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오월 판화는 기억 투쟁이다!
화가 홍성담은 역사는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면 언제든지 다시 인간이 가진 악마성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가까운 역사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특히 군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순간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은 약 2천만 명의 아시아 민중을 학살했다. 올해로 70주년이 되는 제주 4.3사건은 또 어떤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또한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상흔이다. 5·18 또한 군인들에 의해 잔인한 일이 거짓말처럼 벌어졌던 사건이다. 잔인한 역사의 현장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기억하지 못할 때 거짓말 같은 일은 되풀이될 수 있음을 역사는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홍성담은 역사를 기록한다. 판화가 기억 투쟁을 위한 하나의 프로파간다가 되기를 자처한다.
“‘오월판화’는 기억투쟁을 위해서 만들어진 그림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오월판화를 두고 예술이기 전에 ‘선전선동화’라고 폄하하기 일쑤였다. 그 말이 맞다. 나는 예술이 예술이기 전에 인간의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면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_본문에서
그리하여 홍성담의 오월 판화는 시민들의 피맺힌 외침이 울려 퍼지는 투쟁 현장의 생생함을 기록한 우리의 역사이면서, 국가 폭력의 민낯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는 저항으로서의 예술인 것이다.
오월 판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손으로 그려진 그림!
5·18 당시 광주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였다고 홍성담은 말한다. 5월 27일 새벽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 본부가 계엄군들의 막강한 화력 앞에 무너지기 전 열흘 동안 무시무시한 총칼 앞에서 광주를 지키며 함께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홍성담은 그들의 이야기를 목판과 고무판 위에 고스란히 옮겨 판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홍성담의 판화는 바로 이 사람들의 마음과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판화의 주인공 중에는 민주주의를 외치며 마지막까지 광주를 지켰던 시민군들도 있고, 광주에서 밥상공동체를 만든 주먹밥 아줌마들도 있다. 그녀들은 시내 여기저기 솥을 걸고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서로 밥을 나누면서 피를 나눈 형제임을 확신하게 된 시간이었다. 가진 것을 내놓아 함께 나누었던 시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뻤던 열흘 동안의 항쟁이 가진 가치가 연작 판화 [밥]에 담겨 있다.
사진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든 판화도 있다. 바로 [갚아야 할 원수]가 그것이다.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소년의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물음을 고스란히 판화에 옮겼다.
또한 시내 큰 병원마다 피가 모자라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마다 시민들의 행렬이 장사진을 이룰 때 그 길에 동참했던 광주의 매춘부들도 있었다. 홍성담은 [황금동전투]라는 연작 판화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새겼다.
“광주에서 우리의 품에 안기지 않았던 남자가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 젊은이들이 악마 같은 계엄군들에 의해서 붉은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우리 매춘부의 피는 당신들과 다르다더냐· 우리 몸에도 당신들과 똑같은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_본문에서
518에서 세월호까지,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는 화가 홍성담
전남 신안 출신인 홍성담은 목포에서 중·고 시절을 보내고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주요 작품에는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새벽), 환경생태 연작그림 나무물고기, 국가폭력에 관한 연작그림 유신의 초상, 세월호 연작그림 ‘들숨날숨’ 등이 있다.
오월에 관한 연작판화는 1981년부터 그려지기 시작해 80년대 내내 그려지고 1989년 봄에 몇 점을 더 보강하여 총 50점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해마다 5월이 되면 어딘가에서 수없이 많은 전시회가 열린다. 국내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작 1조가 소장되어 있고, 국외에는 영국 글래스고 국립현대미술관, 앰네스티 런던본부,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시민군과 대인시장에서 주먹밥을 나눠 주던 오월 어머니가 세월호를 힘차게 들어 올리는 장면을 그린 [세월오월]이라는 작품을 통해 세월호의 아픔을 위로했다. 이 작품은 박근혜 정부 동안 공개되지 못하다가 세월호 3주기였던 2017년에 일반에게 공개되어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불편한 역사의 길 위에서 펼쳐지는 기억투쟁을 위한 화가 홍성담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발문에서
화가 홍성담에게 ‘오월 광주’는 당시의 누구에게나 그랬듯이 스스로의 인생에 화인(火印)이 찍힌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창작자에게 가장 소중하달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었음을 의미했다.
내가 늘 푸념하듯 우리는 ‘서사가 많은 나라’에 태어나서 고맙고, 부자유스러워서 불편하다. 여기서 내가 부자유라고 하는 것은 ‘역사라는 엄처시하’에 살게 된 한국 예술가의 숙명을 말하고자 함이다. 또한 그에게 ‘오월 광주’는 학교였다. _황석영
추천사에서
오월판화는 독재정권에 대한 날카로운 비수로서 소임을 다하면서 성장하고, 제국주의 중심의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파괴하는 충각으로서 구실을 다해왔다. 이제 단정한 책자로 편집되어 고전으로 되어가는 오월판화의 행로를 지금은다 헤아릴 수 없지만 투쟁의 무기로서 오월판화의 구실을 내려놓기는 아직도 이르지 않나 싶다. _서승
작가의 말에서
나는 이 출간이 ‘고상하고 품격 있는 예술’로 자리매김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오월판화는 지난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비추는 거울로써 끊임없이 기억투쟁의 포르파간다 그림으로 더욱더 자기 역할을 다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 소개
저 : 홍성담
목포에서 배로 두어 시간 걸리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80년 광주 오월을 겪은 작가는 꾸준히 그날의 광주를 이야기해 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광주 오월 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 환경생태 연작그림 [나무물고기], 동아시아의 국가주의에 관한 연작그림 [야스쿠니의 미망], 제주도의 신화 연작그림 [신들의 섬], 신문사진 분석법에 관한 연작그림 [사진과 사의], 국가폭력에 관한 연작그림 [유신의 초상], 세월호 연작그림 [들숨 날숨] 등이 있다. 국제 엠네스티가 1990년 ‘세계의 3대 양심수’로 선정, 뉴욕의 국제정치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가 ‘2014년 세계를 뒤흔든 100인의 사상가(thinker)’로 선정되었다.
목 차
작가의 말_ 오월판화는 기억투쟁이다! 012
오월판화와 시
마각 022 / 횃불행진 024 / 꼭두각시놀음 026 / 친구 028 / 구경꾼들 030
혈루-1 032 / 혈루-2 034 / 혈루-3 036 / 혈루-4 038 / 혈루-5 040
혈루-6 042 / 혈루-7 044 / 암매장 046 / 투사회보-1 048 / 도망 050
형제 052 / 양동전투 054 / 황금동전투 056 / 가자, 도청으로 058 / 투사회보-2 060
깃발 062 / 무기분배 064 / 총, 나의 생명 066 / 불 068 / 대자보 070
대동세상-1 072 / 도청궐기대회 074 / 밥 076 / 효천전투 078 / 동생을 위하여 080
갚아야 할 원수 082 / 임산부 084 / 무기회수거부 086 / 헌혈구호 088 / 헌혈행진 090
대동세상-2 092 / 흐르는 물이야 094 / 새벽전투 096 / 잃어버린 시체 098 / 새벽 100
나의 이름은 102 / 무등산하만고해원신시민군 104 / 칼춤 106 / 낫춤 108 / 윤상원 열사 110 시민군 신장도 112 / 사시사철-봄 114 / 사시사철-여름 116 / 사시사철-가을 118 / 깃발춤 120
오월판화 일기 122
추천사_ 오키나와 이후 정신세계의 계엄을 넘어서_ 서승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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