950년대 미국 신흥 주택가에는 없고 유럽에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무엇일까? 정체성이다. 두 사람은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발견하는 것’을 궁극적인 행복의 조건으로 간주하며, 당대 미국 중산층의 평범한 삶은 정체성의 형성을 방해하거나 적극적으로 파괴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현재의 인간 관계나 물질적 기반을 부정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 준다. 자신들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조건들을 ‘자신들의 것’이 아니거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들을 파악한다. 이 경우, 우연한 조건들을 초월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근대인 특유의 노력과 유사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런 부정 혹은 초월을 통해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인식’에 닿는 과정을 보여 주지 못한다. 주인공 부부에게서는, 실존주의식으로 말하자면, ‘진정성’이 없다. 두 사람은 당대 미국 사회의 지적 유행을 답습하고 있는 ‘가짜’에 불과하다.
■ 1960년대 미국 문학이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안내판
‘농지 소유의 자유민’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프랭크는 회사 조직의 기제에 종속된 임금 노동자에 불과하다. ‘사랑의 여신’이어야 할 에이프릴은 사랑에 실패하며, ‘보호자’여야 하는 셉은 그 누구도 보호하지 못하며, ‘성실하고 능숙한 일꾼’이어야 하는 밀리는 수다쟁이에 불과하다. 추하게 늙어 가는 헬렌은 이름에 제값을 하려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녀’여야 하며, 망상에 사로잡힌 존은 ‘선지자’여야 하고, 술에 찌들어 무기력해진 오드웨이는 ‘창으로 무장한 전사’여야 한다. 이처럼 예이츠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을 부여하면서 발화와 의도가 정반대인 언어적 아이러니를 사용하여 이들을 희화화한다. 게다가 예이츠는 이들을 이름값도 못 하는 인물인 듯한 이름들을 부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부모 세대에 비하면 ‘열등한’ 자식 세대로 규정한다. 프랭크의 경우, 아버지는 직업 윤리가 투철하고 성실하며 손재주가 좋은 노동자였다면, 자신은 여자들 앞에서 멋진 척하는 말솜씨만 그럴듯할 뿐 회사 조직의 허점이나 파고드는 불성실한 노동자다. 유럽을 유람하며 파티를 즐기던 유한 계급이었던 부모를 둔 에이프릴은 현재 신흥 주택 단지의 조그만 주택에서 회사원인 남편과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부모 세대보다 열등하며, 신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타락한’ 삶을 살고 있다.
이름에 적용된 아이러니와 신분상의 ‘타락’이란 이들 주제는 모두 예이츠가 1950년대의 미국을 이전보다 못한 사회로 간주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전과 비교해 떨어지는 품질의 어떤 것은 궁극의 결과라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상적이라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적어도 1950년대 미국 사회는 혁명가들이 꿈꾸었던 그런 사회는 아니다. 이 소설 이후 1960년대 미국 작가들은 미국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혁명가 ‘국부’들의 이상을 소환하며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반체제적’ 또는 ‘체제 저항적’인 작품들을 쏟아낸다. 예이츠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그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다만 1950년대 중산층의 삶에 깃든 어리석고 불합리한 면을 냉정하게, 그러나 연민의 정으로 그려 내는 과정에서 ‘미국의 꿈’이 구현됐다는 현재 사회가 미국을 건설할 때의 꿈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1960년대 미국 주류 문학이 나아갈 길의 방향을 어렴풋이 가리키는 안내판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리처드 예이츠
20세기 중반 미국의 이른바 ‘불안의 시대’를 대표하는 미국 소설가이다. 대공황기 뉴욕의 불안정한 가정에서 태어나 형제가 뿔뿔이 흩어져서 성장해야 했던 정황과 자신의 2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 등 자전적 소재를 많이 활용한다. 미국 중산층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실주의 경향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적확한 문장과 치밀한 구성으로 “작가들이 좋아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때 케네디 형제의 연설문을 작성해 주기도 하고, 전도유망한 젊은 작가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평생 하루 네 갑씩 담배를 피우고, 알코올 중독과 조울증에 시달리며, 상업적인 성공과는 관계없이 어렵게 살다가 1992년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1999년 스튜어트 오난이 《보스턴 리뷰》에서 재평가하면서, 그리고 1962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데뷔작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2008년 영화화되어 골든 글로브 수상작이 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단편 소설집을 비롯, 일곱 편의 장편 소설을 썼다.
옮긴이 : 이삼출
경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영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모더니즘 시 전공으로 버팔로 소재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영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모더니즘을 국민문학 정립 운동으로 파악하는 논문들을 썼다. 옮긴 책으로 『필경사 바틀비・선원 빌리 버드』, 『포스트모던의 조건』(공역)이 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목 차
1부 11
2부 181
3부 315
작품 해설 4 93
작가 연보 5 18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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