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조선인이 ‘조선(朝鮮)’의 뜻을 모르고, ‘한국(韓國)과 한나라(漢國)’의 뜻도 무관심이고, 또한 가야와 신라의 지배층인 김(金)씨가 흉노이었음을 모르면 우리의 역사와 인문은 어디로 가나요? 대중은 옛 가야와 신라의 지역에서 북방의 유물이 나오면 그 당시 가야와 신라인이 중앙아시아와 상당한 교류라도 있었던 것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순장의 흔적이나 기마형의 토기와 각종 비석문의 기록들은 그들이 북방의 기마민족임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흉노족이 어떻게 남녁을 장악하게 되었는지를 모르면 우리는 영원한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를 바 아닙니다. 조상들의 발자취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물론 삼국시대 이전에도 민족의 이동은 많이 있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마한은 고조선의 준이 쫓겨 내려와서 금마도(지금의 금강일원)에 도읍하여 일어났고, 진한은 진나라가 망하며 들어온 사람들로 마한이 동쪽땅을 떼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최치원은 연나라가 망할 때에도 피란민은 내려왔다라고 했다합니다. 변한은 낙랑사람이 변한땅에 나라를 세웠다고 하고 낙랑은 한나라 한사군의 하나였습니다. 낙랑도 고구려에 의해서 계속 밀려 내려와 변한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진한의 혁거세가 나라를 일으킨 것을 지금의 경주 일대로만 여기면 큰 착오일 것입니다. 국호인 ‘서라벌’의 뜻을 보면 ‘서서히 나라들을 정벌하리’입니다. 그 당시 혁거세가 이룩한 나라의 지경이 지금의 금강 백마강을 포함한 남쪽 전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근거를 들자면 후백제가 망할 무렵에 견훤은 고려태조 왕건에게 백제땅의 과거를 고하는 글에서 ‘옛날에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혁거세가 일어났으며 백제는 금마산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또 <통전>에 이르기를 백제는 남쪽으로는 신라에 접경하고 북쪽은 고구려이고 서쪽은 큰 바다에 그쳤다고 했습니다. 분명코 백제의 남쪽은 신라이었다는 말입니다.
혁거세20년에 쌓았던 금성(金城)은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전라도 광주(光州)를 에워싸고 있는 담양과 나주의 ‘금성’일 것입니다. 두 성의 사이는 ‘장성(長城 길다란 성)’으로 연결되어 있었고요. 아마 당시에는 혁거세도 도서지역까지의 정벌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서라벌의 제2대왕은 남쪽 전역을 관장하게 되어 ‘남해왕’이라고 했고 서쪽에서 기거했다고 ‘거서간(居西干)’이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원래 서라벌시대는 왕이라는 칭호는 쓰면 안 됩니다. ‘신라’와 ‘왕’이라는 호칭은 지증왕 때부터 썼으니까요(하지만 편의상 모두 왕으로 쓰겠습니다). 서라벌의 3대가 유리왕(노례)입니다. 삼국유사는 일연스님이 청도 운문사에서 지내던 시절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저는 다음 대목에서 일연스님이 역사서 기록의 한계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인류의 고대사는 꼬이고 꼬여 깡그리 잊혀져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옛 국호를 한나라라 하고 치우사당에 제를 올리는 것은 은유의 극치라고 생각됩니다. 한나라는 견우와 직녀의 은하수(통일)를 이름인데 견우를 치우라고 부르는 꼴입니다. ‘치우(蚩尤)’는 ‘치욕스럽고 어리석은 자’ 뜻입니다.
중국의 역사는 헌원과 치우의 전쟁으로 시작됩니다. 탁록벌 전투가 그것입니다. 치우는 북쪽의 아홉 무리(九黎)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러나 헌원의 한판승으로 역사는 바뀝니다. 그래서 중국의 초대 황제(黃帝)가 헌원입니다. 근래의 중국인을 모두 헌원의 후예로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입니다. 북방으로 서방의 로마에서 동방의 대한과 일본에 이르는 제국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 제국의 황제(皇帝)는 확연히 다릅니다. 헌원은 누를황, 제국은 임금황을 씁니다. 후자를 쓰는 종족은 치우(견우)의 자손으로 보입니다.
‘견우(牽牛)’의 뜻은 ‘소를 이끌다’이고, ‘직녀(織女)’의 뜻은 ‘그물을 짜다’입니다. 그리고 그 그물은 ‘라(羅)’라고 합니다. 은하수는 ‘한(漢)’입니다.
치우의 얼굴상은 항상 소의 뿔이 상징입니다. 금(쇠)이 발달해서 철기문명의 조상입니다. 직녀의 부군이며 중국의 북동쪽에서 9려(九黎,아홉무리)를 뻗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황하에서 헌원에게 허리가 꺾이고 맙니다. 중국역사에서 북방이라 함은 분명코 백두산 일원이라고 봅니다. 작금의 시간이 중국사에서 가장 대국강성의 시대입니다. 이 시점에서 만주벌판을 이 잡듯이 발굴하고 있는 중국이 ‘동북변강의 역사를 연구하는 공정’이라고 하지만 그 지역은 엄연히 옛 조선의 땅이고 중국사의 뿌리가 태동한 곳임을 모르지 않을 줄 압니다. 중국사는 온통 오랑캐와의 전쟁이야기입니다. 초기에는 동이(동쪽 오랑캐)족과의 싸움이고 나중에는 북, 서로 이어지는 흉노와의 싸움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오랑캐는 오랑개로서 ‘붉은(Orange) 개’의 의미인 듯합니다. 조선의 직녀 후손으로 보이며 태양을 신으로 받들며 소를 신격화 하는 경향이 있고 붉은 홍포나 홍건등을 즐기며 북방의 기마인으로서 철기가 발달했습니다. 마환 오환의 흔적이 있듯이 북방의 환국(어여머리의 나라)도 직녀의 후손이며 연(제비,황제의 비), 여진, 청 제국으로 이어지는 모든 제국 또한 그렇습니다.
한반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이는 북방의 두어 종족만 간단히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고조선신화가 유래했다고 하는 ‘선비족’입니다. 맹자의 말에 의하면 공자는 동이족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를 추종하는 이를 ‘선비’라고 합니다. 최초의 황제(皇帝)라고 칭했던 이는 중국의 본토를 처음으로 통일시키면서 ‘진 시황제’라고 합니다. 사실은 통일이 아닙니다. 절반의 통일입니다. 그는 북쪽의 성들을 연결해서 만리장성을 쌓으며 반발하는 선비들을 생매장시켜버립니다. 그것이 분서갱유입니다. 만리성은 북쪽의 흉노를 배척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한나라 때에 흉노는 휴도왕의 죽음으로 와해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후 북방에는 흉노의 휘하이던 선비족이 왕성히 일어납니다. 그 ‘선비(鮮卑)’의 뜻은 ‘조선에서 비롯했다’입니다. ‘고 조선(古 朝鮮)’ 또한 같은 의미입니다. ‘조선’이 없이 ‘고 조선’이라는 단어는 나올 수 없는 일입니다. 고(古)는 흘러지나온 옛날을 말합니다. 징기스칸도 지난 과거를 덮어버리고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의미로 ‘몽고(蒙古)’라고 했고, 그의 손자 쿠빌라이는 넘버원(one)의 의미로 국호를 ‘원(元)’이라고 하여 지금의 중국에 이른 것입니다.
고-조선과 같은 뜻의 그 ‘선비족’은 연나라등의 5호16국 시대를 거쳐서 탁발씨에 의해서 화북지방 전역에 이르는 ‘북조(北朝)’의 시대를 엽니다. ‘북쪽에 다시 조선(朝鮮)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분명코 중국의 뿌리는 조선인 것입니다.
이렇듯 북쪽 고원으로 조선의 기마민족이 서쪽으로 뻗어 나아가는데 그 근간이 흉노족인 것입니다. 철기문명과 도금법, 기마형토기, 순장제도를 지녔던 신라와 가야의 김씨들은 흉노인 것입니다.
징기스칸 또한 김씨의 후손으로 보입니다. 손자인 쿠빌라이는 본인이 가장 사랑했던 둘째아들을 ‘친킨’이라고 했습니다. 친킨이란 ‘진김(眞金)’의 몽고식 발음으로 뜻은 ‘진짜 김씨’로 보입니다.
현재 중국의 김씨는 소호금천김씨와 김일제김씨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성격상 분명코 김씨는 헌원의 자손은 아닙니다. 그런데 소호는 헌원의 뒤를 이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민간설화에 소호는 헌원의 사위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 소호는 치우족의 보복을 차단하기 위해 강제로 헌원의 사위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신라,가야김씨가 김일제의 후손인 것은 확실한 것이고 대당고김씨부인묘명처럼 소호씨금천(소호씨가 김씨의 하늘이라)이 맞다고 하면 그 또한 수긍이 되는 것은 소호의 뜻이 ‘젊은 하늘’이고 김일제의 부친인 휴도왕(죽이는 일을 쉰다는 뜻의 왕)이 죽었을 때 천금인에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한무제가 김씨라고 했다하니 말입니다. 김씨 조상에 관한 명제를 깨끗이 갈무리 해놓은 글귀가 있습니다. 가락국의 왕손인 김유신의 묘비에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라’입니다.
로마제국을 흔들어버리고 독일과 다뉴브강 하류에 흡수되었던 ‘훈족’이 조선의 신라,가야인과 골상학적으로 같다고 하는 것은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김씨들은 ‘훈(햇무리)족’일 것입니다. 중국이 흉노라 했다고 해서 우리도 흉노라고 부르면 안 되고, 중국이 치우라 했다고 해서 우리도 치우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견우(치우)는 ‘九(구려족)’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러나 ‘十(십)’을 채우지 못하고 파산했습니다. 그래서 불탑은 9층이어야 되고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사원 불탑의 9층 꼭대기 스투파 정문에 구망의 견우(치우)얼굴이 있는 것입니다. 주나라 무왕도 고조선의 기자에게 홍범구주(하나의 큰 규범 안에서 아홉 두둑을 이루자)를 주문했었고 일본도 규슈(9주)로 시작된 나라이고, 한반도 역시 조선팔도가 아니라 수도(首都)를 포함해서 ‘조선9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각 지방은 우두머리가 파견됨으로 도(道)라 이르는 것입니다. 인도북부에서 쿠산왕조의 불교가 일었었고, 인도의 달마는 구산(九山)을 동방으로 전했습니다.
현재 중국 랴오닝의 고도 ‘차오양(朝陽)’은 ‘조선(朝鮮)’과 한 치도 다른 말이 아닙니다. 조선은 아침조, 빛날선 이고 조양은 아침조, 빛양 으로 둘 다 떠오르는 ‘아침 해’입니다. 해가 뜨는 곳이라서 ‘아침의 나라’입니다. 티벳의 꼭대기에 치우곰파사원이 있는 것이나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사원에 소뿔을 한 치우의 얼굴부조도 모두 견우와 직녀의 자손들이 만들어 놓은 흔적일 것입니다. 불교와 힌두교는 ‘아리안(Aryan)''''의 종교입니다.
불교와 힌두교는 티벳의 카일라스산(수미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산을 108번을 돌면 해탈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 달에 9바퀴를 돌아도 꼬박 일 년이 걸립니다. 그 산의 물줄기가 인더스강과 겐지스강으로 흘러듭니다. 카일라스가 아니라 ‘갈라스’라고 해야 맞을듯합니다. 저는 이들 종교의 핵심에 직녀의 그물과 은하수가 들어있다고 봅니다. 물론 견우도 있습니다. 인도 흰두교의 카스트 최고층을 Brahman(브라만, 바라문)이라고 합니다. 인도의 소도 그렇게 부릅니다. 이는 한자로 ‘婆羅門(파라문)’입니다. 뜻인즉 ‘노파의 그물망 가문’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자는 ‘羅漢(라한)’이라고 합니다. 뜻인즉 ‘그물 은하수’입니다. ‘阿羅漢(아라한)’은 한자로는 ‘아름다운 그물은하수’ 뜻인데 불교에서는 ‘arhat(이상향에 이른자)’이라고 합니다.
BC1500년경 북방의 기마민족은 파미르(마늘 마루)고원을 넘으면서 왜 ‘만(卍)’자를 내세우고 스스로를 ‘아리안’이라고 했을까요?
삼국유사에 나오는 아리영의 ‘아리(娥利)’는 풀어쓰면 ‘예쁘고 깔끔하다’입니다. 아리안은 직녀의 자손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크게 卍과 十의 두 종교를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석가모니의 머리에는 항상 노란 원광이 그려집니다. 광륜의 의미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중국신화에서 시조인 복희(伏羲)도 빛에 엎드린자 뜻입니다.
중국땅에는 황제(헌원)를 추앙하는 노자의 도교(황로학)로 이어지는 사상과 동이출신인 공자의 유교(선비학)로 이어지는 사상이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인은 그 동이,동호(동쪽 오랑캐)가 누구였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정교일치를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옛 애급(Egypt)과 라마(Roma)도 마야(Maya)도 그토록 태양을 숭배했던 사실을 아십니까? 이슬람도 매년 9월 라마단 기간에 태양이 뜨면 금식을 합니다. ‘古蘭(koran)’도 조선어로 해석하면 ‘란’을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빛의 나라’ 뜻인 ‘슬이 란가(Sri Lanka)’도 조선어일 것입니다. 그 태양은 지금도 조선에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떤 섬나라는 해의 줄기라고 ‘일본(日本)’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닙퐁’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고려’나 ‘몽고’가 ‘코리아’나 ‘몽골’로 불리어지고, 향기로운 항구 ‘향항’을 ‘홍콩’이라고 하며, ‘포도’가 ‘보르도’로 불리는 이 시대에 그 ‘조선의 배달’을 오롯이 책 한권에 담아 보았습니다.
‘아리랑슬이랑’에 말입니다.
▣ 작가 소개
전기종
- 제29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국가대표(헤어디자인)
- 기능경기대회 전 출제위원
- 헤어샵 운영
- ‘인문(人文)’에 심취
조선인이 ‘조선(朝鮮)’의 뜻을 모르고, ‘한국(韓國)과 한나라(漢國)’의 뜻도 무관심이고, 또한 가야와 신라의 지배층인 김(金)씨가 흉노이었음을 모르면 우리의 역사와 인문은 어디로 가나요? 대중은 옛 가야와 신라의 지역에서 북방의 유물이 나오면 그 당시 가야와 신라인이 중앙아시아와 상당한 교류라도 있었던 것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순장의 흔적이나 기마형의 토기와 각종 비석문의 기록들은 그들이 북방의 기마민족임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흉노족이 어떻게 남녁을 장악하게 되었는지를 모르면 우리는 영원한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를 바 아닙니다. 조상들의 발자취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물론 삼국시대 이전에도 민족의 이동은 많이 있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마한은 고조선의 준이 쫓겨 내려와서 금마도(지금의 금강일원)에 도읍하여 일어났고, 진한은 진나라가 망하며 들어온 사람들로 마한이 동쪽땅을 떼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최치원은 연나라가 망할 때에도 피란민은 내려왔다라고 했다합니다. 변한은 낙랑사람이 변한땅에 나라를 세웠다고 하고 낙랑은 한나라 한사군의 하나였습니다. 낙랑도 고구려에 의해서 계속 밀려 내려와 변한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진한의 혁거세가 나라를 일으킨 것을 지금의 경주 일대로만 여기면 큰 착오일 것입니다. 국호인 ‘서라벌’의 뜻을 보면 ‘서서히 나라들을 정벌하리’입니다. 그 당시 혁거세가 이룩한 나라의 지경이 지금의 금강 백마강을 포함한 남쪽 전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근거를 들자면 후백제가 망할 무렵에 견훤은 고려태조 왕건에게 백제땅의 과거를 고하는 글에서 ‘옛날에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혁거세가 일어났으며 백제는 금마산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또 <통전>에 이르기를 백제는 남쪽으로는 신라에 접경하고 북쪽은 고구려이고 서쪽은 큰 바다에 그쳤다고 했습니다. 분명코 백제의 남쪽은 신라이었다는 말입니다.
혁거세20년에 쌓았던 금성(金城)은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전라도 광주(光州)를 에워싸고 있는 담양과 나주의 ‘금성’일 것입니다. 두 성의 사이는 ‘장성(長城 길다란 성)’으로 연결되어 있었고요. 아마 당시에는 혁거세도 도서지역까지의 정벌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서라벌의 제2대왕은 남쪽 전역을 관장하게 되어 ‘남해왕’이라고 했고 서쪽에서 기거했다고 ‘거서간(居西干)’이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원래 서라벌시대는 왕이라는 칭호는 쓰면 안 됩니다. ‘신라’와 ‘왕’이라는 호칭은 지증왕 때부터 썼으니까요(하지만 편의상 모두 왕으로 쓰겠습니다). 서라벌의 3대가 유리왕(노례)입니다. 삼국유사는 일연스님이 청도 운문사에서 지내던 시절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저는 다음 대목에서 일연스님이 역사서 기록의 한계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인류의 고대사는 꼬이고 꼬여 깡그리 잊혀져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옛 국호를 한나라라 하고 치우사당에 제를 올리는 것은 은유의 극치라고 생각됩니다. 한나라는 견우와 직녀의 은하수(통일)를 이름인데 견우를 치우라고 부르는 꼴입니다. ‘치우(蚩尤)’는 ‘치욕스럽고 어리석은 자’ 뜻입니다.
중국의 역사는 헌원과 치우의 전쟁으로 시작됩니다. 탁록벌 전투가 그것입니다. 치우는 북쪽의 아홉 무리(九黎)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러나 헌원의 한판승으로 역사는 바뀝니다. 그래서 중국의 초대 황제(黃帝)가 헌원입니다. 근래의 중국인을 모두 헌원의 후예로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입니다. 북방으로 서방의 로마에서 동방의 대한과 일본에 이르는 제국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 제국의 황제(皇帝)는 확연히 다릅니다. 헌원은 누를황, 제국은 임금황을 씁니다. 후자를 쓰는 종족은 치우(견우)의 자손으로 보입니다.
‘견우(牽牛)’의 뜻은 ‘소를 이끌다’이고, ‘직녀(織女)’의 뜻은 ‘그물을 짜다’입니다. 그리고 그 그물은 ‘라(羅)’라고 합니다. 은하수는 ‘한(漢)’입니다.
치우의 얼굴상은 항상 소의 뿔이 상징입니다. 금(쇠)이 발달해서 철기문명의 조상입니다. 직녀의 부군이며 중국의 북동쪽에서 9려(九黎,아홉무리)를 뻗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황하에서 헌원에게 허리가 꺾이고 맙니다. 중국역사에서 북방이라 함은 분명코 백두산 일원이라고 봅니다. 작금의 시간이 중국사에서 가장 대국강성의 시대입니다. 이 시점에서 만주벌판을 이 잡듯이 발굴하고 있는 중국이 ‘동북변강의 역사를 연구하는 공정’이라고 하지만 그 지역은 엄연히 옛 조선의 땅이고 중국사의 뿌리가 태동한 곳임을 모르지 않을 줄 압니다. 중국사는 온통 오랑캐와의 전쟁이야기입니다. 초기에는 동이(동쪽 오랑캐)족과의 싸움이고 나중에는 북, 서로 이어지는 흉노와의 싸움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오랑캐는 오랑개로서 ‘붉은(Orange) 개’의 의미인 듯합니다. 조선의 직녀 후손으로 보이며 태양을 신으로 받들며 소를 신격화 하는 경향이 있고 붉은 홍포나 홍건등을 즐기며 북방의 기마인으로서 철기가 발달했습니다. 마환 오환의 흔적이 있듯이 북방의 환국(어여머리의 나라)도 직녀의 후손이며 연(제비,황제의 비), 여진, 청 제국으로 이어지는 모든 제국 또한 그렇습니다.
한반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이는 북방의 두어 종족만 간단히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고조선신화가 유래했다고 하는 ‘선비족’입니다. 맹자의 말에 의하면 공자는 동이족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를 추종하는 이를 ‘선비’라고 합니다. 최초의 황제(皇帝)라고 칭했던 이는 중국의 본토를 처음으로 통일시키면서 ‘진 시황제’라고 합니다. 사실은 통일이 아닙니다. 절반의 통일입니다. 그는 북쪽의 성들을 연결해서 만리장성을 쌓으며 반발하는 선비들을 생매장시켜버립니다. 그것이 분서갱유입니다. 만리성은 북쪽의 흉노를 배척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한나라 때에 흉노는 휴도왕의 죽음으로 와해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후 북방에는 흉노의 휘하이던 선비족이 왕성히 일어납니다. 그 ‘선비(鮮卑)’의 뜻은 ‘조선에서 비롯했다’입니다. ‘고 조선(古 朝鮮)’ 또한 같은 의미입니다. ‘조선’이 없이 ‘고 조선’이라는 단어는 나올 수 없는 일입니다. 고(古)는 흘러지나온 옛날을 말합니다. 징기스칸도 지난 과거를 덮어버리고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의미로 ‘몽고(蒙古)’라고 했고, 그의 손자 쿠빌라이는 넘버원(one)의 의미로 국호를 ‘원(元)’이라고 하여 지금의 중국에 이른 것입니다.
고-조선과 같은 뜻의 그 ‘선비족’은 연나라등의 5호16국 시대를 거쳐서 탁발씨에 의해서 화북지방 전역에 이르는 ‘북조(北朝)’의 시대를 엽니다. ‘북쪽에 다시 조선(朝鮮)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분명코 중국의 뿌리는 조선인 것입니다.
이렇듯 북쪽 고원으로 조선의 기마민족이 서쪽으로 뻗어 나아가는데 그 근간이 흉노족인 것입니다. 철기문명과 도금법, 기마형토기, 순장제도를 지녔던 신라와 가야의 김씨들은 흉노인 것입니다.
징기스칸 또한 김씨의 후손으로 보입니다. 손자인 쿠빌라이는 본인이 가장 사랑했던 둘째아들을 ‘친킨’이라고 했습니다. 친킨이란 ‘진김(眞金)’의 몽고식 발음으로 뜻은 ‘진짜 김씨’로 보입니다.
현재 중국의 김씨는 소호금천김씨와 김일제김씨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성격상 분명코 김씨는 헌원의 자손은 아닙니다. 그런데 소호는 헌원의 뒤를 이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민간설화에 소호는 헌원의 사위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 소호는 치우족의 보복을 차단하기 위해 강제로 헌원의 사위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신라,가야김씨가 김일제의 후손인 것은 확실한 것이고 대당고김씨부인묘명처럼 소호씨금천(소호씨가 김씨의 하늘이라)이 맞다고 하면 그 또한 수긍이 되는 것은 소호의 뜻이 ‘젊은 하늘’이고 김일제의 부친인 휴도왕(죽이는 일을 쉰다는 뜻의 왕)이 죽었을 때 천금인에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한무제가 김씨라고 했다하니 말입니다. 김씨 조상에 관한 명제를 깨끗이 갈무리 해놓은 글귀가 있습니다. 가락국의 왕손인 김유신의 묘비에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라’입니다.
로마제국을 흔들어버리고 독일과 다뉴브강 하류에 흡수되었던 ‘훈족’이 조선의 신라,가야인과 골상학적으로 같다고 하는 것은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김씨들은 ‘훈(햇무리)족’일 것입니다. 중국이 흉노라 했다고 해서 우리도 흉노라고 부르면 안 되고, 중국이 치우라 했다고 해서 우리도 치우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견우(치우)는 ‘九(구려족)’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러나 ‘十(십)’을 채우지 못하고 파산했습니다. 그래서 불탑은 9층이어야 되고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사원 불탑의 9층 꼭대기 스투파 정문에 구망의 견우(치우)얼굴이 있는 것입니다. 주나라 무왕도 고조선의 기자에게 홍범구주(하나의 큰 규범 안에서 아홉 두둑을 이루자)를 주문했었고 일본도 규슈(9주)로 시작된 나라이고, 한반도 역시 조선팔도가 아니라 수도(首都)를 포함해서 ‘조선9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각 지방은 우두머리가 파견됨으로 도(道)라 이르는 것입니다. 인도북부에서 쿠산왕조의 불교가 일었었고, 인도의 달마는 구산(九山)을 동방으로 전했습니다.
현재 중국 랴오닝의 고도 ‘차오양(朝陽)’은 ‘조선(朝鮮)’과 한 치도 다른 말이 아닙니다. 조선은 아침조, 빛날선 이고 조양은 아침조, 빛양 으로 둘 다 떠오르는 ‘아침 해’입니다. 해가 뜨는 곳이라서 ‘아침의 나라’입니다. 티벳의 꼭대기에 치우곰파사원이 있는 것이나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사원에 소뿔을 한 치우의 얼굴부조도 모두 견우와 직녀의 자손들이 만들어 놓은 흔적일 것입니다. 불교와 힌두교는 ‘아리안(Aryan)''''의 종교입니다.
불교와 힌두교는 티벳의 카일라스산(수미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산을 108번을 돌면 해탈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 달에 9바퀴를 돌아도 꼬박 일 년이 걸립니다. 그 산의 물줄기가 인더스강과 겐지스강으로 흘러듭니다. 카일라스가 아니라 ‘갈라스’라고 해야 맞을듯합니다. 저는 이들 종교의 핵심에 직녀의 그물과 은하수가 들어있다고 봅니다. 물론 견우도 있습니다. 인도 흰두교의 카스트 최고층을 Brahman(브라만, 바라문)이라고 합니다. 인도의 소도 그렇게 부릅니다. 이는 한자로 ‘婆羅門(파라문)’입니다. 뜻인즉 ‘노파의 그물망 가문’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자는 ‘羅漢(라한)’이라고 합니다. 뜻인즉 ‘그물 은하수’입니다. ‘阿羅漢(아라한)’은 한자로는 ‘아름다운 그물은하수’ 뜻인데 불교에서는 ‘arhat(이상향에 이른자)’이라고 합니다.
BC1500년경 북방의 기마민족은 파미르(마늘 마루)고원을 넘으면서 왜 ‘만(卍)’자를 내세우고 스스로를 ‘아리안’이라고 했을까요?
삼국유사에 나오는 아리영의 ‘아리(娥利)’는 풀어쓰면 ‘예쁘고 깔끔하다’입니다. 아리안은 직녀의 자손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크게 卍과 十의 두 종교를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석가모니의 머리에는 항상 노란 원광이 그려집니다. 광륜의 의미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중국신화에서 시조인 복희(伏羲)도 빛에 엎드린자 뜻입니다.
중국땅에는 황제(헌원)를 추앙하는 노자의 도교(황로학)로 이어지는 사상과 동이출신인 공자의 유교(선비학)로 이어지는 사상이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인은 그 동이,동호(동쪽 오랑캐)가 누구였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정교일치를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옛 애급(Egypt)과 라마(Roma)도 마야(Maya)도 그토록 태양을 숭배했던 사실을 아십니까? 이슬람도 매년 9월 라마단 기간에 태양이 뜨면 금식을 합니다. ‘古蘭(koran)’도 조선어로 해석하면 ‘란’을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빛의 나라’ 뜻인 ‘슬이 란가(Sri Lanka)’도 조선어일 것입니다. 그 태양은 지금도 조선에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떤 섬나라는 해의 줄기라고 ‘일본(日本)’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닙퐁’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고려’나 ‘몽고’가 ‘코리아’나 ‘몽골’로 불리어지고, 향기로운 항구 ‘향항’을 ‘홍콩’이라고 하며, ‘포도’가 ‘보르도’로 불리는 이 시대에 그 ‘조선의 배달’을 오롯이 책 한권에 담아 보았습니다.
‘아리랑슬이랑’에 말입니다.
▣ 작가 소개
전기종
- 제29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국가대표(헤어디자인)
- 기능경기대회 전 출제위원
- 헤어샵 운영
- ‘인문(人文)’에 심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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