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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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은경
출판사항케포이북스, 발행일:2017/05/15
형태사항p.291 A5판:21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4519586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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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문학이라는 이름의 ‘백일몽’

자해와 자학, 자폐로 점철된 기억의 서사 뒤에 이은 이러한 갑작스런 상처, 혹은 삶의 긍정은 얼핏 보면 다분히 감상적이고 억지스러운 결말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첫 장에서부터 두드러지고 있는 유폐된 자아의 또 다른 진지한 목소리는, 이 작품이 상처와 고통, 삶을 긍정하기 위해 무엇을 질문해왔고, 그 질문에 얼마나 성실하게 천착해왔는지를 보여준다. (…) 암소를 팔러갔던 한 사내가 얻은 ‘말하는 냄비’의 이야기는 ‘말을 한다는 것이 그토록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는 담보물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성장소설인 동시에, 한편에서는 소설의 서사성에 대해 성찰을 시도하는 메타픽션인 것이다. 이 메타픽션의 작가는 답한다. ‘상처는 이야기를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는 상처를 환기시키는’ 무한한 순환 속에 망각과 치유와 구원이 실현된다고. 상처에 대한, 삶에 대한 긍정은 이러한 기억과 서사의 힘에 의해서이다.
―본문 중에서

프로이트에 의하면 문학은 일종의 백일몽이다. 한낮에 꾸는 꿈, ‘백일몽’이라는 이 언급에는 꿈은 근원적으로 ‘소망충족’이라는 프로이트의 원칙과, 백일몽은 ‘헛된 공상’이지만 꿈보다는 훨씬 의식적인 작업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이, 그러나 항상 행복한 판타지는 아니다. 꿈 또한 다양한 검열 기제를 거쳐서 표출되는, 우리도 모르는 어떤 무의식적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망충족의 무대인 꿈은 때로 악몽일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작가의 의식적인 몽상인 ‘문학작품’ 또한 행복한 판타지일 수만은 없다. 근원적으로 소망충족인 예술작품이 행복한 몽상과 악몽, 혹은 로맨틱 코미디와 잔혹 스릴러로 갈라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천일야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부와 마신」이라는 장에서 한 어부가 헛된 고기잡이 끝에 항아리를 얻는다. 그곳에서 튀어나온 ‘마신’은 이렇게 말한다. ‘단지에 갇힌 뒤 백년, 나는 나를 구해주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리라 맹세했다. 그러나 백년이 지나고 삼백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나를 꺼내주는 자가 없어서, 나는 결심을 고쳤다. 앞으로 나를 꺼내주는 자는, 그 자리에서 죽일 것이다.’

고통에 갇힌 자의 첫 간절한 기도는, 세상의 선의와 신의 존재와 자비를 믿는다. 그리고 그의 맹세는 그 선의와 자비를 닮는다. 그러나 그의 소망, 혹은 사랑이 절대 불가능한 것이고, 신의 존재와 선의 따위란 없다는 참혹함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면, 그의 맹세는 그 참혹과 비정을 닮는다. 맹목적 사랑이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이었다가, 부정을 거치면서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로 바뀌는 불가해한 전복도 이러한 이치일 것이다.

시와 소설에서 내가 읽은 것은 『천일야화』에 나오는 저 마신의 것이다. ‘제발, 나를 꺼내주세요’라는 간절한 기도이거나 혹은 ‘죽일 것이다’라는 악에 찬 비명이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학은 소망을 드러내는 판타지이고 그 판타지는 역설적으로 작가가 딛고 있는 고통스런 현실을 드러낸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처럼 슬픈.

성냥 하나를 켤 때마다 소녀는 따뜻한 난로와 맛있는 음식, 크리스마스 트리와 할머니를 보고, 그 백일몽을 좇아 하늘나라로 간다. 이 판타지는 결국 추운 겨울거리에서 얼어죽은 성냥팔이 소녀의 싸늘한 시체 위에 있을 때, 더욱 강렬해진다. 그러나 때론 현실의 비정함 속에서 행복한 판타지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거짓’이라는 절망이 거듭되면 그렇다. 그 속에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한 장면같은 일이 백일몽으로 들어온다. 라이타를 파는 소녀는 라이타를 사지 않는 사람에게 권총을 겨누는, 그런 위악적인 복수 혹은 악몽.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는 문학 작품에서 저자는 성냥팔이 소녀와 같은 간절한 소망, 혹은 마신의 저주를 담아낸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시선은 배수아의 해체주의에 깃든 깊은 슬픔을, 천명관의 SF에서 현실의 고통을, 오한기의 비루한 영웅에서 상실된 판타지를, 방현석의 소설에서 세월호에 사로잡힌 국민적 트라우마를 세심하게 짚어낸다.

‘기도’이거나 ‘비명’

이 책은 본격적인 평론이 아니므로, 전문적이고 미학적인 비평적 성찰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쉽고 친근한 저자의 글은 한국문학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문학작품을 읽고 공감하는 일이 개인적 삶과 공동체 사회에서 필수적인 이유를 이렇게 언급한다. “리처드 로티는 미래 사회의 공적 영역이 어떤 유형의 정의나 미적 판단을 보편적 가치로 설정하지 않는 ‘가치중립적이고 탈이념적’이어야 하고 더불어 인간의 연대는 이성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능력’에 의해 오히려 가능하다고 본다.” 4차산업혁명, 빅데이터, 지구화로 급변하고 있는 시대, 우리가 문화콘텐츠의 소비가 아니라 콘텐츠의 기미와 문장의 맥락들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저자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능력’의 함양에 두고 있다. 우리는 계몽 이성의 질주에 의해 끌려가고 있지만, 그 속도에서 빚어지는 낙차와 갈등의 해결은 상상하고 공감하는 우리의 감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가 소개

저자 : 정은경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3년 『세계일보』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다. 평론집으로 『지도의 암실』 『디아스포라 문학』 『밖으로부터의 고백―디아스포라로 읽는 세계문학』이 있으며, 연구서로 『한국 근대소설에 나타난 악의 표상 연구』가 있다. 현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 차

책머리에
더 기울어진 방으로 - 방현석, 『세월』
반계몽과 키치의 사도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유하론
갑을의 윤리감각 - 장강명, 「알바생 자르기」
‘21세기 자본’에 새겨진 조감도 - 천명관, 「퇴근」
울지마, 인조엄마 - 윤이형, 「대니」
꽃을 해부하다 - 부희령, 「꽃」
러브레터를 쓰는 학자 - 송하춘, 「마적을 꿈꾸다 - 김유정 평설」
서부극 연가 - 오한기,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괴물이 되어버린 서사, 진실이 되어버린 허구 - 최인석, 『투기꾼들을 위한 멤버십 트레이닝』
다큐의 힘과 소설적 감동 - 이현수, 『나흘』
윤리에서 에로스로 - 정지아, 『숲의 대화』
무덤에서의 웨딩마치 - 이승우, 「목련공원」
포스트모던 혹은 히키코모리적 민주주의’의 가능성 - 아즈마 히로키, 『일반의지 2.0.루소, 프로이트, 구글』
인간이라는 출구 혹은 굴레 - 백정승, 「극중」
정념과 이념의 레가토 - 권여선, 『레가토』
시뮬라크르의 진실과 짝퉁 이소룡의 순정 - 천명관,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백과전서파의 이데올로기와 ‘라이언 일병’의 행방 - 조남현, 『한국현대소설사』
집 없는 도시인들을 위한 애가 - 배수아, 『서울의 낮은 언덕들』
오렌지족의 상처에 대한 보고서 - 노희준, 『오렌지 리퍼블릭』
너울의 문장들 - 송하춘 작품론
토끼, 인간을 위해 울다 - 김남일, 『천재토끼 차상문』
달에 새긴 문자 - 구효서, 「사자월(獅子月)」
결빙을 견디는 방법 - 유시연,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황정은,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거리에서 - 김남일, 「오생, 아무도 가지 않을 길을 가다; 오자외전(誤子外傳)」
불량한 노래의 진정성 - 황정산 시론
사건이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나요 - 박형서, 박민규, 하성란의 소설
어떻게 ‘비’인간적인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 송영, 『선생과 황태자』
틈새, 그 영원한 불화의 세계 - 권여선, 『푸르른 틈새』
소음의 주저흔들 - 박금산, 『생일선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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