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_김연수(소설가)
“사람의 이야기를 찾는 여행자라면 이 별자리를 올려다보며 길을 떠나도 좋을 것이다”
_조해진(소설가)
김현우 피디가 기록해내는 세계는 하나의 질문으로 대변할 수 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가 그것이다. 여기서 ‘당신’에는 ‘나 자신’도 포함될 것이다.
같은 단어라도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이들에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어떤 이에겐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단어가 다른 이에겐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로 아픈 단어일 수도 있다. ‘바늘’ ‘손가락’ ‘불’ ‘바람’, 이런 평범한 단어들에 세상의 사람 수만큼 많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교육이란, 그렇게 서로 다른 개인의 언어들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과정일 것이다. 한 단어가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가지는 의미와 그 이유를 이해하는 상상력을 훈련하는 과정. 하지만 어떤 의미는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벽 너머에 있어, 도저히 함께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벽이 있음을 인식하면, 상대를 이해해보려 정성을 다해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사람은 성격에 따라 냉소적이 되거나 겸손해진다. 그 아이와 인터뷰하기 전까지 나는 겸손하지 않았다. 청주맹학교 아이들이 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모두 나의 상상 밖이었고, 출발 전의 걱정은 오만이었다. 두 눈 멀쩡한 사람이 볼 수 없는 세상도 있다. 그 사실을, 앞을 볼 수 없는 아이들이 ‘보여’주었다.
-158쪽, ‘태국 치앙마이 | 보고서도 보지 못하는 것’
몇 해 전 그는 청주맹학교 학생들과 함께 치앙마이에 갔다. 태국 엘리펀트 네이처 파크에서 맹인 아이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밥도 주고, 씻겨도 본 뒤 자기가 경험한 코끼리를 찰흙으로 빚는 모습을 촬영했다. 눈도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특별한 수업의 풍경을 담으며 저자는 촬영을 떠나기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되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이 마주하고 있는 단동은 ‘경계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에게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소설가 김연수와 『열하일기』의 여정을 되짚어가는 와중이었다.
경계는 서로를 배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은 경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리는 결정에 따라 그어진다. 하지만 그 경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선은, 그 배타성은 삶의 조건, 혹은 또다른 기회일 뿐이다. 경계만큼 또렷하지 않기 마련인 삶은, 그렇게 먼 곳에서 그어놓은 선처럼 매끈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런 삶은 강사장의 사업 물품이 바뀌듯이 그렇게 쉬지 않고 움직인다. 늘.
단동을 떠나는 날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 새벽 네시에 호텔을 나섰다. 압록강을 따라 달리는 강변도로에 새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일 뿐,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어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사람이 빠져서일까, 강 건너로 보이는 북한은 전날 낮에 봤던 것보다 훨씬 가깝게 보였다. 역시 사람이 없어서일까? 조용한 도로와 정박해 있는 배들, 아직 사람들의 시간이 시작되기 전의 그 풍경은 공평하게 어두웠다. 그 시간엔 경계 이쪽과 저쪽이 나누어져 있다고 할 수 없었다.
-232쪽, ‘중국 단동 | 경계를 사는 사람들’
오키나와에서는 히메유리의 탑에 들렀다. 전투에 동원되었다가 죽은 열세 살에서 열아홉 살 사이의 여학생 백삼십여 명을 기리는 곳. 김현우 피디는 그곳에서 ‘주변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주변인은 늘 희생당한다는, 주변의 개인들은 개인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개념, 혹은 숫자로만 파악된다는 생각”에 오키나와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여학생 개개인의 이름이라고. 저자는 이런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오키나와의 역할일 것이라 본다.
눈앞에 드러난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닌 그 현상을 만들어낸 환경의 역사, 개인의 역사를 섬세한 감수성으로 ‘의식’하는 그의 차분하고 사색적인 문장을 따라가다보면,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은물론,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들이 사실은 모두 나 자신을 깨우고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다는 소박하면서도 잊기 쉬운 진실에 가까워진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풍경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떤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것,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여행이 늘 인생에 새로움만을 더하는 건 아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나를 기쁘게 하는 것, 흥분시키는 것뿐 아니라 내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 비우고 비웠을 때 내 안에 남는 것을 대면하곤 한다. 낯선 언어와 기후와 사람들, 그 ‘낯섦’이 주는 대답은 외려 후자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김현우 피디처럼 사십대 초반이라는 본인의 나이가 삶의 마디 가운데 어디쯤인지 예민하게 짚어본다면 더욱더 그 대답에 귀를 기울이리라.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애를 쓰는 시기가 청춘이라면, 나의 청춘은 아마 지나간 것이리라. 언제부턴가 나의 모습에 어떤 새로운 면모를 더하려는 노력을 멈춘 것 같다. 대신 내게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더 많이 한다. 나를 지키는 노력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다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도 결단은 필요하다. 환경이 변하고, 그렇게 변하는 환경에서 계속 나로 남을 수 없다면 그 환경을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결단을 고민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역시 나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나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시기임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감이란 ‘몸으로 느낀다’라는 의미이다.
_211쪽, ‘일본 도쿄 | 뿔 난 삼엽충이 될 것인가, 몸집을 줄인 삼엽충이 될 것인가’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젠 나도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존 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그림 앞에서 ‘나의 몸이 떠올린 내적 기억’들이 그 말로 이어졌다. 구구절절 그 사연들을 말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환한 빛’만 생각하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고, 그 빛이 꺼진 후 어둠 속에서 지내던 시절도 있었으며, 이제는 그렇게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상태를 인정하고, 그림자에 가린, 그 어두운 부분까지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있는 것임을,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없음을 알고 그 둘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게 되고 나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속 표정이 그저 체념의 표정만은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는 온통 과거만을 향한 문장은 아닌 것이다. 그 마음도 여전히, 늘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미래를 향하고 있다. 사람은 ‘기대’가 없이도 다가올 날들을, 혹은 남은 날들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그건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음을, 그렇게 환하기도 했고 어둡기도 했던 자신과 비로소 화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마음일 것이다.
-249~250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김현우 피디는 나를 나로 마주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 “삶은 영원히 뒤틀리고 말 것”이라고 한다. 내 안의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잘 보듬고 그 외의 것들은 비울 수 있어야 또 타인의 이야기를 위한 자리가 생기리라.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쳐 점차 내 안의 경계가 넓어지리라. “경계 너머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매우 자주 지치기도 하지만, 경계를 넘어가는 동안의 현기증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고맙게도 함께 건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손을 꼭 쥔 채 그렇게……”
추천사
김현우 피디가 바라보는 세계는 온전하다. 그 세계는 광활하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은 평화롭고 행복하다. 설령 화를 낸다고 해도 이윽고 풀리고 마는, 그런 곳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변해가더라도 이 온전한 세계가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코타키나발루의 밤에 그가 올려다본 별의 전언처럼. ‘괜찮아. 네가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든, 앞으로 또 얼마나 변화를 겪든, 우리는 이대로 여기 있을 거야.’ 대부분 방송사 피디로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만난 평온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에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흥겨움과 상실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를 닮은 묘한 느낌의 문장은 덤이다.
_김연수(소설가)
여행은 쓸쓸하다. 포부를 안고 일상을 벗어나 도착한 곳에서 타인의 또다른 일상을 목격한 여행자는, 그제야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여행은 쓸쓸하지만 대신 흔적을 남긴다. 김현우에게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 그 흔적이 된다. 존경하는 작가에서 촬영을 돕는 현지 스태프까지, 김현우의 시선은 늘 구체적인 사람에게 닿아 있다. 그러니 김현우의 『건너오다』는 여행서이자 산문집인 동시에, 저마다 고유한 역사와 문장과 간절한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비록 세계의 조그마한 일부일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분명하게 빛을 내는, 경계를 넘어 빛과 빛으로 이어졌을 때 하나의 별자리를 이룰 만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찾는 여행자라면 이 별자리를 올려다보며 길을 떠나도 좋을 것이다.
_조해진(소설가)
▣ 작가 소개
저 : 김현우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EBS 교육방송 PD로 일하고 있으며, 영화 프로그램 <시네마 천국>을 담당했다 .전문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웬디 수녀의 유럽미술 산책』,『세계명화비밀 탐사』,『스티븐 킹 단편집』,『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행운아』,『소크라테스 씨 질문 있어요』,『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G』, 『인상주의자 연인들』, 『로라, 시티』, 『A가 X에게』,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그레이트 하우스』 『벤투의 스케치북』(공역) ,『내 인생의 그녀』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풍경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
프랑스 파리_그 밑에 계신 겁니까?
프랑스 안시_이것만 있으면 된다
러시아 모스크바_마음은 언제 현실을 따라잡는가
호주 마운트아이자_때론 현실이 아닌 것처럼
호주 태즈메이니아_세상의 끝, 혹은 다른 세상의 시작
프랑스 칸_위대하지 않은 자전거 여행
//계속 움직이는 순간
미국_비어 있는 시간들
미국 로렌스1_또래의 유학생 부부와 바비큐
미국 로렌스2_KU 잔디밭과 망가져버린 글라이더
미국 로렌스3_더스티 북셸프의 고양이와 캔자스 주에만 있는 햄버거
미국 앤아버_신호등은 잘못이 없다
미국 왈츠_열두 시간 동안 똑같은 풍경일 거예요
미국 볼티모어_짜기만 했는데 어쩌다보니 다 먹고야 말았던 게 요리
미국 뉴욕_메이저리그를 직관하다
미국 뉴헤이븐_You should be!
미국 미줄라_펄리시티라는 이름
미국 로스앤젤레스_비어 있는 시간
영국 런던_그때는 그랬다
이탈리아 피렌체_선물 같은 밤
필리핀 아닐라오_상상하기 때문에 두렵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_하늘엔 원래 별이 많다
일본 오카야마_자주 먼 곳을 보는 침팬지
발칸반도_세 창문 모두 닫혀 있었다
태국 치앙마이_보고서도 보지 못하는 것
일본 오키나와_''고쿠바 난코''라는 이름
중국 마카오_그 바람들은 다 이루어졌을까?
미국 샌프란시스코_나는 내가 한 선택들의 합이다
//기억은 일부러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
일본 규슈_버려졌던 공간과 시간
독일 라이프치히_사람의 몸은 접촉을 필요로 한다
일본 도쿄_뿔 난 삼엽충이 될 것인가, 몸집을 줄인 삼엽충이 될 것인가
일본 오사카_어떤 직선은 슬프다
중국 단동_경계를 사는 사람들
중국 변문진_장백산 담배 한 개비로 건너는 경계
중국 진황도_경계를 건널 때 지니는 것
네덜란드 암스테르담_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에필로그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_김연수(소설가)
“사람의 이야기를 찾는 여행자라면 이 별자리를 올려다보며 길을 떠나도 좋을 것이다”
_조해진(소설가)
김현우 피디가 기록해내는 세계는 하나의 질문으로 대변할 수 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가 그것이다. 여기서 ‘당신’에는 ‘나 자신’도 포함될 것이다.
같은 단어라도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이들에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어떤 이에겐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단어가 다른 이에겐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로 아픈 단어일 수도 있다. ‘바늘’ ‘손가락’ ‘불’ ‘바람’, 이런 평범한 단어들에 세상의 사람 수만큼 많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교육이란, 그렇게 서로 다른 개인의 언어들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과정일 것이다. 한 단어가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가지는 의미와 그 이유를 이해하는 상상력을 훈련하는 과정. 하지만 어떤 의미는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벽 너머에 있어, 도저히 함께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벽이 있음을 인식하면, 상대를 이해해보려 정성을 다해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사람은 성격에 따라 냉소적이 되거나 겸손해진다. 그 아이와 인터뷰하기 전까지 나는 겸손하지 않았다. 청주맹학교 아이들이 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모두 나의 상상 밖이었고, 출발 전의 걱정은 오만이었다. 두 눈 멀쩡한 사람이 볼 수 없는 세상도 있다. 그 사실을, 앞을 볼 수 없는 아이들이 ‘보여’주었다.
-158쪽, ‘태국 치앙마이 | 보고서도 보지 못하는 것’
몇 해 전 그는 청주맹학교 학생들과 함께 치앙마이에 갔다. 태국 엘리펀트 네이처 파크에서 맹인 아이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밥도 주고, 씻겨도 본 뒤 자기가 경험한 코끼리를 찰흙으로 빚는 모습을 촬영했다. 눈도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특별한 수업의 풍경을 담으며 저자는 촬영을 떠나기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되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이 마주하고 있는 단동은 ‘경계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에게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소설가 김연수와 『열하일기』의 여정을 되짚어가는 와중이었다.
경계는 서로를 배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은 경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리는 결정에 따라 그어진다. 하지만 그 경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선은, 그 배타성은 삶의 조건, 혹은 또다른 기회일 뿐이다. 경계만큼 또렷하지 않기 마련인 삶은, 그렇게 먼 곳에서 그어놓은 선처럼 매끈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런 삶은 강사장의 사업 물품이 바뀌듯이 그렇게 쉬지 않고 움직인다. 늘.
단동을 떠나는 날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 새벽 네시에 호텔을 나섰다. 압록강을 따라 달리는 강변도로에 새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일 뿐,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어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사람이 빠져서일까, 강 건너로 보이는 북한은 전날 낮에 봤던 것보다 훨씬 가깝게 보였다. 역시 사람이 없어서일까? 조용한 도로와 정박해 있는 배들, 아직 사람들의 시간이 시작되기 전의 그 풍경은 공평하게 어두웠다. 그 시간엔 경계 이쪽과 저쪽이 나누어져 있다고 할 수 없었다.
-232쪽, ‘중국 단동 | 경계를 사는 사람들’
오키나와에서는 히메유리의 탑에 들렀다. 전투에 동원되었다가 죽은 열세 살에서 열아홉 살 사이의 여학생 백삼십여 명을 기리는 곳. 김현우 피디는 그곳에서 ‘주변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주변인은 늘 희생당한다는, 주변의 개인들은 개인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개념, 혹은 숫자로만 파악된다는 생각”에 오키나와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여학생 개개인의 이름이라고. 저자는 이런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오키나와의 역할일 것이라 본다.
눈앞에 드러난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닌 그 현상을 만들어낸 환경의 역사, 개인의 역사를 섬세한 감수성으로 ‘의식’하는 그의 차분하고 사색적인 문장을 따라가다보면,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은물론,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들이 사실은 모두 나 자신을 깨우고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다는 소박하면서도 잊기 쉬운 진실에 가까워진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풍경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떤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것,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여행이 늘 인생에 새로움만을 더하는 건 아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나를 기쁘게 하는 것, 흥분시키는 것뿐 아니라 내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 비우고 비웠을 때 내 안에 남는 것을 대면하곤 한다. 낯선 언어와 기후와 사람들, 그 ‘낯섦’이 주는 대답은 외려 후자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김현우 피디처럼 사십대 초반이라는 본인의 나이가 삶의 마디 가운데 어디쯤인지 예민하게 짚어본다면 더욱더 그 대답에 귀를 기울이리라.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애를 쓰는 시기가 청춘이라면, 나의 청춘은 아마 지나간 것이리라. 언제부턴가 나의 모습에 어떤 새로운 면모를 더하려는 노력을 멈춘 것 같다. 대신 내게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더 많이 한다. 나를 지키는 노력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다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도 결단은 필요하다. 환경이 변하고, 그렇게 변하는 환경에서 계속 나로 남을 수 없다면 그 환경을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결단을 고민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역시 나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나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시기임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감이란 ‘몸으로 느낀다’라는 의미이다.
_211쪽, ‘일본 도쿄 | 뿔 난 삼엽충이 될 것인가, 몸집을 줄인 삼엽충이 될 것인가’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젠 나도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존 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그림 앞에서 ‘나의 몸이 떠올린 내적 기억’들이 그 말로 이어졌다. 구구절절 그 사연들을 말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환한 빛’만 생각하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고, 그 빛이 꺼진 후 어둠 속에서 지내던 시절도 있었으며, 이제는 그렇게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상태를 인정하고, 그림자에 가린, 그 어두운 부분까지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있는 것임을,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없음을 알고 그 둘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게 되고 나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속 표정이 그저 체념의 표정만은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는 온통 과거만을 향한 문장은 아닌 것이다. 그 마음도 여전히, 늘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미래를 향하고 있다. 사람은 ‘기대’가 없이도 다가올 날들을, 혹은 남은 날들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그건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음을, 그렇게 환하기도 했고 어둡기도 했던 자신과 비로소 화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마음일 것이다.
-249~250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김현우 피디는 나를 나로 마주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 “삶은 영원히 뒤틀리고 말 것”이라고 한다. 내 안의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잘 보듬고 그 외의 것들은 비울 수 있어야 또 타인의 이야기를 위한 자리가 생기리라.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쳐 점차 내 안의 경계가 넓어지리라. “경계 너머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매우 자주 지치기도 하지만, 경계를 넘어가는 동안의 현기증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고맙게도 함께 건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손을 꼭 쥔 채 그렇게……”
추천사
김현우 피디가 바라보는 세계는 온전하다. 그 세계는 광활하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은 평화롭고 행복하다. 설령 화를 낸다고 해도 이윽고 풀리고 마는, 그런 곳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변해가더라도 이 온전한 세계가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코타키나발루의 밤에 그가 올려다본 별의 전언처럼. ‘괜찮아. 네가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든, 앞으로 또 얼마나 변화를 겪든, 우리는 이대로 여기 있을 거야.’ 대부분 방송사 피디로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만난 평온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에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흥겨움과 상실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를 닮은 묘한 느낌의 문장은 덤이다.
_김연수(소설가)
여행은 쓸쓸하다. 포부를 안고 일상을 벗어나 도착한 곳에서 타인의 또다른 일상을 목격한 여행자는, 그제야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여행은 쓸쓸하지만 대신 흔적을 남긴다. 김현우에게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 그 흔적이 된다. 존경하는 작가에서 촬영을 돕는 현지 스태프까지, 김현우의 시선은 늘 구체적인 사람에게 닿아 있다. 그러니 김현우의 『건너오다』는 여행서이자 산문집인 동시에, 저마다 고유한 역사와 문장과 간절한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비록 세계의 조그마한 일부일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분명하게 빛을 내는, 경계를 넘어 빛과 빛으로 이어졌을 때 하나의 별자리를 이룰 만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찾는 여행자라면 이 별자리를 올려다보며 길을 떠나도 좋을 것이다.
_조해진(소설가)
▣ 작가 소개
저 : 김현우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EBS 교육방송 PD로 일하고 있으며, 영화 프로그램 <시네마 천국>을 담당했다 .전문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웬디 수녀의 유럽미술 산책』,『세계명화비밀 탐사』,『스티븐 킹 단편집』,『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행운아』,『소크라테스 씨 질문 있어요』,『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G』, 『인상주의자 연인들』, 『로라, 시티』, 『A가 X에게』,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그레이트 하우스』 『벤투의 스케치북』(공역) ,『내 인생의 그녀』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풍경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
프랑스 파리_그 밑에 계신 겁니까?
프랑스 안시_이것만 있으면 된다
러시아 모스크바_마음은 언제 현실을 따라잡는가
호주 마운트아이자_때론 현실이 아닌 것처럼
호주 태즈메이니아_세상의 끝, 혹은 다른 세상의 시작
프랑스 칸_위대하지 않은 자전거 여행
//계속 움직이는 순간
미국_비어 있는 시간들
미국 로렌스1_또래의 유학생 부부와 바비큐
미국 로렌스2_KU 잔디밭과 망가져버린 글라이더
미국 로렌스3_더스티 북셸프의 고양이와 캔자스 주에만 있는 햄버거
미국 앤아버_신호등은 잘못이 없다
미국 왈츠_열두 시간 동안 똑같은 풍경일 거예요
미국 볼티모어_짜기만 했는데 어쩌다보니 다 먹고야 말았던 게 요리
미국 뉴욕_메이저리그를 직관하다
미국 뉴헤이븐_You should be!
미국 미줄라_펄리시티라는 이름
미국 로스앤젤레스_비어 있는 시간
영국 런던_그때는 그랬다
이탈리아 피렌체_선물 같은 밤
필리핀 아닐라오_상상하기 때문에 두렵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_하늘엔 원래 별이 많다
일본 오카야마_자주 먼 곳을 보는 침팬지
발칸반도_세 창문 모두 닫혀 있었다
태국 치앙마이_보고서도 보지 못하는 것
일본 오키나와_''고쿠바 난코''라는 이름
중국 마카오_그 바람들은 다 이루어졌을까?
미국 샌프란시스코_나는 내가 한 선택들의 합이다
//기억은 일부러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
일본 규슈_버려졌던 공간과 시간
독일 라이프치히_사람의 몸은 접촉을 필요로 한다
일본 도쿄_뿔 난 삼엽충이 될 것인가, 몸집을 줄인 삼엽충이 될 것인가
일본 오사카_어떤 직선은 슬프다
중국 단동_경계를 사는 사람들
중국 변문진_장백산 담배 한 개비로 건너는 경계
중국 진황도_경계를 건널 때 지니는 것
네덜란드 암스테르담_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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