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책에서는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일생을 네 시기로 구분하고, 시기별로 그가 올린 상소문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뽑았다. 이 글들을 통해 항상 국가의 공의를 염두했던 선비로서의 마음가짐과 왕가를 보익하고 충성을 다하려 했던 올곧은 신하로서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제1장 젊은 날의 초상
송준길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을 많이 받았다. 외모가 수려했고, 문장이나 글씨로도 이미 젊은 시절부터 이름이 있었다. 18세에 우복 정경세의 사위가 되었는데, 정경세가 그를 매우 공경히 대우하며 어려워할 정도였다 한다. 송준길은 16세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다시 22세에 아버지 송이창마저 잃었다. 그런 그에게 형제 같은 벗 이엄의 죽음, 장인 정경세의 죽음, 그리고 연이은 여덟 살배기 어린 딸의 죽음은 일찍부터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균관에서 유학할 때 기세를 부리며 멋대로 구는 귀족 자제 몇몇이 있었는데, 송준길을 만나면 겉으로는 언행을 조심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를 꺼렸다. 이해창(李海昌)이 송준길에게 조용히 이르기를 “내가 보기에 그대는 과거를 보아 녹이나 먹을 평범한 사람이 아닐세.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래 머물러 남의 미움을 사는가.”라고 하니, 송준길이 즉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젊은 시절에 관한 기록들」중에서
『동춘당집』에는 송준길이 30세 이전에 쓴 작품이 많지 않다. 송준길의 장년과 노년의 작품을 읽기에 앞서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의 모습을 기록한 글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려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제2장 자신의 뜻을 지킨 ‘정(正)’
이 기간에 송준길은 익위사 시직, 예산 현감, 한성부 판관 등에 제수되었지만 직책에 나아가지 않았다. 또 여러 차례 사헌부 지평에 제수되었는데, 번번이 사직을 청하였다. 그러던 중 소현세자가 죽자, 곧바로 상소하여 원자의 자리를 서둘러 정하고 청음 김상헌을 스승으로 삼을 것을 아뢰었다. 그러나 이미 효종을 세자로 정할 마음을 굳힌 인조는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고, 이후로 효종이 즉위할 때까지 어떠한 벼슬에도 제수되지 못한다.
“어제 한 일을 오늘 고치기 어려워하고, 아침에 그 행실을 후회하고서 저녁이면 또다시 하고 있다.”
율곡 선생의 이 말씀은 참으로 나를 두고 하신 것이구나. 기질이 경박하고 나약한 데다 공부가 독실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리라. 오늘부터 고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써서 스승으로 삼는다. 아침에 일어나 느낀 점이 있어 쓴다.
-「서른 살의 다짐을 달력에 쓰다[乙亥正月初三日曆書題辭]」중에서
“어제 한 일을 오늘 고치기 어려워하고, 아침에 그 행실을 후회하고서 저녁이면 또다시 하고 있다.”라는 율곡의 말씀은 『격몽요결(擊蒙要訣)』 「 혁구습(革舊習)」 장에 나오는 구절로, 잘못된 낡은 습관이 세운 뜻을 견고하게 하지 못하고 행실도 독실하지 못하게 하는 주된 이유라고 보고 이를 통렬히 끊어 내야 함을 강조한 글이다. 평소 율곡을 깊이 흠모하고 그 글을 자세히 읽은 터라, 자신을 반성하고 새롭게 함에 율곡의 글귀를 떠올리고 아울러 손수 적어 벽에 걸어두기까지 한다.
제3장 군주와 만남의 ‘융(隆)’
이때는 효종이 재위하던 시기로, 송준길은 효종의 신임을 받아 시강원 진선을 시작으로 대사헌을 거쳐 병조 판서 및 우참찬에까지 오른다. 관직에 제수될 때마다 사직을 청했지만 효종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간혹 부득이하게 사직을 허락하더라도 곧 새로운 관직으로 송준길을 불러들였다. 이 기간에 송준길은 경연에 참여하여 효종에게 『심경』을 진강하고 아울러 임금으로서의 덕을 진작하려 노력하였으나, 효종의 잦은 병으로 그의 기대만큼 내실 있게 지속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사위 나명좌가 젊은 나이에 죽어 크게 상심하였고, 부인 정씨도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었다.
하루는 우리 저하께서 서연에서 신 준길에게 “선현의 격언을 뽑아서 써 오라. 그것을 병풍으로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경계하고 반성하는 바탕으로 삼겠다.”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신은 그 명을 받고 송구하고 부끄러웠으나 감히 사양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경히 물러 나와 명백하고 간이(簡易)한 몇 조항을 뽑았습니다. 대체로 입지(立志), 궁리(窮理), 천덕(天德), 왕도(王道)의 요지를 뽑고, 선유 신 이황과 신 이이의 도통설(道統說)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동궁께 선현들의 격언 병풍을 바치며[寫進春宮先賢格言屛幅跋]」중에서
이 병풍의 글은 당시 세자였던 현종이 송준길에게 자신이 아침저녁으로 늘 보면서 반성할 수 있는 글을 부탁하여 가려 뽑은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비록 송준길의 저작이 아니지만, 송준길이 공부함에 무엇을 중시하였는지, 또 오래도록 두 대에 걸친 군왕의 사부로서 군왕의 수신과 치국에 있어서 무엇을 중시하였는지 그 일단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함께 소개한다.
제4장 왕가를 보익한 ‘공(功)’
현종이 즉위한 후 효종조에 이어 여러 차례 대사헌에 임명된다. 현종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송준길을 원자의 보양관에 임명한다. 왕가 후계의 교육을 중시하였던 송준길은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서울에 머물며 임금과 원자에게 진강하기를 힘쓴다. 당시 진강에 참여한 사람들은 강학하는 송준길의 단정한 모습과 청아한 음성에 경도되어 모두 ‘신선강관(神仙講官)’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병세가 점점 깊어진 데다가 무고(誣告)까지 당하자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다.
신은 감히 모르겠습니다마는, 전하께서 수년 사이에 깊숙한 궁중에서 한가로이 지내실 때와 마음으로 사물을 응대하는 자리에서 과연 경계하고 반성하여 지성으로 하늘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의 중단도 없으셨는지요. 이는 전하께서 스스로 알아서 스스로 반성하셔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재이는 아마 하늘이 전하를 놀라게 하여 어려움을 통해 완성시키기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별유로 부르심에 품은 생각을 진달하고 아울러 직명을 사양하는 상소
[因別諭宣召具陳所懷兼辭職名疏]」중에서
나라에 여러 해 동안 흉년이 지속되고 재변이 자주 발생하는 원인을 임금이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데서 찾는 것은 유가적 정치 철학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송준길은 임금의 마음을 다스리고 덕을 증진시키는 방법으로 선조의 예를 들며 경연을 지속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그가 오랜 기간 견지해 온 핵심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5장 일생을 바친 ‘충(忠)’
1672년은 송준길 생애의 마지막 해이다. 1월에 꿈속에서 퇴계를 만나 깊은 감회를 느꼈는데, 이 꿈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견이었을 것이다. 4월, 현종의 부름에 상소를 올려 사양하고 소인이 임금을 현혹하는 폐해에 대해 진달하였지만 아무런 비답도 받지 못했다. 11월에 병세가 위독해지자 송시열이 찾아와 문병하였다. 김수항이 상소해 효종조에 우대한 현신을 버려둔 것을 질책하자 현종이 어의를 보냈지만 송준길은 이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이었고, 다음 날 동춘당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모든 이가 현인의 죽음을 애통해하였다.
전하의 성심(誠心)과 공경이 날로 높아지고 학문이 날로 진보되신다면, 모든 신하 중에 누구는 현명하고 누구는 현명하지 못하며, 누구는 충성스럽고 누구는 충성스럽지 못하며, 누구는 정직하고 누구는 정직하지 못한지가 반드시 모두 성상의 감식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 잘못 보고서 등용할 리가 있겠습니까.
-「유언처럼 남긴 올리지 못한 상소문[遺疏]」중에서
손자 송병문이 밝혔듯이, 송준길의 마지막 상소는 대략 임종 직전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소를 올려 달라는 부탁을 남기지 않아 임종 당시에는 그 소재를 모르다가, 2년 후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고심 끝에 임의로 이 유소를 올렸으나, 이에 대해 현종은 아무런 비답도 내리지 않았다.
작가 소개
저 : 송준길
宋浚吉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송준길은 당대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뒤를 이어 예학(禮學)의 종장(宗匠) 으로 추대되었다. 김장생과 김집의 예제(禮制) 정비 사업에 함께 참여하여 『상례비요(喪禮備要)』와 『가례집람(家禮輯覽)』을 완성함으로써 조선 예학의 이론 체계를 완비하였다. 또한 왕가 후계의 교육을 중시하여 임금과 원자에게 진강하기를 힘썼다.
평역 : 이라나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와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아시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에서 한문교육과정을 마쳤다. 번역서로 『일성록』, 『월정집』, 『낙전당집』, 『용주유고』, 『동강유집』 등이 있다.
역 : 정태현
鄭太鉉
지산(止山) 임성무(林聖武) 선생과 봉서(鳳西) 오우선(吳禹善) 선생에게 사사(師事)하였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명예한학교수이다. 번역서로 『춘추좌씨전』, 『당송팔대가문초 한유』, 『동춘당집』, 『한수재집』, 『고봉집』 등이 있다.
목 차
한국고전선집을 펴내며
송준길은 누구인가
제1장 젊은 날의 초상
젊은 시절에 관한 기록들
왕래리 옛 관사 벽에 쓰여 있는 이엄의 시 뒤에 쓰다
우복 정 선생께 올리는 제문
어린 딸의 무덤에
제2장 자신의 뜻을 지킨 ‘정正’
서른 살의 다짐을 달력에 쓰다
학문의 원칙과 자세
공부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제자에게
귀양 가는 이를 위로하며
유배지의 벗이 책을 구한다기에
유배지에서 올바르게 처신하길
유배지의 벗에게 전하는 소식
사직하는 사정을 아뢰고 아울러 품고 있는 생각을 진달하는 상소
장인 정경세의 문집을 정리하려면
제3장 군주와 만남의 ‘융隆’
간언을 구하는 임금의 하교에 답하고 아울러 사헌부 집의를 사직하는 상소
과거에 급제한 동창생을 축하하며
사위 나명좌에게 고하는 제문
과부 딸, 나씨의 며느리에게 고하는 제문
『주문작해』 발문
내 집의 기문(記文)을 부탁하며
아내의 상에 보여 주신 후의에 감사하며
세상 떠난 조석윤의 초상을 염려하며
동부승지를 사직하는 상소
사직 상소문의 두 글자에 대하여
양복일에 경계를 진달하는 상소
임금의 스승으로서
임금이 물으시기에 답변을 올렸으니
임금의 뜻을 전하며
조정에 나오기를 재촉하며
동궁께 선현들의 격언 병풍을 바치며
제4장 왕가를 보익한 ‘공功’
보양관을 사양하는 상소
진언을 구하는 별유에 응대하고 이어 해직을 청하는 상소
원자와의 상견례
원자를 가르쳐 보니
집으로 돌아와서 상소가 걱정되어
원자의 공부는 어떠한가
서울 소식이 궁금해서
서울 소식을 듣고서
부친의 묘지명을 써서 보내네
『심경』을 임금께 강의하느라
명정에는 추증된 관직명을 써야 하네
『어록해』 발문
별유로 부르심에 품은 생각을 진달하고 아울러 직명을 사양하는 상소
죄를 청하는 상소
신녕현 환벽정 중수기
제5장 일생을 바친 ‘충忠’
퇴계 선생을 꿈속에서 뵈옵고
『삼절유고』 발문
사람을 아끼고 기른다는 것은
유언처럼 남긴 올리지 못한 상소문
부록
1. 아들과 손자에게 보낸 편지
2. 동춘당 송준길을 추억하며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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