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말의 바다’에 귀를 기울인다
‘물질적인 언어의 실천가’ 소세키
‘소세키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의 바다의 수면에, 언어를 베개 삼고 드러누워… 그 주변에 소란스럽게 웅성대는 말들을 귀 기울여 경청하는 것”으로 “소세키에게 속하지 않으며, 읽는 이에게도 속하지 않는, 비인칭非人稱의 운동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문호’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기존의 신화적 이미지를 거부하고 그의 작품에 숨겨지고 매몰된 의미 따위는 없다고 선언하면서, 그것의 ‘말들의 운동’에 주목함으로써 소세키를 “지극히 물질적인 언어의 실천가”로 포착하고 있다.
방법적인 ‘기억상실’의 시도
저자는 이 책의 서장 “읽는다는 것과 불의의 일격”에서 이 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아닌가’에 대해 말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 자신의 초상을 해독하는 비평도 아니며, 소세키가 지어낸 이야기에서 무언가 상징성을 읽어내려는 시도도 아니다(그런 탓에 정신분석적인 접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저자는 소세키라고 생각되는 그림자와의 조우를 회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를 통해 이중의 의미에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소세키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기억을 잊어버릴 것, 그리고 소세키가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잊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 것. 그리하여 언어 의외의 어떤 것도 시야로부터 일소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텍스트 자체이며 소세키의 여러 작품에서 서로 연관을 만들어가는 언어의 자장磁場이다. 이것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임시적으로 ‘소세키적 존재’와 ‘소세키적 작품’이라는 개념을 설정한다. 소세키적 존재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세키 그 사람이 아니라 여러 작품을 통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소세키적’인 요소를 우연히 갖게 된 어떤 인간을 말한다. 그리고 소세키적 작품이란 소세키의 각 작품에 있어서의 이야기나 상징 같은 것이 아니라 언어들의 조합으로서 소세키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을 말한다. 이 문제설정의 수법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핵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핵심에 더해 작품에서 반복해서 드러나는 모티브를 추출한다는 테마비평적인 시도가 더해지면서 이 책은 자신만의 독특한 비평적 ‘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사건으로서의 ‘드러눕는 것’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나쓰메 소세키의 다양한 작품들을 횡단하면서 여러 모티브나 요소를 추출해내고 그것을 각 장으로 나누어서 논하고 있는 작가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보통의 작가론과는 다른 점은 그가 추출해내는 모티브가 흔히 간과하기 쉬운 대목들이라는 점이다. 가령 제1장은 “드러눕는 소세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소세키가 소설의 인물들에게 자주 드러눕는 자세를 취하게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자세는 그 인물에게 있어 “소중한 타자를 불러들이는 것”이 되고 “그 때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서, 조우하는 말에 의해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것”이 소세키적 작품의 구조라는 지적에 독자는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저자는 소세키의 작품은 “드러눕는다는 자세를 지키는 인간에게 무엇이 가능할지를 묻는 생생한 시도”로 볼 수 있으며 “그 시도에 있어서 소세키의 문학은 소세키의 ‘사상’ 따위를 까마득히 넘어서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추어’로서의 비평가
1978년에 출간된 이 책은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적 ‘모험’의 출발점에 위치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일본에서 ‘비평의 시대’의 이정표 역할을 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저자는 1977년 어느 잡지의 청탁으로 소세키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이 이 책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프랑스문학 연구자로 일본문학의 ‘전문가’를 자처하기 힘든 처지임을 전제하는 상황이었으며 심지어 그 자신의 말에 따르자면 “소세키를 논하는 것에 깊은 자기 생각을 품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문가성, 즉 아마추어적인 측면은 하지만 소세키를 말하는 데 있어 장애가 되기는커녕 소세키의 텍스트와 쓸데없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으로 보인다.
흔히 한 작가의 작품군을 읽을 때 시간적으로 축적되어 가는 순서에 따라 읽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이것은 그 작가를 수직적인 세계에 놓고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작가를 그것의 성숙에 이르는 도정으로 파악한다는 것으로 이것은 일정한 역사성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스미는 소세키의 일군의 작품들을 가로방향으로 늘어서 있는 세계, 즉 수평적 세계로 파악한다. 이를테면 「행인」이 「마음」 바로 이전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은 하등 고려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그 두 작품에서 반복되는 모티브가 어떤 것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훨씬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거문고의 소리를 듣게 되면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거나 비가 내리면 주인공이 여성과 함께 어딘가에 갇히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세키를 봄으로써 우리는 인물들의 손에서 “언제 주사위가 떨어질까 하는 유예상태를 견디는 말들이 엮어내는, 서스펜스 풍부한 이야기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이처럼 나쓰메 소세키의 세계를 불안정성이 감도는 수평적인 세계로 파악함으로써 오늘날 비평적 ‘고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의미의 해체를 통한 쾌락
하스미 시게히코는 1960년대 후반부터 롤랑 바르트, 미셀 푸코, 질 들뢰즈 등의 저작을 일본에 소개한 저명한 프랑스문학자이자 동경대 총장으로 재직하기도 한 거물지식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화려한 지적 배경과는 달리 철저히 광적이고 깊은 열정을 자랑하는 영화비평가로서의 얼굴도 가지고 있다. 그간 국내에는『영화의 맨살』,『감독 오즈 야스지로』등의 책을 통해 그의 영화에 대한 글들이 먼저 소개된 바가 있다. 하스미 시게히코 특유의 대단히 호흡이 길고 도발적이며 의미작용이 거의 상실될 지경까지 몰아붙이는 과감한 문체는 독자들에게 묘한 긴장감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선사하기도 했다.
『나쓰메 소세키론』은 문학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초기의 대표작이면서 일본에서의 ‘나쓰메 소세키론’의 오래된 계보에서 있어서 가장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그 자신 뛰어난 소세키론을 발표하기도 했던 가라타니 고진은 이 책을 일컬어 “이처럼 의미의 끊임없는 해체를 통해 그것이 쾌락으로 이어지는 비평은 읽은 적이 없다. 오히려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것이 주저해질 정도이다.”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의 발간을 통해 ‘표층’의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의 세계와 쾌락에 찬 조우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작가 소개
저 : 하스미 시게히코
Hasumi Shigehiko,はすみ しげひこ,蓮實 重彦
일본의 문학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로 1936년 동경에서 태어나 동경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대학에서 플로베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경대 교수였고 1997년에서 2001년까지 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이면서 한편으로는 압도적인 영화체험을 자랑하는 씨네필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표층비평선언』(1979), 『반反일본어론』(1977), 『나츠메 소세키론』(1978), 『‘마담 보바리’론』(2014) 등이 있으며 영화 분야에 『영화의 신화학』(1979), 『영상의 시학』(1979), 『감독 오즈 야스지로』(1983), 『고다르 혁명』(2005) 등이 있다.
역 : 박창학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의 진명여자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다가 1990년대 중반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후 10년간 그곳에 머물며,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서 영화 이론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룹 '페이퍼모드' 멤버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EBS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음악기행'의 주말 DJ를 맡고 있고, 청소년 문학 계간지 『풋,』에 '제3세계 음악여행'을 연재하고 있다.
그의 꿈은 하루 종일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버스 운전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작은 공방에서 만년필을 만들거나 고장 난 카메라를 수리하는 인생을 동경한 것도 결국 그것이 음악을 들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인 윤상을 위해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고, 그 후 작사가 또는 음악 프로듀서로서 김동률, 조원선, 정재일, 박효신, 강수지, 보아, haihm, Tim 등 많은 가수들의 앨범에 참여했다.
멜로디에 글을 입히는 작업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그는, 주로 남미 음악에 관한 화제로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하고 있다. 더불어 '노트르담 드 파리' '돈 주앙' 등 뮤지컬 노래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도 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나루세 미키오』(공역) 등이 있다.
목 차
-1장 드러눕는 소세키
-2장 거울과 반복
-3장 보고자 소세키
-4장 가까움의 유혹
-5장 절단의 흔적과 멂
-6장 명암의 그늘
-7장 비와 조우의 징조
-8장 젖은 풍경
-9장 종縱의 구도
-10장 「산시로」를 읽는다
-종장 소세키적 ‘작품’
-단행본 후기
-신판 후기
-해설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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