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식민사학자, 그들의 가면을 벗긴다
그렇다면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일제의 압제에 항거하여 들불처럼 일어났던 3·1운동 이후에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은밀히 유통되어 대대적으로 읽히자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는 엄청난 돈을 들여 우리 역사 왜곡, 날조라는 전략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사·국어는 혼”이라는 박은식 선생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일제도 깨달았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해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내세우며, 우리 역사를 축소, 훼손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사마천 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 역사학을 무시(!)하고 이른바 ‘근대 역사학’이라며 서양의 역사학을 들먹이며 한국사 죽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에 하수인으로 동원한 한국인 학자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라 불리는 이병도였다. 이병도는 일본 역사학자들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자랑스럽게 증언하기까지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역사학자가 한국인 역사학자를 ‘사랑’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주장을 일본인이 하는 것보다 같은 한국인의 입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하면 훨씬 잘 먹히리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식민사학,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무한증식하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일제의 이런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이 심어놓은 사관, 즉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심지어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극우 일본의 사관을 전파하기까지 하고 있는 사학계의 추악한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본문은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현실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건을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 세금 10억 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라는 곳과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서적(한국 고대사인데 고조선이 빠지고 한사군이 들어간, 그리고 삼국 시대가 빠지고 가야와 삼한이 들어간 놀라운 책이다)을 둘러싼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와의 공방, 그리고 풍납토성 초축 연대의 수정 시도라는 비열한 행태 고발 등을 통해 식민사관이 21세기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한증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5장에서는 식민사학자들의 비열한 작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자세도 무시해온 사학계의 실상을 폭로한다. 자신들과 다른 관점, 즉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식민사학 카르텔이 어떻게 매장하고 ‘왕따’시켜왔는지 관련자들의 적나라한 증언이 제시된다.
이제, 역사학계의 적폐를 청산할 때가 되었다
지은이는 통탄한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자국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역사학자들이 존경받고 최고의 역사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실증’이라는 미명 하에 식민 통치 지배자의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난도질해온 식민사학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는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재야’ ‘전공자가 아니다’ 등으로 무조건 무시하고, 토론을 하자 하면 눈 감고 귀 막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비열한 식민사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제안한다. 토론을 하자고. 그늘에 숨어서 국민 세금 축내지 말고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면 정정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문헌 사료에 근거한 학술적인 토론을 해보자고 말이다. 고조선이 신화인지 사화(史話)인지, 한사군이 정말로 한반도에 설치되었는지, 고조선이 평양으로 중심을 이동했는지, 연구 성과와 문헌 사료에 자신이 있다면 토론 제안에 지금이라도 ‘응답하라, 식민사학!’
민족사학계의 논리적이고 신빙성 있는 주장이 대중에게 호소력을 갖고, 점점 일반 국민에게 전파되자 식민사학계는 다급해졌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식민사학계는 반성하고 공부를 하기는커녕, 더욱 교묘하고 치졸한 카르텔을 작동시켰다. 학계에 이어 이제 언론계(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카르텔까지 총동원하여 민족사학 죽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역설적으로 식민사학자들이 그만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로 읽힌다. 정보를 독점하고, 학자가 입맛대로 해석하던 시대는 갔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대중이 원하는 1차 사료를 검색할 수 있고, 공부만 하면 누구나 해석도 할 수 있다. 학문권력을 독점하고 왜곡된 사관(史觀)으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호도해왔던 역사학계의 적폐 세력도 이제는 청산할 때가 되었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역사학계의 적폐 청산의 선봉에 서서 횃불로 타오를 책이다.
작가 소개
저 : 이덕일
李德一
1961년 충남 아산 출생. 숭실대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필두로 한국사의 쟁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대중역사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우리 역사의 온갖 미스터리를 객관적 사료를 토대로 선명하게 풀어낸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조선 왕 독살사건』 등의 문제작을 펴내면서 우리시대의 대표적 역사저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이덕일의 여인열전』 등 생존 당시 주목 받지 못했던 불운한 천재들이나 역사 속에 안타깝게 묻혀버린 인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덕일은 객관적 사료에 근거하여 역사의 미스터리와 의문에 대한 문제제기로 새로운 형태의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논쟁적인 주제로 새로운 역사해석의 선두에 서있다.
그는 최근 정치사 위주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 제대로 주목 받지 못한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풍부하고 정확한 사료에 근거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체로 대중역사서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그는 방송과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면서 더 많은 독자들을 미지의 역사로 이끌고 있다. 학자풍의 딱딱한 글을 쓰지 않는 수준을 넘어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덕일은 기존의 정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야사와 어울려 흥미로운 우리 역사의 숨겨진 이면을 밝혀내어 역사 연구의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있다.
저서로『운부 1.2.3』『사도세자의 고백』『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ㆍ2권,『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누가 왕을 죽였는가』『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오국사기』『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설득과 통합의 리더 류성룡』『조선 최대 갑부 역관』『조선 선비 살해 사건』,『왕과 나』,『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사』,『정도전과 그의 시대』 등이 있다.
사진 : 권태균
권태균(權泰鈞, 1955-2015)은 경남 의령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하였다. 뿌리깊은나무사의 월간 『샘이깊은물』 사진기자와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사진부장과 청와대 대통령실 17대 대통령 사진기록 담당관을 역임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전문위원과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모임인 ‘온빛’ 회장을 지냈고, 신구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개인전으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노마드 NOMAD-변화하는 1980년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작은 기록>(갤러리 룩스, 서울)전을 네 차례 열었으며, <침묵하는 돌-고인돌>(고은사진미술관, 부산)을 2010년에 가진 바 있다. 그룹전으로는 1982년 사진 2인전을 시작으로 2013년 제5회 중국 따리 국제사진전까지 수십 차례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예술가의 이야기, 사진가 임응식』(나무숲, 2006), 『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열화당, 2006), 『The Discovery Of Korea』(Discovery Media)의 영문판과 일본어판이 있으며, 출판사진에도 꾸준히 관심을 보여 소설가, 사학자 등과 공동작업으로 펴낸 공저가 다수 있다. 그는 한국의 문화, 역사, 한국 사람들의 삶에 관한 사진작업을 줄곧 해왔으며, 한국의 정서를 가장 사진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묵묵히 사진으로 천착해 온 사진가이다. 2014년 봄부터 준비해 온 첫 번째 사진집은 안타깝게도 2015년 1월, 그의 갑작스런 타계로 유작 사진집이 되고 말았다.
목 차
개정판 머리말
초판 머리말
1장. 우리가 사는 세상
1. 재상륙한 임나일본부설
대한민국의 현주소 |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의 전화 | ‘임나일본부설’과 ‘한반도 남부 경영설’ | 스에마쓰 야스카즈와 김현구 |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른다는 김현구 | 『삼국사기』의 눈으로 한일 고대사를 보면 | 일본 학계에 던져진 김석형 의 분국설이라는 핵폭탄 | 코미디 수준의 임나 위치 비정 | 백제는 야마토왜의 식 민지였는가? | 백제에서 왕녀와 왕자들을 인질로 보냈다는 김현구 | 야마토왜군이 지금의 주한미군이라고? | 일왕 히로히토가 평화의 사도라는 김현구 | 한국 극우 파와 일본 극우파의 자금 | 김현구가 받은 미즈노의 혼네
2. 시스템이 고장 난 대한민국호, 대한민국 정치와 언론
시스템이 고장 난 정부 | 고장 난 언론 시스템
2장. 전쟁 중인 두 사관
1. 한 장의 지도가 말하는 두 개의 역사관
독립 운동가 사관과 조선총독부 사관 | 선각자로 둔갑한 매국노 이인직 |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문 철자법
2. 식민주의 사관의 계보
일제가 실증주의를 내세운 이유 | 도쿄제대의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교토제대의 나이토 고난 | 제국주의 고고학 | 조선사편수회로 가는 길
3. 민족주의 사관의 계보
대종교와 민족사관 | 역사관의 혁명 | 사육신을 바꿔치기하려 한 사건
3장. 동북아역사재단이 던진 질문
1. 2012년 여름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총독부 산하로 착각하는 동북아역사재단 |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이 불편한 식민사학 | 간도는 원래부터 중국 영토였다는 동북아역사재단
2. 2009년,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에서 동북아역사재단에 물은 것
대한민국의 구조적인 식민사관
3. 서양사에서 본 실증사학 비판
4장. 한국 고대사는 늘 현대사였다
1. 동북아역사재단과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
한사군부터 시작하는 한국 고대사 | 덴리교 예배에 참석한 이병도
2. 해방 후에도 이어진 식민사학 카르텔
해방 후에도 국내를 들락거린 조선사편수회의 일인들 | 공개 토론 제의를 거부하는 동북아역사재단
3. 『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 내용 비판
사대와 굴종, 그리고 반공과 반북 | 바잉턴이 동북아역사재단에 보내온 편지 | 한국 국회의원들을 꾸짖는 바잉턴 | 고조선 깎아내리기에 학문 인생을 건 송호정 | 그 밖의 저자들의 주장
5장. 식민사관의 생존 비법
1. 학계에서 정리가 끝났다고 우기기
1차 사료를 왜곡한다 | 학문적으로 이미 폐기된 ‘한사군 한반도설’
2. 사료 가치 폄하하기
엉뚱한 사료 인용하기 | 갈석산에서 만난 교포들과 서울대 노태돈 | 진나라 통일을 기념해서 제작한 『태강지리지』
3. 변형 이론 만들기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이란 변형 이론
4. 이론이 다른 학자 죽이기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 창작된 이유 |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과 싸운 최재석 |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라는 김현구 | 김현구에게 수모당한 최재석
5. 발굴 결과 뒤집기 -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와 풍납토성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라는 비극 | 발굴 결과를 뒤집어라
6장. 식민사관 해체의 길
1. 식민사관은 구조의 문제다
너희 집안도 독립 운동했다는 말이냐? | 지하에 돌아가 수많은 선배와 동지들을 대할까 보냐
2. 일제 강점 찬양 처벌법이 필요하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학술서적인가? | 순국선열의 날과 순국선열유족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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