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수록작에 대하여
할머니 나무
쉰이 넘은 내게는 특별한 비밀이 하나 있다. 가문의 여자들이 대대로 보통 사람처럼 죽지 않고 나무가 되며, 나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려서 나는 어머니가 나무가 되는 것이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해를 못했고 도리어 원망했던 때가 있다. 나이 들어서 그 일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자식들이 차를 몰고 급하게 데리러 온다. 나는 불안감에 서둘러 따라 나서고, 할머니 나무가 있는 옛집이 밀린다는 비보를 듣는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을 둘째 치고라도 나는 첫딸이라고 꽤나 특별 취급을 받았던 게 틀림없다. 당시에 동화책 전질을 가질 수 있는 건 굉장한 부잣집 애들뿐이었다. 보통 집에선 교과서마저 간신히 마련해 아래물림하던 시절이었고, 계집애에겐 아예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애는 태어나서 걷고 말할 줄 알게 되면 쓰기나 읽기보다 상차림이나 설거지를 먼저 배우게 되고, 앞이나 뒤에 태어난 남자 형제의 수발과 뒷바라지를 떠맡았다. 그러다 대강 자라서 처녀 티가 나면 바로 남의 사내 품으로 들어가 밥하고 빨래하고 애 낳는 소모품이 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모님은 생각이 트인 분들이었고 딸에게도 글을 가르쳤다. 나는 그것이 할머니 나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작고 특별한 비밀 하나, 그런 걸 품을 수 있다면 삶을 보는 시선과 태도가 아주 달라질 수도 있다. - 16쪽
어머니 얼굴이 지치고 더욱 쇠약해 보여서 덜컥 마음이 아팠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뜩이나 힘든 어머니께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은 오래오래 눈에 밟혔다.
― 엄마는 죽는 게 아니야. 지혜야. 너만 혼자 두는 게 아니란다. 물론, 엄마는 아빠와 가까이 있고 싶어서 나무가 되는 거지만 그래도 완전히 아빠랑만 같이 있는 게 아니란다. 지혜랑 헤어지는 것도 아니야. 나무가 되는 건 죽는 거랑 다르거든.
어머니의 호흡은 길고 느렸다. 그렇게 숨 쉬어서는 호흡이 가빠서 죽을 것 같았다.
― 엄마는 나를 못 알아볼 거야. 엄마는 다 잊어버릴 거야. 말도 못하고 서 있을 거야. 할머니 나무처럼. 땅속에 있는 아빠처럼. 그건 죽는 거야. - 21쪽
만냥금
한 남자가 아들을 데리고 칼국수집에 들어간다. 노숙자 신세인 두 사람이지만 아들이 4000원을 주워 왔기에 들어온 것이다. 4500원짜리 칼국수 1인분을 두 사람이 나눠 먹고 나가며 500원을 깎아달라고 하려 하지만 남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때 만냥금 열매가 지폐 위로 떨어지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저…… 오백 원만 깎아주세요.”
그 말이 어찌나 힘든지. 하기는 했는데 입 밖에 나가지 못한 거 같았어. 아니, 저쪽이 듣지 못한 걸까? 주인 여자는 그저 금고에 손을 얹고 기다리고만 있었지.
“저어…….”
입이 바짝바짝 말랐어. 용기가 없어진 남자는 다음 사람부터 계산하라고 뒤를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어. 긴장을 견디다 못한 아들이 아버지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었어.
“여기 돈이오.”
하지만 그 돈은 4000원이었어. 주인 여자는 땀에 쩐 돈을 꺼리면서 펼쳤어.
“손님 돈이 모…….”
남자는 눈까지 달아올라서 사물이 뿌예 보였어. 아들 앞에서 500원으로 창피를 당하게 되다니! 애초에 4000원으로 뭘 사먹으려던 게 잘못이었어. 아냐, 4000원을 주워 온 애새끼가 잘못이야. 4000원이 뭐야, 4000원이. 주우려면 만 원을 줍든가, 아니면 아예 말든가. 머릿속에 온갖 후회와 상상이 난무하는데 또르르 빨간 열매가 돈 위에 떨어졌어. 그러자 돈은 순식간에 초록색으로 변했어. 남자는 눈을 의심했어. 주인 여자는 몇 번 눈을 껌벅였지. - 49쪽
왜 그 동네로 다시 가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 화분을 훔친 게 켕기긴 했지만, 주인이 만냥금의 이상한 힘을 알았더라면 그냥 계산대에 놔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렇다는 건, 이 식물과 남자의 궁합이 우주적으로 절묘하게 맞아서 이런 행운이 작용하는 게 틀림없었어. 행운은 그런 거니까. 100억짜리 로또와 별 이름 없는 주식이 치는 상한가처럼 어처구니없는 것이어야만 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행운이란 얼마나 초라하겠어. - 68~69쪽
엄마꽃
세상에 소원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만, 정확히 어떤 조건으로 발현되는지 알 수 없는 소원비로 인해 세상은 통째로 뒤바뀐다. 뒤바뀐 세상에서 무희는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엄마를 기다린다. 오빠만 위하고 무희에게는 뒷모습만 보여주던 엄마는 소원비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하는데 꿈에 소원비로 인해 꽃이 되어버린 엄마가 나타난다.
어느 밤 꿈에 징그럽도록 크고 노란 꽃 한 송이를 보았다. 쉼 없는 빗소리에 축축이 젖은 그 꽃은 엄마였고, 나였고, 세상 모든 침묵하는 여자들 같았다. - 77쪽
소원비가 내리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소원이 어떤 순간에 발현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고, 그에 대한 해석도 가지가지였다. 종교계에서는 종말이 다가왔다고 들썩이며 매일 밤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고 날뛰었다. 세상이 더 손댈 수 없이 미쳐 있어서 세상 스스로 정화 작용에 나섰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관심 가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종말보다는 이 놀라운 기적의 원인과 작동법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어떤 이는 이루어지기를 염원하고 어떤 이는 이루어지지 않기를 염원한다. 그런 건 대개 어느 쪽의 염원이 더 강한가에 따라 결과가 나타났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바라면 그 일은 이루어졌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열망하던 일들도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미친 것처럼 빌고 빌고 빌었다. 광기와 뒤엉킨 염원들이 세상의 모든 규칙을 어그러트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함부로 소원을 빌거나 염원을 품을 수 없었고, 우연으로라도 바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누가 어떤 소원을 바랄지 아무도, 자기 자신조차도 정확히 몰랐다. - 83쪽
낙오자
목련은 서쪽에 사는 ‘그자들’에게서 씨앗을 받아와 열매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최연소로 얻었다고 좋아했으나 아무 노력도 안 한 동기 능금이 함께 자격을 얻은 것에 상당히 모욕감을 느끼며 꼭 열매에서 ‘그자들’이 나오지 않길 바라고 바란다. 어렸을 때 친했던 뒷집 독서가는 성공한 생을 살다가 돌연 이 자격을 포기하여 낙오자가 되어 기괴한 모습으로 죽었다. 목련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그자’를 만나러 가는데, ‘그자’가 뒷집의 낙오자 이야기를 꺼낸다.
“주의사항은 잘 알고 있지?”
관리자가 목련과 능금을 앉혀놓고 말했다.
“말하지 말 것, 만지지 말 것, 포옹하지 말 것, 입 맞추지 말 것.”
둘은 새처럼 지저귀었다.
“그래. 그리고 가능하면 빨리 ‘씨앗’을 받아 빠져나올 것. 이상이다.”
관리자가 가보라는 시늉을 하자 능금이 미적대며 말했다.
“왜 입 맞추면 안 되죠?”
목력은 어이없어 입을 떡 벌렸다.
“너 바보지? ‘그자들’은 괴물이야. 괴물이랑 입을 맞춘다고?”
‘그자들’은 서쪽 나락에서 온 흉측한 괴물로, 문헌에는 더러운 털투성이에 짐승 같은 냄새를 풍기며 사납고 흉포하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규칙이 있잖겠어?” - 108쪽
‘그자’는 가까운 대리석 계단에 걸터앉았다. 목련은 살금살금 그자를 엿보았다. ‘그자’는 괴물도 유혹자도 아니고 목련네 마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그냥 사람이었다. 팔다리도 두 개씩이고 눈코입도 달렸고 키는 나무처럼 크고 몸은 바짝 말라서 무섭게 보이거나 위압감을 주지도 않았다. 목련은 그자의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쳐보았다. 길고 못 박힌 손가락도 똑같이 다섯 개다. 목련은 거기서 낯익은 냄새를 맡았다. 바삭한 햇볕 냄새와 책 곰팡이 냄새, 독서가에게서 나던 냄새였다. 목련이 흠칫 손을 뗐다. 그제야 두 번째 수칙이 기억났다. 절대로 만지지 말 것.
“실컷 봤어요? 호기심이 많군요.”
‘그자’는 마치 야생고양이처럼 살피는 목련을 그냥 보기만 했다. 독서가처럼. - 117쪽
환상진화가 幻想進化歌
생을 거듭하면서 몸을 재생할 수 있어 죽음이 의미가 없어진 듯한 미래의 세상에 플랜이라는 포식자가 나타난다. 놀랍도록 인간과 유사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지만 식물인 이 플랜은 재생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을 송두리째 삼키는 강력한 포식자다. 플랜헌터인 창은 혼인제도 대신 들어선 짝짓기 의무에 맞추어 선을 보러 가다가 울창한 숲에서 노래하는 어린아이를 만난다. 계속 지속되기만 할 뿐 발전이 없는 인간의 삶과 플랜에 대한 의문 사이에서 방황하는 창에게는 아홉 번의 생애를 보냈고 플랜헌터의 창시자인 강, 그리고 숲에서 만난 어린애만이 위안이 되는 존재다.
놈들이 처음 나타난 건 유성우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별들이 축제라도 벌인 양 밤하늘이 야단스럽던 날 돔 외곽 숲에서 처음 싹을 틔운 놈들은 갓 태어난 어린애 모양을 하고 작고 말갛고 투명하게 빛났다. 땅에 떨어진 별처럼.
온화하고 요상스러운 광채와 무력한 모습은 유성우를 구경 나온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요정이 버린 아기라고 생각했을 테고, 신실한 종교인은 아기 예수의 재림이 아닐까 가슴을 울렁였을 것이며,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왜 숲에 갓난애가 버려져 있는가에 두려움과 동정심을 느꼈을 것이다. 공통적인 건 그들 모두 예외 없이 아기를 안아 들었고, 여지없이 플랜의 첫 먹이가 되었다는 거다.
그 뒤로 숲에서는 가끔 기이하고 아름다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돔을 떠난 여행자들과 새로운 소식에 느린 외곽 거주자들이 플랜의 주 사냥감이었다. 나뭇잎이 부딪는 것처럼 청명하고 흔들리는 수면처럼 잘강대는 소리에 “거기 누구요? 누가 있소? 도움이 필요하오?” 하며 전등을 들고 나선 사람들은 수풀 속에 숨은 두어 살짜리 어린애를 마주하고 놀랐다. 한밤중에 혼자 숲에 있는 아이는 조금도 두렵거나 슬픈 기색 없이 오랫동안 계획한 나쁜 장난이 성공한 것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은 천진하게 웃는 아이가 내미는 손을 무심결에 마주 잡았다. 그러면 수풀 아래 숨어 있던 덩굴손이 순식간에 사냥감을 옭아매 난폭하게 먹어 치웠다. 식충 식물처럼. 그게 지금 내가 빠진 상황이다. - 152~153쪽
“짝짓기는 마치 내가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인간이라는 종의 씨를 뿌리기 위한 단말기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해요. 왜 이런 비이성적이고 번거로운 방법을 써야만 하는 걸까요? 정자와 난자를 척출해서 인공수정을 하는 편이 훨씬 편리하고 깔끔할 텐데.”
연희는 옷을 추스리고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세균이 묻을까봐 악수를 할 때도 항균 장갑을 끼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살을 맞대라니. 그래도 직접 짝짓기하는 게 인공수정보다 수태율이 열다섯 배가 높대요. 기형아도 방지할 수 있구요. 인공수정의 미세한 충격과 온도 변화만으로도 수정체는 심각한 손상을 입으니까요.”
그건 돔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연구 수치였다.
“아닙니다, 연희 씨.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아무도 죽지 않는데 왜 새로운 인간이 필요한 겁니까?” - 180쪽
“미숙한 플랜헌터가 어떻게 당하는지 알아?”
“네?”
“사냥이 끝났다고 잠깐 방심한 틈에 남은 찌꺼기에서 재생한 놈에게 당해. 놈들의 생명력은 그만큼 강력하지.”
나는 신발 끝으로 주변의 흙을 헤쳤다. 놈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헌터도 아닌 비전문가가 놈들을 뿌리 끝까지 제대로 처리했을 리 만무하다. 그럼 놈은 미완이 내 뇌를 꺼내는 틈에 재생해 우리를 공격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놈은 그러지 않았다. 뭔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거다. 모든 생물에게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최우선시 하는 일. 아마도 번식이겠지. 젠장. 범죄 현장으로 돌아온 범죄자가 이런 기분일까? - 208~209쪽
노래하는 숲
토란은 화분이 즐비하게 늘어서 예쁘게 꽃을 피우며 나비를 기다리는 아베의 정원에서 산다. 다른 꽃들과 달리 토란은 걸어다닐 줄 알고, 몰래 밤에 걸어 나가서 어느 날 들은 매미 소리를 흉내 내다가 노래도 부를 줄 알게 된다. 어느 날 말라 죽어가는 도토리를 발견하고 구해준 후 토란은 도토리에게서 아베의 정원이 무서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부정하지만 머릿속에 그 말이 박힌 채 돌아온 후 얼마가 지나, 친구인 엉겅퀴가 나비와 만나게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한밤에 엉겅퀴에게 찾아온 것은 나비가 아니었다.
도토리는 토란의 도움을 받아 작은 웅덩이가 고인 습윤한 나무뿌리 근처에 줄기를 기댔다.
네가 그 노래하는 꽃이구나. 소문으로 들었지.
소문? 너 말고도 또 누가 있어?
토란은 다른 곳에도 꽃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당연하지. 대부분은 화원에 살지만 나처럼 야생에서 사는 꽃도 있어. 아무튼 넌 어떻게 거길 나올 생각을 했어? 아베의 정원은 화원 중에서도 지독하기로 소문났던데. 거기 꽃들은 이미 걷는 법 따윈 다 잊었다며?
토란은 칭찬인지 욕인지 헛갈렸다.
나도 걷는 꽃은 나밖에 못 봤어. 하지만 옛날엔 많았어. 그런데 왜 우리 정원이 악명이 높다는 거야?
쪼그만 그릇에 하나씩 묶어놓고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며? 덕분에 유충들에겐 인기 최고라지?
토란은 그릇이 아니고 아름다운 화분이며, 각자의 독립성을 존중하기 위한 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유충이 뭐냐고 물었다.
맙소사! 아베가 아무리 악독하대도 그 얘기를 안 했어? 유충 몰라? 벌레 본 적 없어? - 235쪽
어허, 네가 어디 있냐니? 넌 거기 있을 거다. 너무 앞서 걱정하지 마라, 토란. 넌 그게 문제야. 모든 게 다 잘될 거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난 싫어요. 잘되든 못되든 난 싫어요. 난 나비에게도 안 가고 아무것도 잉태 안 해요.
그럼 어쩌자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넌 꽃이야. 씨알을 낳는 게 네 임무라고! 그리고 그걸 안 하면 네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냐? 네가 달리 뭘 할 수 있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시들어 썩어버릴 거냐? 그건 좀 나을 거 같으냐?
차라리 그러겠어요!
토란은 온 잎을 파르르 떨었다. 아베는 진짜로 화를 냈다.
오호라, 넌 뭔가 다르다는 거냐? 그래, 넌 노래를 할 줄 알지. 참 알량한 재주구나. 그걸로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네가 걸을 줄 안다고도 들었다. 그래, 걸어봐라. 네 그 얄팍하고 잘난 뿌리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자. 금세 얼마 못 가고 물을 달라고 애걸하게 될 거다. 그러다 바싹 말라 죽을걸.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아니야! 그런 게 꽃이라면 난 꽃이 되지 않을 거야!
넌 꽃이야!
아베는 화가 나서 물도 주지 않고 가버렸다. 꽃들이 웅성댔고 토란은 분노에 떨었다. 너무 화가 나서 물관이 말라도 아무렇지 않았다. - 249~250쪽
미나리는 토란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서 네게 이러쿵저러쿵 시키거나 강요하는 꽃은 하나도 없을 거야. 대신 여기서 살려면 몇 가지 알아둬야 해. 아무도 네게 물을 가져다주지 않을 거야. 흙도 퍼석해서 영양가도 별로 없을 거고. 다행히 우린 걷는 꽃이니까 얼마든지 먹을 걸 구하러 다닐 수 있어. 벌레들은 조심하는 게 좋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힘도 세고 날 수 있으니까 재수 없으면 끌려가서 폭행당하거나 알이 까여 만신창이가 된 채 버려지게 돼.
토란은 이미 직접 그걸 보았다. - 260쪽
토란이라면 어쨌을 건데요?
토란은 예상치 못한 반문에 잠깐 생각하고 답했다.
저라면, 솜다리를 죽였을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도 그 생각이 무서워서 토란은 약간 떨었다.
그리고, 음. 제 대답이 틀렸나요?
주름벌레는 동그랗게 몸에 달라붙은 머리를 저었다.
아뇨.
주름벌레는 잠시 흙손을 놓았다.
저도 그럴 수 있었어요. 얼마든지요.
토란은 숨을 죽였다.
하지만 안 그랬잖아요. 왜죠?
주름벌레는 바싹 마른 앞발을 펼쳐 보였다.
솜다리를 죽이고요? 그다음은요? 다른 꽃들도 죽일까요? 도토리도? 토란도? 꽃들을 전부 죽일 순 없어요. 완벽히 제거할 수 없다면,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래서 저는 솜다리를 안 죽이고 굴을 줬어요.
토란은 주름벌레의 결정이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굴 속을 걷는 내내 계속 계속 생각했다. - 281~282쪽
▣ 작가 소개
저자 : 은림
소설가, 편집자. 일러스트레이터. 오컬트 카드 제작자.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할머니 나무」와 「할티노」로 두 번 수상했다.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만냥금」을 게재했고, 공동 단편집인 『윈드 드리머』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환상 서고』 『앱솔루트 바디』 『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2』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등 다수의 공동단편집에 참가했다.
2003년부터 환상문학웹진거울 필진으로 합류하여 단편소설을 게재하고 단편선 기획과 제책, 판매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현재는 쉬어가는 중이다.
▣ 주요 목차
할머니 나무 007
만냥금 041
엄마꽃 177
낙오자 103
환상진화가 幻想進化歌 149
노래하는 숲 215
엮은이의 말 292
작가의 말 298
수록작에 대하여
할머니 나무
쉰이 넘은 내게는 특별한 비밀이 하나 있다. 가문의 여자들이 대대로 보통 사람처럼 죽지 않고 나무가 되며, 나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려서 나는 어머니가 나무가 되는 것이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해를 못했고 도리어 원망했던 때가 있다. 나이 들어서 그 일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자식들이 차를 몰고 급하게 데리러 온다. 나는 불안감에 서둘러 따라 나서고, 할머니 나무가 있는 옛집이 밀린다는 비보를 듣는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을 둘째 치고라도 나는 첫딸이라고 꽤나 특별 취급을 받았던 게 틀림없다. 당시에 동화책 전질을 가질 수 있는 건 굉장한 부잣집 애들뿐이었다. 보통 집에선 교과서마저 간신히 마련해 아래물림하던 시절이었고, 계집애에겐 아예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애는 태어나서 걷고 말할 줄 알게 되면 쓰기나 읽기보다 상차림이나 설거지를 먼저 배우게 되고, 앞이나 뒤에 태어난 남자 형제의 수발과 뒷바라지를 떠맡았다. 그러다 대강 자라서 처녀 티가 나면 바로 남의 사내 품으로 들어가 밥하고 빨래하고 애 낳는 소모품이 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모님은 생각이 트인 분들이었고 딸에게도 글을 가르쳤다. 나는 그것이 할머니 나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작고 특별한 비밀 하나, 그런 걸 품을 수 있다면 삶을 보는 시선과 태도가 아주 달라질 수도 있다. - 16쪽
어머니 얼굴이 지치고 더욱 쇠약해 보여서 덜컥 마음이 아팠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뜩이나 힘든 어머니께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은 오래오래 눈에 밟혔다.
― 엄마는 죽는 게 아니야. 지혜야. 너만 혼자 두는 게 아니란다. 물론, 엄마는 아빠와 가까이 있고 싶어서 나무가 되는 거지만 그래도 완전히 아빠랑만 같이 있는 게 아니란다. 지혜랑 헤어지는 것도 아니야. 나무가 되는 건 죽는 거랑 다르거든.
어머니의 호흡은 길고 느렸다. 그렇게 숨 쉬어서는 호흡이 가빠서 죽을 것 같았다.
― 엄마는 나를 못 알아볼 거야. 엄마는 다 잊어버릴 거야. 말도 못하고 서 있을 거야. 할머니 나무처럼. 땅속에 있는 아빠처럼. 그건 죽는 거야. - 21쪽
만냥금
한 남자가 아들을 데리고 칼국수집에 들어간다. 노숙자 신세인 두 사람이지만 아들이 4000원을 주워 왔기에 들어온 것이다. 4500원짜리 칼국수 1인분을 두 사람이 나눠 먹고 나가며 500원을 깎아달라고 하려 하지만 남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때 만냥금 열매가 지폐 위로 떨어지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저…… 오백 원만 깎아주세요.”
그 말이 어찌나 힘든지. 하기는 했는데 입 밖에 나가지 못한 거 같았어. 아니, 저쪽이 듣지 못한 걸까? 주인 여자는 그저 금고에 손을 얹고 기다리고만 있었지.
“저어…….”
입이 바짝바짝 말랐어. 용기가 없어진 남자는 다음 사람부터 계산하라고 뒤를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어. 긴장을 견디다 못한 아들이 아버지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었어.
“여기 돈이오.”
하지만 그 돈은 4000원이었어. 주인 여자는 땀에 쩐 돈을 꺼리면서 펼쳤어.
“손님 돈이 모…….”
남자는 눈까지 달아올라서 사물이 뿌예 보였어. 아들 앞에서 500원으로 창피를 당하게 되다니! 애초에 4000원으로 뭘 사먹으려던 게 잘못이었어. 아냐, 4000원을 주워 온 애새끼가 잘못이야. 4000원이 뭐야, 4000원이. 주우려면 만 원을 줍든가, 아니면 아예 말든가. 머릿속에 온갖 후회와 상상이 난무하는데 또르르 빨간 열매가 돈 위에 떨어졌어. 그러자 돈은 순식간에 초록색으로 변했어. 남자는 눈을 의심했어. 주인 여자는 몇 번 눈을 껌벅였지. - 49쪽
왜 그 동네로 다시 가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 화분을 훔친 게 켕기긴 했지만, 주인이 만냥금의 이상한 힘을 알았더라면 그냥 계산대에 놔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렇다는 건, 이 식물과 남자의 궁합이 우주적으로 절묘하게 맞아서 이런 행운이 작용하는 게 틀림없었어. 행운은 그런 거니까. 100억짜리 로또와 별 이름 없는 주식이 치는 상한가처럼 어처구니없는 것이어야만 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행운이란 얼마나 초라하겠어. - 68~69쪽
엄마꽃
세상에 소원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만, 정확히 어떤 조건으로 발현되는지 알 수 없는 소원비로 인해 세상은 통째로 뒤바뀐다. 뒤바뀐 세상에서 무희는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엄마를 기다린다. 오빠만 위하고 무희에게는 뒷모습만 보여주던 엄마는 소원비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하는데 꿈에 소원비로 인해 꽃이 되어버린 엄마가 나타난다.
어느 밤 꿈에 징그럽도록 크고 노란 꽃 한 송이를 보았다. 쉼 없는 빗소리에 축축이 젖은 그 꽃은 엄마였고, 나였고, 세상 모든 침묵하는 여자들 같았다. - 77쪽
소원비가 내리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소원이 어떤 순간에 발현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고, 그에 대한 해석도 가지가지였다. 종교계에서는 종말이 다가왔다고 들썩이며 매일 밤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고 날뛰었다. 세상이 더 손댈 수 없이 미쳐 있어서 세상 스스로 정화 작용에 나섰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관심 가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종말보다는 이 놀라운 기적의 원인과 작동법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어떤 이는 이루어지기를 염원하고 어떤 이는 이루어지지 않기를 염원한다. 그런 건 대개 어느 쪽의 염원이 더 강한가에 따라 결과가 나타났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바라면 그 일은 이루어졌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열망하던 일들도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미친 것처럼 빌고 빌고 빌었다. 광기와 뒤엉킨 염원들이 세상의 모든 규칙을 어그러트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함부로 소원을 빌거나 염원을 품을 수 없었고, 우연으로라도 바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누가 어떤 소원을 바랄지 아무도, 자기 자신조차도 정확히 몰랐다. - 83쪽
낙오자
목련은 서쪽에 사는 ‘그자들’에게서 씨앗을 받아와 열매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최연소로 얻었다고 좋아했으나 아무 노력도 안 한 동기 능금이 함께 자격을 얻은 것에 상당히 모욕감을 느끼며 꼭 열매에서 ‘그자들’이 나오지 않길 바라고 바란다. 어렸을 때 친했던 뒷집 독서가는 성공한 생을 살다가 돌연 이 자격을 포기하여 낙오자가 되어 기괴한 모습으로 죽었다. 목련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그자’를 만나러 가는데, ‘그자’가 뒷집의 낙오자 이야기를 꺼낸다.
“주의사항은 잘 알고 있지?”
관리자가 목련과 능금을 앉혀놓고 말했다.
“말하지 말 것, 만지지 말 것, 포옹하지 말 것, 입 맞추지 말 것.”
둘은 새처럼 지저귀었다.
“그래. 그리고 가능하면 빨리 ‘씨앗’을 받아 빠져나올 것. 이상이다.”
관리자가 가보라는 시늉을 하자 능금이 미적대며 말했다.
“왜 입 맞추면 안 되죠?”
목력은 어이없어 입을 떡 벌렸다.
“너 바보지? ‘그자들’은 괴물이야. 괴물이랑 입을 맞춘다고?”
‘그자들’은 서쪽 나락에서 온 흉측한 괴물로, 문헌에는 더러운 털투성이에 짐승 같은 냄새를 풍기며 사납고 흉포하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규칙이 있잖겠어?” - 108쪽
‘그자’는 가까운 대리석 계단에 걸터앉았다. 목련은 살금살금 그자를 엿보았다. ‘그자’는 괴물도 유혹자도 아니고 목련네 마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그냥 사람이었다. 팔다리도 두 개씩이고 눈코입도 달렸고 키는 나무처럼 크고 몸은 바짝 말라서 무섭게 보이거나 위압감을 주지도 않았다. 목련은 그자의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쳐보았다. 길고 못 박힌 손가락도 똑같이 다섯 개다. 목련은 거기서 낯익은 냄새를 맡았다. 바삭한 햇볕 냄새와 책 곰팡이 냄새, 독서가에게서 나던 냄새였다. 목련이 흠칫 손을 뗐다. 그제야 두 번째 수칙이 기억났다. 절대로 만지지 말 것.
“실컷 봤어요? 호기심이 많군요.”
‘그자’는 마치 야생고양이처럼 살피는 목련을 그냥 보기만 했다. 독서가처럼. - 117쪽
환상진화가 幻想進化歌
생을 거듭하면서 몸을 재생할 수 있어 죽음이 의미가 없어진 듯한 미래의 세상에 플랜이라는 포식자가 나타난다. 놀랍도록 인간과 유사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지만 식물인 이 플랜은 재생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을 송두리째 삼키는 강력한 포식자다. 플랜헌터인 창은 혼인제도 대신 들어선 짝짓기 의무에 맞추어 선을 보러 가다가 울창한 숲에서 노래하는 어린아이를 만난다. 계속 지속되기만 할 뿐 발전이 없는 인간의 삶과 플랜에 대한 의문 사이에서 방황하는 창에게는 아홉 번의 생애를 보냈고 플랜헌터의 창시자인 강, 그리고 숲에서 만난 어린애만이 위안이 되는 존재다.
놈들이 처음 나타난 건 유성우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별들이 축제라도 벌인 양 밤하늘이 야단스럽던 날 돔 외곽 숲에서 처음 싹을 틔운 놈들은 갓 태어난 어린애 모양을 하고 작고 말갛고 투명하게 빛났다. 땅에 떨어진 별처럼.
온화하고 요상스러운 광채와 무력한 모습은 유성우를 구경 나온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요정이 버린 아기라고 생각했을 테고, 신실한 종교인은 아기 예수의 재림이 아닐까 가슴을 울렁였을 것이며,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왜 숲에 갓난애가 버려져 있는가에 두려움과 동정심을 느꼈을 것이다. 공통적인 건 그들 모두 예외 없이 아기를 안아 들었고, 여지없이 플랜의 첫 먹이가 되었다는 거다.
그 뒤로 숲에서는 가끔 기이하고 아름다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돔을 떠난 여행자들과 새로운 소식에 느린 외곽 거주자들이 플랜의 주 사냥감이었다. 나뭇잎이 부딪는 것처럼 청명하고 흔들리는 수면처럼 잘강대는 소리에 “거기 누구요? 누가 있소? 도움이 필요하오?” 하며 전등을 들고 나선 사람들은 수풀 속에 숨은 두어 살짜리 어린애를 마주하고 놀랐다. 한밤중에 혼자 숲에 있는 아이는 조금도 두렵거나 슬픈 기색 없이 오랫동안 계획한 나쁜 장난이 성공한 것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은 천진하게 웃는 아이가 내미는 손을 무심결에 마주 잡았다. 그러면 수풀 아래 숨어 있던 덩굴손이 순식간에 사냥감을 옭아매 난폭하게 먹어 치웠다. 식충 식물처럼. 그게 지금 내가 빠진 상황이다. - 152~153쪽
“짝짓기는 마치 내가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인간이라는 종의 씨를 뿌리기 위한 단말기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해요. 왜 이런 비이성적이고 번거로운 방법을 써야만 하는 걸까요? 정자와 난자를 척출해서 인공수정을 하는 편이 훨씬 편리하고 깔끔할 텐데.”
연희는 옷을 추스리고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세균이 묻을까봐 악수를 할 때도 항균 장갑을 끼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살을 맞대라니. 그래도 직접 짝짓기하는 게 인공수정보다 수태율이 열다섯 배가 높대요. 기형아도 방지할 수 있구요. 인공수정의 미세한 충격과 온도 변화만으로도 수정체는 심각한 손상을 입으니까요.”
그건 돔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연구 수치였다.
“아닙니다, 연희 씨.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아무도 죽지 않는데 왜 새로운 인간이 필요한 겁니까?” - 180쪽
“미숙한 플랜헌터가 어떻게 당하는지 알아?”
“네?”
“사냥이 끝났다고 잠깐 방심한 틈에 남은 찌꺼기에서 재생한 놈에게 당해. 놈들의 생명력은 그만큼 강력하지.”
나는 신발 끝으로 주변의 흙을 헤쳤다. 놈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헌터도 아닌 비전문가가 놈들을 뿌리 끝까지 제대로 처리했을 리 만무하다. 그럼 놈은 미완이 내 뇌를 꺼내는 틈에 재생해 우리를 공격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놈은 그러지 않았다. 뭔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거다. 모든 생물에게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최우선시 하는 일. 아마도 번식이겠지. 젠장. 범죄 현장으로 돌아온 범죄자가 이런 기분일까? - 208~209쪽
노래하는 숲
토란은 화분이 즐비하게 늘어서 예쁘게 꽃을 피우며 나비를 기다리는 아베의 정원에서 산다. 다른 꽃들과 달리 토란은 걸어다닐 줄 알고, 몰래 밤에 걸어 나가서 어느 날 들은 매미 소리를 흉내 내다가 노래도 부를 줄 알게 된다. 어느 날 말라 죽어가는 도토리를 발견하고 구해준 후 토란은 도토리에게서 아베의 정원이 무서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부정하지만 머릿속에 그 말이 박힌 채 돌아온 후 얼마가 지나, 친구인 엉겅퀴가 나비와 만나게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한밤에 엉겅퀴에게 찾아온 것은 나비가 아니었다.
도토리는 토란의 도움을 받아 작은 웅덩이가 고인 습윤한 나무뿌리 근처에 줄기를 기댔다.
네가 그 노래하는 꽃이구나. 소문으로 들었지.
소문? 너 말고도 또 누가 있어?
토란은 다른 곳에도 꽃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당연하지. 대부분은 화원에 살지만 나처럼 야생에서 사는 꽃도 있어. 아무튼 넌 어떻게 거길 나올 생각을 했어? 아베의 정원은 화원 중에서도 지독하기로 소문났던데. 거기 꽃들은 이미 걷는 법 따윈 다 잊었다며?
토란은 칭찬인지 욕인지 헛갈렸다.
나도 걷는 꽃은 나밖에 못 봤어. 하지만 옛날엔 많았어. 그런데 왜 우리 정원이 악명이 높다는 거야?
쪼그만 그릇에 하나씩 묶어놓고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며? 덕분에 유충들에겐 인기 최고라지?
토란은 그릇이 아니고 아름다운 화분이며, 각자의 독립성을 존중하기 위한 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유충이 뭐냐고 물었다.
맙소사! 아베가 아무리 악독하대도 그 얘기를 안 했어? 유충 몰라? 벌레 본 적 없어? - 235쪽
어허, 네가 어디 있냐니? 넌 거기 있을 거다. 너무 앞서 걱정하지 마라, 토란. 넌 그게 문제야. 모든 게 다 잘될 거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난 싫어요. 잘되든 못되든 난 싫어요. 난 나비에게도 안 가고 아무것도 잉태 안 해요.
그럼 어쩌자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넌 꽃이야. 씨알을 낳는 게 네 임무라고! 그리고 그걸 안 하면 네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냐? 네가 달리 뭘 할 수 있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시들어 썩어버릴 거냐? 그건 좀 나을 거 같으냐?
차라리 그러겠어요!
토란은 온 잎을 파르르 떨었다. 아베는 진짜로 화를 냈다.
오호라, 넌 뭔가 다르다는 거냐? 그래, 넌 노래를 할 줄 알지. 참 알량한 재주구나. 그걸로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네가 걸을 줄 안다고도 들었다. 그래, 걸어봐라. 네 그 얄팍하고 잘난 뿌리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자. 금세 얼마 못 가고 물을 달라고 애걸하게 될 거다. 그러다 바싹 말라 죽을걸.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아니야! 그런 게 꽃이라면 난 꽃이 되지 않을 거야!
넌 꽃이야!
아베는 화가 나서 물도 주지 않고 가버렸다. 꽃들이 웅성댔고 토란은 분노에 떨었다. 너무 화가 나서 물관이 말라도 아무렇지 않았다. - 249~250쪽
미나리는 토란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서 네게 이러쿵저러쿵 시키거나 강요하는 꽃은 하나도 없을 거야. 대신 여기서 살려면 몇 가지 알아둬야 해. 아무도 네게 물을 가져다주지 않을 거야. 흙도 퍼석해서 영양가도 별로 없을 거고. 다행히 우린 걷는 꽃이니까 얼마든지 먹을 걸 구하러 다닐 수 있어. 벌레들은 조심하는 게 좋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힘도 세고 날 수 있으니까 재수 없으면 끌려가서 폭행당하거나 알이 까여 만신창이가 된 채 버려지게 돼.
토란은 이미 직접 그걸 보았다. - 260쪽
토란이라면 어쨌을 건데요?
토란은 예상치 못한 반문에 잠깐 생각하고 답했다.
저라면, 솜다리를 죽였을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도 그 생각이 무서워서 토란은 약간 떨었다.
그리고, 음. 제 대답이 틀렸나요?
주름벌레는 동그랗게 몸에 달라붙은 머리를 저었다.
아뇨.
주름벌레는 잠시 흙손을 놓았다.
저도 그럴 수 있었어요. 얼마든지요.
토란은 숨을 죽였다.
하지만 안 그랬잖아요. 왜죠?
주름벌레는 바싹 마른 앞발을 펼쳐 보였다.
솜다리를 죽이고요? 그다음은요? 다른 꽃들도 죽일까요? 도토리도? 토란도? 꽃들을 전부 죽일 순 없어요. 완벽히 제거할 수 없다면,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래서 저는 솜다리를 안 죽이고 굴을 줬어요.
토란은 주름벌레의 결정이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굴 속을 걷는 내내 계속 계속 생각했다. - 281~282쪽
▣ 작가 소개
저자 : 은림
소설가, 편집자. 일러스트레이터. 오컬트 카드 제작자.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할머니 나무」와 「할티노」로 두 번 수상했다.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만냥금」을 게재했고, 공동 단편집인 『윈드 드리머』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환상 서고』 『앱솔루트 바디』 『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2』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등 다수의 공동단편집에 참가했다.
2003년부터 환상문학웹진거울 필진으로 합류하여 단편소설을 게재하고 단편선 기획과 제책, 판매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현재는 쉬어가는 중이다.
▣ 주요 목차
할머니 나무 007
만냥금 041
엄마꽃 177
낙오자 103
환상진화가 幻想進化歌 149
노래하는 숲 215
엮은이의 말 292
작가의 말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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