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역대 논어 중 가장 급진적인 우리말 번역,
그러면서도 원문의 참뜻을 고스란히 담아낸 술술 읽히는 논어
논어가 실생활 현대 한국어로 완벽히 재탄생했다. 조선왕조실록 재번역 작업에 참여하는 소장 여성 한학자 임자헌씨가 종래의 고답적인 ‘원문-현토’ 방식이나 ‘고문체(古文體)’ 방식을 과감히 탈피한 혁신적인 한글 번역을 『군자를 버린 논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고 의미가 모호한 추상적인 옛 용어들을 모두 현대적인 용어나 일상어로 옮기고, 문체 면에서도 불필요한 엄숙주의를 걷어낸 경쾌한 구어체를 사용했다. 공자의 캐릭터도 형식보다는 본질을 중시했던 공자의 본모습에 맞게 친근하고 소탈하게 살렸다. 번역의 결과는 놀랍다. 대화의 정황이나 맥락이 생생히 드러나 별도의 해설이 없어도 될 만큼 잘 읽히면서 논어 원문이 담고 있는 본래의 뜻은 뜻대로 고스란히 살아난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군자를 버린 논어』에는 논어의 상징과도 같은 단어 ‘군자(君子)’가 등장하지 않는다. ‘군자’뿐만이 아니다. ‘사(士)’ ‘소인(小人)’ ‘예악(禮樂)’ ‘인(仁)’ 등 관습적으로 논어 번역에 사용되어온 많은 고색창연한 단어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 단어들은 맥락에 따라서 ‘진정한 지성인/리더’ ‘지식인’ ‘좀생이’ ‘문화 예술’ ‘진정한 사람다움’ 등으로 옮겨진다. 문장 속에 워낙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어떤 단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의식되지 않을 정도다.
『군자를 버린 논어』가 이런 번역 자세를 취한 것은 이 ‘곰팡내 나는 단어’들이 현실 언어생활에서는 ‘이미 죽은 말’이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머리말에서 ‘당신은 지난 1년 동안 군자라는 단어를 몇 번 사용했느냐’는 질문을 던져, ‘이 책이 버리기 전에 우리의 삶이 이미 그 단어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물론 단어만 버렸을 뿐, 옛사람들이 그 단어 속에 담으려 했던 이상적 인간상이나 가치, 그에 대한 소망까지 우리가 버린 것은 아니라는 이중적인 상황도 일깨운다. 그렇다면 그 개념들은 현실에 맞는 새로운 언어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논어를 살아 있는 현대의 언어로 번역해야 할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나온 번역본도 많지만 이들 구태의연한 용어의 장벽만은 쉽게 넘어서지 못했다. 그 때문에 독자는 한글로 번역된 논어를 읽으면서도 마치 외국어를 해독할 때와 같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혹시 당신이 한때 논어를 읽기로 마음먹었다가 몇 줄 읽지 못하고 내려놓았다면 그건 당신 탓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논어를 읽는 것은 2500년 전 공자 시대의
잡다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다.
논어는 모든 종류의 권장 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책이다. 최근, 공무원 임용 시험에 추가된 인문학 면접의 대상 도서에도 당연하게 포함되었다. 논어를 읽어야 할 이유는 많지만 읽기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논어의 ‘본문’을 읽어왔다기보다 ‘해설’을 읽어왔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 옛 용어로 뒤덮인 번역 그 자체로는 뜻이 살아나지 않으니 당연하게 해설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옮긴이는 종래의 번잡한 해설은 도리어 독자를 혼란에 빠뜨려 논어 속에서 정작 읽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포기했던 한문을 갑자기 문법부터 공부시키는가 하면,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옛 중국 변두리의 역사를 공부시키는 것도 모자라, 지금은 알아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수천년 전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공부시킨다. 도대체 춘추시대 하급 공무원의 직함을 그때 용어 그대로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지방 권력자의 덜떨어진 아들 이름까지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마구 쏟아지는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매는 동안, 논어는 순식간에 지겨운 책이 되어버리고, 정작 왜 우리가 논어를 읽으려 했는지는 잊어버리기 일쑤다. 우리가 왜 논어를 읽으려 했던가? 2500년 전 공자 시대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아니,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그렇게 헤맨 끝에 어렵사리 메시지 하나를 건져올렸는데, 무언가 엄청나게 심오할 줄로만 알았던 그것이 너무도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인 내용임을 알았을 때의 허탈함이란… 결국 어려운 건 논어의 철학이 아니라 너무도 낡아버린 논어의 언어였던 것이다.”
『군자를 버린 논어』는 본문 그 자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해설에서도 한문 자구 분석이나 사소한 사실에 대한 장황한 언급 대신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만 전하고 가능하면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보는 설명을 위주로 하고 있다.
신비화도 우상화도, 사극 코스프레도 이제 그만!
케케묵은 용어와 엄숙주의를 벗어던진 쌈박한 공자 말씀
“읽다가 발끈할지도 모를 일부(극히 일부일 것이다) 독자를 위해 미리 말해두자. 이 책의 ‘공자님 말씀’ 속에는 약간의(아주 약간이다) 비속어, 유행어, 외래어가 섞여 있다. 현재 우리 언어생활을 반영해 뜻이 명확하고 잘 와 닿는 말이 있다면 굳이 피하지 않고 쓴 결과다. 모두 논어 본래의 취지가 더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한, 그래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논어로 번역하기 위한 선택이다.”
논어의 문턱이 높았던 것은 본질적인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고정관념 탓이 컸다. ‘성인의 말씀이 담겼다’는 이유로 신비화, 우상화한 경향도 없지 않았고, 그래서 ‘어떻게든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번역해야 신성모독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이 있었다. 옛글인만큼 반드시 엄숙한 의고체(擬古體) 문장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다시 말해 ‘사극 코스프레’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옮긴이는 여러 가지 객관적인 정황을 들어, 논어가 현대의 관점에서는 ‘편집이 덜 된 책’이며 따지고 보면 ‘공자의 감수도 받지 않은 책’이라는 점을 상기시킨 뒤, ‘그러므로 읽는 사람이 재량껏 편집해 읽는 것이 당연한 권리요 의무’라는 말로 그 강박을 내려놓게 만든다. 공자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인물’이고 제자들과 ‘농담 따먹기’를 할 만큼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고려해도 논어에 좀더 유연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다음과 같은 번역 방침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을 서술하는 것이 아닌 비유적인 표현은 철저히 공감이 쉬운 쪽을 택했고, 더러 현대의 물건이나 상황을 가져와 비유에 활용하기도 했다. 공자의 말투도 맥락상 다중을 상대로 한 것이라고 짐작되는 곳에서는 연설투로, 제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구어체로, 내밀한 심경을 토로하는 부분은 독백체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존대말, 반말을 구사하게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군자를 버린 논어』의 문체는 매우 현대적이고, 발랄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경쾌하다. ‘공자 말씀’이라고 주눅들게 만들지도 않는다. 공자와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는 느낌으로 읽게 되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읽는 이의 마음속에 자연스레 반론이 떠오르기도 한다. 『군자를 버린 논어』는 무조건적 수용이 아니라 비판적 수용을 하게 만드는 ‘탈권위’의 논어다.
▣ 작가 소개
저 : 공자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인 B.C.551년,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방인 노(魯)나라의 작은 마을인 추읍( 邑)에서 태어났다. 이 때는 인도의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시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은(殷)나라 왕족의 몰락한 후예의 집안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급무사였던 숙량흘(叔梁紇)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안징재(顔徵在)였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고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당시 공자의 집안은 몰락하여 겨우 벼슬을 할 수 있는 계급인 사(士)에 속해 있었다. 사계급은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공자 나이 24살 되던 기원전 528년에 공자의 어머니는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방(防) 땅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묻고 삼년상을 지낸 뒤 또 2, 3년 지나서야 다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한 주(周)나라를 동경하였고, 그 반대로 당시의 권세 있는 대부(大夫)들이 제후(諸侯)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농단하던 사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게 된 공자가 정치에 관여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자가 살던 당시 춘추시대에는 국가간이나 나라안이나 간에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명목의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仁)의 실천,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했던 공자로서는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서도 책이나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자기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설파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직접 벼슬을 맡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벽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두터웠고, 많은 좌절과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인 도덕정치철학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계승되어 한(漢)나라에서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이래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교육자와 뛰어난 정치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낸 공자도 인간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 리(鯉)와 가장 아끼던 제자 안연(顔淵)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며, 여러 나라를 떠도는 가운데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테러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년에는 이런 모든 것을 잊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 『춘추(春秋)』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에 재미를 붙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공부하는 한편, 고향의 이상이 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기원전 479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가장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사상의 중심을 인(仁)에 두었다. 최고의 덕을 인으로 본 공자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대표작품인 『논어』는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책의 제목이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역자 : 임자헌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미술 잡지 기자 생활을 잠시 하다가 한학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연수원에서 상임연구 과정을 마치고, 한국고전번역원 실록 재번역 팀에서 전문위원 및 번역위원으로 일했다. 『승정원 일기』 윤문, 『일성록』 번역, 『정조실록』 재번역 작업에 참여하고, ‘맹자와 놀자’라는 개인 강좌를 진행하는 등 동양 고전을 읽고 그 속에서 현대적 가치를 발견하여 공유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이 논어는 왜 군자를 버렸는가?
1 학이(學而)
자, 학문의 길을 열어봅시다!
2 위정(爲政)
효란 무엇인가요?
3 팔일(八佾)
질서가 무너진 사회
4 이인(里仁)
사람이 걸어야 할 길
5 공야장(公冶長)
제자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1
6 옹야(雍也)
제자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2
7 술이(述而)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르쳐줍니다
8 태백(泰伯)
훌륭한 옛적 임금들
9 자한(子罕)
마음가짐이 위대함을 만듭니다
10 향당(鄕黨)
생활 속에서 공자는
11 선진(先進)
공자와 안연, 그 애틋한 사제간
12 안연(顔淵)
온전한 사람다움이란 대체 무엇인가요?
13 자로(子路)
때로는 귀여운 상남자
14 헌문(憲問)
이름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15 위령공(衛靈公)
진정한 지성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16 계씨(季氏)
숫자로 배워보는 유학
17 양화(陽貨)
기회가 필요했던 공자의 갈등
18 미자(微子)
은둔파 현자들과의 만남
19 자장(子張)
제자들에게 배워보는 시간
20 요왈(堯曰)
정치를 말하며, 이상 수업 끝!
〈부록〉
간단히 살펴보는 논어의 시공간
간추린 공자의 생애와 사상
논어 속에서 만나는 공자의 제자들
인명 찾아보기
역대 논어 중 가장 급진적인 우리말 번역,
그러면서도 원문의 참뜻을 고스란히 담아낸 술술 읽히는 논어
논어가 실생활 현대 한국어로 완벽히 재탄생했다. 조선왕조실록 재번역 작업에 참여하는 소장 여성 한학자 임자헌씨가 종래의 고답적인 ‘원문-현토’ 방식이나 ‘고문체(古文體)’ 방식을 과감히 탈피한 혁신적인 한글 번역을 『군자를 버린 논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고 의미가 모호한 추상적인 옛 용어들을 모두 현대적인 용어나 일상어로 옮기고, 문체 면에서도 불필요한 엄숙주의를 걷어낸 경쾌한 구어체를 사용했다. 공자의 캐릭터도 형식보다는 본질을 중시했던 공자의 본모습에 맞게 친근하고 소탈하게 살렸다. 번역의 결과는 놀랍다. 대화의 정황이나 맥락이 생생히 드러나 별도의 해설이 없어도 될 만큼 잘 읽히면서 논어 원문이 담고 있는 본래의 뜻은 뜻대로 고스란히 살아난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군자를 버린 논어』에는 논어의 상징과도 같은 단어 ‘군자(君子)’가 등장하지 않는다. ‘군자’뿐만이 아니다. ‘사(士)’ ‘소인(小人)’ ‘예악(禮樂)’ ‘인(仁)’ 등 관습적으로 논어 번역에 사용되어온 많은 고색창연한 단어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 단어들은 맥락에 따라서 ‘진정한 지성인/리더’ ‘지식인’ ‘좀생이’ ‘문화 예술’ ‘진정한 사람다움’ 등으로 옮겨진다. 문장 속에 워낙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어떤 단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의식되지 않을 정도다.
『군자를 버린 논어』가 이런 번역 자세를 취한 것은 이 ‘곰팡내 나는 단어’들이 현실 언어생활에서는 ‘이미 죽은 말’이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머리말에서 ‘당신은 지난 1년 동안 군자라는 단어를 몇 번 사용했느냐’는 질문을 던져, ‘이 책이 버리기 전에 우리의 삶이 이미 그 단어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물론 단어만 버렸을 뿐, 옛사람들이 그 단어 속에 담으려 했던 이상적 인간상이나 가치, 그에 대한 소망까지 우리가 버린 것은 아니라는 이중적인 상황도 일깨운다. 그렇다면 그 개념들은 현실에 맞는 새로운 언어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논어를 살아 있는 현대의 언어로 번역해야 할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나온 번역본도 많지만 이들 구태의연한 용어의 장벽만은 쉽게 넘어서지 못했다. 그 때문에 독자는 한글로 번역된 논어를 읽으면서도 마치 외국어를 해독할 때와 같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혹시 당신이 한때 논어를 읽기로 마음먹었다가 몇 줄 읽지 못하고 내려놓았다면 그건 당신 탓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논어를 읽는 것은 2500년 전 공자 시대의
잡다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다.
논어는 모든 종류의 권장 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책이다. 최근, 공무원 임용 시험에 추가된 인문학 면접의 대상 도서에도 당연하게 포함되었다. 논어를 읽어야 할 이유는 많지만 읽기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논어의 ‘본문’을 읽어왔다기보다 ‘해설’을 읽어왔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 옛 용어로 뒤덮인 번역 그 자체로는 뜻이 살아나지 않으니 당연하게 해설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옮긴이는 종래의 번잡한 해설은 도리어 독자를 혼란에 빠뜨려 논어 속에서 정작 읽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포기했던 한문을 갑자기 문법부터 공부시키는가 하면,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옛 중국 변두리의 역사를 공부시키는 것도 모자라, 지금은 알아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수천년 전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공부시킨다. 도대체 춘추시대 하급 공무원의 직함을 그때 용어 그대로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지방 권력자의 덜떨어진 아들 이름까지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마구 쏟아지는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매는 동안, 논어는 순식간에 지겨운 책이 되어버리고, 정작 왜 우리가 논어를 읽으려 했는지는 잊어버리기 일쑤다. 우리가 왜 논어를 읽으려 했던가? 2500년 전 공자 시대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아니,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그렇게 헤맨 끝에 어렵사리 메시지 하나를 건져올렸는데, 무언가 엄청나게 심오할 줄로만 알았던 그것이 너무도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인 내용임을 알았을 때의 허탈함이란… 결국 어려운 건 논어의 철학이 아니라 너무도 낡아버린 논어의 언어였던 것이다.”
『군자를 버린 논어』는 본문 그 자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해설에서도 한문 자구 분석이나 사소한 사실에 대한 장황한 언급 대신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만 전하고 가능하면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보는 설명을 위주로 하고 있다.
신비화도 우상화도, 사극 코스프레도 이제 그만!
케케묵은 용어와 엄숙주의를 벗어던진 쌈박한 공자 말씀
“읽다가 발끈할지도 모를 일부(극히 일부일 것이다) 독자를 위해 미리 말해두자. 이 책의 ‘공자님 말씀’ 속에는 약간의(아주 약간이다) 비속어, 유행어, 외래어가 섞여 있다. 현재 우리 언어생활을 반영해 뜻이 명확하고 잘 와 닿는 말이 있다면 굳이 피하지 않고 쓴 결과다. 모두 논어 본래의 취지가 더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한, 그래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논어로 번역하기 위한 선택이다.”
논어의 문턱이 높았던 것은 본질적인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고정관념 탓이 컸다. ‘성인의 말씀이 담겼다’는 이유로 신비화, 우상화한 경향도 없지 않았고, 그래서 ‘어떻게든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번역해야 신성모독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이 있었다. 옛글인만큼 반드시 엄숙한 의고체(擬古體) 문장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다시 말해 ‘사극 코스프레’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옮긴이는 여러 가지 객관적인 정황을 들어, 논어가 현대의 관점에서는 ‘편집이 덜 된 책’이며 따지고 보면 ‘공자의 감수도 받지 않은 책’이라는 점을 상기시킨 뒤, ‘그러므로 읽는 사람이 재량껏 편집해 읽는 것이 당연한 권리요 의무’라는 말로 그 강박을 내려놓게 만든다. 공자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인물’이고 제자들과 ‘농담 따먹기’를 할 만큼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고려해도 논어에 좀더 유연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다음과 같은 번역 방침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을 서술하는 것이 아닌 비유적인 표현은 철저히 공감이 쉬운 쪽을 택했고, 더러 현대의 물건이나 상황을 가져와 비유에 활용하기도 했다. 공자의 말투도 맥락상 다중을 상대로 한 것이라고 짐작되는 곳에서는 연설투로, 제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구어체로, 내밀한 심경을 토로하는 부분은 독백체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존대말, 반말을 구사하게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군자를 버린 논어』의 문체는 매우 현대적이고, 발랄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경쾌하다. ‘공자 말씀’이라고 주눅들게 만들지도 않는다. 공자와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는 느낌으로 읽게 되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읽는 이의 마음속에 자연스레 반론이 떠오르기도 한다. 『군자를 버린 논어』는 무조건적 수용이 아니라 비판적 수용을 하게 만드는 ‘탈권위’의 논어다.
▣ 작가 소개
저 : 공자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인 B.C.551년,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방인 노(魯)나라의 작은 마을인 추읍( 邑)에서 태어났다. 이 때는 인도의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시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은(殷)나라 왕족의 몰락한 후예의 집안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급무사였던 숙량흘(叔梁紇)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안징재(顔徵在)였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고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당시 공자의 집안은 몰락하여 겨우 벼슬을 할 수 있는 계급인 사(士)에 속해 있었다. 사계급은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공자 나이 24살 되던 기원전 528년에 공자의 어머니는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방(防) 땅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묻고 삼년상을 지낸 뒤 또 2, 3년 지나서야 다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한 주(周)나라를 동경하였고, 그 반대로 당시의 권세 있는 대부(大夫)들이 제후(諸侯)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농단하던 사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게 된 공자가 정치에 관여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자가 살던 당시 춘추시대에는 국가간이나 나라안이나 간에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명목의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仁)의 실천,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했던 공자로서는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서도 책이나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자기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설파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직접 벼슬을 맡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벽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두터웠고, 많은 좌절과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인 도덕정치철학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계승되어 한(漢)나라에서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이래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교육자와 뛰어난 정치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낸 공자도 인간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 리(鯉)와 가장 아끼던 제자 안연(顔淵)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며, 여러 나라를 떠도는 가운데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테러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년에는 이런 모든 것을 잊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 『춘추(春秋)』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에 재미를 붙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공부하는 한편, 고향의 이상이 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기원전 479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가장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사상의 중심을 인(仁)에 두었다. 최고의 덕을 인으로 본 공자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대표작품인 『논어』는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책의 제목이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역자 : 임자헌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미술 잡지 기자 생활을 잠시 하다가 한학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연수원에서 상임연구 과정을 마치고, 한국고전번역원 실록 재번역 팀에서 전문위원 및 번역위원으로 일했다. 『승정원 일기』 윤문, 『일성록』 번역, 『정조실록』 재번역 작업에 참여하고, ‘맹자와 놀자’라는 개인 강좌를 진행하는 등 동양 고전을 읽고 그 속에서 현대적 가치를 발견하여 공유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이 논어는 왜 군자를 버렸는가?
1 학이(學而)
자, 학문의 길을 열어봅시다!
2 위정(爲政)
효란 무엇인가요?
3 팔일(八佾)
질서가 무너진 사회
4 이인(里仁)
사람이 걸어야 할 길
5 공야장(公冶長)
제자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1
6 옹야(雍也)
제자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2
7 술이(述而)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르쳐줍니다
8 태백(泰伯)
훌륭한 옛적 임금들
9 자한(子罕)
마음가짐이 위대함을 만듭니다
10 향당(鄕黨)
생활 속에서 공자는
11 선진(先進)
공자와 안연, 그 애틋한 사제간
12 안연(顔淵)
온전한 사람다움이란 대체 무엇인가요?
13 자로(子路)
때로는 귀여운 상남자
14 헌문(憲問)
이름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15 위령공(衛靈公)
진정한 지성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16 계씨(季氏)
숫자로 배워보는 유학
17 양화(陽貨)
기회가 필요했던 공자의 갈등
18 미자(微子)
은둔파 현자들과의 만남
19 자장(子張)
제자들에게 배워보는 시간
20 요왈(堯曰)
정치를 말하며, 이상 수업 끝!
〈부록〉
간단히 살펴보는 논어의 시공간
간추린 공자의 생애와 사상
논어 속에서 만나는 공자의 제자들
인명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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