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인간의 가장 큰 숙제인 죽음, 인류학자의 너른 시선으로 살피다
죽음은 누구나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산 자는 산 자대로 죽은 사람과 어떻게 헤어질지 알아야 하며, 죽은 자는 죽은 자대로 자신의 죽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인류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지한 이후부터 이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고 그로부터 여러 신화와 종교, 문화와 의례가 탄생했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장례 풍습과 내세관, 죽음의 상징 체계 등을 살펴보며 산 자와 죽은 자에게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탐색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
산 자에게 중요한 건 충분한 애도와 함께 죽은 자를 잘 보내 주는 것이다. 여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의례가 장례다. 장례는 죽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리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장례에서는 시신을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거나, 혹은 티베트처럼 독수리에게 먹이는데(천장天葬), 형태는 문화권마다 다양하지만 죽은 자를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떠나보내는 의도는 동일하다. 장례를 통해 죽은 자는 산 자의 영역에서 떠나고 기억과 추모의 대상이 된다.
한편 죽은 자에게는 죽은 후 어떻게 될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인류는 다양한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 왔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한국 신화의 바리공주가 떠나는 저승 여행, 플라톤의 ‘에르 신화’와 불교에서 제시한 윤회, 그리고 이집트 신화와 그리스도교의 최후의 심판과 부활 등 각지의 신화와 민담에는 죽음 이후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대체로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죽은 다음에 좋은 세계(혹은 내세에서의 좋은 삶)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렇게 거대한 죽음의 상상계를 만들고 전함으로써 삶 너머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현재 삶의 윤리를 만들었으며, 삶의 의미를 확장해 왔다.
죽음은 어떻게 산 자의 삶을 지배하는가
죽음은 죽은 자의 것만이 아니다. 죽음을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산 자의 삶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아시아의 조상숭배다. 이는 죽은 조상을 모시고 기림으로써 그 조상의 후손으로 인정받고, 그들에게 물려받은 것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왕조 시대에는 역대 왕의 위패를 모신 종묘를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로 삼았고, 사대부 계층도 집집마다 사당을 만들었으며, 사회 전체에 ‘조상신을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라는 믿음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 독립 유공자를 국립묘지에 안치하고 예우하는 행위 역시 이런 조상숭배의 한 모습이다.
반면 죽은 자를 제대로 애도하지 않고 죽음을 모욕하는 사회는 위기를 겪기 쉽다.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서 테베의 왕인 크레온은 안티고네가 테베를 배신한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애도하는 걸 금지한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이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장례를 치른다. 명령을 어긴 죄로 감금된 안티고네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 사실을 안 크레온의 아들과 아내, 그리고 안티고네의 동생 이스메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테베는 몰락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죽음이 삶에 미치는 무서운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월호와 이태원의 애도받지 못한 죽음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를 떠올린다면, 그것이 단순히 상징에 그치지 않음을 이해할 것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여러 신화와 문화 속 이야기에서 죽음이 삶에, 삶이 죽음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두루 살핀다.
좋은 삶이 좋은 죽음을 가져오고 좋은 죽음이 좋은 삶을 완성한다
의학과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현대 사회는 죽음을 삶에서 최대한 멀리 밀어내려 애쓰고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죽음이 뒷방 노인처럼’ 소외되어 존재감이 희박해졌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죽음을 끌어안으려 한 인류의 오랜 노력을 짚으며 죽음이 결코 삶의 반대말이 아님을 역설한다. 오히려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결정적인 요소이다. 자신이 죽는다는 걸 인식하고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며, 앞에서 언급했듯이 죽음의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유한함을 수긍하고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자연스러운 순리로 받아들일 때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경이롭고 소중한지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게 인류가 10만 년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죽음은 더없이 무겁고 두려운 일이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산책하듯 가볍게, 그렇지만 차분하게 죽음과 삶의 풍경을 찬찬히 둘러본다. 그렇게 저자와 함께 그 풍경 속을 걷다 보면, 피하고만 싶던 죽음을 조용히 바라보며 죽음의 새로운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난 죽음은 좋은 삶으로 나아가는 길을 넌지시 일러줄 것이다. 오늘의 삶을 고민하는 독자에게 죽음에 관한 인류학적 산책을 권한다.
작가 소개
이경덕
신화 연구가, 문화인류학 박사.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인류의 신화와 의례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교 안팎에서 신화와 인류학 등을 강의하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새롭게 만나는 한국 신화』,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 『나는 스타벅스에서 그리스 신화를 마신다』, 『0시의 고대 인류 탐험』 등을 썼고,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그리스인 이야기』(전 3권) 등을 옮겼다.
목 차
여는 글
시작하기에 앞서
1장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 산 자의 경우
죽음 뒤에 찾아오는 애도와 장례
청춘의 신, 불꽃이 되어 사라지다
죽은 자를 하늘에 묻는 티베트
인류가 고안한 여러 독특한 장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장례
산 자의 생각이 깃든 죽은 자의 집, 무덤
2장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 죽은 자의 경우
저승을 다녀온 당 태종
저승은 어디에 있을까?
저승 여행에도 가이드가 필요하다
저승에 가면 심판을 받는다
인정 많은 심판관, 염라대왕
이승에 드리워진 저승의 그림자
3장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간 오르페우스
죽은 자는 적대적인가 우호적인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방법
누가 나의 조상이 되는가
기억과 추모의 어두운 그늘
조상숭배, 권력 유지를 위한 조상의 활용
4장 모욕당하는 죽음
죽은 자는 땅속으로 산자는 땅 위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발명한 것
죽음을 활용한 공포 마케팅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죽음을 망각한 사회가 잃어 가는 것
5장 사후세계에 관한 인류의 다양한 시각
다음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원형 세계관과 선형 세계관
영원과 순간의 차이
달라이 라마의 환생
도축장에서의 깨달음
순환하는 계절에서 인생을 상상하다
문화와 의례에 담긴 윤회의 흔적
지옥을 원한 성자와 추장
6장 사랑과 음식 그리고 죽음
신이 될 수 있는 음식을 거부하다
음식과 삶과 죽음
천국은 잘 먹는 곳
우리는 먹는 대로 산다, 먹는 대로 바뀐다
우리는 죽음을 먹는다
식인의 기원
살기 위해 먹고 먹기 때문에 죽는다
7장 영원한 삶이냐 좋은 죽음이냐
순간을 사는 인간, 영원에 갇힌 신들
죽음을 납치하고 죽음에서 되살아난 시시포스
영원한 삶은 축복일까 형벌일까
누구나 장수하는 시대
오래 살게 되면 바뀌는 것들
단 하나의 소원, 그것은 죽음
8장 죽음은 어떻게 우리를 지혜롭게 만들까?
지혜를 얻기 위해 죽음을 택하다
늘 새롭게 만들어 주는 끝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길가메시의 모험
죽음은 어떻게 우리를 지혜롭게 만들까?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산다
9장 죽음의 이야기는 삶에 관한 이야기
이카로스, 최고의 순간에 맞이한 죽음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
함께하는 삶, 함께하는 죽음
역사라는 긴 흐름 속에서 죽음을 바라보기
물과 불이 함께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마치며: 때로 가까이에서, 때로 멀리서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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