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김유섭의 첫 시집 『찬란한 봄날』의 첫 시는 「찬란한 봄날」이다. “나무들이 물고기처럼 숨을 쉬었다”로 시작하는 시는 아이들이 하굣길을 물고기처럼 유영하다 ‘환한’ 엄마의 손을 잡는 장면을 그린 뒤, “누구나 헤엄쳐 다니는 봄날이었다”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는 한국 사람은 이 장면을 무심히 넘기기 어렵다. 304명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무참히, 무능력하게 화면을 통해 보고 있었다. 절반 이상이 학생들이었던가. 잔인한 봄이 지나갔다. 아니 잔인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시인들은 제 글이 제 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참사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 시의 모습은 가라앉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길게 탄식했고 누구는 침통해했다. 이 시가 세월호 참사를 보며 쓴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확실한 것은 줄곧 시집에 나타나는, 참사를 대하는 김유섭의 일관된 태도이다. 시를 확인해보자.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문구점
간판이 물풀처럼 흔들렸다
자동차가 길게 줄을 서서
수만 년 전 비단잉어의 이동로를 따라
느릿느릿 흘러갔다
물거품으로 떠다니는 꽃향기 속
수심을 유지하는 부레 하나
박제된 듯 정지해 있었다
위이잉, 닫혔던 귀가 열렸다
아이를 기다리던 엄마가 환해지며
비늘 없는 작은 손을 잡았다
― 「찬란한 봄날」 부분
지상은 수중으로 바뀌고, 아이는 부레를 확인하고 안도한다. 그는 구조된 자와 받지 못한 자를, 지상과 수중을, 이편과 저편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조된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애도할 수 없으며, 지상에 있는 자가 수중에 남은 자를 기억하지도 잊지도 못한다. 애도와 연민의 감정마저도 그에게는 사치스러웠던 것일까. 그는 아예 이 세계를 저 세계로 만들어버린다. 세상의 모든 곳이 지옥이다. 그리고 희망은 지옥의 끝자락에 부레처럼 떠 있다. 고통의 끝까지 맛보아야만 희망의 기미라도 겨우 볼 수 있는 것이다. 『찬란한 봄날』을 지배하는 것은 도저한 고통의 이미지이다. 동시에 그것은 김유섭이 자신의 고통을 달래는 방법이자 이 세계가 지닌 고통의 단면들이다.
김유섭 시는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도시가 가리키는 뜻은 명확하다. 거짓 행복을 선전하는 장소(「태연한 생」)이자, 밤에 휴식을 제공하는 대신 피를 빨아먹는 곳(「밤의 드라큘라」),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곳이 그가 인식하는 도시인 것이다. 이를 그의 시적 개성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많은 이들이 굳이 그의 시를 보지 않더라도 도시를 그리 여기지 않을까. 주목해야 할 지점은 표현이다. 그의 시에는 도시의 구체적인 지명이 없다. 이름 없이 도시라는 말만 가득 찬 시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왜 그는 도시를 계속해서, 서울이건 부산이건 광주이건 다른 곳이건 구체적인 지명 없이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가.
‘삶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그는 말했다. 어찌 아름답겠는가. 지상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고, 야윈 목숨들은 쓰레기로 굴러다니는데. 하지만 그는 독을 숨기고 있다는 것 자체를 “동병상련의 예의”라고 하고, 사막 같은 생도 “물줄기를 향한 타는 그리움”이라고도 한다. 동병상련은 타인과의 교류, 즉 공동체를 전제로 두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그리움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사막과 전쟁과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는 줄기차게 악다구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보냈던 것이고 기억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타인은 다시 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없다면, 자신도 없다는 듯이 김유섭은 내면의 상처에 쏠렸던 시선을 거두어 밖을 내다본다. 자신의 깊은 상처가 타인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과 함께 있기이다. 상처를 입은 타인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줄 때 공동체가 생겨난다. 동시에 이때 하소연의 시가 아니라 보편성의 시가 탄생한다. 이번 시집은 그에게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밑그림과 같다. 처절하면서도 무서우면서도 기괴한 모습의 지옥도가 여기에 펼쳐져 있다. 그의 시가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때, 시초가 여기였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자.
― 김종훈(문학평론가 · 상명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작가 소개
김유섭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2011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시흥문학상, 201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및 김만중 문학상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찬란한 봄날
낮은 음표들의 도시
핏물 흐르는 날들
태연한 생
밤의 드라큘라
너에게 나라는 질량
겨울 도시를 목격하다
영혼을 꽃처럼 펼쳐 굽는 거리
여우 사냥
기계적 작동
밤의 고양이
흐르는 숲
제2부 눈알들
먼지와 냄새의 제복들
노동의 품격
얼굴
저무는 길에 선 저문 낙타를 보았다
창밖에 절벽 같은 비가 내리는 날
나를 화석으로 만나다
고양이 가면
사형집행관
제3부 비극을 관람하다
붉은 미소
행려의 잔치
무대 위에서
소란
아름다운 날의 소풍
들끓는 바닥
한없이 구부정하게
생은 너무나 길어 보였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다정한 휘파람 소리
전갈
지랄이라는 씁쓸함
제4부 전철에서 졸다
지나간 생을 만지작거리다
저녁 식사
만화영화 속으로
전어의 궤도
낡은 필름 속 사람들
유령들의 집
술의 방법론
버려진 나사
무협의 세계
제5부 황금빛 바람이 부는 거리
사랑의 기억
ㄹ
레고의 세계
조립
나쁜 버릇
봄날은 간다
어떤 근황
혀의 밀림 속을 걷다
소외
해설:마음 도시의 지옥도 - 김종훈
김유섭의 첫 시집 『찬란한 봄날』의 첫 시는 「찬란한 봄날」이다. “나무들이 물고기처럼 숨을 쉬었다”로 시작하는 시는 아이들이 하굣길을 물고기처럼 유영하다 ‘환한’ 엄마의 손을 잡는 장면을 그린 뒤, “누구나 헤엄쳐 다니는 봄날이었다”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는 한국 사람은 이 장면을 무심히 넘기기 어렵다. 304명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무참히, 무능력하게 화면을 통해 보고 있었다. 절반 이상이 학생들이었던가. 잔인한 봄이 지나갔다. 아니 잔인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시인들은 제 글이 제 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참사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 시의 모습은 가라앉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길게 탄식했고 누구는 침통해했다. 이 시가 세월호 참사를 보며 쓴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확실한 것은 줄곧 시집에 나타나는, 참사를 대하는 김유섭의 일관된 태도이다. 시를 확인해보자.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문구점
간판이 물풀처럼 흔들렸다
자동차가 길게 줄을 서서
수만 년 전 비단잉어의 이동로를 따라
느릿느릿 흘러갔다
물거품으로 떠다니는 꽃향기 속
수심을 유지하는 부레 하나
박제된 듯 정지해 있었다
위이잉, 닫혔던 귀가 열렸다
아이를 기다리던 엄마가 환해지며
비늘 없는 작은 손을 잡았다
― 「찬란한 봄날」 부분
지상은 수중으로 바뀌고, 아이는 부레를 확인하고 안도한다. 그는 구조된 자와 받지 못한 자를, 지상과 수중을, 이편과 저편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조된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애도할 수 없으며, 지상에 있는 자가 수중에 남은 자를 기억하지도 잊지도 못한다. 애도와 연민의 감정마저도 그에게는 사치스러웠던 것일까. 그는 아예 이 세계를 저 세계로 만들어버린다. 세상의 모든 곳이 지옥이다. 그리고 희망은 지옥의 끝자락에 부레처럼 떠 있다. 고통의 끝까지 맛보아야만 희망의 기미라도 겨우 볼 수 있는 것이다. 『찬란한 봄날』을 지배하는 것은 도저한 고통의 이미지이다. 동시에 그것은 김유섭이 자신의 고통을 달래는 방법이자 이 세계가 지닌 고통의 단면들이다.
김유섭 시는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도시가 가리키는 뜻은 명확하다. 거짓 행복을 선전하는 장소(「태연한 생」)이자, 밤에 휴식을 제공하는 대신 피를 빨아먹는 곳(「밤의 드라큘라」),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곳이 그가 인식하는 도시인 것이다. 이를 그의 시적 개성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많은 이들이 굳이 그의 시를 보지 않더라도 도시를 그리 여기지 않을까. 주목해야 할 지점은 표현이다. 그의 시에는 도시의 구체적인 지명이 없다. 이름 없이 도시라는 말만 가득 찬 시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왜 그는 도시를 계속해서, 서울이건 부산이건 광주이건 다른 곳이건 구체적인 지명 없이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가.
‘삶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그는 말했다. 어찌 아름답겠는가. 지상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고, 야윈 목숨들은 쓰레기로 굴러다니는데. 하지만 그는 독을 숨기고 있다는 것 자체를 “동병상련의 예의”라고 하고, 사막 같은 생도 “물줄기를 향한 타는 그리움”이라고도 한다. 동병상련은 타인과의 교류, 즉 공동체를 전제로 두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그리움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사막과 전쟁과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는 줄기차게 악다구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보냈던 것이고 기억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타인은 다시 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없다면, 자신도 없다는 듯이 김유섭은 내면의 상처에 쏠렸던 시선을 거두어 밖을 내다본다. 자신의 깊은 상처가 타인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과 함께 있기이다. 상처를 입은 타인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줄 때 공동체가 생겨난다. 동시에 이때 하소연의 시가 아니라 보편성의 시가 탄생한다. 이번 시집은 그에게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밑그림과 같다. 처절하면서도 무서우면서도 기괴한 모습의 지옥도가 여기에 펼쳐져 있다. 그의 시가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때, 시초가 여기였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자.
― 김종훈(문학평론가 · 상명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작가 소개
김유섭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2011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시흥문학상, 201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및 김만중 문학상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찬란한 봄날
낮은 음표들의 도시
핏물 흐르는 날들
태연한 생
밤의 드라큘라
너에게 나라는 질량
겨울 도시를 목격하다
영혼을 꽃처럼 펼쳐 굽는 거리
여우 사냥
기계적 작동
밤의 고양이
흐르는 숲
제2부 눈알들
먼지와 냄새의 제복들
노동의 품격
얼굴
저무는 길에 선 저문 낙타를 보았다
창밖에 절벽 같은 비가 내리는 날
나를 화석으로 만나다
고양이 가면
사형집행관
제3부 비극을 관람하다
붉은 미소
행려의 잔치
무대 위에서
소란
아름다운 날의 소풍
들끓는 바닥
한없이 구부정하게
생은 너무나 길어 보였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다정한 휘파람 소리
전갈
지랄이라는 씁쓸함
제4부 전철에서 졸다
지나간 생을 만지작거리다
저녁 식사
만화영화 속으로
전어의 궤도
낡은 필름 속 사람들
유령들의 집
술의 방법론
버려진 나사
무협의 세계
제5부 황금빛 바람이 부는 거리
사랑의 기억
ㄹ
레고의 세계
조립
나쁜 버릇
봄날은 간다
어떤 근황
혀의 밀림 속을 걷다
소외
해설:마음 도시의 지옥도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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