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과 일본 (2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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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조경달
출판사항한양대학교출판부, 발행일:2015/08/25
형태사항p.314 A5판:21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72184720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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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이 책은 제국일본의 조선 침략과 민중의 저항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리한 『植民地朝鮮と日本』(2013, 이와나미쇼텐)을 완역한 것이다. 저자 조경달 교수는 조선 근대사를 전공했고, 현재 지바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적 저서로는 『역사와 진실』(공저, 1997, 치쿠마쇼보) 『이단의 민중반란-동학과 갑오농민전쟁』(1998, 이와나미쇼텐) 『조선 민중운동의 전개-士의 논리와 구제사상』(2002, 이와나미쇼텐) 『식민지기 조선의 지식인과 민중』(2008, 유시샤) 『근대 조선과 일본』(2012, 이와나미쇼텐) 등이 있고, 논문으로 「갑오농민전쟁 지도자 전봉준 연구」(1983) 「조선 근대의 내셔널리즘과 문명」(1991) 「동학에 있어서 정통과 이단」(1994) 「대한제국기의 민중운동」(1995) 「김옥균에서 신채호로-조선의 국가주의의 형성과 전회」(1996) 「조선의 근대와 그 정치문화」(2003) 「식민지근대성 비판」(2008)이 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나온 조선 통사로는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郞)의 『日韓倂合小史』(1966, 안병무 옮김, 『한일병합사』, 1982)와 『日本統治下の朝鮮』(1971, 최혜주 옮김, 『일본의 식민지 조선통치 해부』, 2011)이 선구적 업적으로 평가되어왔으나 통치자인 일본 측의 사료만을 주로 분석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은 성과로, 유교적 민본주의에 착목해 정치문화사적 관점에서 지배를 받던 민중의 저항과 투쟁을 통해 한일 관계사를 개관한 식민지 조선의 통사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조선의 유교적 민본주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어떠한 갈등을 강요당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자기를 관철하려고 했는지 그 양상을 지배 정책의 변천과 민족운동, 민중운동, 혹은 근대화와 함께 진행하는 사람들의 일상적 갈등, 일본과의 상호인식 등과 결부해 밝히고 싶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이 그러한 고투 속에서 만들어낸 사상, 혹은 그와 반대로 굴복해간 사람들의 정신적 고뇌와 그 논리 등도 파헤치면서 식민지의 본질인 폭력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라며 저술 의도를 밝히고 있다. 아울러 식민지의 폭력을 과거의 문제로만 말하는 것의 문제성을 지적하며 “이제부터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가 양호한 것이 될지는, 오로지 역사인식 문제로부터 눈길을 돌리지 않는 자세를 취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라고 강조한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5월 [동아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공동 여론 조사에 따르면, 양국 국민의 역사인식의 격차가 5년 전보다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었으며, 식민지 지배 피해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인식 격차가 그대로 드러났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의 95퍼센트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지만 일본인은 49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 피해자 보상을 재검토해야 하나’라는 질문에는 한국인 89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일본인 69퍼센트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또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관련해서도 일본인 사이에는 ‘지금까지의 사죄로 충분하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되었음이 드러났다. ‘일본이 충분히 사죄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1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일본인은 65퍼센트로 크게 늘어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큰 시각차를 보였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 개선에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은 95퍼센트가 중요하다고 답한 반면 일본에서는 53퍼센트만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동안 한류 현상이 양국의 상호 이해에 큰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의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 듯하다. 최근 도쿄 코리아타운에서 공격적인 혐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일본 정부는 이를 제재하지 않고 있다. 35년간에 걸친 식민지배의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있는 지금,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식민주의의 청산과 극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의 관계에서 갈등의 시작을 파악하지 않으면 상호 이해가 막히는 것은 물론이고 성숙한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도 한일 관계는 여전히 역사 교과서 왜곡, 일본군 위안부, 독도 영유권, 망언, 전후 배상 등 민감한 사안이 나오면 불편해지기 일쑤인 채 제자리걸음 상태다. 일본 보수 정치가들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적극적인 미화는 일반인들 사이에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두 나라가 가까워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한일 관계는 언제부터 악화되었으며, 그것이 해결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조선멸시관의 역사적 뿌리
8세기에 일본에서 편찬된 가장 오래된 책으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있다. 이 책의 편찬 목적은 집권적 통일국가를 수립해 천황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데 있었다. 여기에는 4세기경 진구(神功)황후가 남편을 대신해 ‘신라에 출병’하여 ‘삼한을 지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삼한은 신라·백제·고구려를 말하는데, 이 전설은 이미 많은 연구자에 의해 허구임이 밝혀졌다. 이 시기는 통일국가의 존재조차 부정되어 있는 상태인데 대규모 해외파병이 가능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진구황후 전설은 ‘일본이 신국(神國)’이라는 신국관을 동반하여 후세에까지 이어지면서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전통적 조선관을 형성시켰으며, 그 후 일본인의 조선관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
일본의 조선 인식에 큰 변화의 계기가 된 사건은 임진왜란이었다. 1592년 이래 7년간 16만의 일본 군대가 한반도에 두 번 상륙해 조선을 침략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은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에 대한 문화적 존경과 함께 조선멸시관을 심어주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조선의 성리학·도자기·금속활자 등이 전래되면서, 유학자를 중심으로 한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조선 문화에 대한 존경심이 자리 잡게 되었다. 1607년 조선에서 처음 파견된 통신사행에 대한 열렬한 반응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에도(江戶) 시대에는 막부가 쇄국정책을 펼치는 중에도 일본과 조선의 평화적 국교가 계속되어 조선만이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가졌다. 이 시기의 조선관도 양면적이었다. 당시의 지식층, 특히 유학자들의 조선 학문과 학자에 대한 존경으로 조선본의 복각이 활발했다. 조선인 혹은 그 자손이 번(藩)의 교수로 초빙되거나 승려로 존경받기도 했다. 당시의 일본인은 조선 문화의 일면, 특히 봉건적 질서의 형성에 이바지한 주자학을 존경했다. 일본 지식층 가운데 지배적 지위에 있었던 유학자 층이 조선의 학문과 학자에 경의를 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멸시관의 일면은 일본의 건국신화나 전설에 근거해 일본의 우월한 지위를 강력히 주장한 일본의 국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들은 일본 고전의 우수성을 발견하고자 노력하고 그것을 연구하며 신국 일본의 모습을 그려냈다. 일본의 조선 지배를 주장한 국학자들의 조선관은 후대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막부 말기, 조선ㆍ아시아 침략론의 길을 열고 메이지(明治) 정권 성립 이후 조선 침략 정책을 용이하게 만든 사상적 토양이 된 것이다. 이후 일본에서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조선에 대해 군사적 우월감을 가지게 되면서 조선 민족에 대한 멸시감이 어느 때보다 강렬해졌다.

조선 침략에 대한 논의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1868년에 천황을 정점으로 한 신정부가 탄생하며 근대 일본이 시작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구미의 근대 문명과 기계제 공업 도입에 적극적이었고,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을 추진했다. 그사이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일본은 구미에 대해서는 추종적·타협적인 태도를, 주변국에 대해서는 강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신정부는 구 막부가 외국과 맺은 불평등조약의 개정을 추진하려 했다. 이를 위해 1871년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를 전권대사로 하는 구미사절단을 파견해 조약 개정을 타진했다. 그러나 개정은 성사되지 못했고, 메이지 정부는 근대화 정책이 불가결함을 통감했다.
메이지 정부는 주변국과도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 조선과의 관계는 1811년 이래 통교가 중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쓰시마(對馬) 번을 통해 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해 쇄국정책을 쓰고 있었고, 일본이 개국하여 서양과 국교를 연 것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일본 정부 내부에서는 무력으로 개국을 요구하자는 정한론자가 세력을 얻었다. 이들은 국내의 반정부 움직임을 조선 침략으로 돌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정한론은 징병령에 대한 사족(士族)의 불만과 농민소요의 빈발에 따른 내란의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대외강경책이었고, 동시에 조선 침략을 통해 만국이 대치하는 국제상황에서 일본의 국권을 신장시키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구미 견문을 마치고 돌아온 사절단이 내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를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정한은 취소되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정한파는 1873년 일제히 사임하고 정부를 떠났다. 그 후 1875년 조선 연안을 측량하고 있던 일본 군함 운요호를 조선 측이 포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사실 일본 정부가 승인한 계획적인 도발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조선을 압박해 이듬해에는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불평등조약으로 조선의 개항을 강요해 조선 침략의 제1보를 내딛게 되었다.
이처럼 일본의 조선 침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17세기 후반의 조선멸시관, 막부 말기의 조선침략론, 메이지 시대 초기의 정한론, 그리고 이후 대한제국의 식민지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일본의 전후 처리의 문제점
근대 일본에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한 이후 일본의 민족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국가주의와 함께 대외팽창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 결과 타이완을 식민지로 확보하면서 국제사회에 후진 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했다. 이어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어 이를 발판으로 강제병합을 감행하고 대륙정책을 추진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만주사변 이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대외 침략전쟁을 확대해갔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반격으로 결국 패망했다.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고 9월 2일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일본의 전후 처리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일본의 가해자 의식의 부재다. 일본은 아시아인이 일본의 침략주의로 인해 막대한 고통을 당한 사실은 외면한 채 오히려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점만을 강조했다. 둘째, 전쟁 책임의 부재다. 일본은 스스로 피해자 대열에 섬으로써 과거 침략 행위의 진상이나 피해 파악은 외면하고 과거 역사에 대해 특별히 책임질 일이 없다고 강변했다. 셋째, 대외적 배상 의무를 회피했다. 일본의 전후 보상은 군국주의 정책 수행 과정에 참여했다가 피해를 당한 자국민에게만 집중되었으며, 이과정에서 일본 침략주의에 희생당했던 각국 피해자의 고통은 외면당했다. 넷째, 일본의 지식인과 정치가들도 일본 사회를 내면으로부터 반성하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독일이 정치적으로나 지식인 및 학생운동으로 과거 극복을 위해 노력한 것과는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전후 문제 청산에 부정적이며 보상 청구에 대해서는 한일청구권과 경제협력 협정으로 이미 종결된 사안이므로 더 이상 고려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청구권 교섭 당시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과거를 청산하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일본 정부는 우리가 요구하는 철저한 조사와 진상 규명에 소극적이며 책임을 축소하고자 사실을 은폐했다. 전후 일본의 가장 큰 잘못은 아시아에 대한 잔학 행위에 대해 솔직하고 효과적인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은 데 있다. 과거사 청산 문제는 일본 사회가 극복해야 할 커다란 과제다. 일본은 침략과 지배로 잘못을 저지른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국제적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조경달
1954년 도쿄 출생. 일본 주오대학 문학부를 졸업했고, 도쿄도립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중퇴했다. 지바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 분야는 조선 근대사ㆍ근대 한일비교사상사다. 저서로 『역사와 진실』(공저, 1997, 치쿠마쇼보), 『이단의 민중반란―동학과 갑오농민전쟁』(1998, 이와나미쇼텐), 『조선 민중운동의 전개―士의 논리와 구제사상』(2002, 이와나미쇼텐), 『식민지기 조선의 지식인과 민중』(2008, 유시샤), 『식민지 조선』(편저, 2011, 도쿄도출판), 『비교사적으로 본 근세 일본』(편저, 2011, 도쿄도출판), 『근대 조선과 일본』(2012, 이와나미쇼텐), 『근대 일조 관계사』(편저, 2012, 유시샤)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며

제1장 일본의 군사 지배
1. 무단정치의 성립
2. 무단농정과 산업정책
3. 동화정책과 지방통치
4. 무단정치하의 민중

제2장 3·1운동
1. 독립 기운의 도래
2. 3·1운동의 전개
3. 3·1운동과 일본

제3장 문화정치로의 전환
1. 문화정치의 성립
2. 실력양성운동
3. 경제정책과 해외이민

제4장 민족운동의 전개
1. 문화운동과 민중
2. 사회주의운동과 민중
3. 해외의 독립운동
4. 신간회 운동

제5장 식민지의 근대
1. 식민지의 사회와 문화
2. 근대화와 민중
3. 식민지의 내셔널리즘

제6장 문화정치의 종언과 일본인
1. 사회주의운동과 농촌진흥운동
2. 심전개발운동과 문화정치의 종언
3. 재조일본인의 세계

제7장 전시체제와 조선
1. ‘내선일체’와 총동원체제
2. 지식인의 전쟁 협력
3. 총동원과 민중

제8장 전쟁과 해방
1. 15년 전쟁기의 독립운동
2. 전쟁과 반항
3. 조선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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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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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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