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어린 날, 해어름. 장바닥에 서던 허술한 모습의 노인. 그 까칠한 손에 들려 흐느끼던 지금은 없는 풍물시(風物詩) 같은 해금. 늦가을, 농촌이며 사방 십 리, 어디서나 지금도 들릴 듯 들릴 듯…… 아, 그런 해금 소리 같은 시를 쓰고 싶다.”라고 한 이는 눈물의 시인 박용래다. ‘풍물시’란 풍물을 노래한 시를 말한다. 그런 풍물시 같은 해금. 그리고 그 해금 같은 시. 해어름을 배경으로 한, 통속적 흐느낌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울림이 거의 전부인 시. 시인은 다만 이런 시를 쓰고 싶었다는 말일까?
미에 대한 판단을 주관성에 입각하여 생각할 때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이 주관성 내에서 무엇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가이다. 우리가 감정을 미학적 원리로 세우게 된다면 풍물시 같은 해금 소리는 분명 미학적 지위를 획득할 터이다. 반면 우리가 감정의 섬세함을 무시한 채 형식과 내용만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풍물시 같은 해금 소리는 예술로서 그리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취미와 색깔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로지 이것만 하고 있다.”라고 니체가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학이 가지는 지위의 문제로부터 언제든 자유롭지 못하다. 즉 풍물시 같은 해금 소리는 우리의 이성적 판단으로 봐서 지나치게 통속적인 것이다.
한편으로 염세주의자에게 ‘통속’은 현실에 대한 좌절과 고뇌, 불안의식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라고 노래했던 박인환에게 ‘통속’은 전후(戰後)의 절망적 현실과 등가를 이루는 단어였다. 표면적으로는 인생이 통속적이므로 떠날 이유가 없다고 하는 이 시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자들로부터 통속적이고 경박한 멋을 부린 시라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이래저래 ‘통속’은 문제적인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 “삶은 통속이야 그게 뭐 어때서”라고 질문하는 시가 있다. 이 시의 부제는 ‘시작(詩作)’이다. 때문에 삶에 대한 인식은 물론이려니와 심미적 취향이 이성보다 심정의 문제라는 도전적 태도가 느껴진다. 불안의식이나 허무주의 등은 도무지 발붙일 수 없는 긍정형의 질문이기도 하다. 김제숙 시인의 시세계를 짐작하기에 좋은 작품이라 여겨져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삶은 통속이야 그게 뭐 어때서
굳세어라 금순아
홍도야 우지 마라
노랫말 심금(心琴) 울리는 희로애락 대서사시
저마다 다 다른 적나라한 삶의 이력
단도직입은 재미없어
내숭도 곤란해
언어의 맥박 짚어가며 심금(心襟)에 앉혀야 해
―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시작(詩作)」 전문
시의 질문은 삶이 ‘통속’임을 전제한다. 통속은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 외에도 ‘비전문적이고 대체로 저속하며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시에서의 ‘통속’은 두 번째 해석, 중에서도 특히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일’이라는 데 힘을 싣는다. 이어지는 1연의 중장은 분단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정서를 담아 인기를 끌었던 트로트 곡의 제목이자 가사, 그리고 1960년대 중반 개봉되었던 영화 주제가의 제목이자 가사를 언급한다. 대중가요 중에서도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가요의 노랫말을 차용함은 “저마다 다 다른 적나라한 삶의 이력”이 통속적이고 “뻔한” 이야기라는 선입견에 선을 긋기 위함이다. 통속을 옹호하며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는 식의 적당한 위로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통속적인 세상과 통속과 무관해 보이는 시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 삶의 통속을 간과할 때 시는 공허한 언어의 조합에 불과함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통속적인 삶 속에서의 시와 시인의 존재 방식에 관한 진술이다. 해서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사연은 저마다의 유일성으로 시인의 ‘심금(心琴)’을 울린다. 이와 같은 인식에는 타인의 삶을 엄격하고 인색하게 대함을 지양하는 판단 정지와, 대상에게서 시적인 유일성을 발견하려는 긍정적 태도가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때 시어를 “심금(心襟)에 앉”히는 일은, 시의 방향성이자 시인의 행복한 능력이다.
무장을 강요하는 이 무장한 시대에
무장에 무심한 변방에 사는 이가
일상을 한 장씩 넘기며
힘을 빼고 쓰는 시
가벼운 일별로만 쓰윽 읽어내도
밖을 겨눈 칼끝 거두는 비무장을 위해서
칼보다 강하다는 펜,
그 펜을 벼린다
― 「시인의 변명」 전문
시어를 “심금(心襟)에 앉”히는 일. 시인에게 시작(詩作)은 허세 가득한 제스처나 시에 대단한 권위를 부여하는 초월적 행위가 아니다. 시인은 “세상”이라는 “책장 넘기며 더듬는 삶의 지문”을 형상화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감금된 “수인”(「수인번호 3612」)이거나, 혹은 세상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방외인이다. 그는 자신을 일컬어 “변방”에 사는 이로서 “일상”을 정시하면서 “힘을 빼고” 시를 쓴다고 고백한다. 일상을 정시한다는 건 시와 통속을 구분하지 않듯, 시와 사회, 문학과 현실 사이의 완강한 분리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무장을 강요하는 이 무장한 시대에” 힘을 빼고 시를 쓴다는 것은 일체의 부자연스러운 행위, 즉 인위적 현란함을 배제한 무위의 어눌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하려는 반란성을 지닌다.
문학적 무위의 시도는 “칼보다도 강하다는 펜, 그 펜을 벼”려야 하므로 역설적인 기원에 해당한다. 아마도 시인이 펜을 벼린다는 의미는 무장과 무위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설정하던 최초의 순간으로 영원히 되돌아감을 지시할 터이다. 세상의 무장을 버리기 위해서 문학적으로 무장하는 역설의 미학. 우리는 「시인의 변명」을 이렇게 다시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신상조(문학평론가)
■ 시인의 산문
마음을 달래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부터는
몸의 말을 들을 참이다.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삶을 쓸 때가 되었다.
작가 소개
김제숙
부산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여성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밑줄 사용처」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수필집 『여기까지』가 있다.
목 차
제1부
갈등•13/그 여름의 맨드라미•14/햄버거 사회학•15/지도를 버리다•16/어떤 위로•18/달방 있어요•19/뻔하지만 뻔하지 않은•20/일월•21/밑줄 사용처•22/출사표와 사표 사이•23/벚꽃, 만개하다•24/울컥•25/칸나•26/팔월•27/민중, 봉기하다•28
제2부
경고•31/저녁의 서재•32/시인의 변명•34/쑥•35/ON•36/수상한 태기•38/수인번호 3612•39/변검 너머•40/중고의 위로•42/불청객 접대비•43/추상화를 읽는 시간•44/맨드라미•46/구월•47/생존의 방식•48/청춘 한 봉지•50
제3부
에스프레소와 마카롱•53/맨드라미 2•54/오후 세 시•55/찰라•56/칸나 2•57/백일홍•58/가는 동백•59/숲에 대한 예의•60/절정, 모란•61/꽃의 생애•62/꽃, 등고선•63/유월 꽃밭•64/하지•65/봄, 신상•66
제4부
저마다•69/늙은 냉장고•70/영천 외숙모•71/저녁을 굽다•72/대답의 방식•73/실종•74/폭우•75/몸을 말리다•76/心술•78/구구절절•79/그리움•80/십일월•81/넛지 효과•82/홀가분해서 오히려 충분한•84
제5부
겸손한 저녁•87/몸살•88/우표•89/중앙동 우체국•90/나도 까막눈•91/십이월•92/대설•93/감기•94/착한 소망•95/생일 후기•96/동지•97/툭•98/문고판•99/시인이라면 서부영화처럼•100/시큰둥•101/시인의 마을•102
해설 심금을 앉히는 글쓰기/신상조(문학평론가) •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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