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윤형두의 수필에서는 짭조름한 미역 냄새가 난다. 해조음(海潮音)이 들린다. 그의 수필은 아담한 수족관(水族館)이다. ‘밀쨍이, 볼락, 놀래미, 각시고기’들이 헤엄치는 그의 바다에선 언제나 ‘갈뫼봉’이 보이고, ‘물이랑’을 스치는 ‘하늬바람’이 불고, ‘아기섬’쪽에 ‘가오리연’이 ‘하느작거린다’. 그의 바다는 해동(海童)들의 놀이터요, 교실이다. 그의 바다는 드뷔시의 관념적인 바다가 아니다. 오히려 벤자민 브리튼의 4개의 간주곡 같은 바다다. 생활의 바다다. 그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준 바다, 참을성도 노여움도 가르쳐준 그런 바다다. (김태한, <윤형두의 수필세계>, 1-319).”
윤형두 작가는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며 하늘과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곤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과 허망함, 그리고 좌절과 갈등을 되새김질한다. 이 가을의 사나이는 장년기 때부터 유난히 흰 머리칼을 갈대처럼 바람에 휘날리며 차마 못다 한 한을 찾고 또 찾아 우리 모두에게 위안거리를 제공해준다.
윤형두의 수필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의 회고담부터 사회문제를 거쳐 세계여행과 각종 진기한 역사문화탐방과 출판인으로서의 역할 등등 종횡무진으로 그의 삶과 지적인 탐구욕과 사회활동상이 글 속에 묻어난다.
윤 작가의 인생론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란 존재이며, 그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는데 가장 소중한 가치는 단연 자유로움이다. 여기서의 자유란 정치 사회적인 개념의 외형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내면적인 자아의 무한한 영혼의 자유까지를 포용한다. 그래서 그는 하늘을 비상하되 줄을 끊고 무한 창공을 나르고픈 줄 끊어진 연을 희원한다.
“줄 끊어진 연이 되고 싶다.
구봉산(九鳳山) 너머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을 타고 높이높이 날다 줄이 끊어진 연이 되고 싶다.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갈뫼봉 너머로 날아가버린 가오리연이 되고 싶다.
바다의 해심(海深)을 헤엄쳐가는 가오리처럼 현해탄을 지나, 검푸른 파도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태평양 창공을 날아가는 연이 되고 싶다.
장군도(將軍島)의 썰물에 밀려 아기섬 쪽으로 밀려가는 쪽배에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서서히 하늘 위로 흘러가는 연이 되고 싶다.(<연(鳶)처럼>, 1-48).”
윤형두 작가의 수필 중 가장 널리 회자되는 수작이다. 소년시절의 체험과 고향 산천과 바다를 배경 삼은 지정학적인 배치가 멋지게 한판 잘 어울리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어디 그만의 열망이겠는가. 모든 인간은 다 끈 떨어진 연을 갈구한다. 그러나 사노라면 누구나 자신이 “조롱(鳥籠) 속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자학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어릴 때의 고독과 수모, 그 무엇 하나도 털어버리지 못한 채 더 많은 번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한편 생각해보면 그 모든 속박이란 “마음이 만들어 버린 속박”이 아니던가. 이를 훨훨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또한 자신임을 모를 리 없을 터. 그래서 스스로가 근을 자르고 하늘로 치다달아 오를 연이 되고자 하나 세월과 삶의 조건은 이를 허용 않는다. 이런 한계상황을 윤 작가는 한 문장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나에겐 이제 가오리연을 띄울 푸른 보리밭도, 연실을 훔쳐낼 어머니의 반짇고리도 없다. (<연처럼>, 1-51).”
자유에 대한 열망은 윤 작가에게 두 갈레 길에 서게 만들었다. 하나는 현실적인 궁핍과 정치사회적인 자유를 획득하려는 투쟁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런 길로 나아가면 갈수록 결국 자아의 내면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 갇히게 된다는 각성의 길이다.
그는 현실적인 허기와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의로운 자유를 쟁취하는 삶의 지표를 먼저 선택한다. 그게 윤형두 작가에게는 민주화의 길이자 민족사적인 역사의식을 다잡는 세상 바로잡기 투쟁으로 나타난다.
윤형두 작가에게 자연은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설정된다. 첫째는 바다이고, 둘째는 산이다. 특히 바다의 경우는 이 작가에게 생태적인 친근감이 느껴질 정도로 육체와 영혼이 바다처럼 인식될 지경이다. 작품 편수도 아마 바다가 단연 가장 많을 것이다.
바다 이야기만 나오면 윤 작가의 수필에는 생기가 솟고 젊음의 파도가 요동치는 듯하다. 그의 수필은 바다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여기서의 바다란 비린내가 섞인 선창과 땀 흘리는 부두 노동자들의 분노라기보다는 무역항도 어항도 유명세를 탄 피서지도 아닌 그저 보통 바다 그 자체를 뜻한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어느 곳에서나 해조음이 들린다. 그것은 분노에 찬 파도가 아니라 섬사람들의 고뇌의 한숨으로 생긴 잔잔하고도 저력이 있는 파문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의 바다에는 갈매기가 날지 않는다. 그런 낭만을 지니기에는 그의 주변이 너무나 불행하고 고난에 차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점이 윤형두 수필의 가장 큰 마력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바다의 모습을 <병든 바다>, <10월의 바다> <망해> 등에서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이런 바다의 교훈에서 그는 사회 정의와 인간애의 정신을 이어 받은 것 같다. 그만큼 그에게 바다란 단순한 수필의 소재로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사회 인식의 바탕이 되고 있다.
모든 평론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윤 작가의 바다 묘사는 <병든 바다>의 첫 구절일 것이다. 워낙 명문이라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본다.
(1) 한 바가지 푹 퍼 마시고 싶은 바다. 파래가 너풀거리는 밑창에는 깨끗한 자갈이 깔려 있다. 잔잔한 파도가 일면 수많은 포말(泡沫)이 밀려갔다 밀려온다.
(2) 옷을 훌렁 벗고 툼벙 뛰어든다. 수영에 익숙한 해동(海童)은 자맥질을 해야 성이 풀린다. 물구나무를 서듯이 다리를 쭉 뻗고 해심(海深)을 향하여 팔다리를 놀린다. 팔은 양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가 나비처럼 원을 그리고 발은 오리처럼 장구를 친다.
(3) 얼마쯤 가면 해저(海底)에 닿는다. 그곳엔 소름이 돋을 만큼 고요가 깔려 있다. 해초들이 숨소리 없이 해면(海面)을 향하여 하늘거리고 있다. 바닷말은 녹갈색으로 키가 크고 숱이 많고 잎이 작다. 청각(靑角)은 자홍색 빛깔에 사슴뿔 모양으로 주먹만한 돌에 정교하게 붙어 있다. 좀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미역은 흑갈색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해동의 숨결을 가쁘게 한다. 미역 한 폭을 캐 오는 날이면 저녁상이 푸짐하다. 식초와 깨소금을 넣어 무치기도 하고 조개를 넣어 국을 끓이기도 한다.
(4) 나는 바다의 그 신선한 해조(海藻)와 패류(貝類)와 생선을 먹으며 자랐다. 바다는 또한 나의 곡창(穀倉)이며 구멍가게이기도 했다. 썰물이 밀려나면 긴 모래사장 밑으로 개펄이 나타난다. 호미를 들고 개펄을 파면 조개가 나오고 낙지도 잡히며, 운이 좋은 날은 개불도 잡힌다. 황갈색에 원통상(圓筒狀)으로 생긴 개불은 익히지 않고도 먹을 수 있으며 짭찔하고도 달착지근한 맛은 천하일미다. (<병든 바다>, 1-90-91).
바다를 소재로 쓴 수필 중 이만한 작품은 흔치 않을 것이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지만 (1)은 바닷가에 다가선 건장한 구릿빛 얼굴의 한 소년의 모습이 “한 바가지 푹 퍼 마시고 싶은”이란 구절에서 이미지화 된다. 실로 절창이다. 바닷물은 음료로 부적합임을 알면서도 그토록 기갈을 느낄 만큼 투명한 물빛이 연상된다. 그런데 그 사나이는 이미 바닷물 길과 그 속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를 꿰뚫어보고 있다.
(2)는 수영복 따위는 없이 뛰어드는 생명력의 약동이 느껴진다. 독자들은 소년 윤형두가 홀랑 벗고 돌산 앞 바다에서 정규 수영과정에서 배운 게 아닌 바다에서 체득한 온갖 체형의 헤엄을 치는 포즈를 보게 된다.
(3)은 그 바다의 풍성한 먹이들이 싱싱하게 놀고 있다. 이어서 (4)에서는 이 로맨틱한 풍광이 섬 사람들의 논밭이자 구멍가게에 해당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삶으로 환원된다.
“나는 모든 것을 바다에서 배웠다. 숨바꼭질도 보물찾기도 그리고 참을성도 노여움도 모두 바다에서 배웠다. 어둠 속에서 밝음이 얼마나 절실한가 하는 것도 등댓불에서 배웠으며 인광(燐光)에 대한 이치도 바다에서 배웠다.
그리고 식물명도 해초(海草)의 이름부터 배웠으며 동물명도 생선의 이름부터 배웠다. 원대한 꿈도 바다 저 멀리 보물섬 같은 것이 있으리라는 동경에서 키웠고 내 육신의 성장도 노 젓기와 고기잡이의 연속에서 자랐다.(<망해(望海)>, 1-40-41).”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이 글 속에도 에머슨이 규정한 자연미의 이론이 그대로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 나오는 정보들은 학교나 인터넷으로는 익힐 수 없는 오랜 체험의 소산이기에 거침이 없고 자신만만하다.
자연은 인간에게 지혜도 준다. 그래서 윤 작가에게 “바다는 또한 나의 사색(思索)의 고향이다. 수평선 위로 떠나가는 흰 돛단배엔 분명 미지(未知)의 연인이 타고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충동적으로 바다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어딜 가나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바다”만 볼 뿐이라서 더더욱 바다를 향한 향수가 타오르고, 이를 더욱 부채질 하는 것이 “목 쉰 듯한 쌍고동 소리”와 “똑딱선의 불규칙한 프로펠러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데, 이런 심경을 작가는 수필로 희원한다.
| 윤형두 (1935~ ) |
1935년 일본 고베(神戶) 출생.
동국대 법학과 졸업. 고려대 경영대학원·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수료.
국립순천대 명예출판학 박사학위 취득.
1972년 월간 《수필문학》에 수필 〈콩과 액운〉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한국도서유통협의회 회장,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출판학회 회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국제펜클럽 한국본부·한국서지학회·한국언론학회 이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객원 교수. 경희대 신문방송대학원·동국대 정보산업대학원·서강대 언론대학원·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강사.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이사장.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현재 종합출판 범우(주) 대표이사. 범우출판문화재단 이사장.
저서: 《출판물 유통론》, 《산사랑 책사랑 나라사랑》, 《넓고 넓은 바닷가에》, 《책의 길 나의 길》, 《아버지의 산 어머니의 바다》, 《한국출판의 허와 실》, 《사노라면 잊을 날이》,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잠보잠보 안녕》, 《한 출판인의 중국 나들이》, 《한 출판인의 일본 나들이》, 《지나온 세월속의 편린들》, 《옛책의 한글판본》(1, 2), 미니북 《책》, 《한국 출판미디어의 제문제》, 《한 출판인의 여정일기》, 《한 출판인의 자화상》, 《한 출판인의 사초》.
편저·역서: 《출판 사전》, 《눈으로 보는 책의 역사》, 《일본 출판물 유통》.
논문: 〈매스미디어로서의 출판〉 외 다수.
작가 소개
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학과 및 대학원을 마쳤다. 『현대문학』을 통해 『장용학론』(1966)으로 문학평론가가 된 후 『경향신문』 기자, 월간 『다리』, 월간 『독서』 등 잡지사 주간을 지냈다. 유신통치 때 두 차례에 걸쳐 투옥, 석방 후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2010년까지)를 지냈고,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참여, 부소장, 참여사회 아카데미 원장 등을 거쳐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창조와 변혁』, 『민족의 상황과 문학』, 『문학과 이데올로기』, 『분단시대의 문학』, 『불확실 시대의 문학』,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등 20여 권이 있다.
목 차
* 고독한 독수리의 삶/ 임헌영 7
- 윤형두의 수필 탐구 -
* 윤형두 선생의 수필이 갖는 의미/ 윤재천 97
- 필요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단호함의 미학 -
* 흐트러짐이 없는 삶의 진실과 엄숙성/ 김우종 120
* 수필로 꿰뚫은 인간학(人間學)/ 장백일 129
* 신묘한 법품(法品)의 울림/ 임중빈 137
* 소멸과 생성, 그 변증적 사유의 깊이/ 한상렬 146
- 수필작가 윤형두의 수필을 중심으로 -
* 찬사(讚辭)/ 피천득 159
* 출판 사업과 수필문학 사이에서/ 김태길 162
* 뜨겁고 정직한 고해(告解)/ 한승헌 167
* 수필가 윤형두/ 임헌영/ 178
- 팔순을 축하하며 -
* 윤형두의 수필세계/ 김태환 194
* 태어난 바다 떠나야 할 바다/ 이정림 201
- 윤형두 수필집 《아버지의 산 어머니의 바다》에 부쳐 -
* 나를 그리되 우리의 문제로/ 박연구 213
* 《넓고 넓은 바닷가에》를 읽고 나서/ 신동한 217
* 작가를 말한다/ 정을병 220
* 윤형두의 작품을 말한다/ 임헌영 228
* 윤형두의 수필 〈월출산 천황봉〉을 읽고/ 김진악 234
* 고백의 정직성을 신앙처럼 작품 속에 담는 정의와 진실의 수필가/ 최원현 238
◎ 부록 / 발표한 글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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