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어여쁜 여자를 보면 어느 순간 와락 물방울처럼 껴안아 시냇물로 흐르고 싶고 그 시냇물을 번안하여 음악으로 만들고 싶고 또 그걸 번역하여 시를 만들고 싶고..... 파란 유리창이 될 때까지 밤새 듣는 음악들(이상스럽게도 듣다보면 바흐가 제일 많다)..... 음악을 틀면 어김없이 내 옆으로 시냇물이 생기고 여울물이 돈다. 음악은 그 시냇물 소리를 끊임없이 번안하여 내게 주고 냇물은 온몸을 온 풍경에게 허락한 채 그 소리만으로 흘러간다. 나는 그 시냇물을 지붕으로 올린 집을 한 채 꿈꾼다. 물방울을 뺴내 창문을 낸 집. 그 시의 나라의 번지 없는 주막!
세월에서 비켜설 수 없는 이 세계. 한 때는 시간을 이기는 방법으로 시를, 예술을 생각하던 순진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즈음은 그 모든 생심에서 놓여나보겠다고 멍청해지기도 한다. 급하면 나는 언어를 닫은 자리가 내가 머리 둘 곳이라고 쩝쩝 입맛을 다신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것은 음만 듣는 것이 아니라 음이 깎아낸 그 사이를 그 여울을 듣는 것이듯.
음악 끄고 지금, 만조의 침묵에 그물을 쳐놓고 침묵이 빠져나가길 기다린다. 침묵이 기르던 내 숨소리들 드문드문 걸려 있다면 떼어다가 굴풋할 때마다 하나 씩 삭혀 넘기리.
작가 소개
장석남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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