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껍질

생각을 붙든 말은 바람의 진동을 타고 사방으로 날아갔다. 날아간 언어 홀씨들은 이른 봄부터 늦은 겨울까지 꽃이 피고 졌다. 그 들판은 언제나 가을이었고 시도 때도 없이 각양 열매를 맺었다. 속에는 생각이 낳은 새끼알들이 가득 차 있다. 무슨 생각을 담았는지 누구의 생각인지 아무도 모르게 담아둔 껍질 속을 열어 보면 그 것들은 내 생각이었고 당신의 상상이었다. 열매 속에 탄탄한 알들이 익어 지난 일들을 가듬 품고 있다. 이름마저 잊혀진 사람도 다시 사랑을 깨어나게 할 수 있는 힘을 담았다. 호두처럼 단단한 껍질 속은 항상 부드러웠고 복숭아처럼 연한 살 속에는 항상 단단한 씨앗을 가졌다. 사랑이란 서로 다른 것들의 껴안음이었다. 담고 있는 열매의 의미는 맛이 익을수록 서로 다른 형태와 품을 가졌다. 서로 기도라고 하고 시라고도 하였다. 모든 말은 껍질 안에서 녹아내리는 화석 속의 고대 다세포 생물처럼 움직였다.

- 본문 <언어의 껍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