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국제적으로 독창적인 문학 연구서라는 평가를 받은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는 그 책보다 앞서 나온 그의 출세작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에 크게 빚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이미 다루어진 여러 개념들인 미메시스, 피구라, 스타일, 개인의 운명, 개인과 사회의 통합, 리얼리즘 등을 여러 작가들에게 확대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테를 해설하는 가장 쉬운 책은 아닐지 몰라도, 단테를 가장 훌륭하게 설명한 책이다. -마이클 더다
아우어바흐는 『신곡』이 영원하고 불변하는 주제(신)를 다루고 있지만 신적 질서의 리얼리티가 실은 아주 인간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단테에 대한 아우어바흐의 세련된 글쓰기는 읽어나가기가 너무나 즐겁다. 그의 글은 복잡하면서도 역설적인 통찰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때때로 니체를 연상시키는 대담한 진술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최고의 단테 연구자인 에리히 아우어바흐가 근대 유럽 문학의 지평을 연 단테의 삶과 그가 그리고자 했던 세계를 추적한 책이 연암서가에서 출간되었다. 아우어바흐의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은 단테 이전의 시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하여 단테의 초기 시가 형성된 과정, 『신곡』의 주제와 구조, 그리고 미메시스 방식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에서는 단테 이후에 리얼리즘이 전개되는 과정을 추론함으로써, 향후의 대작인 『미메시스』를 예고한다. 미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마이클 더다는 최근에 새롭게 나온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에 서문을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적으로 독창적인 문학 연구서라는 평가를 받은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는 그 책보다 앞서 나온 그의 출세작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에 크게 빚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이미 다루어진 여러 개념들인 미메시스, 피구라, 스타일, 개인의 운명, 개인과 사회의 통합, 리얼리즘 등을 여러 작가들에게 확대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테를 해설하는 가장 쉬운 책은 아닐지 몰라도, 단테를 가장 훌륭하게 설명한 책이다.”
불멸의 역작 『신곡』을 통해 근대 유럽 문학의 지평을 연 단테
최고의 단테 연구자인 아우어바흐가 추적한 단테의 삶과 그가 그리고자 했던 세계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대표작인 이 저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곡』은 예술과 리얼리티에 대한 관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관념은 후대의 모든 시인들과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단테는 인간을 도덕적 타입의 추상적 혹은 전설적 존재로 정식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을 잘 알려진, 역사의 제약을 받는, 생생한 인물로 파악한다.
이 책은 먼저 호메로스에서 시작하여 프로방살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묘사(미메시스)되어 있는지 그 사상과 역사를 추적한다. 이어 이런 사상의 흐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단테의 초기 시를 논의하고, 그 다음에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과 단테의 정치적 활동을 서술한다. 『신곡』에 영향을 준 여러 가지 영향들―가령 베르길리우스, 신학자와 철학자들, 프로방살 시인들―이 논의된다. 이어 『신곡』이 물리적 질서, 도덕적 질서, 역사 정치적 질서 위에 구축된 구조를 탐구한다. 『신곡』의 주제와 교훈으로부터 그 시적 아름다움이 생겨나온다고 주장하면서, 아우어바흐는 이런 근본적인 주장을 편다. 즉, 단테는 시 속에 인간의 생생한 현존의 감각을 재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현은 단테 이전에는 완전하게 성취된 적이 없으며, 그의 재현은 서구 예술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미메시스의 항구적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
그리스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유럽 문학은 하나의 독특한 통찰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란 몸(외양과 신체적 힘)과 정신(이성과 의지)으로 이루어졌고, 그 둘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일체이며, 인간의 개인적 운명은 그 일체감으로부터 나온다는 통찰이다. 그런 일체감은 하나의 자석이 되어 그 일체감에 걸맞은 행위와 고통을 끌어당긴다. 바로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하여 호메로스는 개인에게 벌어지는 운명의 구조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는 몸과 정신의 일체감으로부터 나오는 행위와 고통을 창조하고, 또 그런 것들을 열거함으로써 아킬레스, 오디세우스, 헬레네 혹은 페넬로페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호메로스의 창조적인 정신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행위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필연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그런 행위들은 아예 첫 번째 행위부터 그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며, 그 첫 번째 행위를 바탕으로 하여 여러 유사한 행위들이 선후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되는 가운데, 그 사람이 걸어가는 인생에 일정한 방향을 잡는다. 등장인물은 불가피하게 그런 사건들의 실타래 속에 엮여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그 인물의 성격은 물론이요 운명을 결정한다. -25쪽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중 오디세우스와 나우시카가 만나는 장면의 미메시스는 일상적 사건들이 날카로운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두 인물이 갖고 있는 본성과 본질, 그리고 두 사람에게 걸맞은 운명 등의 아프리오리(a priori, -?r) 관념으로부터 미메시스의 자연스러운 진실이 흘러나온다. 이런 관념이 작용하여 오디세우스와 나우시카가 만나는 상황이 생겨나고, 일단 그 관념이 자리 잡으면 허구를 진실로 바꾸어 놓는 서사가 저절로 뒤따라온다. 이렇게 하여 호메로스의 묘사는 있는 현실을 그냥 베끼기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시인은 실제 생활에서는 불가능한 사건을 얘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이 밝혀 주는 해당 인물의 사전 관념을 이미 머릿속에 갖고서 미메시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29쪽
비극은 서사시적 신화에서 나왔다. 하지만 서사시와 구분되는 고유의 형식을 개발하면서 비극은 점점 더 현실적 결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등장인물과 그의 운명은 한 순간에 폭로되고 그 둘(인물과 운명)은 그 운명의 순간에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온전한 하나가 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등장인물은 점진적 해명의 과정을 통하여 그의 운명으로 다가가고, 그 주인공의 종말이 반드시 스토리 속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고대의 비극은 주인공의 종말을 폭로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다양성을 발휘할 수가 없고, 또 그런 종말로부터 도피할 수도 없다. 암호가 환히 해독된 상태로, 그의 처참한 운명은 낯선 이방인처럼 주인공 앞에 우뚝 선다. 그의 내밀한 존재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비극의 주인공은 자신의 개별적 삶을 삼켜버리려고 하는 보편에 맞서서 자기 자신을 옹호하려 한다. 그는 그 자신의 다이몬(δα?μων, 운명)에 맞서서 승산 없는 최후의 싸움을 벌인다. -30쪽
이데아 이론을 수정하여 예술에 적용하려는 첫 번째 중요한 걸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이다. 그 미학이 이데아 이론의 역사적 발전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지만, 플라톤 이론처럼 의미 깊은 것은 아니다. 특히 구체적 예술 작품에서 감수성(영감)과 형이상학(철학)이 작용하는 각각의 분야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플라톤 이론이 더 중요하다. 자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살펴보자. 그는 본질이 현상 속에서 스스로 실현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개별적 형태가 자기실현을 통하여 실재 혹은 실체가 된다는 이런 가르침은 미메시스의 개념에 새로운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38쪽
베르길리우스의 비전을 기존의 종말론적 전통과 구분시켜 주는 것은 그 예술적 기법뿐만이 아니다.8) 물론 그 기법도 상당히 중요하다. 그는 헬레니즘 지중해 세계의 모호하고, 산발적이며, 지하에 숨어 있고, 비밀스러운 지혜를 그의 시적 기교를 통하여 환한 대낮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더 중요한 업적을 달성했다. 그는 지중해 연안의 어두운 지혜를 가져다가, 오래 대망해온 신생 로마 제국의 세계 질서 속에다 구체적 형태로 제시했다. 이것이 그의 시가 갖고 있는 시적 위력과 예언적 힘의 뿌리이다. 경건한 아이네이아스는 고난과 혼란을 벗어나서 온갖 유혹과 위험을 이겨내며 자신의 정해진 목표에 도달한다. 이런 성격과 운명의 일치는 고대 문학에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45쪽
베르길리우스의 세계관은 그가 직시하는 역사 발전의 진리를 따라간다. 그 세계관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고, 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진정한 예언자이다. 그가 예언자가 아니라면 예언자라는 용어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이 세계의 역사 속에다 그는 최초의 위대한 러브 스토리를 엮어 넣었고, 그 스토리의 형식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모든 세부사항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그 러브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볼 때 걸작이며, 유럽 문학에서 노래하는 연애시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 -46쪽
기독교의 역사적 핵심─ 그러니까 십자가의 처형과 그에 관련된 사건들─은 더 과격한 역설, 아주 폭넓은 모순을 제시한다. 역사 속에서나 신화의 전통 속에서나, 고대 세계에 그런 역설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갈릴리 사람의 멋진 예루살렘 입성, 그가 신전에서 보여 준 행동, 갑작스러운 위기와 격변, 사람들의 무자비한 조롱, 유대인의 왕(그는 조금 전만 해도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싶어 했다)에 대한 채찍질과 처형, 제자들의 한심스러운 도주, 그리고 몇몇 사람의 비전, 겐네사렛 호수 출신의 어부인 베드로 단 한 사람의 비전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예수 신격화, 이런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서구 문명 세계의 내적·외적 역사에 아주 엄청난, 일찍이 그 유례가 없는 변모를 가져왔다. 그 에피소드들은 모든 면에서 정말로 무척 놀랍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그 당시 일어난 일을 명확하게 구성해 보려는 사람은 깊은 당혹감을 느낀다. 신화와 교리는 신약성경의 책들 속에서 그리 강하게 제시되지 않는 반면, 그 속에 묘사된 여러 사건들의 엉뚱하고 역설적이고 조화되지 않는 특징은 고비마다 아주 사실적으로 튀어나온다. -47쪽
헬레니즘 멜팅폿(용광로)은 동방의 신비 종교들을 받아들인 데다 신플라톤주의의 영성이 너무나 많이 스며들어가 있어서, 구체적인 역사적 혹은 신화적 형태의 성육신(말씀이 사람으로 된 것, 즉 그리스도)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의 스토리가 전반적으로 재해석되었다. 그 사건들과 사람들은 천상적인 혹은 형이상학적인 상징들로 변모되었다. 역사적 요소는 그 자율성과 내재적 의미를 잃어버리고 단지 정교한 합리적 추론에 동원되었다. 그 추론은 원래의 그리스도 스토리에서 제 모습을 잘 알아보기 어려운 파편들만 취하여, 저 괴이한 리얼리티 혹은 모호하고 심오한 종말론만 이끌어냈다. -55쪽
서방 교회는 일부 교리상의 혼란을 빚기는 했지만 한결 같은 끈기로 신플라톤주의의 영성주의에 맞서 왔고, 또 지상의 그리스도 스토리를 구체적 사건으로 확신했다. 서방 교회는 그 스토리가 역사의 중심적 사건이라고 보았고, 역사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개인들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동방 교회에서는 영성주의적 견해가 득세하여 예수의 생애를 승리의 예식으로 변모시켰다. 서방 교회에서는 감동적인 리얼리티의 직접 체험인 복음 스토리에 대하여 미메시스를 옹호하는 태도가 나타났다. 이러한 발전의 사상적 터전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서 발견된다. -57쪽
중세 초기의 역사학은 인간의 사건관v件? 심지어 동시대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둔감해졌는지 잘 보여 준다. 로마화한 고딕 연대기와 프랑크 연대기들은 그들 주위에서 현재 벌어지는 잡다한 사건들을 전혀 다루지 못한다. 연대기 속의 이야기들은 조잡하다. 고대 후기의 심리적 통찰은 권력 지향적인 당대(중세 초기)의 원시적 본능에 의해 둔화되었고, 아무런 특징이나 강조점 없는 난폭한 사건들이 계속 된다. 연대기 전편을 통하여 현재 다루어지는 자료와는 전혀 관계없는 관념적 주장만이 어른거린다. 영성주의는 진부한 합리주의로 전락했다. 가령 하느님은 진정한 신자들에게 언제나 승리를 가져다주고 이교도와 이단자들은 언제나 패배시킨다는 믿음이 좋은 사례이다. 완고한 교리주의자들(연대기 작가들)은 문화적 세련미와 신화적 운명관이 없기 때문에 사건들을 해석하여 살아 있는 전체로 엮어내지 못한다. 그들은 각종 자료를 그들의 관점에 연결시키지 못하고 단지 때때로 해설 형식으로 혹은 다른 편리한 형식으로 진술할 뿐이다. 아니면 사건들이 그냥 제멋대로 전개되는 방식으로 집필해 나간다. -60쪽
기사도적 서사시 속에 나타난 크리스천 전사 ?‘이상’은 신플라톤주의의 산물이다. 이 사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멋진 시들이 많은데, 가령 볼프람의 『파르치팔』은 위대한 유럽시의 전형으로서 이 시속에서 크리스천 전사의 이상이 완벽하게 구현된다. 캐릭터들(등장인물)과 그들의 운명은 서사시적 다양성을 유지하며, 『파르치팔』의 통일성은 정화 ?U와 성화qU로 다가가는 플라톤적 상승?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승에 독일적인 주제들이 멋지게 가미된다. 이 시 속에서 지상의 존재가 아주 밝게 빛난다. 그리하여 아주 특수하며 또 시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의 삶도 고상한 영성으로 변하게 되고, 이런 변모의 과정이 서사시의 세부사항 속에 드러난다. 하지만 중세 영성의 가장 심오한 효과는 세속적 사랑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서 발견되는데, 그 사랑은 프로방스에서 처음 등장하여 그 후 유럽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65쪽
프로방살 시는 프리드리히 2세의 궁정에 의하여 남부 이탈리아에 도입되었다. 외국에서 유행한 이 시는, 북부 이탈리아와 토스카나의 도시들에도 도입되었으나 그리 좋은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그 당시 이 지역들에서 제작된 조잡하고 현학적인 연애시들은 단테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이 단테의 선배 시인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모습이 알려지게 되었다. -72쪽
스틸 누오보 시를 해석하려 드는 것이 쓸데없고, 또 어리석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의 모호함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려 들거나 각각의 개별적 시들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해석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시에는 기이한 사항들이 아주 많이 발견되고, 서로 다른 시인들 사이에서 내용과 표현이 많이 중복되며, 또 소수의 뽑힌 사람들에게만 이해 가능한 비밀스러운 의미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스틸 누오보가 단지 문학적 규약 혹은 유행이었다는 견해가 나오는데, 이것은 내가 볼 때 문제의 핵심을 간과한 것이다. 물론 “문학적 규약”이라는 말이 아주 폭넓게 적용되어 때때로 정곡을 찌르기도 하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시기에 그리고 중세 내내, ‘문학적’이라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 비로소 그렇게 된 것처럼 자율적 개념이 아니었다. -77쪽
프로방살 시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이 대부분이고, 논리적 연계는 아주 간단하거나 막연하거나 모호하다. 시행도 8음절로 된 짧은 시행을 선호하고 이 때문에 통통 튀는 리듬만 생겨날 뿐, 가장 고상한 노래(superbissimum carmen)라고 하는 11음절 시행의 유장한 리듬은 창조되지 못한다.31) 물론 프로방살 시인들 중에 예외도 있고 특히 후대의 시인들과 트로바르 클뤼 시인들은 논리적 구조를 세우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적인 절반의 노력, 절반의 무능으로 인해, 그 논리 구조는 변덕스럽고 불분명하고 순조롭지 못하다. 그리하여 실제에 있어서는, 순수 서정주의를 추구한 초창기 시들이 애매모호한 주지주의를 표방한 후대의 트로바르 클뤼보다 더 가락이 아름답고, 또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선배든 후배든 프로방살 시에서 조화로운 논리적 구조와 부드럽게 흘러가는 시행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96쪽
단테 초기 시의 통일성─구체적이고 뚜렷한 주제를 가진 다른 단테 시들에서는 통일성이 더욱 돋보이지만─은 합리적 특성이 아니라 비전적 특성에서 나온다. 시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은 어떤 특징들을 열거함으로써 환기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 중심으로부터 생생하고 리얼하게 솟아난다. 바로 이것이 단테의 이미지들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미지들은 밝게 빛나고 아주 생생하며, 힘을 소망하면서 힘을 얻는다. 어디에서나 단테는 아주 확정적이고 독특한 상황의 중심에 서서 그곳으로부터 발언한다. 어디에서나 그는 독자를 그 상황 속으로 끌어들인다. 독자들의 공감이나 승인 혹은 지적 존경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는 자신이 환기하는 리얼한 상황의 극단적 구체성 속으로 독자들이 뛰어들기를 바란다. -105쪽
중세 예술의 거의 모든 매너리즘 작품이 그러하듯이─이것은 16세기의 진짜 매너리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그 시들은 신플라톤주의를 근원으로 하는 영성주의를 구체화한다. 이것은 강력한 주관적 신비주의로서, 아이디어를 획득하면서도 독특하고 특수한 외양을 보존하기 위해, 감각적 외양을 해석하고 승화하는 신비주의이다. 그렇지만 이들 시인은 이데아와 외양을 결합시키는 작업에서 실패했다. 영혼의 깊이와 외부세계의 번쩍거리는 현상을 종합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원천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은유는 표적을 벗어나 공허하고 흐릿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주제와 밀착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변덕스럽고, 공상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구조의 내적 통일성을 지향했으나, 그들이 막상 손에 쥔 것은 순전히 기교적이고 외부적인 통일성에 불과했다. -120쪽
육신이 된 완벽함의 신화에는 서로 근원이 다른 다양한 모티프가 엮여 있다. 베아트리체는 기독교의 성인인가 하면 고대의 시빌이다. 세속의 사랑받는 여인으로서, 그녀는 젊은 남자의 로망이지만 그녀의 육신은 흐릿하게 묘사된다. 천상 위계제의 일원으로 변모하면 그녀는 리얼한 존재가 된다. 이 개념의 독창적인 점은 처음엔 우리에게 기독교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트루바두르들은 이미 연애시에 기독교적 주제를 도입했고, 또 세속적 고통과 세속으로부터의 물러남 등을 성인 컬트의 주된 특징으로 삼았다. 하지만 베아트리체에게는 그런 특징이 없다. 또한 베아트리체 신화에서 발견되는 은밀한 진리의 계시라는 교훈적 요소는 고대 후기의 혼합주의를 연상시키는 것으로서 순수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다. -138쪽
베아트리체의 세속적 생활과 인간적 고통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생활과 고통은 거기에 들어 있다. 우리는 그녀가 세속적 인물로서 뿜어내는 체취를 맡을 수 있다. 그 인물은 젊고 아름다웠으며 고통을 느꼈고, 그리고 죽었다. 우리는 그녀의 변신을 목격하고 그 속에서 그녀의 세속적 형태와 우연성이 보존되고 현양된다. 따라서 『신생』은 오늘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품질이 고르지 못한 초기작도 아니고 독립적 가치가 없는 작품도 아니다. 물론 여러 군데에서 애매하고, 또 그 스타일에 과장이 심하다. 하지만 이런 과장은 주제의 기독교적 성질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단테가 ‘완벽함’과 세속적 취약함과 불확실성을 의식적으로 종합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런 근원에서 생겨난 애매한 사항들은 진정한 기독교적 미메시스의 작품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신약성경이 특히 그러하다. -140쪽
생애 마지막까지 이승에서 그의 활동적 생활은 그의 청춘에 의해 미리 예고되었다. 젊은 날의 열정적·시적 체험 속에서 피, 교육, 지식, 정치적·철학적 경향이 그의 개성과 융합되었고, 이렇게 획득된 통일성은 시적인 것이었다. 단테의 전 생애가 시적이었고, 그의 전 인격이 시인의 인격이었다. 그는 스토아-에피쿠로스학파를 좇지도 않았고, 속세로부터 초연히 벗어난 낭만주의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추상적인 생각·명상·꿈에도 탐닉하지도 않았다. 베아트리체의 마법 같은 인사를 받은 남자는 내적인 권위에 더하여 관대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것 덕분에 단테는 자기 생활의 가장 개인적 면모들을 우주적 맥락 속으로 엮어 넣을 수 있었고, 자신의 개인적 운명을 통하여 세상의 우주적 질서에 새로운 형식을 부여했으며, 기독교적 우주의 위대한 드라마를 펼쳐 보일 수 있었다. 그의 생애에서 그가 한 행위와 노력은 시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시적 비전은 행동과 실천적 이성의 근원이며 증명이었고, 비전이 곧 그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141쪽
단테는 실용을 무시하는 이데올로기주의자는 아니었다. 피렌체에서 성장하면서 일찍부터 실용적인 정치 활동을 훈련받았다. 그는 도시 계획 위원회에 근무했고 아주 상업적인 사회에서 살았으며, 그의 유배 생활 중 온정을 베푼 군주들은 그의 외교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또 활용했다. 그는 기존 정치적 움직임과 당파 활동에서 크게 성취하지 못했고, 거의 완벽한 외톨이 생활을 했으며 또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생애 말년을 정치적 영향력 없이 가난한 유배자로 일관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살아 있는 역사적 세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런 세력을 완전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가 볼 때 ‘역사’와 ‘발전’이라는 개념들은 그 자체로 아무런 타당성이 없었다. 그는 사건들을 해석할 기준을 찾아보았으나 혼란만 발견했을 뿐이다. 어디에서나 개인들이 불법적인 야망을 품고서 전진했고, 그 결과는 혼란과 재앙이었다. -146쪽
단테는 스틸 누오보의 확대적d?r 드라이브를 더욱 발전시켰고 이 덕분에 느낌과 신비적 체험의 영역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가 인생의 제2단계인 청년기─『향연』1)에서 이 시기를 가리켜 인생의 꼭짓점이라고 했다─에 들어섰을 때, 그의 생기발랄함과 내적 기준은 아주 원숙하게 무르익었다. 그런 청춘의 힘을 바탕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공직 생활과 철학적 교리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고, 이 둘을 결합하여 그의 심성에 걸맞은 것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152쪽
단테가 위대한 칸초네들과 『향연』을 쓰기 이전에, 스틸 누오보의 세계는 저 혼자 별도로 뚝 떨어져 있는 세계였다. 스틸 누오보는 기사도적 이상에서 생겨났고, 프로방스에서 정신적으로 세련되었으며, 그 후 이탈리아로 건너와 귀니첼리에 의해 그 사회적 뿌리가 제거된 문학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그 애매한 용어와 은유 때문에 인공적인 스타일이라는 비난을 모면하기 어려웠다. 이어 당시의 교훈적 철학과 관련된 합리적 요소들이 점점 스틸 누오보 시에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고상한 자기단련인 사랑의 개념은 점점 윤리적 특성을 띠면서 구원이라는 신비적 교리를 암시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스틸 누오보는 신비주의적이었고, 사랑의 열정을 주로 다루는 귀족적 게임이었다. 그것은 실용 정치나 스콜라 철학과는 무관했고, 설령 관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희미하고 개인적인 관계만 있었다. -153쪽
비극의 궁극적 운명은 죽음 혹은 그에 가까운 어떤 것이다. 보편적 운명이 일단 저 멀리서 등장하면 그 운명은 주인공의 현세적 터전으로부터 그를 이동시켜 그의 옛 존재와 행위를 무??상태로 축소시키면서 그의 온 존재를 그 종말의 특별한 상황에다 집중시킨다. 비극의 맨 마지막에 가서 발생하는 것은 결국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의 메커니즘이고, 그것은 운명의 선고를 집행한다. 이렇게 하여 비극은 궁극적이고 극단적 집중 속에서 개인의 에토스를 제시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비상한 상황 속에서 그의 현세적 리얼리티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오로지 죽음에 의해서만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죽음 이후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것은 자아-실현이 아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주인공이 그 상황으로부터 도피하여 그림자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191쪽
『신곡』의 주제 자체가 단테에게는 엄청난 자유를 부여하며, 또 그 자유를 마음껏 활용하라는 커다란 의무를 부과한다. 그리하여 인간들에 대한 모든 역사적 지식, 남들의 생애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신곡』 속으로 홍수처럼 밀려든다. 여기에는 단테의 비판적 판단과 열정적이면서도 예리한 감성이 크게 작용했다. 단테의 천재성과 불운한 생애가 만들어낸 인간적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단테는 그 자신 그대로 있으면서 각 캐릭터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일천 가지 언어들을 말할 수 있었지만 그 언어는 언제나 단테의 언어였다. -192쪽
신성으로 변모한 애인이 개입하고, 그녀의 도움으로 지옥과 연옥을 여행한다는 것은 방랑자가 젊은 날의 영감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소년 시절 단테가 겪었던 첫 체험과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이 연옥의 꼭대기에서 반복된다. 그의 도정???감각에서 출발하여 지식과 운명을 거쳐 감각에 대한 제2차적, 비전적 체험으로 나아간다. 이 모든 단계에서 신적 질서는 이렇게 작용한다. 처음에는 압도적 암시로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올바른 행동을 지향하는 의지의 충동으로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단테의 노력을 완수시키고 가지성(可 ?g: 신)을 계시하는 현현으로 나타난다. -207쪽
인간의 윤리적 성질은 그의 자연적인 성향 혹은 기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 만큼 인간의 윤리적 성질은 언제나 선량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이고,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어떤 선함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최고선과 선의 원천은 곧 하느님이다. 인간의 이성(anima rationalis)은 하느님에 대한 절실한 사랑을 지상 생활의 주된 목표로 선택할 수 있고, 명상적 생활(vita contemplativa)을 통하여 가장 높은 지상적 ??r 탁월함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 기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성은 하느님에 대한 매개된 사랑을 선택하여(하느님의 피조물들에 대한 사랑을 매개로 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 -옮긴이), 그분의 피조물들, 특히 지상의 선한 것들에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이 후자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활동적 생활로 유도하고 그 생활은 아주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그 매개된, ‘2차적인’ 선한 것들에 대한 사랑이 적절한 절제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활동적 생활(vita activa)의 미덕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자연의 사랑(자연 속에 있는 선한 것들에 대한 사랑)은 과도함이나 대상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부패될 수 있다. 이런 부패가 죄악인데 그 원천은 언제나 과도하거나 오도된 사랑에 있다. -217쪽
단테가 활동한 도시 피렌체는 이런 사악함의 세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했다. 단지 그 의 고향 도시이기 때문에 그런 지위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고향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동경, 그 자신의 씁쓸한 인생 체험 때문에, 그가 이 도시의 사악함을 더욱 강력하게 비난한 것은 이해가 된다. 단테의 개인적 동기나 그 도시에 대한 개인적 유대관계를 떠나서도,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 중에서 특히 피렌체는 단테가 말한 절대악의 가장 분명한 사례이다. 바로 이 도시에서 새로운 상업적 중산층 정신이 처음 개화했고, 시민들은 자의식을 가졌다. 바로 이 도시에서 정치 세계의 형이상학적 기반들이 사상 처음으로 재검토되었다. 피렌체는 그 자체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관된 실용 사상에 입각하여 그 기반들을 재평가하여 다시 활용했다. 또 이 도시에서 모든 세속적 제도가 그 초월적 원천이나 권위와는 상관없이 냉정한 이해타산 속에서 재고되었다. 그러니까 피렌체 사람들은 세속적 제도를 세력 게임의 한 가지 요소로만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주도적인 현상이 되었다. -252쪽
단테는 저승을 여행하면서, 영혼들의 궁극적 운명을 표시하는 저승의 각 단계에서 그가 예전에 친히 알았던 혹은 그 생애에 대해서 들어 알았던 사람들의 영혼을 만난다. 『신곡』에 대해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 상황을 잘 생각해 보면, 그 만남이 환기하는 정서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 그 만남이 가장 진실하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인간적인 표현의 자연스러운 장 이 되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다. 그 만남은 이승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승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우연하게 만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본질이 부분적으로만 표출된다. 또 활기차게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강렬한 속도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이 어렵고, 그래서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만남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또 단테와 영혼들의 만남은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 개인들의 개성이 말살되어 버린 그런 저승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 저승은 이승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베일에 가려진 기억 혹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270쪽
낮은 상태에 있는 영혼들은 세상의 소식을 알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이 아직도 이승에서 기억되고 있는지 아주 궁금해 한다. 그러나 이런 열망은 연옥에 올라가, 다른 기독교적 즐거움의 모티프와 뒤섞이면서 희석된다. 천국에서는 영혼이 즐거움을 얻는 원천은 그 선택받은 손님(단테)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에 있다. 저승에 모여 있는 모든 영혼들, 각 시대와 나라의 사람들, 저마다의 지혜와 우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선과 악, 세상에 대한 사랑과 증오, 한 마디로 역사의 요약인 이들은 그들을 찾아온, 살아 있는 단테에게 말을 하고 싶어 한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왜 그런 궁극적 운명에 도달했는지를 더 명료한 언어로 말하려 한다. -280쪽
단테 이전의 시인으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업한 시인이 있었는가? 분명 없었다. 고대나 중세의 시인들이 어떤 인물의 전반적 개성을 묘사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그 인물이 영위했던 삶의 서사시적 광폭에서 본질을 빼내온다. 그들은 그 삶의 축약만을 제시하려고 할 때, 그 인물의 전인 ?ダ?묘사할 생각은 아예 없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 질투하는 사람, 대식가, 귀찮은 사람 등을 묘사하려 한다면 오로지 사랑, 질투, 대식, 귀찮음 등만 말한다. 많은 것을 ‘생략’하면서도 어떤 인물의 전인을 묘사하고자 하는 고전 비극조차도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필요로 한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고대 비극 시인은 집어넣을 것과 생략할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하여 비극의 주인공은 운명이 그 자신에게 제시한 질문에 점점 더 분명하고 확정적인 답변을 한다. 또 그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질문에도 대답을 한다. -284쪽
단테 자신이 직접 알았거나 소문으로 들어서 알았던 사람들을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전설적 인물을 다루는 데서도 단테는 그들의 생애의 우발적이고 특수한 세부 사항들로부터 몸짓과 운명의 총합을 이끌어낸다. 그는 중세 역사가들의 기록들─감각적 이미지가 아주 부족한 자료─로부터 리얼하고 선명한 인물을 걸러낸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이 모두 유럽인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것은 아니다. 그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후대에 들어와 고대의 정신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보가 발굴되면서 종종 수정되었다. 하지만 그런 교정도 단테가 먼저 작업을 해놓은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가령 손에 칼 든 호메로스16)는 나폴리의 흉상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299쪽
단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의 비전은 명료하고 정확했다. 그는 그저 구경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듣거나 읽어서 아는 사건들은 종종 난해한 성격을 띠고 있어도 단테의 손을 거치면 생생한 이미지로 거듭났다. 그는 인물들의 어조를 들었고, 그들의 움직임을 보았으며, 그들의 감추어진 충동을 파악했고, 그들의 생각을 읽어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된다. 이런 통합성으로부터 단테는 인물을 형상화한다. 단테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동작을 가리켜 한 이탈리아 학자는 형성적 재현이라고 한 바 있거니와, 그 동작들은 결코 한가한 관찰을 그냥 적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 동작은 현재 서술되는 사건에 기반과 한계를 두고 있다. 그 동작은 인물의 신체적 존재를 드러내지만, 이런 동작과 신체의 일치는 필연적으로 개인적 성격과 사건의 일치에서 흘러나온다. -303쪽
사후 영혼의 상태(status animarum post mortem)라는 주제는 시인에게 제약을 가한다. 시인은 각 개인별로 그에 합당한 정의 ?u가 부과된다는 기독교적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단테는 개인이라는 아이디어에 구체적 형태를 부여해야 한다. 인물들의 외부적 발현에는 우발적이거나 시간적인 것(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하는 것)은 제외되어야 하지만, 정작 개인 그 자신은 이승에서 지녔던 정신과 신체의 통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그 개인은 신적 질서에 따라 고통을 받거나 아니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저승에서 시간적 관계들은 종료되지만 개인의 현세적 형태, 그러니까 현세에서 했거나 받았던 행위와 고통들의 결과는 그대로 보존된다. 현상에서 순수 관념을 이끌어내는 철학적 방식과 아주 비슷하게, 『신곡』은 현세적 외양으로부터 신체와 정신이 하나 된 진정한 개성을 뽑아낸다. 이 작품은 관념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현존을 창조한다. 그것은 신체가 부여된 정신이며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두 필연적이고, 합일적이며, 본질적인 것이다. 모든 외양들은 저승의 진정한 질서 속에서 자리를 잡아들어 가고 바로 이것이 『신곡』의 필연적 리얼리티의 원천이다. 그 리얼리티는 단테가 독자들에게 약속하는 생명의 양식(vital nutrimento)이다. -313쪽
시의 언어는 각운과 운율의 단단한 족쇄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반항한다. 특정 시행과 문장의 형식은 아주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얼어버리거나 굳어버린 시인을 암시한다. 그 시행들은 괴이할 정도로 명료하고 표현적이지만, 동시에 이상하고 오싹하고 초인적이다. 바로 이 때문에 단테는 일반 대중의 마음속에서 미켈란젤로와 함께 연상된다. 단테는 그 어떤 중세의 문장가보다 자연스러운 어순에서 빈번하게 또 과도하게 벗어난다. 갑자기 하모니에 대한 고려 없이, 어떤 시행을 일상적 어휘로 구성된 아주 산문적인 문장 바로 옆에 배치한다. 단테는 이런 수법을 베르길리우스와 고전 시학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의 시행은 언제나 하모니를 배려했고, 고전시의 언어들은 일정한 시어의 순서를 규정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 전통에 입각하여 시어의 장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점검하고, 또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했다. 단테는 시적 일탈을 하면서도 조화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327쪽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기독교의 중세적 세계관이 17세기와 18세기의 합리주의에 의해 휩쓸리면서 비로소 인간 사회의 통합성에 대한 새로운 실용적 견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단테의 저작은 유럽 사상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단테의 사망 직후에, 아니 심지어 그의 생전에 문학적·문화적 사회 구조는 스콜라주의에서 휴머니즘으로 완벽하게 바뀌었고, 이러한 변화에 단테는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변화는 필연적으로 『신곡』과 같은 명확한 사상체계를 갖춘 작품의 영향력을 제한했다. -345쪽
단테의 창작 행위는 그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의 시는 그의 교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특별한 케이스이고, 그는 시적 과정의 성질에 대하여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리얼리티를 모방하는 기술은 단테 저작의 밑바탕이 되었던 전제 조건들과 무관하게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단테 이후의 시인이나 예술가는 인간 개성의 통합성을 지각하기 위해 궁극적·종말론적 운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테 이후의 작가들은 순전히 직관적인 힘을 발휘하여 내적인 관찰과 외적인 관찰을 하나의 전체로 통합시킬 수 있었다. -347쪽
단테에 이르러 역사적 개인은 신체와 정신이 온전하게 통합된 존재로 재탄생했다. 그는 오래된 사람인가 하면 새로운 사람이다. 그는 전보다 훨씬 큰 힘과 폭을 가지고서 오랜 망각으로부터 솟아났다. 이런 새로운 인간관을 탄생시킨 기독교 종말론은 그 통합성과 활기를 잃어버리게 되지만, 인간의 운명이라는 사상은 유럽인의 정신에 깊숙이 침투하여, 아주 비` 기독교적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기독교적 힘과 긴장이 보존될 정도였다. 바로 이것이 단테가 후대에 안겨준 선물이다. -349쪽
▣ 작가 소개
저자 : 에리히 아우어바흐 Erich Auerbach
1892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처음 하이델베르크에서 법률 공부를 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한 뒤 예술사, 언어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1921년에 로망스어로 학위를 받았다. 비코의 『새 학문』을 번역했고, 1929년에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을 내어 학계의 인정을 받았으며, 이어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로망스어 문학을 가르쳤다. 이후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박해하자 이스탄불로 가 터키 국립대학에 재직하면서 『미메시스』를 썼다.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프린스턴 대학, 예일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57년 세상을 떠났다.
역자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에라스뮈스』,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평생독서계획』, 『루스 베네딕트』, 『문화의 패턴』, 『폴 존슨의 예수 평전』, 『신의 용광로』, 『게리』, 『정상회담』, 『촘스키, 사상의 향연』,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고전 읽기의 즐거움』,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성서의 역사』, 『축복받은 집』, 『만약에』, 『영어의 탄생』 등이 있고, 편역서로 『로마제국 쇠망사』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번역은 글쓰기다』, 『전문번역가로 가는 길』, 『번역은 내 운명』(공저), 『지하철 헌화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옮긴이의 말 7
제1장 미메시스의 인간관 25
호메로스의 미메시스 26 | 서사시와 드라마의 차이 30 | 플라톤의 미메시스 비판 32 |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적 미메시스 38 |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 43 | 예수 그리스도와 소크라테스 47 |기독교의 도래와 운명관의 변화 51 | 플로티노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상반되는 미메시스 사상 55 | 야만인을 위한 저급한 영성주의 58 | 중세 교회 내의 미메시스 회복 60 | 중세의 미메시스: 자연주의와 영성주의의 융합 63 | 프로방스 문화와 중세의 연애시 66
제2장 단테의 초기 시 70
프로방살 연애시의 특수성 71 | 프로방살 시를 이탈리아에 정착시킨 구이도 귀니첼리 73 | 스틸 누오보(새로운 스타일) 시의 본질적 주제 77 | 스틸 누오보의 새로운 목소리 79 | 단테, 귀니첼리, 카발칸티의 연애시 81 | 단테 시와 기타 시의 비교 84 | 돈호법의 적절한 활용 91 | 이탈리아 시의 논리적 구조 95 | 감성과 이성을 종합한 비전 100 | 단테 시의 비전적 성격 105 | 숭고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108 | 느낌의 변증법 112 | 단테의 문장론 114 | 아르노 다니엘의 영향 118 | 각운과 구문의 종합 123 | 단테 초기 시
의 요약 131 | 단테의 성장 환경 133 | 베아트리체의 의미 136 | 『신생』의 의의와 가치 140 | 1300년대의 이탈리아 정치 상황 142 | 단테의 정치사상 145 |초월과 변모에 대한 동경 148
제3장 『신곡』의 주제 152
『신곡』에 이르는 전사 ?~ 153 | 토미즘과 코르 젠틸레의 결합 157 | 아퀴나스와 단테 159 | 『향연』이 저술된 배경 162 | 이탈리아 구어로 글을 쓴 이유 165 | 『향연』이 미완성인 세 가지 이유 169 | 저승 여행은 중세의 오랜 전승 173 | 아퀴나스 철학의 영향 178 | 『신곡』에서 인물이 재현되는 방식 182 | 베르길리우스의 저승관 185 | 『신곡』은 현세적 리얼리티의 재현 189 | 단테 미메시스와 고대 미메시스의 차이점 193 | 『신곡』은 여러 세기에 걸친 사상과 지각의 표현 195 | 『신곡』의 드라마는 개인적 원한과는 무관하다 199 | 『신곡』은 신적 계획의 최종 질서를 보여 준다 202 |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역할 205
제4장 『신곡』의 구조: 물리적·윤리적·역사-정치적 체계 209
『신곡』의 물리적 체계 209 | 『신곡』의 윤리적 체계 216 | 연옥과 지옥의 죄악 분류법 219 | 단테는 낭만주의의 선구자 225 | 7대 죄악과 사랑의 결합 230 |지상 낙원의 기능 233 | 『신곡』의 역사-정치적 체계 237 | 월광천에서 지고천까지 240 | 인류의 1차 타락: 역사-정치적 체계의 시작 246 | 세상의 두 번째 타락 249 | 제2차 타락과 피렌체 정치 상황 252 | 단테의 정치적 예언 255 | 고대 신비 신앙의 흔적 259 | 키비타스 디아볼리와 키비타스 데이의 대립 262 | 『신곡』은 세속을 재현한 인간 드라마 266
제5장 『신곡』의 인물들이 재현되는 방식 270
삶과 죽음의 특별한 만남 270 | 브루테노 라티니와 로마 시인 스타티우스 274 | 포레세 도나티와 파리나타 우베르티 276 |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저승의 영혼들 280 | 한 번뿐인 리얼리티의 순간: 개요와 축약 282 | 기억과 자의식 285 | 단 하나의 사건: 생략과 내포 289 | 스스로 신화를 창조하는 단테 292 | 피구라의 개념 299 | 사건과 인물의 밀착된 재현 303 | 시적 형식: 은유와 변신 307 | 『신곡』의 궁극적 리얼리티는 신적 질서 312 | 시적 아름다움의 원천인 주제와 교리 316 | 시와 산문의 결합 319 | 리얼리티에 밀착하는 시어 323 | 저승은 여행하기보다 기록하기가 더 어렵다 325 | 고유의 시적 전통을 창조한 단테 328 | 형상화된 진리의 네 가지 요구 사항 334 | 리얼리티와 초인적 의지, 질서, 강력한 권위 338
제6장 리얼리티에 대한 단테의 비전: 그 존속과 변모 342
역사가 된 신화와 전설 343 | 페트라르카와 인간 자율성의 강조 346 | 개인의 운명과 근대의 미메시스 349
인명·용어 풀이 352
주석 422
해설 | 미메시스와 피구라 리얼리즘 438
단테 연보 453
찾아보기 459
국제적으로 독창적인 문학 연구서라는 평가를 받은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는 그 책보다 앞서 나온 그의 출세작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에 크게 빚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이미 다루어진 여러 개념들인 미메시스, 피구라, 스타일, 개인의 운명, 개인과 사회의 통합, 리얼리즘 등을 여러 작가들에게 확대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테를 해설하는 가장 쉬운 책은 아닐지 몰라도, 단테를 가장 훌륭하게 설명한 책이다. -마이클 더다
아우어바흐는 『신곡』이 영원하고 불변하는 주제(신)를 다루고 있지만 신적 질서의 리얼리티가 실은 아주 인간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단테에 대한 아우어바흐의 세련된 글쓰기는 읽어나가기가 너무나 즐겁다. 그의 글은 복잡하면서도 역설적인 통찰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때때로 니체를 연상시키는 대담한 진술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최고의 단테 연구자인 에리히 아우어바흐가 근대 유럽 문학의 지평을 연 단테의 삶과 그가 그리고자 했던 세계를 추적한 책이 연암서가에서 출간되었다. 아우어바흐의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은 단테 이전의 시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하여 단테의 초기 시가 형성된 과정, 『신곡』의 주제와 구조, 그리고 미메시스 방식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에서는 단테 이후에 리얼리즘이 전개되는 과정을 추론함으로써, 향후의 대작인 『미메시스』를 예고한다. 미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마이클 더다는 최근에 새롭게 나온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에 서문을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적으로 독창적인 문학 연구서라는 평가를 받은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는 그 책보다 앞서 나온 그의 출세작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에 크게 빚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이미 다루어진 여러 개념들인 미메시스, 피구라, 스타일, 개인의 운명, 개인과 사회의 통합, 리얼리즘 등을 여러 작가들에게 확대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테를 해설하는 가장 쉬운 책은 아닐지 몰라도, 단테를 가장 훌륭하게 설명한 책이다.”
불멸의 역작 『신곡』을 통해 근대 유럽 문학의 지평을 연 단테
최고의 단테 연구자인 아우어바흐가 추적한 단테의 삶과 그가 그리고자 했던 세계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대표작인 이 저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곡』은 예술과 리얼리티에 대한 관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관념은 후대의 모든 시인들과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단테는 인간을 도덕적 타입의 추상적 혹은 전설적 존재로 정식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을 잘 알려진, 역사의 제약을 받는, 생생한 인물로 파악한다.
이 책은 먼저 호메로스에서 시작하여 프로방살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묘사(미메시스)되어 있는지 그 사상과 역사를 추적한다. 이어 이런 사상의 흐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단테의 초기 시를 논의하고, 그 다음에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과 단테의 정치적 활동을 서술한다. 『신곡』에 영향을 준 여러 가지 영향들―가령 베르길리우스, 신학자와 철학자들, 프로방살 시인들―이 논의된다. 이어 『신곡』이 물리적 질서, 도덕적 질서, 역사 정치적 질서 위에 구축된 구조를 탐구한다. 『신곡』의 주제와 교훈으로부터 그 시적 아름다움이 생겨나온다고 주장하면서, 아우어바흐는 이런 근본적인 주장을 편다. 즉, 단테는 시 속에 인간의 생생한 현존의 감각을 재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현은 단테 이전에는 완전하게 성취된 적이 없으며, 그의 재현은 서구 예술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미메시스의 항구적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
그리스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유럽 문학은 하나의 독특한 통찰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란 몸(외양과 신체적 힘)과 정신(이성과 의지)으로 이루어졌고, 그 둘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일체이며, 인간의 개인적 운명은 그 일체감으로부터 나온다는 통찰이다. 그런 일체감은 하나의 자석이 되어 그 일체감에 걸맞은 행위와 고통을 끌어당긴다. 바로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하여 호메로스는 개인에게 벌어지는 운명의 구조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는 몸과 정신의 일체감으로부터 나오는 행위와 고통을 창조하고, 또 그런 것들을 열거함으로써 아킬레스, 오디세우스, 헬레네 혹은 페넬로페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호메로스의 창조적인 정신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행위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필연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그런 행위들은 아예 첫 번째 행위부터 그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며, 그 첫 번째 행위를 바탕으로 하여 여러 유사한 행위들이 선후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되는 가운데, 그 사람이 걸어가는 인생에 일정한 방향을 잡는다. 등장인물은 불가피하게 그런 사건들의 실타래 속에 엮여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그 인물의 성격은 물론이요 운명을 결정한다. -25쪽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중 오디세우스와 나우시카가 만나는 장면의 미메시스는 일상적 사건들이 날카로운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두 인물이 갖고 있는 본성과 본질, 그리고 두 사람에게 걸맞은 운명 등의 아프리오리(a priori, -?r) 관념으로부터 미메시스의 자연스러운 진실이 흘러나온다. 이런 관념이 작용하여 오디세우스와 나우시카가 만나는 상황이 생겨나고, 일단 그 관념이 자리 잡으면 허구를 진실로 바꾸어 놓는 서사가 저절로 뒤따라온다. 이렇게 하여 호메로스의 묘사는 있는 현실을 그냥 베끼기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시인은 실제 생활에서는 불가능한 사건을 얘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이 밝혀 주는 해당 인물의 사전 관념을 이미 머릿속에 갖고서 미메시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29쪽
비극은 서사시적 신화에서 나왔다. 하지만 서사시와 구분되는 고유의 형식을 개발하면서 비극은 점점 더 현실적 결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등장인물과 그의 운명은 한 순간에 폭로되고 그 둘(인물과 운명)은 그 운명의 순간에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온전한 하나가 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등장인물은 점진적 해명의 과정을 통하여 그의 운명으로 다가가고, 그 주인공의 종말이 반드시 스토리 속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고대의 비극은 주인공의 종말을 폭로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다양성을 발휘할 수가 없고, 또 그런 종말로부터 도피할 수도 없다. 암호가 환히 해독된 상태로, 그의 처참한 운명은 낯선 이방인처럼 주인공 앞에 우뚝 선다. 그의 내밀한 존재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비극의 주인공은 자신의 개별적 삶을 삼켜버리려고 하는 보편에 맞서서 자기 자신을 옹호하려 한다. 그는 그 자신의 다이몬(δα?μων, 운명)에 맞서서 승산 없는 최후의 싸움을 벌인다. -30쪽
이데아 이론을 수정하여 예술에 적용하려는 첫 번째 중요한 걸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이다. 그 미학이 이데아 이론의 역사적 발전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지만, 플라톤 이론처럼 의미 깊은 것은 아니다. 특히 구체적 예술 작품에서 감수성(영감)과 형이상학(철학)이 작용하는 각각의 분야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플라톤 이론이 더 중요하다. 자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살펴보자. 그는 본질이 현상 속에서 스스로 실현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개별적 형태가 자기실현을 통하여 실재 혹은 실체가 된다는 이런 가르침은 미메시스의 개념에 새로운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38쪽
베르길리우스의 비전을 기존의 종말론적 전통과 구분시켜 주는 것은 그 예술적 기법뿐만이 아니다.8) 물론 그 기법도 상당히 중요하다. 그는 헬레니즘 지중해 세계의 모호하고, 산발적이며, 지하에 숨어 있고, 비밀스러운 지혜를 그의 시적 기교를 통하여 환한 대낮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더 중요한 업적을 달성했다. 그는 지중해 연안의 어두운 지혜를 가져다가, 오래 대망해온 신생 로마 제국의 세계 질서 속에다 구체적 형태로 제시했다. 이것이 그의 시가 갖고 있는 시적 위력과 예언적 힘의 뿌리이다. 경건한 아이네이아스는 고난과 혼란을 벗어나서 온갖 유혹과 위험을 이겨내며 자신의 정해진 목표에 도달한다. 이런 성격과 운명의 일치는 고대 문학에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45쪽
베르길리우스의 세계관은 그가 직시하는 역사 발전의 진리를 따라간다. 그 세계관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고, 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진정한 예언자이다. 그가 예언자가 아니라면 예언자라는 용어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이 세계의 역사 속에다 그는 최초의 위대한 러브 스토리를 엮어 넣었고, 그 스토리의 형식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모든 세부사항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그 러브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볼 때 걸작이며, 유럽 문학에서 노래하는 연애시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 -46쪽
기독교의 역사적 핵심─ 그러니까 십자가의 처형과 그에 관련된 사건들─은 더 과격한 역설, 아주 폭넓은 모순을 제시한다. 역사 속에서나 신화의 전통 속에서나, 고대 세계에 그런 역설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갈릴리 사람의 멋진 예루살렘 입성, 그가 신전에서 보여 준 행동, 갑작스러운 위기와 격변, 사람들의 무자비한 조롱, 유대인의 왕(그는 조금 전만 해도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싶어 했다)에 대한 채찍질과 처형, 제자들의 한심스러운 도주, 그리고 몇몇 사람의 비전, 겐네사렛 호수 출신의 어부인 베드로 단 한 사람의 비전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예수 신격화, 이런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서구 문명 세계의 내적·외적 역사에 아주 엄청난, 일찍이 그 유례가 없는 변모를 가져왔다. 그 에피소드들은 모든 면에서 정말로 무척 놀랍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그 당시 일어난 일을 명확하게 구성해 보려는 사람은 깊은 당혹감을 느낀다. 신화와 교리는 신약성경의 책들 속에서 그리 강하게 제시되지 않는 반면, 그 속에 묘사된 여러 사건들의 엉뚱하고 역설적이고 조화되지 않는 특징은 고비마다 아주 사실적으로 튀어나온다. -47쪽
헬레니즘 멜팅폿(용광로)은 동방의 신비 종교들을 받아들인 데다 신플라톤주의의 영성이 너무나 많이 스며들어가 있어서, 구체적인 역사적 혹은 신화적 형태의 성육신(말씀이 사람으로 된 것, 즉 그리스도)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의 스토리가 전반적으로 재해석되었다. 그 사건들과 사람들은 천상적인 혹은 형이상학적인 상징들로 변모되었다. 역사적 요소는 그 자율성과 내재적 의미를 잃어버리고 단지 정교한 합리적 추론에 동원되었다. 그 추론은 원래의 그리스도 스토리에서 제 모습을 잘 알아보기 어려운 파편들만 취하여, 저 괴이한 리얼리티 혹은 모호하고 심오한 종말론만 이끌어냈다. -55쪽
서방 교회는 일부 교리상의 혼란을 빚기는 했지만 한결 같은 끈기로 신플라톤주의의 영성주의에 맞서 왔고, 또 지상의 그리스도 스토리를 구체적 사건으로 확신했다. 서방 교회는 그 스토리가 역사의 중심적 사건이라고 보았고, 역사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개인들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동방 교회에서는 영성주의적 견해가 득세하여 예수의 생애를 승리의 예식으로 변모시켰다. 서방 교회에서는 감동적인 리얼리티의 직접 체험인 복음 스토리에 대하여 미메시스를 옹호하는 태도가 나타났다. 이러한 발전의 사상적 터전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서 발견된다. -57쪽
중세 초기의 역사학은 인간의 사건관v件? 심지어 동시대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둔감해졌는지 잘 보여 준다. 로마화한 고딕 연대기와 프랑크 연대기들은 그들 주위에서 현재 벌어지는 잡다한 사건들을 전혀 다루지 못한다. 연대기 속의 이야기들은 조잡하다. 고대 후기의 심리적 통찰은 권력 지향적인 당대(중세 초기)의 원시적 본능에 의해 둔화되었고, 아무런 특징이나 강조점 없는 난폭한 사건들이 계속 된다. 연대기 전편을 통하여 현재 다루어지는 자료와는 전혀 관계없는 관념적 주장만이 어른거린다. 영성주의는 진부한 합리주의로 전락했다. 가령 하느님은 진정한 신자들에게 언제나 승리를 가져다주고 이교도와 이단자들은 언제나 패배시킨다는 믿음이 좋은 사례이다. 완고한 교리주의자들(연대기 작가들)은 문화적 세련미와 신화적 운명관이 없기 때문에 사건들을 해석하여 살아 있는 전체로 엮어내지 못한다. 그들은 각종 자료를 그들의 관점에 연결시키지 못하고 단지 때때로 해설 형식으로 혹은 다른 편리한 형식으로 진술할 뿐이다. 아니면 사건들이 그냥 제멋대로 전개되는 방식으로 집필해 나간다. -60쪽
기사도적 서사시 속에 나타난 크리스천 전사 ?‘이상’은 신플라톤주의의 산물이다. 이 사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멋진 시들이 많은데, 가령 볼프람의 『파르치팔』은 위대한 유럽시의 전형으로서 이 시속에서 크리스천 전사의 이상이 완벽하게 구현된다. 캐릭터들(등장인물)과 그들의 운명은 서사시적 다양성을 유지하며, 『파르치팔』의 통일성은 정화 ?U와 성화qU로 다가가는 플라톤적 상승?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승에 독일적인 주제들이 멋지게 가미된다. 이 시 속에서 지상의 존재가 아주 밝게 빛난다. 그리하여 아주 특수하며 또 시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의 삶도 고상한 영성으로 변하게 되고, 이런 변모의 과정이 서사시의 세부사항 속에 드러난다. 하지만 중세 영성의 가장 심오한 효과는 세속적 사랑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서 발견되는데, 그 사랑은 프로방스에서 처음 등장하여 그 후 유럽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65쪽
프로방살 시는 프리드리히 2세의 궁정에 의하여 남부 이탈리아에 도입되었다. 외국에서 유행한 이 시는, 북부 이탈리아와 토스카나의 도시들에도 도입되었으나 그리 좋은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그 당시 이 지역들에서 제작된 조잡하고 현학적인 연애시들은 단테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이 단테의 선배 시인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모습이 알려지게 되었다. -72쪽
스틸 누오보 시를 해석하려 드는 것이 쓸데없고, 또 어리석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의 모호함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려 들거나 각각의 개별적 시들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해석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시에는 기이한 사항들이 아주 많이 발견되고, 서로 다른 시인들 사이에서 내용과 표현이 많이 중복되며, 또 소수의 뽑힌 사람들에게만 이해 가능한 비밀스러운 의미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스틸 누오보가 단지 문학적 규약 혹은 유행이었다는 견해가 나오는데, 이것은 내가 볼 때 문제의 핵심을 간과한 것이다. 물론 “문학적 규약”이라는 말이 아주 폭넓게 적용되어 때때로 정곡을 찌르기도 하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시기에 그리고 중세 내내, ‘문학적’이라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 비로소 그렇게 된 것처럼 자율적 개념이 아니었다. -77쪽
프로방살 시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이 대부분이고, 논리적 연계는 아주 간단하거나 막연하거나 모호하다. 시행도 8음절로 된 짧은 시행을 선호하고 이 때문에 통통 튀는 리듬만 생겨날 뿐, 가장 고상한 노래(superbissimum carmen)라고 하는 11음절 시행의 유장한 리듬은 창조되지 못한다.31) 물론 프로방살 시인들 중에 예외도 있고 특히 후대의 시인들과 트로바르 클뤼 시인들은 논리적 구조를 세우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적인 절반의 노력, 절반의 무능으로 인해, 그 논리 구조는 변덕스럽고 불분명하고 순조롭지 못하다. 그리하여 실제에 있어서는, 순수 서정주의를 추구한 초창기 시들이 애매모호한 주지주의를 표방한 후대의 트로바르 클뤼보다 더 가락이 아름답고, 또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선배든 후배든 프로방살 시에서 조화로운 논리적 구조와 부드럽게 흘러가는 시행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96쪽
단테 초기 시의 통일성─구체적이고 뚜렷한 주제를 가진 다른 단테 시들에서는 통일성이 더욱 돋보이지만─은 합리적 특성이 아니라 비전적 특성에서 나온다. 시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은 어떤 특징들을 열거함으로써 환기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 중심으로부터 생생하고 리얼하게 솟아난다. 바로 이것이 단테의 이미지들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미지들은 밝게 빛나고 아주 생생하며, 힘을 소망하면서 힘을 얻는다. 어디에서나 단테는 아주 확정적이고 독특한 상황의 중심에 서서 그곳으로부터 발언한다. 어디에서나 그는 독자를 그 상황 속으로 끌어들인다. 독자들의 공감이나 승인 혹은 지적 존경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는 자신이 환기하는 리얼한 상황의 극단적 구체성 속으로 독자들이 뛰어들기를 바란다. -105쪽
중세 예술의 거의 모든 매너리즘 작품이 그러하듯이─이것은 16세기의 진짜 매너리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그 시들은 신플라톤주의를 근원으로 하는 영성주의를 구체화한다. 이것은 강력한 주관적 신비주의로서, 아이디어를 획득하면서도 독특하고 특수한 외양을 보존하기 위해, 감각적 외양을 해석하고 승화하는 신비주의이다. 그렇지만 이들 시인은 이데아와 외양을 결합시키는 작업에서 실패했다. 영혼의 깊이와 외부세계의 번쩍거리는 현상을 종합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원천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은유는 표적을 벗어나 공허하고 흐릿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주제와 밀착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변덕스럽고, 공상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구조의 내적 통일성을 지향했으나, 그들이 막상 손에 쥔 것은 순전히 기교적이고 외부적인 통일성에 불과했다. -120쪽
육신이 된 완벽함의 신화에는 서로 근원이 다른 다양한 모티프가 엮여 있다. 베아트리체는 기독교의 성인인가 하면 고대의 시빌이다. 세속의 사랑받는 여인으로서, 그녀는 젊은 남자의 로망이지만 그녀의 육신은 흐릿하게 묘사된다. 천상 위계제의 일원으로 변모하면 그녀는 리얼한 존재가 된다. 이 개념의 독창적인 점은 처음엔 우리에게 기독교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트루바두르들은 이미 연애시에 기독교적 주제를 도입했고, 또 세속적 고통과 세속으로부터의 물러남 등을 성인 컬트의 주된 특징으로 삼았다. 하지만 베아트리체에게는 그런 특징이 없다. 또한 베아트리체 신화에서 발견되는 은밀한 진리의 계시라는 교훈적 요소는 고대 후기의 혼합주의를 연상시키는 것으로서 순수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다. -138쪽
베아트리체의 세속적 생활과 인간적 고통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생활과 고통은 거기에 들어 있다. 우리는 그녀가 세속적 인물로서 뿜어내는 체취를 맡을 수 있다. 그 인물은 젊고 아름다웠으며 고통을 느꼈고, 그리고 죽었다. 우리는 그녀의 변신을 목격하고 그 속에서 그녀의 세속적 형태와 우연성이 보존되고 현양된다. 따라서 『신생』은 오늘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품질이 고르지 못한 초기작도 아니고 독립적 가치가 없는 작품도 아니다. 물론 여러 군데에서 애매하고, 또 그 스타일에 과장이 심하다. 하지만 이런 과장은 주제의 기독교적 성질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단테가 ‘완벽함’과 세속적 취약함과 불확실성을 의식적으로 종합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런 근원에서 생겨난 애매한 사항들은 진정한 기독교적 미메시스의 작품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신약성경이 특히 그러하다. -140쪽
생애 마지막까지 이승에서 그의 활동적 생활은 그의 청춘에 의해 미리 예고되었다. 젊은 날의 열정적·시적 체험 속에서 피, 교육, 지식, 정치적·철학적 경향이 그의 개성과 융합되었고, 이렇게 획득된 통일성은 시적인 것이었다. 단테의 전 생애가 시적이었고, 그의 전 인격이 시인의 인격이었다. 그는 스토아-에피쿠로스학파를 좇지도 않았고, 속세로부터 초연히 벗어난 낭만주의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추상적인 생각·명상·꿈에도 탐닉하지도 않았다. 베아트리체의 마법 같은 인사를 받은 남자는 내적인 권위에 더하여 관대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것 덕분에 단테는 자기 생활의 가장 개인적 면모들을 우주적 맥락 속으로 엮어 넣을 수 있었고, 자신의 개인적 운명을 통하여 세상의 우주적 질서에 새로운 형식을 부여했으며, 기독교적 우주의 위대한 드라마를 펼쳐 보일 수 있었다. 그의 생애에서 그가 한 행위와 노력은 시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시적 비전은 행동과 실천적 이성의 근원이며 증명이었고, 비전이 곧 그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141쪽
단테는 실용을 무시하는 이데올로기주의자는 아니었다. 피렌체에서 성장하면서 일찍부터 실용적인 정치 활동을 훈련받았다. 그는 도시 계획 위원회에 근무했고 아주 상업적인 사회에서 살았으며, 그의 유배 생활 중 온정을 베푼 군주들은 그의 외교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또 활용했다. 그는 기존 정치적 움직임과 당파 활동에서 크게 성취하지 못했고, 거의 완벽한 외톨이 생활을 했으며 또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생애 말년을 정치적 영향력 없이 가난한 유배자로 일관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살아 있는 역사적 세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런 세력을 완전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가 볼 때 ‘역사’와 ‘발전’이라는 개념들은 그 자체로 아무런 타당성이 없었다. 그는 사건들을 해석할 기준을 찾아보았으나 혼란만 발견했을 뿐이다. 어디에서나 개인들이 불법적인 야망을 품고서 전진했고, 그 결과는 혼란과 재앙이었다. -146쪽
단테는 스틸 누오보의 확대적d?r 드라이브를 더욱 발전시켰고 이 덕분에 느낌과 신비적 체험의 영역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가 인생의 제2단계인 청년기─『향연』1)에서 이 시기를 가리켜 인생의 꼭짓점이라고 했다─에 들어섰을 때, 그의 생기발랄함과 내적 기준은 아주 원숙하게 무르익었다. 그런 청춘의 힘을 바탕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공직 생활과 철학적 교리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고, 이 둘을 결합하여 그의 심성에 걸맞은 것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152쪽
단테가 위대한 칸초네들과 『향연』을 쓰기 이전에, 스틸 누오보의 세계는 저 혼자 별도로 뚝 떨어져 있는 세계였다. 스틸 누오보는 기사도적 이상에서 생겨났고, 프로방스에서 정신적으로 세련되었으며, 그 후 이탈리아로 건너와 귀니첼리에 의해 그 사회적 뿌리가 제거된 문학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그 애매한 용어와 은유 때문에 인공적인 스타일이라는 비난을 모면하기 어려웠다. 이어 당시의 교훈적 철학과 관련된 합리적 요소들이 점점 스틸 누오보 시에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고상한 자기단련인 사랑의 개념은 점점 윤리적 특성을 띠면서 구원이라는 신비적 교리를 암시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스틸 누오보는 신비주의적이었고, 사랑의 열정을 주로 다루는 귀족적 게임이었다. 그것은 실용 정치나 스콜라 철학과는 무관했고, 설령 관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희미하고 개인적인 관계만 있었다. -153쪽
비극의 궁극적 운명은 죽음 혹은 그에 가까운 어떤 것이다. 보편적 운명이 일단 저 멀리서 등장하면 그 운명은 주인공의 현세적 터전으로부터 그를 이동시켜 그의 옛 존재와 행위를 무??상태로 축소시키면서 그의 온 존재를 그 종말의 특별한 상황에다 집중시킨다. 비극의 맨 마지막에 가서 발생하는 것은 결국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의 메커니즘이고, 그것은 운명의 선고를 집행한다. 이렇게 하여 비극은 궁극적이고 극단적 집중 속에서 개인의 에토스를 제시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비상한 상황 속에서 그의 현세적 리얼리티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오로지 죽음에 의해서만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죽음 이후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것은 자아-실현이 아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주인공이 그 상황으로부터 도피하여 그림자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191쪽
『신곡』의 주제 자체가 단테에게는 엄청난 자유를 부여하며, 또 그 자유를 마음껏 활용하라는 커다란 의무를 부과한다. 그리하여 인간들에 대한 모든 역사적 지식, 남들의 생애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신곡』 속으로 홍수처럼 밀려든다. 여기에는 단테의 비판적 판단과 열정적이면서도 예리한 감성이 크게 작용했다. 단테의 천재성과 불운한 생애가 만들어낸 인간적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단테는 그 자신 그대로 있으면서 각 캐릭터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일천 가지 언어들을 말할 수 있었지만 그 언어는 언제나 단테의 언어였다. -192쪽
신성으로 변모한 애인이 개입하고, 그녀의 도움으로 지옥과 연옥을 여행한다는 것은 방랑자가 젊은 날의 영감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소년 시절 단테가 겪었던 첫 체험과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이 연옥의 꼭대기에서 반복된다. 그의 도정???감각에서 출발하여 지식과 운명을 거쳐 감각에 대한 제2차적, 비전적 체험으로 나아간다. 이 모든 단계에서 신적 질서는 이렇게 작용한다. 처음에는 압도적 암시로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올바른 행동을 지향하는 의지의 충동으로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단테의 노력을 완수시키고 가지성(可 ?g: 신)을 계시하는 현현으로 나타난다. -207쪽
인간의 윤리적 성질은 그의 자연적인 성향 혹은 기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 만큼 인간의 윤리적 성질은 언제나 선량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이고,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어떤 선함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최고선과 선의 원천은 곧 하느님이다. 인간의 이성(anima rationalis)은 하느님에 대한 절실한 사랑을 지상 생활의 주된 목표로 선택할 수 있고, 명상적 생활(vita contemplativa)을 통하여 가장 높은 지상적 ??r 탁월함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 기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성은 하느님에 대한 매개된 사랑을 선택하여(하느님의 피조물들에 대한 사랑을 매개로 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 -옮긴이), 그분의 피조물들, 특히 지상의 선한 것들에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이 후자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활동적 생활로 유도하고 그 생활은 아주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그 매개된, ‘2차적인’ 선한 것들에 대한 사랑이 적절한 절제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활동적 생활(vita activa)의 미덕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자연의 사랑(자연 속에 있는 선한 것들에 대한 사랑)은 과도함이나 대상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부패될 수 있다. 이런 부패가 죄악인데 그 원천은 언제나 과도하거나 오도된 사랑에 있다. -217쪽
단테가 활동한 도시 피렌체는 이런 사악함의 세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했다. 단지 그 의 고향 도시이기 때문에 그런 지위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고향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동경, 그 자신의 씁쓸한 인생 체험 때문에, 그가 이 도시의 사악함을 더욱 강력하게 비난한 것은 이해가 된다. 단테의 개인적 동기나 그 도시에 대한 개인적 유대관계를 떠나서도,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 중에서 특히 피렌체는 단테가 말한 절대악의 가장 분명한 사례이다. 바로 이 도시에서 새로운 상업적 중산층 정신이 처음 개화했고, 시민들은 자의식을 가졌다. 바로 이 도시에서 정치 세계의 형이상학적 기반들이 사상 처음으로 재검토되었다. 피렌체는 그 자체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관된 실용 사상에 입각하여 그 기반들을 재평가하여 다시 활용했다. 또 이 도시에서 모든 세속적 제도가 그 초월적 원천이나 권위와는 상관없이 냉정한 이해타산 속에서 재고되었다. 그러니까 피렌체 사람들은 세속적 제도를 세력 게임의 한 가지 요소로만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주도적인 현상이 되었다. -252쪽
단테는 저승을 여행하면서, 영혼들의 궁극적 운명을 표시하는 저승의 각 단계에서 그가 예전에 친히 알았던 혹은 그 생애에 대해서 들어 알았던 사람들의 영혼을 만난다. 『신곡』에 대해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 상황을 잘 생각해 보면, 그 만남이 환기하는 정서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 그 만남이 가장 진실하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인간적인 표현의 자연스러운 장 이 되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다. 그 만남은 이승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승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우연하게 만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본질이 부분적으로만 표출된다. 또 활기차게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강렬한 속도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이 어렵고, 그래서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만남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또 단테와 영혼들의 만남은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 개인들의 개성이 말살되어 버린 그런 저승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 저승은 이승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베일에 가려진 기억 혹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270쪽
낮은 상태에 있는 영혼들은 세상의 소식을 알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이 아직도 이승에서 기억되고 있는지 아주 궁금해 한다. 그러나 이런 열망은 연옥에 올라가, 다른 기독교적 즐거움의 모티프와 뒤섞이면서 희석된다. 천국에서는 영혼이 즐거움을 얻는 원천은 그 선택받은 손님(단테)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에 있다. 저승에 모여 있는 모든 영혼들, 각 시대와 나라의 사람들, 저마다의 지혜와 우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선과 악, 세상에 대한 사랑과 증오, 한 마디로 역사의 요약인 이들은 그들을 찾아온, 살아 있는 단테에게 말을 하고 싶어 한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왜 그런 궁극적 운명에 도달했는지를 더 명료한 언어로 말하려 한다. -280쪽
단테 이전의 시인으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업한 시인이 있었는가? 분명 없었다. 고대나 중세의 시인들이 어떤 인물의 전반적 개성을 묘사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그 인물이 영위했던 삶의 서사시적 광폭에서 본질을 빼내온다. 그들은 그 삶의 축약만을 제시하려고 할 때, 그 인물의 전인 ?ダ?묘사할 생각은 아예 없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 질투하는 사람, 대식가, 귀찮은 사람 등을 묘사하려 한다면 오로지 사랑, 질투, 대식, 귀찮음 등만 말한다. 많은 것을 ‘생략’하면서도 어떤 인물의 전인을 묘사하고자 하는 고전 비극조차도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필요로 한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고대 비극 시인은 집어넣을 것과 생략할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하여 비극의 주인공은 운명이 그 자신에게 제시한 질문에 점점 더 분명하고 확정적인 답변을 한다. 또 그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질문에도 대답을 한다. -284쪽
단테 자신이 직접 알았거나 소문으로 들어서 알았던 사람들을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전설적 인물을 다루는 데서도 단테는 그들의 생애의 우발적이고 특수한 세부 사항들로부터 몸짓과 운명의 총합을 이끌어낸다. 그는 중세 역사가들의 기록들─감각적 이미지가 아주 부족한 자료─로부터 리얼하고 선명한 인물을 걸러낸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이 모두 유럽인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것은 아니다. 그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후대에 들어와 고대의 정신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보가 발굴되면서 종종 수정되었다. 하지만 그런 교정도 단테가 먼저 작업을 해놓은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가령 손에 칼 든 호메로스16)는 나폴리의 흉상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299쪽
단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의 비전은 명료하고 정확했다. 그는 그저 구경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듣거나 읽어서 아는 사건들은 종종 난해한 성격을 띠고 있어도 단테의 손을 거치면 생생한 이미지로 거듭났다. 그는 인물들의 어조를 들었고, 그들의 움직임을 보았으며, 그들의 감추어진 충동을 파악했고, 그들의 생각을 읽어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된다. 이런 통합성으로부터 단테는 인물을 형상화한다. 단테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동작을 가리켜 한 이탈리아 학자는 형성적 재현이라고 한 바 있거니와, 그 동작들은 결코 한가한 관찰을 그냥 적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 동작은 현재 서술되는 사건에 기반과 한계를 두고 있다. 그 동작은 인물의 신체적 존재를 드러내지만, 이런 동작과 신체의 일치는 필연적으로 개인적 성격과 사건의 일치에서 흘러나온다. -303쪽
사후 영혼의 상태(status animarum post mortem)라는 주제는 시인에게 제약을 가한다. 시인은 각 개인별로 그에 합당한 정의 ?u가 부과된다는 기독교적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단테는 개인이라는 아이디어에 구체적 형태를 부여해야 한다. 인물들의 외부적 발현에는 우발적이거나 시간적인 것(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하는 것)은 제외되어야 하지만, 정작 개인 그 자신은 이승에서 지녔던 정신과 신체의 통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그 개인은 신적 질서에 따라 고통을 받거나 아니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저승에서 시간적 관계들은 종료되지만 개인의 현세적 형태, 그러니까 현세에서 했거나 받았던 행위와 고통들의 결과는 그대로 보존된다. 현상에서 순수 관념을 이끌어내는 철학적 방식과 아주 비슷하게, 『신곡』은 현세적 외양으로부터 신체와 정신이 하나 된 진정한 개성을 뽑아낸다. 이 작품은 관념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현존을 창조한다. 그것은 신체가 부여된 정신이며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두 필연적이고, 합일적이며, 본질적인 것이다. 모든 외양들은 저승의 진정한 질서 속에서 자리를 잡아들어 가고 바로 이것이 『신곡』의 필연적 리얼리티의 원천이다. 그 리얼리티는 단테가 독자들에게 약속하는 생명의 양식(vital nutrimento)이다. -313쪽
시의 언어는 각운과 운율의 단단한 족쇄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반항한다. 특정 시행과 문장의 형식은 아주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얼어버리거나 굳어버린 시인을 암시한다. 그 시행들은 괴이할 정도로 명료하고 표현적이지만, 동시에 이상하고 오싹하고 초인적이다. 바로 이 때문에 단테는 일반 대중의 마음속에서 미켈란젤로와 함께 연상된다. 단테는 그 어떤 중세의 문장가보다 자연스러운 어순에서 빈번하게 또 과도하게 벗어난다. 갑자기 하모니에 대한 고려 없이, 어떤 시행을 일상적 어휘로 구성된 아주 산문적인 문장 바로 옆에 배치한다. 단테는 이런 수법을 베르길리우스와 고전 시학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의 시행은 언제나 하모니를 배려했고, 고전시의 언어들은 일정한 시어의 순서를 규정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 전통에 입각하여 시어의 장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점검하고, 또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했다. 단테는 시적 일탈을 하면서도 조화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327쪽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기독교의 중세적 세계관이 17세기와 18세기의 합리주의에 의해 휩쓸리면서 비로소 인간 사회의 통합성에 대한 새로운 실용적 견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단테의 저작은 유럽 사상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단테의 사망 직후에, 아니 심지어 그의 생전에 문학적·문화적 사회 구조는 스콜라주의에서 휴머니즘으로 완벽하게 바뀌었고, 이러한 변화에 단테는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변화는 필연적으로 『신곡』과 같은 명확한 사상체계를 갖춘 작품의 영향력을 제한했다. -345쪽
단테의 창작 행위는 그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의 시는 그의 교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특별한 케이스이고, 그는 시적 과정의 성질에 대하여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리얼리티를 모방하는 기술은 단테 저작의 밑바탕이 되었던 전제 조건들과 무관하게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단테 이후의 시인이나 예술가는 인간 개성의 통합성을 지각하기 위해 궁극적·종말론적 운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테 이후의 작가들은 순전히 직관적인 힘을 발휘하여 내적인 관찰과 외적인 관찰을 하나의 전체로 통합시킬 수 있었다. -347쪽
단테에 이르러 역사적 개인은 신체와 정신이 온전하게 통합된 존재로 재탄생했다. 그는 오래된 사람인가 하면 새로운 사람이다. 그는 전보다 훨씬 큰 힘과 폭을 가지고서 오랜 망각으로부터 솟아났다. 이런 새로운 인간관을 탄생시킨 기독교 종말론은 그 통합성과 활기를 잃어버리게 되지만, 인간의 운명이라는 사상은 유럽인의 정신에 깊숙이 침투하여, 아주 비` 기독교적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기독교적 힘과 긴장이 보존될 정도였다. 바로 이것이 단테가 후대에 안겨준 선물이다. -349쪽
▣ 작가 소개
저자 : 에리히 아우어바흐 Erich Auerbach
1892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처음 하이델베르크에서 법률 공부를 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한 뒤 예술사, 언어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1921년에 로망스어로 학위를 받았다. 비코의 『새 학문』을 번역했고, 1929년에 『단테: 세속을 노래한 시인』을 내어 학계의 인정을 받았으며, 이어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로망스어 문학을 가르쳤다. 이후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박해하자 이스탄불로 가 터키 국립대학에 재직하면서 『미메시스』를 썼다.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프린스턴 대학, 예일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57년 세상을 떠났다.
역자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에라스뮈스』,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평생독서계획』, 『루스 베네딕트』, 『문화의 패턴』, 『폴 존슨의 예수 평전』, 『신의 용광로』, 『게리』, 『정상회담』, 『촘스키, 사상의 향연』, 『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 『고전 읽기의 즐거움』,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성서의 역사』, 『축복받은 집』, 『만약에』, 『영어의 탄생』 등이 있고, 편역서로 『로마제국 쇠망사』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번역은 글쓰기다』, 『전문번역가로 가는 길』, 『번역은 내 운명』(공저), 『지하철 헌화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옮긴이의 말 7
제1장 미메시스의 인간관 25
호메로스의 미메시스 26 | 서사시와 드라마의 차이 30 | 플라톤의 미메시스 비판 32 |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적 미메시스 38 |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 43 | 예수 그리스도와 소크라테스 47 |기독교의 도래와 운명관의 변화 51 | 플로티노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상반되는 미메시스 사상 55 | 야만인을 위한 저급한 영성주의 58 | 중세 교회 내의 미메시스 회복 60 | 중세의 미메시스: 자연주의와 영성주의의 융합 63 | 프로방스 문화와 중세의 연애시 66
제2장 단테의 초기 시 70
프로방살 연애시의 특수성 71 | 프로방살 시를 이탈리아에 정착시킨 구이도 귀니첼리 73 | 스틸 누오보(새로운 스타일) 시의 본질적 주제 77 | 스틸 누오보의 새로운 목소리 79 | 단테, 귀니첼리, 카발칸티의 연애시 81 | 단테 시와 기타 시의 비교 84 | 돈호법의 적절한 활용 91 | 이탈리아 시의 논리적 구조 95 | 감성과 이성을 종합한 비전 100 | 단테 시의 비전적 성격 105 | 숭고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108 | 느낌의 변증법 112 | 단테의 문장론 114 | 아르노 다니엘의 영향 118 | 각운과 구문의 종합 123 | 단테 초기 시
의 요약 131 | 단테의 성장 환경 133 | 베아트리체의 의미 136 | 『신생』의 의의와 가치 140 | 1300년대의 이탈리아 정치 상황 142 | 단테의 정치사상 145 |초월과 변모에 대한 동경 148
제3장 『신곡』의 주제 152
『신곡』에 이르는 전사 ?~ 153 | 토미즘과 코르 젠틸레의 결합 157 | 아퀴나스와 단테 159 | 『향연』이 저술된 배경 162 | 이탈리아 구어로 글을 쓴 이유 165 | 『향연』이 미완성인 세 가지 이유 169 | 저승 여행은 중세의 오랜 전승 173 | 아퀴나스 철학의 영향 178 | 『신곡』에서 인물이 재현되는 방식 182 | 베르길리우스의 저승관 185 | 『신곡』은 현세적 리얼리티의 재현 189 | 단테 미메시스와 고대 미메시스의 차이점 193 | 『신곡』은 여러 세기에 걸친 사상과 지각의 표현 195 | 『신곡』의 드라마는 개인적 원한과는 무관하다 199 | 『신곡』은 신적 계획의 최종 질서를 보여 준다 202 |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역할 205
제4장 『신곡』의 구조: 물리적·윤리적·역사-정치적 체계 209
『신곡』의 물리적 체계 209 | 『신곡』의 윤리적 체계 216 | 연옥과 지옥의 죄악 분류법 219 | 단테는 낭만주의의 선구자 225 | 7대 죄악과 사랑의 결합 230 |지상 낙원의 기능 233 | 『신곡』의 역사-정치적 체계 237 | 월광천에서 지고천까지 240 | 인류의 1차 타락: 역사-정치적 체계의 시작 246 | 세상의 두 번째 타락 249 | 제2차 타락과 피렌체 정치 상황 252 | 단테의 정치적 예언 255 | 고대 신비 신앙의 흔적 259 | 키비타스 디아볼리와 키비타스 데이의 대립 262 | 『신곡』은 세속을 재현한 인간 드라마 266
제5장 『신곡』의 인물들이 재현되는 방식 270
삶과 죽음의 특별한 만남 270 | 브루테노 라티니와 로마 시인 스타티우스 274 | 포레세 도나티와 파리나타 우베르티 276 |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저승의 영혼들 280 | 한 번뿐인 리얼리티의 순간: 개요와 축약 282 | 기억과 자의식 285 | 단 하나의 사건: 생략과 내포 289 | 스스로 신화를 창조하는 단테 292 | 피구라의 개념 299 | 사건과 인물의 밀착된 재현 303 | 시적 형식: 은유와 변신 307 | 『신곡』의 궁극적 리얼리티는 신적 질서 312 | 시적 아름다움의 원천인 주제와 교리 316 | 시와 산문의 결합 319 | 리얼리티에 밀착하는 시어 323 | 저승은 여행하기보다 기록하기가 더 어렵다 325 | 고유의 시적 전통을 창조한 단테 328 | 형상화된 진리의 네 가지 요구 사항 334 | 리얼리티와 초인적 의지, 질서, 강력한 권위 338
제6장 리얼리티에 대한 단테의 비전: 그 존속과 변모 342
역사가 된 신화와 전설 343 | 페트라르카와 인간 자율성의 강조 346 | 개인의 운명과 근대의 미메시스 349
인명·용어 풀이 352
주석 422
해설 | 미메시스와 피구라 리얼리즘 438
단테 연보 453
찾아보기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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