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객잔

고객평점
저자신단향
출판사항움, 발행일:2018/12/10
형태사항p.154 A5판:21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4645452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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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세상은 거친 광야다. 도시는 기회를 엿보는 무사들로 늘 스산하고 위태롭기만 하다. 밤이면 그 무사들이 술집들의 거리로 밀려든다.‘상록객잔’은 이 거리의 한 주점이며, 이 시집의 화자는 이 주점 의 주인인 ‘상록마녀’다. 시들은 이 주인 마녀의 독백이 라고 할 수 있다. 호탕한 여걸의 독백이다. 소설 못지않은 흥미진진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상록마녀, 황진이, 고양이
 임채우 (시인, 문학평론가)

전철 4호선 상록수역 1번 출구로 나와, 대로를 건 너, 공용주차장 옆 상가 골목에는 나무 한 그루, 하다못해 가게 앞에 내놓은 화분 하나 없다. 골목으로 들어서 면 맞은편 10층짜리 뉴라성호텔과 그 지하 히트관광나 이트가 여왕벌처럼 떡 하니 서 있고, 그 양쪽에 5층짜리 건물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마치 비사실적인 영화 세트 장 같은 건물마다 1층은 술집, 식당이고, 그 위로 노래 방, 모텔, 당구장, 카페, 호프집, 인력사무소 등의 간판이 빽빽하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한낮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 다. 오후 네 시쯤 술시가 되어야 이 도시의 좀비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어둠이 짙어갈수록 나이트클럽의 LED 광고가 현란하게 빛을 발하고, 점차 생기를 되찾은 골목이 부산스러워진다. 부나비 떼를 유혹하는 불빛처럼 일대가 불야성을 이룬다. 광고의 불빛이 희뿌옇게 빛을 잃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골목은 다시 고요 속으로 잠긴다. 그 북새통 가운데 주점 하나가 상록객잔, 바로 마녀의 소굴이다. 상록객잔은 상호가 아니다. 역설의 땅 안산安山은 편 치 못해도 안산이고, 나무 한 그루 없어도 상록수다. 상 록객잔도 마찬가지다. 원래 객잔이란 식사와 음료를 제 공하는 이웃 나라의 숙박업소다. 시인께서 이 삭막하기 그지없는 공간에 사철 푸른 상록수 그늘 아래 사람들로 넘치는 주점을 연상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제1회 <우리 詩작품상>을 수상하며 수상 소감에 밝힌 바와 같이 ‘용 문객잔’이란 영화를 보고, 기왕 팔을 걷어붙이고 장사로 나설 바에야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미모와 배포와 검술 로 분위기를 휘어잡는 마녀가 되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상록객잔은 살벌과 과장과 술수가 난무하는, 온갖 이 권과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는, 세상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숱한 무림 의 고수와 졸개 들을 상대로 일전을 벌이는 객잔의 여주 인, 민첩하고, 통쾌하고, 실감나는 마녀의 연기는 가히 일품이다. 범상한 일상을 상록객잔이란 범상치 않은 구조로 파악하여 그 틈새를 풍자와 해학으로 메워나가는 시적 여유가 오히려 신선하다. 본 시집은 4부로 나누어 시 쉰 편을 수록하였다. 1부 는 열일곱 편으로 ‘상록마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2부 이하 시 중에도 부제가 붙어 있지 않지만, 같은 부제를 붙여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시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3부에는 ‘황진이 환생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시 네 편이 있다. 그리고 4부에는 고양이를 제재로 한 시가 일곱 편 이 있다. 마녀는 객잔 주변의 검객들 외에는 별로 관심 이 없는데 유독 고양이에게만은 집착한다. 이 시집은 상록마녀와 황진이, 그리고 고양이를 제외하면 낙수落穗 가 별로 없다.

마녀의 사랑

 질문 : 시집 상록마녀 와 상록객잔 의 작품세계는 어떻게 다른가?
답변 : 둘 다 객잔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데, 앞서 나온 상록마녀 가 객잔 주변 사람들의 생존법을 그렸다면, 상록객잔 은 사랑이다. 마녀도 사람이다. 그녀도 유년의 강을 건너 꿈 많은 소녀 시절이 있었고, 짝을 만나 신혼의 단꿈에 젖었던 때가 있었다. 마녀가 되기 전에는 일상의 행복을 꿈꾸던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이 둘을 데리고 홀어미 몸으로 세상 풍파를 헤쳐 나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 이 아니었다. 맷돌 두 짝이 맞물려 돌아가는 틈새에 끼 듯 세상은 인간들끼리 부대끼며 마모되어 가는 곳이었 다. 어찌어찌하여 무사들의 호주머니 속 엽전이나 노리는, 술수에 능한 마녀가 되어 보대끼다 보니 어느덧 여 성스러움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 그런데 꽃 피는 봄이 되니 아직 꺼지지 않은 사랑 이 가슴속에서 몽실몽실 피어난다. 매정과 잇속과 술수 의 고수인 마녀답지 않게 마녀의 가슴속에 맺힌 몽돌이 봄날처럼 흐물흐물해지며 그 안에서 사랑 하나가 삐죽 이 머리를 내민다.
가슴엔 마귀의 소굴이 있어 쑥대밭 갈은 실핏줄이 뒤엉키어 어디로 불거질지 모를 심사 오기만 가득 차 있다 어느덧 머리는 백발, 독기 점점 서릿발 같아지니 살기만 등등 손 마디마디에서 철거덕거리는 표창과 칼날들로 번개를 일으켜 사랑에 얽매인 연놈들을 칠 것이니 도포자락은 쉼 없이 돌개바람을 일으킨다. 본래 사랑이란 저잣거리에서 기녀들이 부르는 찬가의 추임새였을 터, 어쩌다 손 맞잡았던 내 사랑 인간들의 농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서리 맞은 산국처럼 심장 파멸되어 버리고 사랑이 쌓이면 심신이 몽롱해지는 법 사랑의 온순한 마음을 배신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으니 내 열두 폭 흰 치마는 너의 피로 흥건하리라 날마다 흘리는 눈물이 너의 혈관으로 스며들리라 너는 서서히 애간장이 녹아 내 혀끝에 당도하리라.
― 「마녀의 사랑」, 부분

 마녀의 사랑은 여느 사랑과는 다르다. 그녀도 한때 마음속에 진실한 사랑 하나 간직했는데, 그것이 “인간들의 농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서리 맞은 산국처럼 심장 파멸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 시적 표현으로는 그것 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떠했는지 선명치 않으나, 이로 인 하여 마녀가 ‘배신의 사랑법’을 몸에 익힌 것이 분명하다. 마녀는 사랑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 “사랑이 쌓이면 심신이 몽롱해지는 법”이어서 되도록 생각 없이 응 대할 뿐이다. 우선 네가 내 앞에 구애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을 때까지 최대한 매정해라. 그리고 마음속으로 너에 대한 증오를 키워라. “사랑타령이라는 것은 저잣거리 기녀들의 추임새에 불과한 것”이라 마음을 조금 이라도 열어서는 결코 마녀답지 못하다. 마침내 네가 항복의 눈물을 흘리며 나의 치마폭에 안길 때, 배신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어라. 마치 사마귀가 교미 중에 암컷이 수컷의 목을 잘라 우적우적 씹듯이 절정의 순간을 배신으로 마무리하라. 이것이 마녀의 사랑법이다. 이 마녀의 치명적인 비술에 녹아나지 않을 자가 누구인가. 그러나 이것이 진실로 마녀의 사랑은 아니다. 그녀가 이 같은 치명적인 사랑법으로 무장한 것은 실로 연약한 여성이기에 뭇 남성의 추파와 유혹과 구애로부터 자신과 두 새끼와 객잔을 지키기 위하여 짐짓 냉정함을 가장 하고 있음을 여타의 시편을 보면 금세 눈치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가 가슴에 품고 있는, 진짜 마녀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마녀의 사랑에 순정이 있다고 생각지 마라 캥거루처럼 마녀의 배에 붙어 피나 빨아 먹을 양이면 당연히 너를 단칼에 베어 버릴 것이다 너의 오장육부를 질근거리며 피 묻은 혓바닥을 날름거려야 하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수백 번 내뱉어도 결코 마녀는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랑의 책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 그러므로 마녀를 다그치지 마라. 사랑은 말로 내뱉는 것이 아니다. 신뢰를 주는 것 지구 저편에 있어도 너의 숨결 곁에 있음을 느끼는 것 그럴 때마다 사랑 앞에 고개 숙여지고 사랑은 고무줄놀이 같은 것 맞잡은 인연의 줄이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게 시소놀이 즐기는 아이 되어 백색 오선지 위를 뛰어 놀아 젖을 보채는 아이처럼 사랑에 궁핍해 하던 당신아!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이 꼭 사랑이더냐 내 가슴 샘물 퍼내기 위하여 뜨거운 심장에 푸른 씨앗 하나 심어라 그리고 포복하라
 마녀의 가슴이 사랑에 담기면 배란기의 암고양이처럼 손발톱의 날이 예리해짐을 모르진 않겠지?
― 「그리고, 쓸쓸한」, 전문

 마녀가 가슴에 담고 있는 사랑은, 적어도 사랑 자가 붙으려면 이 정도의 조건은 충족해야 한다. 첫째, 사랑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둘째, 사랑은 신뢰를 주는 것 이다. 셋째, 사랑은 고무줄놀이와 같은 것이다. 너무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게 인연의 줄을 당겨야 한다. 이 얼마나 고루하고, 지극히 보수적인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이 유치찬란한 조건을 몸에 두른다는 것이 얼마나 마녀답지 못한가. 마녀는 객잔 주변의 바람난 암고양이들과 허세 부리는 남검객들 사이의 체하는 사랑놀이를 볼작시면 “손 마디마디에서 철거덕거리는 표창과 칼날들로 번개를 일으켜 사랑에 얽매인 연놈들을 칠 것”이 라고 말한다. 마녀는 새끼고양이의 주검까지 거두었던 사랑의 견자見者다. 젊음은 쉬 지나가고 사랑은 폐허로 남는 법이다. 이와 같은 마녀의 사랑에 비추어 볼 때, “흥행도 없는 신종 블루스, 검은 도륙의 로맨스 스캠(신종 사기 수 법)”에 속을 뻔한 사랑이라든가(「신종 블루스」), 객잔 안에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헬리코박터를 주고받는 즉흥적인 사랑이라든가(「청춘비디오」), 이별 하나 정 히 끝내지 못하고 눈물을 질질 짜다가 금방 새로운 남자에게 웃음꽃을 피우는 헤픈 사랑(「울고 있는 여자」) 은 사랑이 아니다. 검객들의 섹시한 검법, 장력, 허리돌 리기 검법, 봉건적 검법 들이 마녀의 돌려차기 한 방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다. 그러나 마녀는 이제 젊은 날의 요염하고 교태로운, 암 수暗數도 서슴없이 날리던, 독기 충만하고 활달 쾌유한 ‘용문객잔’의 금양옥이 아니다. 시「마녀 되기를 보면, 그녀가 여자의 몸으로 상록객잔을 지키기 위하여 매일 22구공탄을 갈고, “생피의 붉은 잡고기나 썰며 깜도 안 되는 서툰 시 나부랭이나 지으니 고행의 늪 구렁텅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일상의 피로도 피로지만 객잔에서 숱한 검객들과 대결하여 살아남기가 날 이 갈수록 버겁게 느껴진다. 백전노장의 고수라는 말은 듣기 좋게 추겨주는 말일 뿐,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그리움, 그리고 절망감으로 물을 만나지 못한 꽃과 나무는 시들어간다. 진실한 사랑 하나가 가슴에 몽돌이 되어(「사랑 그 후」), 이제 사랑의 열기마저 가시고 욕심과 욕망으로 배불린 허구의 뱃속을 비우고 에움길로 해서 천천히 돌아가는(「저승사자」), 본연의 시간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마녀에게서 볼 수 있다.

황진이가 가는 길

 질문 : 시인에게 황진이는 누구인가?

답변 : 알다시피 황진이는 조선 제일의 기녀이자 시인이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 평생을 떠돌았던 길 위의 여인이다. 객잔 주변의 여검사들을 황진이의 환생으로 보고 있다. 시집에 황진이 관련 시가 네 편이다. 네 편 모두 ‘황진이 환생하다’를 부제로 붙이고 있다. 조선 제일의 기녀 이자 시조 여섯으로 정점을 찍었던, 페미니즘의 원조 격 인 여장부, 황진이가 이 세상에 환생했다면 어떤 길을 어떻게 걸었을까? 불행히도 이 주제에 대해서 시인은 그리 친절치 못하다. 황진이와 상록객잔의 여자들과의 상관관계는 이렇다. 황진이와 여검객들은 남검객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황진이와 마녀는 시인이라는 점에서 같다. 황진이든 마녀든 여검객이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길 위의 여자라는 점이다. 길이 한 여자를 끌고 간다. 옛 에움길에 찍혔을 짚신 발자국과 엉켰다. 길은 시간을 거스르는 현재의 여자를 놓지 않는다. 온종일 건널목을 가로지르며 발자국을 찍는다. 지난 옛 세월에 먼지 낀 치맛자락을 고을과 고을 사이로 끌고 다녔을 황진이인 양, 저 여자는 차가운 보도블록 위를 날마다 돌고 돈다. 그 옛날 방황하던 습관이 여자의 혈관에 새겨져 있다. 길이 길을 품고 흘러간다. 마음 편히 가라. 쉬엄쉬엄 가라. 꽃길을 열어 준다. 진이가 말한다. 흘러가는 길에서 살고 싶다고, 여자의 발자국이 꽃이 되어 피어오른다.
선홍빛 끓어 넘치던 그리운 님을 찾아, 또 한 겁 에움길을 돌아가고 있다.

― 「꽃비가 흐르는 길」, 부분

 이 시에서 황진이가 짚신을 신고 가던 길을 세월을 격 하여 현세의 한 여자가 걷고 있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그 길 위에는 꽃비가 내리고, 여자의 발자국은 꽃이 되 어 피어오르고, 선홍빛 끓어 넘치는 그리운 임을 찾아 또 한 겹 에움길을 돌아가고 있다. 사람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는다. 한 사람의 생은 그가 걸었던 길로 드러난다. 길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 디를 거쳐 어디로 가기 마련이고,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 재에 이르고 미래를 향해 뻗어 있을 뿐이다. 그런가 하 면 가슴속에 그리움을 품은 이는 황진이의 시조「冬至 섯달 기나긴 밤을 에 나오는 어론님(정든 님, 님의 총칭) 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 길에는 바람이 불고, 꽃비가 내 린다. 길을 정처 없이 걷노라면 멀리 아득하기만 하고, 이제 임을 찾아가는 길 자체가 목적이 된다. 황진이는 시조「청산리 벽계수야 에서 왕족인 벽계수를 유혹하며 “一到滄海하면 도라오기 어려우니”라고 읊었다. 그렇 다, 세인의 길은 일도창해다. 한 번 푸른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오기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진이가 가는 길은 다분히 종착지가 있는 길이 아니라 관념 속으로 나 있는 길이기에 끝이 없다. 영원한 사랑의 길이다. 시 MP3 귀에 꽂고 를 보면, 황진이는 그리움을 거문고 산조로 풀어내는데, 현세에 환생한 황진이는 힙합 에 MP3를 귀에 꽂고 있다. 둘 다 가락에 취해, 어론님을 향한 그리움에 젖어, 몇 백 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추억 하나 붙들고 길 위에 서 있다. 마음속의 어론님 을 찾아가는 여인은 제아무리 뭇 남성이 희롱대는 기방 이거나 살벌하고 삭막한 상록객잔일지라도 심지에 오롯이 어론님이 새겨져 있어 어떤 유혹에도, 어떤 고난에 도 견디는 것이다. 오히려 밖의 고난이 안의 기쁨으로 화 한다. 이런 사랑의 혹독함이 있기에 마녀는 현세의 여성들 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한다. 시 화장실에 버려진 풍선 을 보면, 객잔 주변의 여검객들이 “인생을 쾌락으로만 즐기면 노도에 휩쓸리는 해초처럼 된다 했거늘 술잔 부딪치다 눈 맞아 화장실에서 聖水를 뱉다” 놓은 콘돔 하 나 버려져 있다. “여자에게 몸이란 소중한 소통의 대상” 이고, “여자란 절개를 지키는 것”이 그 길의 출발선이란 것을 깨닫지 못한 현세의 성 풍속도에 대해 “똥깐 베이 비붐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시절”이라고 울분을 토하는 목소리는 황진이인가, 마녀인가, 화자인가, 시인인가. 이 시집이 영화 ‘용문객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처 럼, 황진이 시편은, 시인이 각주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전경린의 소설『황진이』가 원텍스트이다. 물론 이 소설 의 원텍스트는 황진이라는 기녀의 생애와 그가 남긴 시 조 여섯이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텍스트가 다음 텍스트의 창작 동기가 되거나 영향 관계에 있는 것을 패러 디parody라 한다. 현대시는 다양한 패러디의 유사형식을 이용하여 창작 한다. 사실 패러디라는 시 창작 수법은 지난 세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기법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문학의 태초부터, 적어도 모방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에서, 그 연원이 매우 깊다. 성경의 전도서에서 솔로몬이 말하기를 지구상에 새로운 것은 전혀 없다고 했다. 기존의 것을 새로이 해석하거나 덧붙이는 수준에 불과하다. 패러디의 유사 형식에 키치kitsch가 있다. 키치는 1980년대 이후 우리 시의 특징 중의 하나인데 텔레비전이나 영화, 상업광고, 무협소설이나 만화, 싸구려 매체 의 읽을거리나 볼거리를 패러디의 대상으로 부각시킨 다. 이 시집이 영화에서, 황진이 시편이 소설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영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시의 소재가 될 수 없다고 여겼던 통속적인 것들을 시에 도입하는 시 의 키치화 이면에는 기존의 시적 규범과 형식을 거부하고 일상적 현실에 대한 독자들의 주목과 새로운 인식을 끌어내고자 하는 전략적인 특기가 숨어 있다. (정끝별의 『패러디』참조)

고양이의 생존법

 질문 : 시집에 고양이를 두고 쓴 시가 많다. 시인께서 왜 고
 양이에게 각별한 애착을 가지는가?
답변 : 고양이가 불쌍하다. 고양이도 한 생명인데, 고양이의
 겨울나기, 버림받은 새끼들은 너무 비참하다. 우리 집에 들락
 거리는 여검객들이 모두 고양이처럼 보인다.
이 시집 전체를 통해서 마녀를 비롯한 객잔을 들락거 리는 검객들 외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고양이가 유일하 다. 꽃과 나무가 설혹 나오더라도 보통명사로 한두 번 어디까지나 보조적이지 고유명사로 이름을 달고 나오지 않는다. 마치 실험극의 극히 단조로운 무대 장치와도 같 다. 원텍스트인 영화 ‘용문객잔’에서도 객잔 밖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살 수 없는 삭막한 죽음의 땅, 사막이 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간의 욕망이 좌충우돌하는 상 록객잔 역시 상록수 한 그루 없는 척박한 공간적 배경이 라는 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런데 왜 객잔 안에서, 빛이 들어가지 못한 벽 틈바구니 어둠 속에서, 가끔 고 양이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일까? 왜 마녀는 유독 야생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아프면 돌봐 주고, 추 위에 떨다 굶어 죽으면 애통해하는 것일까?
차 밑바닥에서 쉬고 있던 고양이 출발하려는 바퀴에 두 눈을 다치곤 웅크리고만 있었다 물을 줘도 고기조각 사료를 불려 내놔도 십여 일을 먹지 않았다 병원에 안고 가 링거에 항생제에 늦은 수선을 떨었지만 때를 놓쳐버린 두 눈에선 고름만 흘렀다 축축한 눈 밑엔 구더기가 바글거렸다. 한 여자가 자살했다. 사랑의 불협화는 불이 되었고 목매달은 주검이 되었다 그녀가 죽음을 선택하였듯 죽음도 그녀를 선택했던 것 죽어서도 여자는 짙은 마스카라의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불이 난 지 한 달이 되어 갈 때쯤 털 불에 다 그을리고 뼈와 가죽뿐인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바들바들거리며 내 집 앞으로 다가왔다 열린 안으로 들어와 구석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다음날 눈물 주르르 흐른 채 죽어 있었다.
― 「고양이도 자살한다고 했다」, 부분

 객잔 주변에 고양이가 서식하고 있다. 고양이는 한겨 울에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일정 구역을 맴돈다. 한겨울 언 살점이라도 먹으려고 쓰레기봉투를 찢어발기기도 하고, 생존이 극에 달하면 매정한 어미가 새끼들을 숫제 버리고 떠난다. 엄마 잃은 새끼고양이는 두려움에 떨며 객점 안 어두컴컴한 구석이나 벽 틈새 같은 곳으로 파고들어 안식처를 구한다. 새끼 고양이가 건물 5층 난 간에서 추락하여 죽는가 하면, 배내털 보송보송한 새끼 고양이가 송이송이 봄꽃을 피워내며 모진 겨울 추위를 이기고 돌아왔다고 마녀는 반갑게 맞이한다. 아마 이날 은 특별히 생고기 한 점을 던져 주었으리라. 위의 인용 시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차바퀴에 깔려 두 눈을 다쳤다. 다친 고양이를 마녀가 수의과 병원에 데려 가 링거에 항생제도 맞혔지만, 끝내 눈물을 주르르 흘린 채 죽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만을 놓고 볼 때, 비록 동물 이지만 생명에 대한 존경심 내지는 연민의 정이 대단한 마녀라고 생각된다. 요즘 세상에 자기 집에서 키우는 고 양이가 아니라면, 누가 야생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다 치면 병원 데려가고, 죽으면 울어 주겠는가? 실로 모성애가 지극한 마녀이구나 싶어 손뼉 치고 끝낸다면 읽는 사람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겠다. 그런데 인용 시의 둘째 연이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듯 켕긴다. 한 여자가 자살했다. 한 여인이 사랑의 불협화 음 끝에 죽음을 선택했고, 마스카라의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비극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여자의 죽음은 마지막 연의 고양이의 죽음과 겹쳐진다. 이것은 고양이 가 객잔 주변의 여검사들과 등가로 연결되는 은유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어미 고양이를 엄마로, 새끼고양이를 아이로 부르고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결국 고양이 이야기이지만, 객잔 주변의 여검객들과 그에 딸린 어린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다. 야생 고양이와 객잔 주변의 여검객들은 절체절명의 절박한 생존 위기에 처해 있다. 어미가 새끼 고양이를 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낳은 자식을 누구에게 맡기거나 시설로 보내거나 집에 두고 가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시「엄마놀이 에서는 고양이 일가족의 아 사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생활고를 비관하여 일가족이 모두 자살한 경우도 있다. 실로 열악한 생존 조건이 인간과 가족을 파괴하는 슬픈 소식들이 종종 뉴스에 보도 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상록객잔의 마녀는 겉으로는 냉정하고 콧물도 없는 여자로 보이지만, 안에는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품고 한갓 미물에게조차 이렇듯 사 랑을 쏟는다. 객잔에 드나드는 여검객들과 그녀들의 가족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쏟는 따뜻한 마녀임을 이로써 알겠다. 시집『상록객잔 은 삭막한 세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고 매정하고 사막과도 같이 팍팍한 곳이라 하더라도, 어김없이 이 땅 위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은 어떤 형 태든 사랑을 품고 산다. 상록객잔의 마녀는 객잔을 찾는 검객들에게 또는 말 못 하는 불쌍한 고양이들에게,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소통의 도구인 몸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시집『상록객잔 은 사랑의 시집 이다. 실로 마녀가 걷는 길의 아득함이여, 사랑이여!

상록객잔은 마녀의 소굴로 단향 시인의 일터요 전장이다. 시인이 이곳에서 무림의 고수들과 전투를 벌이는 여 검객으로 살며 얻은 경험에 풍자와 해학이라는 양념을 쳐 서 버무려내는 말맛=시맛이 일품이다. 그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어휘와 이미지를 구사하는 솜씨 또한 대단하다. 그녀는 무림의 고수로 등장하기도 하고 황진이로 환생하여 객잔을 다스리기도 한다. 한편 작은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 그의 따뜻한 마음씨를 보여 주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우리는 객잔 야사를 읽으면서 온몸으로 가감 없이 그려낸 치열한 삶의 다양한 장면들을 보며 몇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신단향 
경북 군위에서 태어났다. 2007년 시집 『고욤나무』를 내고 2012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하였다. 2017년 12월 우리詩 작품상을 수상하였고 시집 『상록마녀』가 있다.

 

목 차

시인의 말

제1부

 내 안에도 바람이 _ 15
큰 무덤 _ 16
신종 블루스 _ 18
살상검무 _ 21
저승사자 _ 23
청춘비디오 _ 27
마녀의 사랑 _ 30
그 이름 새기고 _ 33
사랑 그 후 _ 34
포개지다 _ 36
그리고, 쓸쓸한 _ 38
그녀들 _ 40
결투 _ 42
호구 _ 44
불춤 _ 47
울고 있는 여자 _ 50
마녀 되기 _ 53

제2부

 달맞이꽃 환영 _ 59
각 _ 62
사직 통보 _ 65
새벽 강도 _ 66
디스크, 디스코 _ 68
오이꽃 _ 70
너의 봄은 사라졌다 _ 72
연탄구이 _ 74
수탉 _ 76
측백나무의 방 _ 79
자벌레처럼 _ 82

제3부

 늙은 여자의 속 _ 87
칼 갈기 _ 88
봄, 뻐꾸기 _ 90
신데렐라 _ 92
정오가 남긴 웅덩이 속엔 _ 94
지금 생각하면 _ 96
명절은 _ 98
마늘 _ 100
힙합과 거문고 산조로 _ 102
 MP3 귀에 꽂고 _ 104
꽃비가 흐르는 길 _ 106
화장실에 버려진 풍선 _ 109

제4부

 살아날 듯, 잠자리 _ 115
불법 주차 _ 117
부재중 전화 _ 119
겨울의 북쪽 _ 121
겁 많은 침입 _ 123
고양이 스스로 안락사하다 _ 125
고양이가 돌아왔다 _ 127
고양이도 자살한다고 했다 _ 129
엄마놀이 _ 132
사이렌 _ 134

작품 해설 / 임채우 상록마녀, 황진이, 고양이 _ 137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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