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20세기의 주역, 미국의 슈퍼 영웅
맥아더의 삶과 그를 둘러싼 진실
*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최연소 육군사관학교 교장 및 육군참모총장, 4성 장군,
군과 정치의 경계를 넘나든 군인,
“아메리칸 시저”, “미국의 슈퍼 영웅”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가려진
군인 맥아더와 인간 맥아더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은
맥아더 평전!
*
군사적 천재, 뛰어난 지략가,
놀라운 지적 능력을 가진 군 지휘자,
“용감한 자들 중에서 가장 용감한 자”,
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을 개혁한 훌륭한 군 개혁가,
상징적 표현의 대가, 독서광
예리한 통찰력의 소유자
VS
전쟁광, 불복종의 대명사, 과대망상증 환자,
“방공호 더그”, 마마보이, 오만한 사기꾼,
지독한 거짓말로 중대한 실패를 감춘 거짓말쟁이……
극과 극의 엇갈린 평가 속에서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맥아더의 진실을 밝힌다!
우리는 과연 그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맥아더에 대해 안다고 말하지 말라!
맥아더의 신화를 벗겨내고
진짜 맥아더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들여다본 객관적인 맥아더 평전
1951년 4월 11일 새벽 1시,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의 해임을 발표한다. 맥아더는 자신의 해임 소식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듣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어떤 사환도, 어떤 파출부도, 어떤 하인도 이처럼 무례한 방식으로 해고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트루먼은 극동 아시아에 머물고 있던 육군장관 프랭크 페이스에게 4월 12일 정오 도쿄에서 직접 맥아더 해임 명령을 전달하라고 지시했으나, 《시카고 트리뷴》이 그것을 기사화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새벽 1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맥아더 해임을 발표했던 것이다.
맥아더는 침착하게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해임에 따른 달갑지 않은 세부 일정들을 마치고 상하양원 합동회의 고별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사라질 뿐입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화려했던 군 경력을 뒤로하고 떠나갔다.
1903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공병 소위로 임관한 뒤 최연소 소장, 최연소 육군사관학교 교장, 최연소 육군참모총장, 최연소 4성 장군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속한 그의 군 경력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5,000 대 1의 확률이라는 도박과도 같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함으로써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고, 이후 국군을 제외한 어떤 군대도 국경 근처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합동참모본부의 명령을 어기고 국경 근처까지 돌진해 중국을 자극함으로써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자 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두려워한 트루먼의 대외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외교적이 아닌 군사적 해결만이 한국의 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고 “어떤 것도 승리를 대신할 수 없다”며 확전을 주장하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불복종으로 맞서다가 결국 해임을 당한 맥아더는 우리나라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20세기 주역 중 한 명’, ‘아메리칸 시저’ ‘미국의 슈퍼 영웅’, ‘군사적 천재’라는 찬사와 ‘전쟁광’, ‘불복종의 대명사’, ‘과대망상증 환자’, ‘마마보이’, ‘오만한 사기꾼’, ‘지독한 거짓말로 중대한 실패를 감춘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맥아더. 이런 극과 극의 엇갈리는 수많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맥아더가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이름, 맥아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맥아더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맥아더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극과 극의 찬사와 비난 둘 중 어느 평가가 맞느냐 하는 이분법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장점과 공적, 그리고 그의 단점과 과오를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평가하고, 그의 삶을 통해 교훈을 배우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전문 역사가인 리처드 B. 프랭크는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맥아더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그의 삶을 통해 진짜 맥아더의 모습을 들여다본 뒤 그의 리더십과 그가 남긴 교훈을 이 책에 가감 없이 담았다. 이 책은 극과 극의 찬사와 비난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군인 맥아더와 인간 맥아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리고 그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을 도출해냈다. 맥아더 평전으로서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에는 그의 출생과 성장기부터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입학과 수석 졸업, 1차 세계대전 당시의 활약(7개의 은성표창과 2개의 수훈십자훈장 받음), 최연소 육군사관학교 교장(39세)과 최연소 육군참모총장(50세)에 임명되어 실시한 개혁, 첫 번째 결혼 실패, 필리핀 원수 시절의 활약, 안정을 되찾게 해준 두 번째 결혼,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군인 신분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얻는 데 두 차례 실패한 경험, 일본의 항복과 일본 점령 당시의 일본 개혁,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한국전쟁 참전(70세)과 해임, 그리고 1964년 사망할 때까지의 이야기와 맥아더에 대한 평가와 교훈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저자는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조사하고 그 진위를 밝혀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일례로 육군 이시이 시로 중장이 이끈 731부대가 무자비한 생체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귀중한 자료를 건네받는 조건으로 이시이가 전후 전범재판에서 무죄를 받게 해주겠다는 워싱턴과 이시이의 거래에 맥아더도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313쪽)을 밝히고, 또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맥아더가 레이테 만 상륙 장면 사진 촬영을 연출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당시 한 사진작가가 곧 유명해질 맥아더가 필리핀에 귀환하는 모습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은 것이라고 밝힘-231쪽 / 웨이크 섬 회담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탄 비행기와 맥아더가 탄 비행기가 누가 먼저 착륙할 것인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맥아더가 전날 밤 미리 도착해 다음날 아침 트루먼을 영접했다고 밝힘-334쪽)은 바로잡는 등 맥아더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공개하고 진실 여부를 밝힘으로써 이 책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이고 있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타고난 체질,
“미국의 미래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다”는 선견지명 가져
저자는 이 책에서 맥아더의 근본적인 특징으로 그의 뛰어난 지적 능력과 타고난 놀라운 체질을 들고 있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당면한 문제나 쟁점을 분석하는 도구로 사용했고, 늘 호기심에 자극을 받아 군 생활과 관련이 없는 분야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심도 깊은 지식은 그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 비군사적 업무를 처리할 때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지적 능력은 엄청난 난제를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인 자신감을 키우는 데도 큰 기여를 했고, 풍부한 지식은 언어 구사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지구에서 가장 능력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포함해 어떤 현진 고위급 지도자들보다 못한 점이 없다고 믿었다. 그의 오만과 자만심은 바로 이런 믿음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두 번째 태생적으로 놀라운 체질을 타고났다. 그는 그 어떤 동년배보다 정신적?신체적으로 젊음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식사와 음주를 적정한 수준으로 자제하고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지킴으로써 활력을 유지해나갔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맥아더가 미국의 미래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다는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아들에게 심어주었고, 맥아더는 자신의 경력에서 두 차례의 위대한 절정기를 극동에서 근무하는 동안 맞이했다. 군에 있는 동년배와 정계의 상관들 모두 유럽중심주의자였기 때문에 맥아더는 군 경력 내내 국가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주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거대 조직에서 그와 같은 비주류적인 사고는 일반적 통념을 시험하고 단련하는 역할을 한다.
또 인종 관계에 대한 맥아더의 입장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기본적으로 그는 백인이 아닌 사람이라고 해서 평등하지 않을 만큼 지적 혹은 도덕적 결함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필리핀과 일본, 한국의 지도자들을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대등한 존재로 대우했다. 그는 바탄 반도를 지키는 데 필수적인 식량을 필리핀인들로부터 무자비하게 징발하여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거부했고, 1945년 9월 일본 항복 조인식에서는 일본 대표단을 모욕하지 않았다.
또 그는 전술 항공력의 열렬한 추종자이기는 했지만, 공중 화력의 무제한적인 사용을 거부했으며 특히 도시에 대한 폭격을 혐오했다. 1941년 12월 일본군 공습에 의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도록 마닐라를 ‘비무장 도시’로 선언했다. 한국에서도 맥아더는 도시를 초토화시키려는 공군의 계획을 초기에는 거부했었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는 맥아더도 전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서 한 걸음 물러섰는데, 1946년 6월, 그는 일본 본에서 전투를 할 경우 완강하게 저항하는 일본군 방어병력에 대한 독가스 사용을 고려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범인 야마시타와 혼마의 사법 살인에 개입했다는 사실도 자신의 신념을 어긴 또 다른 사례이다. 끝으로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개입하자 그 전까지는 한국의 도시에 대규모 항공 화력을 사용하게 된다는 이유로 거부했던 공군의 도시 초토화 계획을 승인했다.
맥아더의 리더십 원칙: 적응성과 대담성
부하들의 경쟁심 부추겨 충성하게 만들고 칭찬과 아첨 적극 활용
독특한 그만의 복장 스타일과 상징주의의 활용은 또 다른 리더십 도구
군 지휘관이자 최고 관리자로서 맥아더는 놀라운 적응성을 보여주었다. 1차 세계대전 중 군 경력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자신의 미래를 코트 드 샤티용에 걸고 부하들 한 명이 제안한 작전 계획을 채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육군참모총장인 레너드 우드에게는 능수능란하게 언론을 다루고 공개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의 개인교사 역할을 한 핵심적인 부하 조지 케니와 다니엘 바비를 통해 항공전과 상륙전 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뒤늦게 윌리엄 F. 핼시 주니어가 제시한 길을 따라 ‘우회 전략’을 채택했다. 그의 전역에서 최고의 순간인 홀란디아 상륙작전은 맥아더가 아니라 그의 부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일본 점령을 위해 그가 따랐던 정책상의 뛰어난 청사진들은 워싱턴에서 기안한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엄청난 지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그것을 폄하하기 마련인데 맥아더는 그러지 않고 남의 생각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활용했다는 것이다.
맥아더의 또 다른 리더십 원칙으로 자주 언급되는 필수 자질은 대담성이다. 뉴기니 전역의 후반부와 레이테 작전, 특히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가 자신의 대담성을 보여주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맥아더는 필리핀과 파푸아에서 약 18개월에 걸쳐 힘들게 교훈을 얻을 때까지 진정한 대담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맥아더는 자신의 부대가 작전수행 능력 면에서 성숙한 경지에 도달하고 암호해독가들이 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부터 대담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대담성은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무모함으로 바뀌었다.
맥아더는 부하들을 판단하는 첫 번째 자질로 충성심을 꼽았다. 1941년부터 시작해 이후 한국에서 해임될 때까지 10년 동안 맥아더는 자신의 참모진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맥아더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충성심을 가장 중요한 자질로 강조함으로써 반드시 그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하고 그의 선견지명을 실현하려는 열정을 가진 소수의 인원을 거쳐서 모든 사항이 위로 전달되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로 정보의 질이나 양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자기 휘하에 있는 부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맥아더가 즐겨 사용한 방법은 부하들 사이에 경쟁관계를 조장하고 서로 싸움을 붙이는 것이었다. 군대 지휘관들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맥아더는 욕설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부하들에게 직접적인 질책을 가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그는 동기유발자로 칭찬 그리고 심지어는 아첨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과 상징주의의 활용은 맥아더가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사용한 또 다른 리더십 도구였다. 프랑스에서 전투 경력을 쌓는 동안, 맥아더는 전장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했다. 그는 철모보다 테를 뺀 정모를 더 즐겨 썼으며,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2미터가 넘는 긴 분홍색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무기를 거의 소지하지 않은 채 지팡이를 들고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은 모습은 참호전의 현실에 대한 저항정신을 보여주었다. 풀을 먹여 줄을 세운 제복, 광을 낸 단추, 연병장에 도열하는 훈련에 대한 그의 본능적 거부감은 그의 개방적 태도와 대담성을 암시한다. 2차 세계대전 중 그는 천박할 정도로 요란한 군복보다는 자신의 군모와 선글라스, 담뱃대, 그리고 최소한의 계급장을 제외하고 모든 장식을 뗀 채 목을 드러낸 단순한 카기색 근무복이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맥아더는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과 상징주의를 일본 항복 조인식과 일본 점령기에 또다시 사용한다. 일본 항복 조인식에서 그는 힘과 지배력의 상징과 모든 장병들의 민주주의적 참여,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야윈 조너선 웨인라리트 중장과 아서 E. 퍼시벌 중장의 등장, 높은 이상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적에 대한 모욕은 철저하게 배격한 강렬한 연설을 멋지게 혼합했다. 그 후 일본 점령 당시 일황과 찍은 사진은 수백 만의 단어보다 더 강력하게 “내가 최고 권력자이지만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 사례이다. 또 맥아더가 당시 수많은 정치적 암살사건이 벌어지는 도쿄에서 경호도 받지 않은 채 하루 두 번씩 사무실을 오감으로써 일본인을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불복종 사례로 민군관계에 대한 중요한 교훈 남겨
맥아더는 민간인 상관들, 즉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 지도자들과 다양한 문제를 두고 충돌했다. 하지만 충돌한 그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단순히 어떤 문제에 대해 논한다고 해서 그것이 불복종은 아니며, 군대 장교들이 강력하게 조언을 제시한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혹평하는 문화를 만든다면 그것은 엄청난 실수이다.
하지만 한국 문제를 두고 맥아더가 트루먼에게 도전한 것은 단지 허심탄회하게 개인적 견해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맥아더는 너무나 분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국가 정책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해임을 당한 것이며, 그것은 적절한 조치였다.
맥아더가 군대나 민간인 상관의 지시에 따르다가 그 같은 경향을 보인 것은 1930년대 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한 달도 안 되어서 루스벨트 대통령과 스팀슨 육군장관, 마셜 육군참모총장은 맥아더의 터무니없는 의사 표현, 특히 해군과 국가 전력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그의 편집증적인 언성 높이기에 질색했다. 오직 스킴슨 육군장관만이 복종을 강요하는 행동을 직접 취했을 뿐,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고위 지도자들이 맥아더를 억제하지 못한 사례는 오늘날까지도 민군관계에 대한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맥아더는 가장 복잡한 인물”
“그에 대해 당신이 들은 최악의 말과 최고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맥아더를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맥아더가 가장 복잡한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군 지휘관 토머스 블레이미는 맥아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평가했다.
“그에 대해 당신이 들은 최악의 말과 최고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저자는 맥아더에 대한 극과 극의 엇갈린 평가에서 완전무결한 하나의 답을 인정하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 복잡했다고 말한다. 그의 위대한 자질과 업적은 모두 사실이다. 그의 엄청난 결점과 실패 역시 사실이다. 공적과 책임의 대부분은 맥아더 본인에게 있지만, 그의 민간 및 군부 상관들도 맥아더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 맥아더는 자신의 경력에서 세 차례 최고 절정기를 맞는 동안 루스벨트를 제외하고 20세기 미국 인물들 중에서 누구보다 리더십에 대한 많은 교훈을 남긴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은 군인 맥아더, 인간 맥아더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리처드 B. 프랭크
1947년 미국 캔자스 주에서 태어났다. 태평양전쟁 전문 역사가로 『과달카날: 기념비적 전투에 대한 최종 해석(Guadalcanal: The Definitive Account of the Landmark Battle)』과 『몰락: 일본 제국의 종말(Downfall: The End of the Imperial Japanese Empire)』을 썼으며, 제너럴 윌리엄 그린 상(General William Greene Award)과 해리 S. 트루먼 상(Harry S. Truman Award)을 수상했다. 미국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Annandale)에 살고 있다.
저자 : 김홍래
한양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베어 & 드래곤』과 『레인보우 식스』, ‘넷포스’ 시리즈, 『당신네들의 조국』, 『나는 하루를 살아도 사자로 살고 싶다』, ‘세계의 전쟁’ 시리즈 중 『인천 1950』, 『워털루 1815』, 『미드웨이 1942』, 『진주만 1941』, 『레이테만 1944』를 비롯해 『로마 전쟁』, 『퍼시픽』, 『모든 것의 가격』, 『넥스트 디케이드』, 『니미츠』, 『첩보의 기술』, 『아틀라스 전차전』, 『2차 대전 독일의 비밀무기』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감사의 글
추천의 글
들어가는 글
제1장 성장기
거의 모든 에이스 카드를 쥐고 태어나다 |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다 | 아버지의 유산 | 참모총장 레너드 우드로부터 큰 영향을 받다 | ‘무지개’ 사단의 참모장이 되다: 조역에서 벗어나 권력의 핵심부로 | 참호 습격작전과 은성표창 | 전장에서도 돋보이게 만든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 | “용감한 자들 중에서 가장 용감한 자” | 생미엘 전투 | 뫼즈-아르곤 공세 | 최연소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되다 |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다
제2장 육군참모총장
육군참모총장 맥아더가 실시한 육군 개혁 | 아이젠하워를 발굴하다 | 보너스 군대 진압 사건 | 보너스 군대 진압 사건으로 인한 민주당 정부의 출범 | 또 다른 적과의 싸움
제3장 중심부에서 변방 필리핀으로
필리핀을 두고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 | 필리핀 육군원수가 되다 | 안정을 되찾게 해준 두 번째 결혼 | 맥아더의 참모진 | 워싱턴 권력투쟁의 희생자, 전쟁으로 부활하다
제4장 필리핀 탈출
재앙과도 같은 태평양 전쟁의 서막 | 바탄 반도로 철수하라 | 바탄 전투 | 필리핀을 구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다 | 필리핀 탈출 :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 필리핀 전역을 둘러싼 맥아더에 대한 평가
제5장 비싼 대가
슈퍼 영웅의 탄생 | 남서태평양지역 최고사령관이 되다 | 태평양의 모든 작전에 대한 전반적 통제권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싸움 |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값비싼 승리
제6장 매개변수
아무것도 없는 남서태평양전구의 열악한 환경과의 싸움 | “내 진짜 적은 워싱턴에 있다” |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달성하다” | 맥아더의 부하들 | 맥아더의 뜻밖의 협력자: 어니스트 킹 제독과 영국
제7장 견습 기간
비스마르크 해전 전과 과장을 둘러싼 맥아더와 해군의 공방 | 카트휠 작전 :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념비적 사건 | 나잡 작전 : 맥아더의 성공적인 용병술이 빛을 발하다 | 분노한 자연 | 핀슈하펜과 시오 점령 | 고립된 일본군의 눈물겨운 내륙 후퇴
제8장 돌파구
울트라를 통해 ‘전쟁의 안개’가 걷히다 | 홀란디아 상륙작전 : 맥아더의 용병술이 최고로 발휘된 순간 | 장기전이 된 비아크 섬 전투 | 윌러비의 왜곡된 정보 평가 | 맥아더 클럽 : 맥아더를 대통령으로
제9장 귀환과 속죄
“다음 목표는 레이테이다” | “나는 돌아왔다”: 맥아더의 극적인 필리핀 귀환 | 루손 섬 전투 | 눈물겨운 마닐라 해방 | 부역 혐의자 처리 과정에서 안 좋은 선례를 남기다
제10장 일본의 항복
필리핀 전역에 대한 맥아더의 논리 | 보르네오 전역과 불필요한 작전들 | 일본 침공의 첫 번째 단계인 올림픽 작전을 둘러싼 의견 충돌 | 극적인 장엄함, 심오한 상징, 관대함이 결합된 일본 항복 조인식 | 맥아더와 니미츠가 지휘한 지상 전역에서 발생한 태평양 전투사상자
제11장 카키색 군복 차림의 쇼군
일본 점령 당시 맥아더의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업적 | 극동국제군사재판: A급 일본 전쟁범죄 혐의자 재판 | 일본 점령의 두 가지 우선 과제: 비군사화와 송환 | 맥아더의 일본 개혁
제12장 승리와 도전
맥아더의 일본 경제개혁: 토지개혁과 노동운동, 거대 재벌 해체 | 일본 내 좌익 반체제 혹은 ‘반민주주의’ 조직에 대한 공직 추방 | 일본 점령 개혁의 모순과 오점 | 지휘자 맥아더의 강점 : 표현 방식과 상징화
제13장 한국에서 거둔 승리
불복종 낙인에도 불구하고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되다 | 5,000대 1의 도박, 인천상륙작전 | 인천상륙작전 이후 맥아더의 오판
제14장 한국에서 당한 패배
워싱턴과 맥아더의 오판 | 유엔군 총사령관 해임을 향한 카운트다운 | 맥아더의 해임과 거대한 후폭풍
제15장 맥아더에 대한 평가
진짜 맥아더의 모습 | 맥아더의 교훈 | 맥아더의 리더십 | 민군관계에 대한 교훈 | 맥아더의 눈으로 본 오늘날의 문제 | “그에 대해 당신이 들은 최악의 말과 최고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주(註)
20세기의 주역, 미국의 슈퍼 영웅
맥아더의 삶과 그를 둘러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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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최연소 육군사관학교 교장 및 육군참모총장, 4성 장군,
군과 정치의 경계를 넘나든 군인,
“아메리칸 시저”, “미국의 슈퍼 영웅”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가려진
군인 맥아더와 인간 맥아더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은
맥아더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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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천재, 뛰어난 지략가,
놀라운 지적 능력을 가진 군 지휘자,
“용감한 자들 중에서 가장 용감한 자”,
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을 개혁한 훌륭한 군 개혁가,
상징적 표현의 대가, 독서광
예리한 통찰력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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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광, 불복종의 대명사, 과대망상증 환자,
“방공호 더그”, 마마보이, 오만한 사기꾼,
지독한 거짓말로 중대한 실패를 감춘 거짓말쟁이……
극과 극의 엇갈린 평가 속에서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맥아더의 진실을 밝힌다!
우리는 과연 그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맥아더에 대해 안다고 말하지 말라!
맥아더의 신화를 벗겨내고
진짜 맥아더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들여다본 객관적인 맥아더 평전
1951년 4월 11일 새벽 1시,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의 해임을 발표한다. 맥아더는 자신의 해임 소식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듣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어떤 사환도, 어떤 파출부도, 어떤 하인도 이처럼 무례한 방식으로 해고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트루먼은 극동 아시아에 머물고 있던 육군장관 프랭크 페이스에게 4월 12일 정오 도쿄에서 직접 맥아더 해임 명령을 전달하라고 지시했으나, 《시카고 트리뷴》이 그것을 기사화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새벽 1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맥아더 해임을 발표했던 것이다.
맥아더는 침착하게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해임에 따른 달갑지 않은 세부 일정들을 마치고 상하양원 합동회의 고별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사라질 뿐입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화려했던 군 경력을 뒤로하고 떠나갔다.
1903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공병 소위로 임관한 뒤 최연소 소장, 최연소 육군사관학교 교장, 최연소 육군참모총장, 최연소 4성 장군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속한 그의 군 경력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5,000 대 1의 확률이라는 도박과도 같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함으로써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고, 이후 국군을 제외한 어떤 군대도 국경 근처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합동참모본부의 명령을 어기고 국경 근처까지 돌진해 중국을 자극함으로써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자 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두려워한 트루먼의 대외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외교적이 아닌 군사적 해결만이 한국의 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고 “어떤 것도 승리를 대신할 수 없다”며 확전을 주장하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불복종으로 맞서다가 결국 해임을 당한 맥아더는 우리나라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20세기 주역 중 한 명’, ‘아메리칸 시저’ ‘미국의 슈퍼 영웅’, ‘군사적 천재’라는 찬사와 ‘전쟁광’, ‘불복종의 대명사’, ‘과대망상증 환자’, ‘마마보이’, ‘오만한 사기꾼’, ‘지독한 거짓말로 중대한 실패를 감춘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맥아더. 이런 극과 극의 엇갈리는 수많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맥아더가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이름, 맥아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맥아더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맥아더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극과 극의 찬사와 비난 둘 중 어느 평가가 맞느냐 하는 이분법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장점과 공적, 그리고 그의 단점과 과오를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평가하고, 그의 삶을 통해 교훈을 배우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전문 역사가인 리처드 B. 프랭크는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맥아더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그의 삶을 통해 진짜 맥아더의 모습을 들여다본 뒤 그의 리더십과 그가 남긴 교훈을 이 책에 가감 없이 담았다. 이 책은 극과 극의 찬사와 비난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군인 맥아더와 인간 맥아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리고 그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을 도출해냈다. 맥아더 평전으로서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에는 그의 출생과 성장기부터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입학과 수석 졸업, 1차 세계대전 당시의 활약(7개의 은성표창과 2개의 수훈십자훈장 받음), 최연소 육군사관학교 교장(39세)과 최연소 육군참모총장(50세)에 임명되어 실시한 개혁, 첫 번째 결혼 실패, 필리핀 원수 시절의 활약, 안정을 되찾게 해준 두 번째 결혼,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군인 신분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얻는 데 두 차례 실패한 경험, 일본의 항복과 일본 점령 당시의 일본 개혁,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한국전쟁 참전(70세)과 해임, 그리고 1964년 사망할 때까지의 이야기와 맥아더에 대한 평가와 교훈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저자는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조사하고 그 진위를 밝혀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일례로 육군 이시이 시로 중장이 이끈 731부대가 무자비한 생체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귀중한 자료를 건네받는 조건으로 이시이가 전후 전범재판에서 무죄를 받게 해주겠다는 워싱턴과 이시이의 거래에 맥아더도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313쪽)을 밝히고, 또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맥아더가 레이테 만 상륙 장면 사진 촬영을 연출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당시 한 사진작가가 곧 유명해질 맥아더가 필리핀에 귀환하는 모습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은 것이라고 밝힘-231쪽 / 웨이크 섬 회담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탄 비행기와 맥아더가 탄 비행기가 누가 먼저 착륙할 것인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맥아더가 전날 밤 미리 도착해 다음날 아침 트루먼을 영접했다고 밝힘-334쪽)은 바로잡는 등 맥아더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공개하고 진실 여부를 밝힘으로써 이 책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이고 있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타고난 체질,
“미국의 미래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다”는 선견지명 가져
저자는 이 책에서 맥아더의 근본적인 특징으로 그의 뛰어난 지적 능력과 타고난 놀라운 체질을 들고 있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당면한 문제나 쟁점을 분석하는 도구로 사용했고, 늘 호기심에 자극을 받아 군 생활과 관련이 없는 분야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심도 깊은 지식은 그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 비군사적 업무를 처리할 때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지적 능력은 엄청난 난제를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인 자신감을 키우는 데도 큰 기여를 했고, 풍부한 지식은 언어 구사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지구에서 가장 능력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포함해 어떤 현진 고위급 지도자들보다 못한 점이 없다고 믿었다. 그의 오만과 자만심은 바로 이런 믿음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두 번째 태생적으로 놀라운 체질을 타고났다. 그는 그 어떤 동년배보다 정신적?신체적으로 젊음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식사와 음주를 적정한 수준으로 자제하고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지킴으로써 활력을 유지해나갔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맥아더가 미국의 미래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다는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아들에게 심어주었고, 맥아더는 자신의 경력에서 두 차례의 위대한 절정기를 극동에서 근무하는 동안 맞이했다. 군에 있는 동년배와 정계의 상관들 모두 유럽중심주의자였기 때문에 맥아더는 군 경력 내내 국가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주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거대 조직에서 그와 같은 비주류적인 사고는 일반적 통념을 시험하고 단련하는 역할을 한다.
또 인종 관계에 대한 맥아더의 입장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기본적으로 그는 백인이 아닌 사람이라고 해서 평등하지 않을 만큼 지적 혹은 도덕적 결함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필리핀과 일본, 한국의 지도자들을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대등한 존재로 대우했다. 그는 바탄 반도를 지키는 데 필수적인 식량을 필리핀인들로부터 무자비하게 징발하여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거부했고, 1945년 9월 일본 항복 조인식에서는 일본 대표단을 모욕하지 않았다.
또 그는 전술 항공력의 열렬한 추종자이기는 했지만, 공중 화력의 무제한적인 사용을 거부했으며 특히 도시에 대한 폭격을 혐오했다. 1941년 12월 일본군 공습에 의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도록 마닐라를 ‘비무장 도시’로 선언했다. 한국에서도 맥아더는 도시를 초토화시키려는 공군의 계획을 초기에는 거부했었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는 맥아더도 전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서 한 걸음 물러섰는데, 1946년 6월, 그는 일본 본에서 전투를 할 경우 완강하게 저항하는 일본군 방어병력에 대한 독가스 사용을 고려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범인 야마시타와 혼마의 사법 살인에 개입했다는 사실도 자신의 신념을 어긴 또 다른 사례이다. 끝으로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개입하자 그 전까지는 한국의 도시에 대규모 항공 화력을 사용하게 된다는 이유로 거부했던 공군의 도시 초토화 계획을 승인했다.
맥아더의 리더십 원칙: 적응성과 대담성
부하들의 경쟁심 부추겨 충성하게 만들고 칭찬과 아첨 적극 활용
독특한 그만의 복장 스타일과 상징주의의 활용은 또 다른 리더십 도구
군 지휘관이자 최고 관리자로서 맥아더는 놀라운 적응성을 보여주었다. 1차 세계대전 중 군 경력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자신의 미래를 코트 드 샤티용에 걸고 부하들 한 명이 제안한 작전 계획을 채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육군참모총장인 레너드 우드에게는 능수능란하게 언론을 다루고 공개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의 개인교사 역할을 한 핵심적인 부하 조지 케니와 다니엘 바비를 통해 항공전과 상륙전 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뒤늦게 윌리엄 F. 핼시 주니어가 제시한 길을 따라 ‘우회 전략’을 채택했다. 그의 전역에서 최고의 순간인 홀란디아 상륙작전은 맥아더가 아니라 그의 부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일본 점령을 위해 그가 따랐던 정책상의 뛰어난 청사진들은 워싱턴에서 기안한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엄청난 지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그것을 폄하하기 마련인데 맥아더는 그러지 않고 남의 생각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활용했다는 것이다.
맥아더의 또 다른 리더십 원칙으로 자주 언급되는 필수 자질은 대담성이다. 뉴기니 전역의 후반부와 레이테 작전, 특히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가 자신의 대담성을 보여주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맥아더는 필리핀과 파푸아에서 약 18개월에 걸쳐 힘들게 교훈을 얻을 때까지 진정한 대담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맥아더는 자신의 부대가 작전수행 능력 면에서 성숙한 경지에 도달하고 암호해독가들이 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부터 대담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대담성은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무모함으로 바뀌었다.
맥아더는 부하들을 판단하는 첫 번째 자질로 충성심을 꼽았다. 1941년부터 시작해 이후 한국에서 해임될 때까지 10년 동안 맥아더는 자신의 참모진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맥아더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충성심을 가장 중요한 자질로 강조함으로써 반드시 그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하고 그의 선견지명을 실현하려는 열정을 가진 소수의 인원을 거쳐서 모든 사항이 위로 전달되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로 정보의 질이나 양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자기 휘하에 있는 부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맥아더가 즐겨 사용한 방법은 부하들 사이에 경쟁관계를 조장하고 서로 싸움을 붙이는 것이었다. 군대 지휘관들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맥아더는 욕설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부하들에게 직접적인 질책을 가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그는 동기유발자로 칭찬 그리고 심지어는 아첨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과 상징주의의 활용은 맥아더가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사용한 또 다른 리더십 도구였다. 프랑스에서 전투 경력을 쌓는 동안, 맥아더는 전장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했다. 그는 철모보다 테를 뺀 정모를 더 즐겨 썼으며,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2미터가 넘는 긴 분홍색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무기를 거의 소지하지 않은 채 지팡이를 들고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은 모습은 참호전의 현실에 대한 저항정신을 보여주었다. 풀을 먹여 줄을 세운 제복, 광을 낸 단추, 연병장에 도열하는 훈련에 대한 그의 본능적 거부감은 그의 개방적 태도와 대담성을 암시한다. 2차 세계대전 중 그는 천박할 정도로 요란한 군복보다는 자신의 군모와 선글라스, 담뱃대, 그리고 최소한의 계급장을 제외하고 모든 장식을 뗀 채 목을 드러낸 단순한 카기색 근무복이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맥아더는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과 상징주의를 일본 항복 조인식과 일본 점령기에 또다시 사용한다. 일본 항복 조인식에서 그는 힘과 지배력의 상징과 모든 장병들의 민주주의적 참여,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야윈 조너선 웨인라리트 중장과 아서 E. 퍼시벌 중장의 등장, 높은 이상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적에 대한 모욕은 철저하게 배격한 강렬한 연설을 멋지게 혼합했다. 그 후 일본 점령 당시 일황과 찍은 사진은 수백 만의 단어보다 더 강력하게 “내가 최고 권력자이지만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 사례이다. 또 맥아더가 당시 수많은 정치적 암살사건이 벌어지는 도쿄에서 경호도 받지 않은 채 하루 두 번씩 사무실을 오감으로써 일본인을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불복종 사례로 민군관계에 대한 중요한 교훈 남겨
맥아더는 민간인 상관들, 즉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 지도자들과 다양한 문제를 두고 충돌했다. 하지만 충돌한 그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단순히 어떤 문제에 대해 논한다고 해서 그것이 불복종은 아니며, 군대 장교들이 강력하게 조언을 제시한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혹평하는 문화를 만든다면 그것은 엄청난 실수이다.
하지만 한국 문제를 두고 맥아더가 트루먼에게 도전한 것은 단지 허심탄회하게 개인적 견해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맥아더는 너무나 분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국가 정책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해임을 당한 것이며, 그것은 적절한 조치였다.
맥아더가 군대나 민간인 상관의 지시에 따르다가 그 같은 경향을 보인 것은 1930년대 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한 달도 안 되어서 루스벨트 대통령과 스팀슨 육군장관, 마셜 육군참모총장은 맥아더의 터무니없는 의사 표현, 특히 해군과 국가 전력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그의 편집증적인 언성 높이기에 질색했다. 오직 스킴슨 육군장관만이 복종을 강요하는 행동을 직접 취했을 뿐,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고위 지도자들이 맥아더를 억제하지 못한 사례는 오늘날까지도 민군관계에 대한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맥아더는 가장 복잡한 인물”
“그에 대해 당신이 들은 최악의 말과 최고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맥아더를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맥아더가 가장 복잡한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군 지휘관 토머스 블레이미는 맥아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평가했다.
“그에 대해 당신이 들은 최악의 말과 최고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저자는 맥아더에 대한 극과 극의 엇갈린 평가에서 완전무결한 하나의 답을 인정하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 복잡했다고 말한다. 그의 위대한 자질과 업적은 모두 사실이다. 그의 엄청난 결점과 실패 역시 사실이다. 공적과 책임의 대부분은 맥아더 본인에게 있지만, 그의 민간 및 군부 상관들도 맥아더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 맥아더는 자신의 경력에서 세 차례 최고 절정기를 맞는 동안 루스벨트를 제외하고 20세기 미국 인물들 중에서 누구보다 리더십에 대한 많은 교훈을 남긴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은 군인 맥아더, 인간 맥아더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리처드 B. 프랭크
1947년 미국 캔자스 주에서 태어났다. 태평양전쟁 전문 역사가로 『과달카날: 기념비적 전투에 대한 최종 해석(Guadalcanal: The Definitive Account of the Landmark Battle)』과 『몰락: 일본 제국의 종말(Downfall: The End of the Imperial Japanese Empire)』을 썼으며, 제너럴 윌리엄 그린 상(General William Greene Award)과 해리 S. 트루먼 상(Harry S. Truman Award)을 수상했다. 미국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Annandale)에 살고 있다.
저자 : 김홍래
한양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베어 & 드래곤』과 『레인보우 식스』, ‘넷포스’ 시리즈, 『당신네들의 조국』, 『나는 하루를 살아도 사자로 살고 싶다』, ‘세계의 전쟁’ 시리즈 중 『인천 1950』, 『워털루 1815』, 『미드웨이 1942』, 『진주만 1941』, 『레이테만 1944』를 비롯해 『로마 전쟁』, 『퍼시픽』, 『모든 것의 가격』, 『넥스트 디케이드』, 『니미츠』, 『첩보의 기술』, 『아틀라스 전차전』, 『2차 대전 독일의 비밀무기』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감사의 글
추천의 글
들어가는 글
제1장 성장기
거의 모든 에이스 카드를 쥐고 태어나다 |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다 | 아버지의 유산 | 참모총장 레너드 우드로부터 큰 영향을 받다 | ‘무지개’ 사단의 참모장이 되다: 조역에서 벗어나 권력의 핵심부로 | 참호 습격작전과 은성표창 | 전장에서도 돋보이게 만든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 | “용감한 자들 중에서 가장 용감한 자” | 생미엘 전투 | 뫼즈-아르곤 공세 | 최연소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되다 |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다
제2장 육군참모총장
육군참모총장 맥아더가 실시한 육군 개혁 | 아이젠하워를 발굴하다 | 보너스 군대 진압 사건 | 보너스 군대 진압 사건으로 인한 민주당 정부의 출범 | 또 다른 적과의 싸움
제3장 중심부에서 변방 필리핀으로
필리핀을 두고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 | 필리핀 육군원수가 되다 | 안정을 되찾게 해준 두 번째 결혼 | 맥아더의 참모진 | 워싱턴 권력투쟁의 희생자, 전쟁으로 부활하다
제4장 필리핀 탈출
재앙과도 같은 태평양 전쟁의 서막 | 바탄 반도로 철수하라 | 바탄 전투 | 필리핀을 구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다 | 필리핀 탈출 :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 필리핀 전역을 둘러싼 맥아더에 대한 평가
제5장 비싼 대가
슈퍼 영웅의 탄생 | 남서태평양지역 최고사령관이 되다 | 태평양의 모든 작전에 대한 전반적 통제권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싸움 |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값비싼 승리
제6장 매개변수
아무것도 없는 남서태평양전구의 열악한 환경과의 싸움 | “내 진짜 적은 워싱턴에 있다” |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달성하다” | 맥아더의 부하들 | 맥아더의 뜻밖의 협력자: 어니스트 킹 제독과 영국
제7장 견습 기간
비스마르크 해전 전과 과장을 둘러싼 맥아더와 해군의 공방 | 카트휠 작전 :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념비적 사건 | 나잡 작전 : 맥아더의 성공적인 용병술이 빛을 발하다 | 분노한 자연 | 핀슈하펜과 시오 점령 | 고립된 일본군의 눈물겨운 내륙 후퇴
제8장 돌파구
울트라를 통해 ‘전쟁의 안개’가 걷히다 | 홀란디아 상륙작전 : 맥아더의 용병술이 최고로 발휘된 순간 | 장기전이 된 비아크 섬 전투 | 윌러비의 왜곡된 정보 평가 | 맥아더 클럽 : 맥아더를 대통령으로
제9장 귀환과 속죄
“다음 목표는 레이테이다” | “나는 돌아왔다”: 맥아더의 극적인 필리핀 귀환 | 루손 섬 전투 | 눈물겨운 마닐라 해방 | 부역 혐의자 처리 과정에서 안 좋은 선례를 남기다
제10장 일본의 항복
필리핀 전역에 대한 맥아더의 논리 | 보르네오 전역과 불필요한 작전들 | 일본 침공의 첫 번째 단계인 올림픽 작전을 둘러싼 의견 충돌 | 극적인 장엄함, 심오한 상징, 관대함이 결합된 일본 항복 조인식 | 맥아더와 니미츠가 지휘한 지상 전역에서 발생한 태평양 전투사상자
제11장 카키색 군복 차림의 쇼군
일본 점령 당시 맥아더의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업적 | 극동국제군사재판: A급 일본 전쟁범죄 혐의자 재판 | 일본 점령의 두 가지 우선 과제: 비군사화와 송환 | 맥아더의 일본 개혁
제12장 승리와 도전
맥아더의 일본 경제개혁: 토지개혁과 노동운동, 거대 재벌 해체 | 일본 내 좌익 반체제 혹은 ‘반민주주의’ 조직에 대한 공직 추방 | 일본 점령 개혁의 모순과 오점 | 지휘자 맥아더의 강점 : 표현 방식과 상징화
제13장 한국에서 거둔 승리
불복종 낙인에도 불구하고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되다 | 5,000대 1의 도박, 인천상륙작전 | 인천상륙작전 이후 맥아더의 오판
제14장 한국에서 당한 패배
워싱턴과 맥아더의 오판 | 유엔군 총사령관 해임을 향한 카운트다운 | 맥아더의 해임과 거대한 후폭풍
제15장 맥아더에 대한 평가
진짜 맥아더의 모습 | 맥아더의 교훈 | 맥아더의 리더십 | 민군관계에 대한 교훈 | 맥아더의 눈으로 본 오늘날의 문제 | “그에 대해 당신이 들은 최악의 말과 최고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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