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사랑하는 여인은 다시 나타나 입을 맞추지
언제나 젊은 모습으로
“심각한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어요. 소설이 나왔으니까요. 저는 불멸의 연인이 되었고요. 그렇지만 단연코 제가 소설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성은 아니었어요. 여럿이 함께 춤추는 윤무니까요.”(151면)
“새파랗게 젊었지만, 이미 예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랑과 인생과 인간을 배반할 용의가 있었어. 결국 일을 저질렀지. 라이프치히 도서전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내놓았지. 사랑하는 벗들이여, 격분한 이들이여, 나를 용서해주게.”(383면)
1816년 가을, 시성(詩聖)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에 한 노부인이 동생 부부를 방문하러 온다. 단출히 딸과 하녀를 대동한 노부인은 호텔 숙박부에 ‘샤를로테 케스트너, 결혼 전 성 부프’라고 적는다. 순식간에 온 도시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그 ‘로테’가 찾아왔다는 소식이 퍼지며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방문객들이 하나둘 찾아와 대화를 청하기 시작한다. 로테는 괴테를 둘러싼 다양한 이들을 차례로 만나 “예술의 사제” “정신적인 존재”로 저 높이 군림하고 있는 괴테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당대 최고의 인기작이자 천재의 등장을 알린 출세작 『젊은 베르터의 고뇌』 이후 로테와 괴테, 두 사람이 44년 만에 재회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이 소설에서 묘사한 대로 이들의 재회는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별다른 극적인 사건은 없었다. 그러나 토마스 만은 이 심상한 재회를, 그것도 괴테가 아닌 로테를 내세워 독일 문학사에서 가장 거대한 존재를 새롭게 조명하는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작품은 모두 9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로테가 바이마르에 도착하고 호텔에서 방문객들을 차례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6장까지 이어진다. 7장에서 처음으로 괴테가 홀로 등장해서 내적 독백을 이어가는데, 토마스 만이 이 장을 집필하며 괴테의 내면과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합일”을 이루었다고 말한 바 있는 인상적인 서술이 펼쳐진다. 8장에 이르러 괴테가 로테 일행 및 앞서 등장했던 인물들을 초대해 점심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된다. 이 자리에서 로테는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신전의 석상처럼 추앙받는 괴테의 위상을 목격하며,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절친한 벗도 없는 차가운 인생”, 혹은 위대함을 위해 다른 이들을 제물 삼는 “시인의 제왕”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야 로테는 괴테와 단둘이 곡진한 대화를 나누게 되고, 두 사람은 짧지만 깊은 교감을 나누며 마침내 화해의 이별에 이른다. 하지만 대화의 끝에 이는 괴테의 ‘환영’과의 대화였음이 드러나고, 괴테와 토마스 만, 그리고 로테의 목소리가 두 작품의 겹겹을 오가며 의미심장한 공명을 이루며 끝을 맺는다.
신의 이름은 수백개지만 결국 오직 하나
“사람들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지만, 결국 신이 제물이야. (…)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한 그대에게 말하건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곧 제물이자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야. 한때 당신을 향해 불탔고, 지금도 언제나 당신을 향해 불타서 정신과 빛을 발하는 거야.”(535면)
이 작품은 괴테에게 사랑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로테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숱한 편력을 거친 노년의 괴테는 이제 “정신적으로 고양된 삶이기에 더 풍성한 사랑”을 한다. 이는 괴테의 사랑이 언제나 창작의 원체험으로서 한 개인이 아닌 더 높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누구보다 더 ‘위대함의 제물’이었던 로테를 통해 괴테의 삶과 예술을 여실하게 돌아볼 수도 있게 된다. 괴테의 세계를 관통하는 ‘구원의 여성성’이 이 소설에서는 로테를 통해 구현되며, 신의 자리에서 내려온 괴테의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를 만든다. 그리고 로테는 “제물이자 제물을 바치는 사람”인 괴테와 마침내 화해하며 ‘수많은 이름을 가졌으나 결국 하나의 유일자’로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괴테라는 신화, 작가라는 과업
“사상가들은 사유에 관해 사유하지. 그럴진대 작가가 작가에 관해 사유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작품이라는 것도 그런 사유의 결과물이고, 모든 작품은 결국 작가라는 현상에 대한 부질없는 천착이 아닐까?”(390면)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토마스 만이 히틀러 치하 독일을 떠나 망명하던 시절에 집필해서 망명지 미국에서 마무리했고, 독일 점령지를 피해 스웨덴에서 첫 출간을 해야 했다. 망명 시절 토마스 만의 작품들에는 나치즘에 맞서는 고투가 담겨 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정권을 거치며 찬란한 독일민족의 상징으로 신화화되어버린 괴테를 다룬 것 역시 그 고투의 산물이었다. 괴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곧 독일정신과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과 투쟁이었고, 이 작품은 괴테라는 신화를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당시 독일사회의 야만과 광기에 대한 비판과 경고를 담는다.
작가로서도 토마스 만은 일찍이 괴테를 ‘넘어설 수 없는 모범’으로 여겼기에, 괴테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을 묻는 일이기도 했다. 스스로 “신비로운 합일”을 이뤘다고 말할 정도로 괴테의 내면과 작품세계에 대한 유례없는 비평과 탐구를 보여주며 괴테 이후의 독일 문학과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토마스 만은 괴테가 남긴 방대한 문학적 자산을 능수능란하게 씨줄 날줄로 엮으며 마치 음악작품처럼 정밀하게 구성하여 한편의 독자적인 작품으로 완성시킨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토마스 만이 쓴 가장 실험적이고 밀도 높은 작품의 하나로, 거장의 솜씨로 “완벽한 작품”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말·추천사
“이 작품에서 나는 아름다운 천상에 떠오른 별 괴테와 신비적 합일을 이루었다.”
- 토마스 만
“수년 동안 기다려온 가장 완벽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통해 문학적 전기(傳記)는 최초로 완벽한 예술형식에 도달했다. 여기서 그려진 괴테의 초상은 후대에 유일무이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
옮긴이의 말
세계대전의 광기와 야만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독일의 정신문화를 상징하는 괴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것인가. 이 소설은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바로 그 여성이자 63세의 노부인이 된 로테가 1816년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괴테와 재회한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관련 기록들만 놓고 보면 그 야심찬 구상을 얼른 납득하기 어렵지만, 토마스 만은 로테 와 괴테의 재회를 씨줄로 삼아 괴테의 인간상과 문학세계를 한편의 소설로 엮어내며 장인적 면모를 보여준다. 괴테의 삶과 문학이라는 선행 텍스트를 정교하게 모자이크한 새로운 작품으로서, 마치 음악작품처럼 정밀한 구성으로 토마스 만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 임홍배(서울대 독문학과 교수)
▣ 작가 소개
저 : 토마스 만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2일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식 참석차 독일 여행 중 발병하여 취리히로 되돌아와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역 : 임홍배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괴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및 훔볼트 대학에서 수학했다. 서울대 독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독일 고전주의』 『괴테가 탐사한 근대』 『독일 명작의 이해』(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진리와 방법』(공역) 『파우스트 박사』(공역) 『젊은 베르터의 고뇌』 『어느 사랑의 실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루카치 미학』(공역)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작품해설 / 토마스 만, 망명지에서 괴테 신화를 다시 쓰다
작가연보
발간사
사랑하는 여인은 다시 나타나 입을 맞추지
언제나 젊은 모습으로
“심각한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어요. 소설이 나왔으니까요. 저는 불멸의 연인이 되었고요. 그렇지만 단연코 제가 소설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성은 아니었어요. 여럿이 함께 춤추는 윤무니까요.”(151면)
“새파랗게 젊었지만, 이미 예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랑과 인생과 인간을 배반할 용의가 있었어. 결국 일을 저질렀지. 라이프치히 도서전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내놓았지. 사랑하는 벗들이여, 격분한 이들이여, 나를 용서해주게.”(383면)
1816년 가을, 시성(詩聖)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에 한 노부인이 동생 부부를 방문하러 온다. 단출히 딸과 하녀를 대동한 노부인은 호텔 숙박부에 ‘샤를로테 케스트너, 결혼 전 성 부프’라고 적는다. 순식간에 온 도시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그 ‘로테’가 찾아왔다는 소식이 퍼지며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방문객들이 하나둘 찾아와 대화를 청하기 시작한다. 로테는 괴테를 둘러싼 다양한 이들을 차례로 만나 “예술의 사제” “정신적인 존재”로 저 높이 군림하고 있는 괴테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당대 최고의 인기작이자 천재의 등장을 알린 출세작 『젊은 베르터의 고뇌』 이후 로테와 괴테, 두 사람이 44년 만에 재회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이 소설에서 묘사한 대로 이들의 재회는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별다른 극적인 사건은 없었다. 그러나 토마스 만은 이 심상한 재회를, 그것도 괴테가 아닌 로테를 내세워 독일 문학사에서 가장 거대한 존재를 새롭게 조명하는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작품은 모두 9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로테가 바이마르에 도착하고 호텔에서 방문객들을 차례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6장까지 이어진다. 7장에서 처음으로 괴테가 홀로 등장해서 내적 독백을 이어가는데, 토마스 만이 이 장을 집필하며 괴테의 내면과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합일”을 이루었다고 말한 바 있는 인상적인 서술이 펼쳐진다. 8장에 이르러 괴테가 로테 일행 및 앞서 등장했던 인물들을 초대해 점심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된다. 이 자리에서 로테는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신전의 석상처럼 추앙받는 괴테의 위상을 목격하며,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절친한 벗도 없는 차가운 인생”, 혹은 위대함을 위해 다른 이들을 제물 삼는 “시인의 제왕”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야 로테는 괴테와 단둘이 곡진한 대화를 나누게 되고, 두 사람은 짧지만 깊은 교감을 나누며 마침내 화해의 이별에 이른다. 하지만 대화의 끝에 이는 괴테의 ‘환영’과의 대화였음이 드러나고, 괴테와 토마스 만, 그리고 로테의 목소리가 두 작품의 겹겹을 오가며 의미심장한 공명을 이루며 끝을 맺는다.
신의 이름은 수백개지만 결국 오직 하나
“사람들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지만, 결국 신이 제물이야. (…)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한 그대에게 말하건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곧 제물이자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야. 한때 당신을 향해 불탔고, 지금도 언제나 당신을 향해 불타서 정신과 빛을 발하는 거야.”(535면)
이 작품은 괴테에게 사랑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로테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숱한 편력을 거친 노년의 괴테는 이제 “정신적으로 고양된 삶이기에 더 풍성한 사랑”을 한다. 이는 괴테의 사랑이 언제나 창작의 원체험으로서 한 개인이 아닌 더 높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누구보다 더 ‘위대함의 제물’이었던 로테를 통해 괴테의 삶과 예술을 여실하게 돌아볼 수도 있게 된다. 괴테의 세계를 관통하는 ‘구원의 여성성’이 이 소설에서는 로테를 통해 구현되며, 신의 자리에서 내려온 괴테의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를 만든다. 그리고 로테는 “제물이자 제물을 바치는 사람”인 괴테와 마침내 화해하며 ‘수많은 이름을 가졌으나 결국 하나의 유일자’로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괴테라는 신화, 작가라는 과업
“사상가들은 사유에 관해 사유하지. 그럴진대 작가가 작가에 관해 사유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작품이라는 것도 그런 사유의 결과물이고, 모든 작품은 결국 작가라는 현상에 대한 부질없는 천착이 아닐까?”(390면)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토마스 만이 히틀러 치하 독일을 떠나 망명하던 시절에 집필해서 망명지 미국에서 마무리했고, 독일 점령지를 피해 스웨덴에서 첫 출간을 해야 했다. 망명 시절 토마스 만의 작품들에는 나치즘에 맞서는 고투가 담겨 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정권을 거치며 찬란한 독일민족의 상징으로 신화화되어버린 괴테를 다룬 것 역시 그 고투의 산물이었다. 괴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곧 독일정신과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과 투쟁이었고, 이 작품은 괴테라는 신화를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당시 독일사회의 야만과 광기에 대한 비판과 경고를 담는다.
작가로서도 토마스 만은 일찍이 괴테를 ‘넘어설 수 없는 모범’으로 여겼기에, 괴테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을 묻는 일이기도 했다. 스스로 “신비로운 합일”을 이뤘다고 말할 정도로 괴테의 내면과 작품세계에 대한 유례없는 비평과 탐구를 보여주며 괴테 이후의 독일 문학과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토마스 만은 괴테가 남긴 방대한 문학적 자산을 능수능란하게 씨줄 날줄로 엮으며 마치 음악작품처럼 정밀하게 구성하여 한편의 독자적인 작품으로 완성시킨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토마스 만이 쓴 가장 실험적이고 밀도 높은 작품의 하나로, 거장의 솜씨로 “완벽한 작품”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말·추천사
“이 작품에서 나는 아름다운 천상에 떠오른 별 괴테와 신비적 합일을 이루었다.”
- 토마스 만
“수년 동안 기다려온 가장 완벽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통해 문학적 전기(傳記)는 최초로 완벽한 예술형식에 도달했다. 여기서 그려진 괴테의 초상은 후대에 유일무이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
옮긴이의 말
세계대전의 광기와 야만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독일의 정신문화를 상징하는 괴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것인가. 이 소설은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바로 그 여성이자 63세의 노부인이 된 로테가 1816년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괴테와 재회한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관련 기록들만 놓고 보면 그 야심찬 구상을 얼른 납득하기 어렵지만, 토마스 만은 로테 와 괴테의 재회를 씨줄로 삼아 괴테의 인간상과 문학세계를 한편의 소설로 엮어내며 장인적 면모를 보여준다. 괴테의 삶과 문학이라는 선행 텍스트를 정교하게 모자이크한 새로운 작품으로서, 마치 음악작품처럼 정밀한 구성으로 토마스 만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 임홍배(서울대 독문학과 교수)
▣ 작가 소개
저 : 토마스 만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2일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식 참석차 독일 여행 중 발병하여 취리히로 되돌아와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역 : 임홍배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괴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및 훔볼트 대학에서 수학했다. 서울대 독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독일 고전주의』 『괴테가 탐사한 근대』 『독일 명작의 이해』(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진리와 방법』(공역) 『파우스트 박사』(공역) 『젊은 베르터의 고뇌』 『어느 사랑의 실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루카치 미학』(공역)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작품해설 / 토마스 만, 망명지에서 괴테 신화를 다시 쓰다
작가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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