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화성행궁에 뿌리내린 재인청,
김인호에서 이동안으로, 또 김명수로 이어지는
재인청 춤의 흔적과 기억
이동안은 1920년 광무대의 흥행사인 박승필에게 발탁되어 전설의 춤꾼이자 종합 예인인 김인호를 만나 30여 종의 재인청 춤과 장단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춤꾼이다. 이미 그 전에 화성 재인청의 도대방(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했던 전문예인 집단이자 조직이 재인청이고, 이를 대표하는 예인을 도대방이라고 한다)인 아버지는 열세 살 어린 아들 이동안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1922년 일본이 강제로 화성 재인청을 폐지하는 바람에 결국 그가 마지막 도대방이 되었다.
근대의 전통춤을 대표하는 한성준과 같은 시대를 살았고, 광무대라는 공간에서 활약한 갖가지 기예를 겸한 재인이자 춤꾼으로 기억할 수 있는 사람. 평생 그리고 80대를 넘기면서도 마지막이 된 1994년 [조선조 마지막 광대 운학 이동안 발탈, 전통무용공연]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화성 재인청의 마지막 맥을 잇는 재인, 진정한 춤꾼으로서의 생애였다.
또 한 사람, 이 책의 저자인 김명수는 발레와 현대무용에서 시작해 이동안에게 전통무를 전수받은 춤꾼이다. 이동안이 구음으로, 장구장단에 맞춰 춤 장단과 발 떼고 팔 드는 법을 가르쳤던 제자였다. 그러나 제자는 20여 년에 걸쳐 독일, 북한, 그리고 뉴욕에서까지 원치 않은 망명생활을 했다. 뉴욕에서 춤꾼으로 살면서, 역설적으로 지금은 잊힌, 잃어버린 춤을 온몸에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끝에 스승의 춤가락을, 재인청 춤의 기억과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무보집으로 돌아왔다.
한성준이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만든 당시, 이동안에게 "최승희가 일본 공연을 가니 춤을 배우고 싶다"고 전했다. 이에 이동안은 최승희에서 승무, 장고무 등을 가르쳤다. 남편 안막은 최승희가 춤을 배우는 현장을 따라다니며 늘 춤을 기록했다고 이동안은 생전에 증언하기도 했다. 1990년 가족을 따라 북한을 방문한 저자는 최승희가 안무와 주연을 맡은 1956년 무용극 영화 [사로성의 이야기]를 보았다. 이동안이 김명수에게 전수한 장고무를 추는 최승희(당시 46세) 춤을 확인한 것이다.
이동안의 춤은 곧 재인청의 춤이다
민속무용은 물론 무속무와 한량과 기방무를 한데 아울렀으며, 재인청의 분야별 전문가의 높은 안목으로 재창조된 춤이 바로 재인청 춤이다. 장단과 춤이 절묘하게 어울려 하나가 되어 있다는 점과 어떤 춤사위도 균형이 잡혀 있어 춤의 흐름이 도도하다는 점, 그리고 춤사위 하나하나가 고도의 기교가 필요한데도 전체적으로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이 이동안 춤의 특징이다.
이동안의 춤은 한국 무용에서 약화되고 있는 기민성과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에 못지않은 중량감 있는 여유와 여백이 함께하고 있다. 그의 춤은 재인청 춤의 실상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자료다. 또한 우리 춤의 본래 성격인 남성적인 진취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전통무용의 표본이다.
재인청 춤의 기억과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김명수식 춤 표기법
‘김명수식 춤 표기법Kim Myungsoo Dance Notation’은 1장단 6획으로 구획하고 세분화하여 행간마다 정간보와 구음, 서양악보, 춤사위 사진, 춤길방향, 발디딤, 팔놀림으로 나뉘어 표기했다. 춤사위를 유지하는 시간은 얼마였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기록한 방식이다.
이 책은 이동안의 춤을 도제식으로 전수받은 제자 김명수가 실연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1983년 완성한 무보집 [이동안 태평무의 연구]를 새롭게 다듬은 것이다. 이미 32년 전에 직접 채보한 장단을 바탕으로 장단부호와 작곡가가 참여한 서양기보법, 춤길방향 등을 더한 표를 만든, 무보집의 새 전형을 만들어 낸 바 있다.
춤은 몸으로 써가는 역사인 탓에 남은 기록이 별반 없어 춤의 족보가 희미하다. 전승이 끊긴 잃어버린 한국춤 문화유산을 새롭게 기록한 책인 셈이다. [조선의 마지막 춤꾼, 이동안] 출간으로 잊혀진 이동안 춤을 되살리고 표준성을 온전하게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데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무보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 송대의 [덕수궁무보], 일본의 [분카쿠와 노오] 문서, 조선의 궁중잔치를 기록한[진찬의궤]와 종묘제례 일무 [시용무보], 1946년 러시아 발레 [바가노바 테크닉], 1954년 독일 [라반식 표기법Laban notation], 북한 1958년 최승희 [조선민족무용기본]와 1987년 우창섭 [자모식무용표기] 그리고 1983년 김명수 [이동안 태평무의 연구] 등을 꼽을 수 있다.
‘어제 같은 옛날’의 춤꾼이 있었으니
_주강현(역사민속학자)의 추천사 중에서
‘어제 같은 옛날’이 있었다. 정조가 지은 화성행궁에 뿌리내린 재인청이 그러했다. 재인청 품격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한다. 화성에서 태어난 이동안이란 재인이 바람결에 실려와 그 재인청에 몸을 실었다. 그로부터 그의 춤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그 사라졌다는 이동안 춤 계보학의 적자임을 아는 이 있을까. 전승이 끊긴 ‘잃어버린 춤’을 다수 간직함은 실로 경이롭다. 춤을 배울 때, 선생의 나이가 이미 만년이었으며 그 이후에 온전한 전승 자체가 불가했으니까. 20세기 초반을 풍미한 김인호 춤꾼의 맥락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독자들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전설의 춤꾼이자 종합적 예인이었지만 정작 잊힌, 애써 잊으려 했던 김인호가 되살아오다니……!
본의 아니게 북으로 가서 최승희의 제자들을 비롯한 북의 춤꾼 계보와 두루 교유했으며, 뉴욕-평양-서울을 연결하는 동 시대적 요청을 자신의 몸에 각인하면서 겪은 인고의 세월과 개인적 아픔은 무엇으로 표현하랴. [뉴욕 타임스] 등 세계무대에서 보여준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조용히 서울로 돌아와 춤의 계보를 가다듬고, 마침내 ‘김명수식 춤 표기법Kim Myungsoo Dance Notation’을 선보이게 되었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명수
무용가이자 김명수댄스아트 대표. 1954년 나주시 영산강 줄기에서 태어났다. 발레로 시작해 이대 무용과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이동안, 김숙자, 이매방 춤과 장단을 사사하고, 1980년[김명수현대무용]과 1982년 [김명수전통무용]으로 데뷔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리몽과 마사 그라함 테크닉과 마사 마이어와 베시 쉔베르그 안무법을 공부했다. 재미동포 2세 ‘비나리’와 재일동포 2세 ‘한우리’ 창립 공연에 안무와 지도를 맡았으며, 민예총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1990년 가족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홍정화 무용가동맹위원장, 박경실, 우창섭, 홍석중, 이춘구, 문예봉, 여연구 등 문화예술인과 교류했다. 또한 피바다가극단 안무가 김해춘과 공동안무를 맡았고, 명예안무가로 위촉되었다. 이후 1998년까지 일본, 독일, 북한, 미국을 전전하며 ‘김명수식 춤 테크닉’을 지도하는 한편 아들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다. 베시 쉔베르그 극장, 아시아소사이어티, 듀크42번가 극장, 제이콥스 필로우 댄스페스티벌, 라마마 극장, 하버드대학 로웰홀, 세인트마크 교회, 세인트 존 케트리드럴 성당,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공연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제639차 정기수요집회가 열리... 는 일본대사관 앞과 유엔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브이 데이 켐페인]에서 위안부 추모 공연을 가졌다. 2005년 [아리랑] 공연으로 [뉴욕타임스]에 “관객을 매료시키고 악령을 몰아낸 요정”이라는 기사가 실렸고, 그 해 12월 스타-레져 무용평론가 로버트 존슨이 주는 ‘베스트 서플라이즈’에 선정되었다. 1977년 논문 [구도적인 공간 구성에 대하여]와 1983년 책 《이동안 ‘태평무’의 연구》, 2007년 논문 [한국무용사에서 잊혀진 목소리:진쇠춤과 태평무에 담겨진 이동안 춤과 철학의 세대 간 연구](파리 인터내셔널 댄스 리서치 심포지엄, 류주연과 공동으로)를 발표했다. 뉴욕 링컨센터 공연예술도서관 제롬 로빈슨 댄스컬렉션 특별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살고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
초판 서문
태평무 장단 채보에 관하여
첫 무보를 펴며
화성 재인청과 1910년대 경성의 근대식 무대, 그리고 스승 김인호
재인청의 마지막 춤꾼, 이동안의 생애
이동안 춤의 특징과 전수법
이동안 춤의 유래
춤사위 용어와 형태
김명수식 춤 표기법Kim Myungsoo Dance Notation
재인청 기본무 무보
재인청 태평무 무보
Abstract: Last Artist of the Choson Dynasty(1392-1910), Yi Dongahn 298
?Memories of Chaeinch’oˇng Dance and Kim Myungsoo Dance Notation
이동안의 춤 사진자료
운학 이동안의 연보
참고자료
화성행궁에 뿌리내린 재인청,
김인호에서 이동안으로, 또 김명수로 이어지는
재인청 춤의 흔적과 기억
이동안은 1920년 광무대의 흥행사인 박승필에게 발탁되어 전설의 춤꾼이자 종합 예인인 김인호를 만나 30여 종의 재인청 춤과 장단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춤꾼이다. 이미 그 전에 화성 재인청의 도대방(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했던 전문예인 집단이자 조직이 재인청이고, 이를 대표하는 예인을 도대방이라고 한다)인 아버지는 열세 살 어린 아들 이동안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1922년 일본이 강제로 화성 재인청을 폐지하는 바람에 결국 그가 마지막 도대방이 되었다.
근대의 전통춤을 대표하는 한성준과 같은 시대를 살았고, 광무대라는 공간에서 활약한 갖가지 기예를 겸한 재인이자 춤꾼으로 기억할 수 있는 사람. 평생 그리고 80대를 넘기면서도 마지막이 된 1994년 [조선조 마지막 광대 운학 이동안 발탈, 전통무용공연]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화성 재인청의 마지막 맥을 잇는 재인, 진정한 춤꾼으로서의 생애였다.
또 한 사람, 이 책의 저자인 김명수는 발레와 현대무용에서 시작해 이동안에게 전통무를 전수받은 춤꾼이다. 이동안이 구음으로, 장구장단에 맞춰 춤 장단과 발 떼고 팔 드는 법을 가르쳤던 제자였다. 그러나 제자는 20여 년에 걸쳐 독일, 북한, 그리고 뉴욕에서까지 원치 않은 망명생활을 했다. 뉴욕에서 춤꾼으로 살면서, 역설적으로 지금은 잊힌, 잃어버린 춤을 온몸에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끝에 스승의 춤가락을, 재인청 춤의 기억과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무보집으로 돌아왔다.
한성준이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만든 당시, 이동안에게 "최승희가 일본 공연을 가니 춤을 배우고 싶다"고 전했다. 이에 이동안은 최승희에서 승무, 장고무 등을 가르쳤다. 남편 안막은 최승희가 춤을 배우는 현장을 따라다니며 늘 춤을 기록했다고 이동안은 생전에 증언하기도 했다. 1990년 가족을 따라 북한을 방문한 저자는 최승희가 안무와 주연을 맡은 1956년 무용극 영화 [사로성의 이야기]를 보았다. 이동안이 김명수에게 전수한 장고무를 추는 최승희(당시 46세) 춤을 확인한 것이다.
이동안의 춤은 곧 재인청의 춤이다
민속무용은 물론 무속무와 한량과 기방무를 한데 아울렀으며, 재인청의 분야별 전문가의 높은 안목으로 재창조된 춤이 바로 재인청 춤이다. 장단과 춤이 절묘하게 어울려 하나가 되어 있다는 점과 어떤 춤사위도 균형이 잡혀 있어 춤의 흐름이 도도하다는 점, 그리고 춤사위 하나하나가 고도의 기교가 필요한데도 전체적으로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이 이동안 춤의 특징이다.
이동안의 춤은 한국 무용에서 약화되고 있는 기민성과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에 못지않은 중량감 있는 여유와 여백이 함께하고 있다. 그의 춤은 재인청 춤의 실상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자료다. 또한 우리 춤의 본래 성격인 남성적인 진취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전통무용의 표본이다.
재인청 춤의 기억과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김명수식 춤 표기법
‘김명수식 춤 표기법Kim Myungsoo Dance Notation’은 1장단 6획으로 구획하고 세분화하여 행간마다 정간보와 구음, 서양악보, 춤사위 사진, 춤길방향, 발디딤, 팔놀림으로 나뉘어 표기했다. 춤사위를 유지하는 시간은 얼마였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기록한 방식이다.
이 책은 이동안의 춤을 도제식으로 전수받은 제자 김명수가 실연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1983년 완성한 무보집 [이동안 태평무의 연구]를 새롭게 다듬은 것이다. 이미 32년 전에 직접 채보한 장단을 바탕으로 장단부호와 작곡가가 참여한 서양기보법, 춤길방향 등을 더한 표를 만든, 무보집의 새 전형을 만들어 낸 바 있다.
춤은 몸으로 써가는 역사인 탓에 남은 기록이 별반 없어 춤의 족보가 희미하다. 전승이 끊긴 잃어버린 한국춤 문화유산을 새롭게 기록한 책인 셈이다. [조선의 마지막 춤꾼, 이동안] 출간으로 잊혀진 이동안 춤을 되살리고 표준성을 온전하게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데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무보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 송대의 [덕수궁무보], 일본의 [분카쿠와 노오] 문서, 조선의 궁중잔치를 기록한[진찬의궤]와 종묘제례 일무 [시용무보], 1946년 러시아 발레 [바가노바 테크닉], 1954년 독일 [라반식 표기법Laban notation], 북한 1958년 최승희 [조선민족무용기본]와 1987년 우창섭 [자모식무용표기] 그리고 1983년 김명수 [이동안 태평무의 연구] 등을 꼽을 수 있다.
‘어제 같은 옛날’의 춤꾼이 있었으니
_주강현(역사민속학자)의 추천사 중에서
‘어제 같은 옛날’이 있었다. 정조가 지은 화성행궁에 뿌리내린 재인청이 그러했다. 재인청 품격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한다. 화성에서 태어난 이동안이란 재인이 바람결에 실려와 그 재인청에 몸을 실었다. 그로부터 그의 춤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그 사라졌다는 이동안 춤 계보학의 적자임을 아는 이 있을까. 전승이 끊긴 ‘잃어버린 춤’을 다수 간직함은 실로 경이롭다. 춤을 배울 때, 선생의 나이가 이미 만년이었으며 그 이후에 온전한 전승 자체가 불가했으니까. 20세기 초반을 풍미한 김인호 춤꾼의 맥락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독자들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전설의 춤꾼이자 종합적 예인이었지만 정작 잊힌, 애써 잊으려 했던 김인호가 되살아오다니……!
본의 아니게 북으로 가서 최승희의 제자들을 비롯한 북의 춤꾼 계보와 두루 교유했으며, 뉴욕-평양-서울을 연결하는 동 시대적 요청을 자신의 몸에 각인하면서 겪은 인고의 세월과 개인적 아픔은 무엇으로 표현하랴. [뉴욕 타임스] 등 세계무대에서 보여준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조용히 서울로 돌아와 춤의 계보를 가다듬고, 마침내 ‘김명수식 춤 표기법Kim Myungsoo Dance Notation’을 선보이게 되었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명수
무용가이자 김명수댄스아트 대표. 1954년 나주시 영산강 줄기에서 태어났다. 발레로 시작해 이대 무용과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이동안, 김숙자, 이매방 춤과 장단을 사사하고, 1980년[김명수현대무용]과 1982년 [김명수전통무용]으로 데뷔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리몽과 마사 그라함 테크닉과 마사 마이어와 베시 쉔베르그 안무법을 공부했다. 재미동포 2세 ‘비나리’와 재일동포 2세 ‘한우리’ 창립 공연에 안무와 지도를 맡았으며, 민예총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1990년 가족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홍정화 무용가동맹위원장, 박경실, 우창섭, 홍석중, 이춘구, 문예봉, 여연구 등 문화예술인과 교류했다. 또한 피바다가극단 안무가 김해춘과 공동안무를 맡았고, 명예안무가로 위촉되었다. 이후 1998년까지 일본, 독일, 북한, 미국을 전전하며 ‘김명수식 춤 테크닉’을 지도하는 한편 아들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다. 베시 쉔베르그 극장, 아시아소사이어티, 듀크42번가 극장, 제이콥스 필로우 댄스페스티벌, 라마마 극장, 하버드대학 로웰홀, 세인트마크 교회, 세인트 존 케트리드럴 성당,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공연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제639차 정기수요집회가 열리... 는 일본대사관 앞과 유엔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브이 데이 켐페인]에서 위안부 추모 공연을 가졌다. 2005년 [아리랑] 공연으로 [뉴욕타임스]에 “관객을 매료시키고 악령을 몰아낸 요정”이라는 기사가 실렸고, 그 해 12월 스타-레져 무용평론가 로버트 존슨이 주는 ‘베스트 서플라이즈’에 선정되었다. 1977년 논문 [구도적인 공간 구성에 대하여]와 1983년 책 《이동안 ‘태평무’의 연구》, 2007년 논문 [한국무용사에서 잊혀진 목소리:진쇠춤과 태평무에 담겨진 이동안 춤과 철학의 세대 간 연구](파리 인터내셔널 댄스 리서치 심포지엄, 류주연과 공동으로)를 발표했다. 뉴욕 링컨센터 공연예술도서관 제롬 로빈슨 댄스컬렉션 특별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살고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
초판 서문
태평무 장단 채보에 관하여
첫 무보를 펴며
화성 재인청과 1910년대 경성의 근대식 무대, 그리고 스승 김인호
재인청의 마지막 춤꾼, 이동안의 생애
이동안 춤의 특징과 전수법
이동안 춤의 유래
춤사위 용어와 형태
김명수식 춤 표기법Kim Myungsoo Dance Notation
재인청 기본무 무보
재인청 태평무 무보
Abstract: Last Artist of the Choson Dynasty(1392-1910), Yi Dongahn 298
?Memories of Chaeinch’oˇng Dance and Kim Myungsoo Dance Notation
이동안의 춤 사진자료
운학 이동안의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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