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애국심은 팬티와 같아
여섯 명의 여성 작가가 무릎을 맞대고 모여 있다. 이제 막 사랑의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폴란드 시인이 말한다. 사랑 이야기보다 아우슈비츠의 기억이 우선이라고. 그전에 사랑을 말하는 자는 작가가 아니라고. 순간 침묵을 깨고 문정희는 말한다. “애국심은 팬티와 같아. 누구나 입고 있지만 나 팬티 입었다고 소리치지 않아.”
『작가의 사랑』에서 문정희의 동선은 국경이 무의미하다. 그는 세계의 시인과 시민을 자유롭게 만난다. 그 만남의 노래가 코즈모폴리턴의 얄팍한 포즈나, 무심결에 드러내는 제1세계 지향이라면 결코 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문정희의 여행은 시가 된다. 할머니의 꽃상여 지나가고 젊을 적 어머니가 참척의 비극을 겪은 남도에서 자유가 쉬워 보였던 뉴욕과 메가폰을 들고 시를 읊었던 아르헨티나의 재래시장까지. 발 딛는 곳 어디에서나 시인은 쓸쓸한 애국심을 몸 한쪽에 놓아 둔 채로 시와 여성 그리고 생명을 노래한다. 이러한 문정희의 시적 여정은 곡시의 발걸음과 다름 아니다.
딸아, 우리가 가장 예뻤을 때
문정희가 『작가의 사랑』에서 크게 사랑하여 주로 호명하는 것은 여성들의 이름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쿠르상에서 탈락하자 스스로가 페미나상을 제정한 안나 드와이유, 독재자 앞에서 차도르를 찢어 버린 오리아나 팔라치, 해방 공간에서 간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던 김수임, 문학의 이름으로 인격을 살해당한 작가 김명순, 문정희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숱한 여성들…….
“조선아, 이 사나운 곳아, 이담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 또 학대해 보아라.”라고 했던 김명순의 절규가 아직까지도 유효함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말대로, 부당한 이름으로 이름을 빼앗긴 여성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시집은 차별과 저항의 비망록이자 여성의 울음을 곡조 삼는 레퀴엠이며 여성의 노래를 상기하는 생명의 복원집이다. 문정희는 시인으로서 시와의 합일된 삶을 꿈꾼다. 그리고 그는 시인이자 여성으로서, 작가이자 어른으로서 지금, 여기, 이 시대, 이 땅에 필요한 시집을 내어놓았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며, 다름 아닌 작가의 사랑이다.
작가 소개
문정희
여성성과 일상성을 기초로 한 특유의 시적 에너지와 삶에 대한 통찰로 문단과 독자 모두의 사랑을 받아 온 문정희 시인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 진명여고 재학 중 백일장을 석권하며 주목을 받았고, 여고생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첫 시집 『꽃숨』을 발간했다.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마케도니아 테토보 세계문학 포럼에서 작품 「분수」로 〈올해의 시인상〉(2004), 2008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문학 부문 등을 수상했다.
1996년 미국 Iowa대학(IWP) 국제 창작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영어 번역시집 『Windflower』, 『Woman on the Terrace』, 독어 번역시집 『Die Mohnblume im Haar』, 스페인어 번역시집 『Yo soy Moon』, 알바니아어 번역시집 『kenga e shigjetave』, 『Mln ditet e naimit』외 다수의 시가 프랑스어, 히부르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문정희시집』, 『새떼』,『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찔레』, 『하늘보다 먼곳에 매인 그네』,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지금 장미를 따라』『사랑의 기쁨』 외에 장시 「아우내의 새」등의 시집이 있다.
목 차
나비 고백 13
돌에게 14
거위 16
나의 옷 18
이름 모를 꽃들의 시간 20
늙은 코미디언 22
무덤 시위 23
꿩 24
살아 있는 것은 25
지붕 위의 흰옷 26
나의 도서관 28
낙타 구두 30
우는 소년 31
사진 없는 아이 32
노숙자 34
링 35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36
봄 회의 38
검은 그릇 39
빈둥빈둥 40
오빠의 마술 42
나는 거미줄을 쓰네 43
작가의 사랑 45
우드사이드 스토리 48
구르는 돌멩이처럼 50
빌리지의 작가 52
쓸쓸한 유머 54
장물 56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 57
줄광대 58
샹그릴라 가는 길 60
상투 상투 62
비행기에서 우산 쓰기 64
메가폰을 든 시인 66
문신이 있는 연인 68
벵갈의 밤 70
정전 도시 72
페로비아의 사내 74
그가 나의 연인은 아니었지만 75
공항의 요로나 78
과일들의 증언 80
아름다운 직업 82
베네치아 카페 84
사랑의 탐사 86
소금과 설탕 88
차도르 쓴 아침 90
독재자 92
졸혼(卒婚) 94
무명 가수 96
선물 상자 98
옥수수 패밀리 100
저녁 메뉴 102
젖은 옷들의 축제 104
왕의 역할을 잘하는 배우 106
자백 107
애인 108
낚싯줄 110
공항 가는 길 112
딸아 114
곡시(哭詩) 116
내가 가장 예뻤을 때 120
그러던 어느 날 122
작품 해설-박혜진 123
도래한 페허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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