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탄생 -한국 현대시의 화자 연구- (2020.12)

얼굴의 탄생, 화자와 화법과 내면의 변증법

“화자와 화법과 내면세계는 어느 것 하나를 따로 떼어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연관을 가지고 있다. 실제 세계에서는 말없이도 존재가 있지만, 언어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공간에서는 화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화자는 이 모든 문학적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화자는 종래의 관점에서처럼 성별이나 나이, 직업적 전형성으로 특화될 수 있고, 심문이나 변호와 같은 발화 조건의 전형성을 통해서도 구현될 수 있고, 이미 존재하는 문학 텍스트 속의 배역(캐릭터)을 원용하고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든 화자는 발화의 누빔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의 시인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할 수 없는 분열과 결여의 맥락에서 화자는 선택되며, 그 선택과 배제에 대하여 의미화가 가능하다. 화법은 그 발화가 놓여 있는 자리나, 화행의 전략적인 방법 등을 두루 밝혀 줄 수 있는 형식이고, 화자를 구성하고 증명하는 최종적인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며, 같은 맥락에서 화자와 화법은 상호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화법을 통해서 화자를 유추할 수도 있고, 대화의 국면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세계와 화자의 관계를 중계하고 있는 이 내면세계가 없다면 화자의 발화는 시작되지 않을 것이므로 발화가 시작되는 내면 상태이자, 발화의 완결과 함께 마무리되는 심리적･이념적 세계상으로서 중요하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문학작품을 향수한 결과로 남는 문체를 조금은 더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형식 위에서 논의하고자 쓴 글들이다. 제1부에서는 화자론을 중심으로 문제 제기와 각론을 백석과 김수영, 서정주의 시를 대상으로 검토하였다. 화자론이 단 하나의 결정적인 화자를 목표로 하는 순간 그 화자는 실제의 시인에게 삼투되어 버릴 확률이 크다. 실제 시인과는 분리된 자리에서 발화를 따라가는 것이 유연한 독법이며 생산적인 독해일 것이다.
제2부에서는 화법을 살폈고 백석의 장면화와 이용악의 간접화법을 분석하였다. 백석의 언어 사용은 연구자로서 지대한 관심을 가진 영역이다. 특별히 방언의 사용뿐 아니라 장면화의 방법은 백석의 언어 사용에서 매우 중요하게 기억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악의 시는 선행 연구에서도 이미 규명되었지만 화자와 타자의 말이 가지는 대립상을 가장 유연하게 결합한 화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3부에서는 시의 발화가 최종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내면세계를 백석과 오장환의 시를 중심으로 살폈다. 백석 시의 환상성은 구성적 대상으로서의 환상보다는 실제 세계를 탈구축하는 비판적 대상으로서의 환상성에 주목한 연구이고 백석 시의 로컬리티는 백석이 이 지역성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의식하고 탐색한 시인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연구이다. 오장환의 시에서 느껴지는 가장 강력한 매력은 부정의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초기 시에서 그가 보여 준 전통 세계나 근대도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그가 자신을 얼마나 비좁은 희망의 세계로 밀어붙였는지를 짐작게 한다. 추가적으로 그의 아방가르드 시인 장시 ｢전쟁｣은 1930년대 초반에 이미 그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뛰어넘는 투시력으로 근대 세계 전반을 조롱할 만한 퍼스펙티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제4부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가진 질문들이다. 운율론은 자유율의 형식적 모순을 돌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점검해 본 논의이다. 두 개의 교육론은 교양 교육의 한 가능성을 시 쓰기에서 찾아본 논의와 시 교육에서 은유, 상징, 알레고리에 대한 위상이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한 논의이다. 문학의 시간과 삶의 시간은 실제로 출생 시간이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 오장환과 김수영의 시간을 삶의 시간과 문학의 시간 위에서 대비시켜 본 비교론이다. 문학과 정치는 한국의 시에서 하나를 빼고는 다른 하나를 논의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이상 ｢책머리에서｣ 중에서)

이현승은 1973년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에서 ｢1930년대 후반기 한국시의 언술 구조 연구―백석･이용악･오장환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경대학교, 경희대학교, 광운대학교, 중앙대학교,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고려대학교 BK21 한국어문학교육연구단, 민족문화연구원의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가천대학교 리버럴아츠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얼굴의 탄생―한국 현대시의 화자 연구>는 이현승의 첫 번째 연구서다.  

005 책머리에

제1부 얼굴의 발견―화자론
015 화자론 비판과 백석 시의 유년 화자
1. 서론 2. 화자 3. 분열된 주체로서의 유년 화자 (1) 정지용의 ｢향수｣와 백석의 ｢여우난곬족｣의 시간 의식 (2) 이용악의 ｢풀버렛소리 가득차 있었다｣와 백석의 ｢오리 망아지 토끼｣의 어조 (3) 정함의 추구와 속신의 두려움을 이기는 학습적 화자 4. 결론
043 김수영 시의 연극적 화자
1. 서론 2. 시의 연극성과 화자의 배역성 3. 폭로의 정치학과 마조히즘의 윤리 4. 결론
066 서정주 시의 미학적 화자—<화사집>을 중심으로
1. 배역적 화자에 관하여 2. ｢자화상｣과 ｢문둥이｣의 미학적 화자 3. 시적 에피파니와 초월적 화자 4. 결론

제2부 목소리의 발견
087 백석 시의 화법과 장면화
1. 서론 2. 장면화의 구조와 방법 (1) 장면화의 구조 (2) 장면화의 방법 ① 명사 구문과 서술의 단락 ② 직유와 묘사 ③ 내면적 언술의 자기 지시성 3. 결론
112 이용악 시의 간접화법
1. 이용악 시의 균형 감각과 발화 특성 2. 화해되지 않는 타자와 중층적 발화 3. 타자를 향한 능동적 화해의 발화 4. 타자와의 상호 침투와 융합적 발화 5. 대타적 발화와 균형 감각

제3부 내면의 발견
143 백석 시의 로컬리티
1. 서론 2. 방언, 로컬의 언어 3. 유년, 로컬의 기원 4. 풍물, 미래적 기원의 풍경 5. 결론
171 백석 시의 환상성
1. 서론 2. 결핍과 결여의 상상적 보충 3. 감각적 언어와 실존적 깊이 4. 결론
192 오장환 시의 부정 의식—초기 시를 중심으로
1. 서론 2. 전통과 근대의 혼재와 부정 3. 순응과 퇴행의 거부 4. 식민 세계의 경험과 저항 의지 5. 부정적 현실과 저항적 주체 6. 결론
215 아방가르드와 전쟁의 상상력—오장환의 장시 ｢전쟁｣론
1. 서론 2. ｢전쟁｣의 구성 원리 3. 카메라의 시선과 전장의 몽타주 4. 유린된 현실과 예술적 저항 4. 결론

제4부 질문의 발견
237 한국시 운율론의 난제—정지용의 시를 중심으로
1. 서론 2. 한국어의 율격적 가능성 3. 현대시와 율격론의 가능성 4. 정지용 시의 운율 의식 5. 결론
256 교양 교육에서 시 교육의 가능성
1. 교양 교육의 본질과 목표 2. 대학 (교양) 교육의 문제들과 극복 노력 (1) 고도 경쟁 사회와 대학의 상대평가 (2) 지식 정보 사회의 컨텐츠와 지식 산업의 아웃 소싱 (3) 창의성과 인성 교육을 위한 제도의 정비 3. 창의성과 인성 교육 프로그램, 예술 교육 4. ‘낯설게 하기’와 ‘정색하고 보기’ 5. 결론
277 시 교육에 있어서 은유, 상징, 알레고리의 위상
1. 서론 2. 상징과 알레고리의 비교 3. 은유와 상징과 알레고리의 위상, 그리고 언어의 운동성 4. 결론. 언어 모델로 제안하는 은유와 상징과 알레고리의 새로운 위상
296 삶의 시간 문학의 시간—오장환과 김수영의 시 비교 연구
1. 서론 2. 전쟁 체험의 두 양상과 미학적 분기점 3. 현실의 부정과 예술적 전위 4. 결론

328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