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반전과 역설을 거듭하는 조선 권력의 계보학!
조작된 반역에서 미완의 탕평까지 230년 붕당사의 굽이와 흐름
과열된 붕당 투쟁이 만들어낸 가짜 길삼봉
1589년(선조 22년) 10월 1일 황해도 관찰사 한준으로부터 한 통의 장계가 올라왔다. 홍문관 수찬을 지낸 정여립이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정여립 사건은 동인 1,000명이 연루되는 기축옥사로 발전한다. 『괘일록 』은 당시 정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큰 변고가 일어나니, 서인들은 기뻐 날뛰고 동인들은 기운이 죽어갔다. … 서인들은 모두 한산한 자리에 있게 되어 기색이 쓸쓸하더니, 여립의 역변이 일어난 후에는 갓을 털고 나서서 서로 축하하였으며 동인들은 스스로 물러나고, 서인은 그 자리에 올라서 사사로운 원한을 보복하기에 꺼리는 바가 없었다.
정여립 사건에는 서인에 의한 조작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 있다. 황해도에서 정여립의 반역을 고변한 사람들 대다수가 서인 세력이었다. 또한 정여립이 스스로 왕이 된다거나 전주에서 왕이 난다는 말을 고의로 퍼뜨렸다는 기록들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당시 동인 우의정 정언신은 어전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웃으며 “정여립이 어찌 역적이 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까지 말했다. 정여립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중 가장 억울하게 죽은 이로는 최영경이 꼽힌다. 최영경은 삼봉이라는 호를 썼는데, 이 때문에 모주 길삼봉으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그가 길삼봉이라는 어떤 증거도 없었다. 당시 최영경을 신문한 위관은 정철이었는데, 유성룡이 정철에게 최영경에 대한 신문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술에 취해 있던 정철은 손으로 자기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 내 목을 찍어 넘기려 했소.” 이는 과거에 최영경이 늘 박순과 정철은 모두 머리를 베어 달아야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정철은 그 말에 원한을 품고 문초했다. 위관들은 정여립의 종들을 잡아다놓고 최영경을 길삼봉으로 몰아갔다. 최영경은 성혼의 부탁으로 잠시 풀려났지만 서인들의 요청에 의해 또다시 국문을 당했고 온갖 고문 끝에 감옥에서 죽었다. 죽기 전에 유언으로 바를 정正 자를 남겼다. 과열된 붕당 투쟁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절대군주 숙종과 세 번의 환국정치
선조 시대 심의겸과 김효원의 감정 대립에서 비롯된 붕당은 조선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김효원, 허엽, 이산해 등 영남학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동인은 우성전과 이발의 갈등, 실각한 서인 영수 정철의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되었고, 북인은 홍여순과 남이공의 갈등을 둘러싸고 대북과 소북으로, 대북은 다시 육북과 골북과 피북, 소북은 유당과 남당으로 분열하였다. 남인은 붕당들 중 분열이 가장 적었다. 숙종 대에 청남과 탁남으로 분당하였다가, 일부는 서인 소론으로 흡수되었고 일부는 정조 대까지 명맥을 이어가다 1800년 신유박해로 몰락했다. 광해군 대에 권력에서 배제되었던 서인들은 인조반정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고, 노서와 소서로 분화하였다가 다시 원당, 낙당, 산당, 한당으로 이합집산했다. 이 중 송시열과 송준길을 중심으로 한 산당은 현종 대에 왕권을 능가할 만큼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군약신강君弱臣强의 구도를 깨뜨린 것은 숙종이었다. 원자와 세자의 자리를 거쳐 왕위에 오른 숙종은 군왕으로서의 프라이드가 대단했다. 1680년 숙종은 영의정 허적의 유악(비가 새지 않도록 기름을 바른 천막) 대여 사건을 빌미로 신하가 왕의 권위를 업신여긴다며 하루아침에 남인들을 대거 축출하고 서인들을 대폭 등용했다. 이것이 첫 번째 환국인 경신환국이었다. 두 번째 환국인 기사환국(1689년)은 인현왕후 민씨와 장희빈의 대립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인현왕후의 뒤에는 서인이, 장희빈의 뒤에는 남인이 버티고 있었다. 기사환국으로 인해 송시열, 이이명, 김수항 등 서인 세력은 실각하였으며 목내선, 민종도, 민암을 중심으로 한 남인 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인현왕후가 폐비되고 장희빈은 왕비가 되었다. 1694년 서인 노론계의 김춘택과 소론계의 한중혁 등이 폐비 민씨의 복위 운동을 전개한다. 숙종이 민씨를 폐위시킨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른 것이었다. 그들이 민씨의 복위를 꾀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남인의 민암, 이의징 등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서인들을 완전히 몰아낼 계획을 세웠고, 복위 운동 주모자들을 신문하여 사실을 파악한 다음 숙종에게 보고하려 했다. 그러나 숙종은 폐비 사건 이후 중전 장씨와 연합한 남인 세력의 힘이 지나치게 팽창되고 있음을 염려하고 있었고, 장씨에 대한 애정이 식고 숙빈 최씨에게 애정을 쏟고 있는 중이었다. 숙종은 서인 측이 민씨 복위 운동을 꾀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오히려 서인을 제거하려 한 남인들을 궁지로 몰았다. 숙종은 남인들을 대거 축출하고 소론의 남구만, 박세채 등을 중용하였으며, 폐비 민씨를 복위시키고 노론의 송시열, 민정중, 김익훈, 김수흥, 김수항 등을 복관했다. 세 번째 환국인 갑술환국(1694년)이었다. 인현왕후를 저주하던 희빈 장씨는 끝내 사약을 마시는 운명을 맞았다.
미완의 탕평으로 귀착된 영조의 태생적 한계
영조의 탕평정치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왕세제 연잉군(영조)은 이복 형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에 휩싸이며 즉위했다. 이를 진실이라고 믿은 소론 강경파들은 전국적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이인좌의 난(1728년)이었다. 그들은 군중에 경종의 위패를 모셔놓고 곡을 하며 정부군에 맞서 싸웠다. 당시 영조는 소론 온건파를 중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소론 전체가 반란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후 영조는 탕평의 기치를 표방하며 노론과 소론 간의 타협점을 모색해나갔다. 기유처분(1729년)을 통해 왕세제 책봉 운동, 대리청정 등과 관련된 노론 대신 이건명, 조태채를 신원하고, 같은 노론 대신이라도 임인옥사(1722년)와 관련된 이이명, 김창집은 죄인으로 남겼다. 소론의 거두 이광좌와 노론의 대표 민진원의 화해를 주선하는 한편, 노론과 소론의 온건파들을 중심으로 탕평파를 형성했다. 그러나 단식 투쟁까지 해가면서 조정을 장악한 영조는 결국 죄인으로 남아 있던 노론 대신 이이명과 김창집을 신원시켰다. 그들 두 대신은 자신을 왕위에 올리려다 죽임을 당한 것이었고, 때문에 그들이 죄인으로 남아 있는 것은 자신의 왕위 계승이 잘못된 일로 치부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소론 전현직 관료 수십 명과 소북 전현직 관료 20여 명은 영조에게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글을 올려야 했다. 이로써 영조는 61세의 나이에 비로소 절대군주의 위치에 올랐다. 영조는 비록 탕평을 표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소론의 항복을 받아내고 자신을 왕위에 올린 노론의 과거 행적을 합리화시킨 격이었다. 이후 조정은 김재로, 민진원, 홍봉한 등 노론 핵심 가문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고, 사도세자를 보호하려던 소론의 대표 조재호는 사약을 마셨다.
230년 붕당사의 굽이마다 숨겨진 역사적 비의
권력은 분열의 속성을 지녔고, 그 분열은 대립을 통한 균형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붕당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치 현상이었고, 그 소란스러움은 조선 정치의 건강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정치란 원래 시끄러운 것이며, 나라를 망치는 정치는 시끄러운 정치가 아니라 독재정치 같은 침묵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록 「조선 붕당 계보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강물이 시내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듯 변화하는 조선 붕당사의 굽이마다에는 우리가 익히 알지 못했던 역사적 비의들이 남겨져 있다. 사극의 단골 소재인 인연왕후와 장희빈의 갈등은 사실 서인과 남인의 권력투쟁의 산물이었고, 교과서에 조선의 중흥기를 이끈 성군으로 나오는 영조의 탕평정치는 자신의 왕위 계승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230년간의 조선 붕당사는 조선사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축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동서 분당에서 시파, 벽파까지 조선 붕당정치의 흐름과 핵심줄기를 한눈에 보이도록 펼쳐놓았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작가 소개
저 : 박영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에, 1996년에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내면서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에는 중편소설 『식물도감 만드는 시간』으로 “문예중앙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현재 문학, 철학, 역사 분야에서 수많은 저서를 출간하며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 ‘다산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은 역사와 철학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최근에 그는 자신의 저술활동을 이끌어 주었던 생각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에 대한 연구에 매진한 끝에 방대한 분량의 『생각박물관』 집필을 마무리했다.
대표적인 역사서로는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실계보』, 『환관과 궁녀』, 『교양으로 읽는 중국사』,『대한민국 대통령실록』 등이 있다. 사상서로는 『특별한 한국인』, 『생각의 정복자들』, 『달마에서 성철까지』, 『도덕경 읽는 즐거움』, 『생각 박물관』, 『체질과 인간 유형을 알면 사람 만나는 것이 즐겁다』 등이 있다.
소설로는 『책략』(전5권)과 장편 『그 남자의 물고기』가 있다. 어린이 책으로는 『조선사 이야기』(전3권), 『고려사 이야기』(전3권), 『신라사 이야기』(전3권), 『백제사 이야기』, 『고구려사 이야기』(전2권), 『치우대왕과 단군의 나라』, 『김수로왕과 비밀의 나라 가야』, 『조선시대에는 어떤 관청이 있었을까?』, 『조선시대 왕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조선시대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조선시대 환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만화 조선왕조실록』(전8권), 『만화 고구려왕조실록』(전4권) 등이 있다.
목 차
서문_ 건강미 넘치는 화려한 시절에 대한 비망록
1. 붕당의 뿌리 사림파와 사화
사림파와 붕당/ 정치 전면에 등장한 사림파/ 사림파의 대부 김종직/ 사림과 훈척 세력의 대립/ 김일손의 사초를 트집 잡아 일으킨 무오사화/ 연산군의 보복 정치가 빚은 참극, 갑자사화/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 신진 사림과 조광조의 도학 정치/ 중종을 위한 훈신들의 친위 쿠데타, 기묘사화/ 윤원형 일파의 대윤 척결 작업, 을사사화/ 대윤 잔당 소탕 작업, 정미사화/ 명종 시대 사림의 거두 이언적
2.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선 사림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 동인의 공세에 밀려나는 서인/ 백인걸 상소 대술 사건으로 비판받는 이이/ 정철을 보호하려다 대사헌에서 밀려나는 이이/ 이이를 내쫓으려는 동인 세력과 보호하려는 선조/ 이이의 죽음과 서인에게 등 돌리는 선조/ 반역죄로 고발당하는 정여립/ 정여립의 죽음과 쫓겨나는 동인/ 이산해의 모략에 걸린 정철/ 쫓겨나는 서인, 돌아오는 동인/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선 동인
3. 임진왜란과 붕당 투쟁
세자로 결정되는 광해군/ 쫓겨나는 이산해와 북인들/ 다시 돌아온 정철/ 요동으로 달아나려는 선조와 반대하는 대신들/ 죽은 뒤 관직까지 삭탈당한 정철/ 정승 자리에서 밀려나는 윤두수/ 유성룡을 내쫓고 관작을 삭탈시키는 북인
4. 전란 이후의 북인 정권
사라진 서인, 남인과 북인만 득실대는 조정/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선 북인/ 서로를 비방하다 내쫓기는 대북 세력/ 다시 조정을 장악하는 북인/ 유영경의 권력 독점과 유당과 남당으로 찢어진 소북/ 세자 섭정을 막아서는 유영경/ 유영경의 손을 들어주는 선조
5. 광해군과 대북 정권
처단되는 유영경과 쫓겨나는 유당 세력/ 대북의 영수 이산해와 홍여순의 죽음/ 살해되는 임해군/ 김직재의 옥과 숙청되는 소북 세력/ 계축옥사, 살해되는 영창대군과 능창군/ 서궁에 유폐된 인목대비와 ‘경운궁을 그리워한다’/ 폐모론과 허균 역모 사건
6. 인조, 효종 시대의 서인 정권
인조반정과 대북파의 소멸/ 세자빈까지 결정하는 서인/ 서인의 이합집산/ 김육과 김집의 대립/ 다시 돌아온 산당과 효종의 급작스러운 죽음
7. 예송 그리고 환국 정치-현종·숙종·경종 시대
예송 그리고 남인과 서인의 목숨을 건 투쟁/ 김석주의 모략에 걸려 쫓겨나는 남인/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선 서인/ 기사환국으로 되살아난 남인/ 갑술환국으로 다시 집권하는 서인/ 경종의 등극과 신임사화
8. 탕평의 시대를 연 영조와 정조
소론을 내치는 을사처분/ 정미환국과 이인좌의 난/ 탕평파와 영조의 노력으로 이뤄진 기유처분/ 이광좌와 민진원의 화해를 주선하는 영조/ 단식 선언으로 탕평책을 관철시키다/ 경신처분으로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확보하다/ 소론의 전향과 노론의 득세/ 세자를 죽이는 부왕/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세손/ 홍국영을 앞세워 정적을 제거하는 정조/ 새로운 탕평 시대를 열어가는 정조/ 정조의 죽음, 그리고 붕당 시대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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