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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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소윤
출판사항바람꽃, 발행일:2018/02/08
형태사항p.288 46판:19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96270605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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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김소윤 소설 『밤의 나라』는 모두‘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과 여성이 모여 여성들이 된다. 위안부, 탈북자, 결혼 이주 여성, 국제 밀거래 조직 등 이야긴 다양하지만 항상 이야기의 중심에는 여성이 존재한다. 가까운 이야기는 어둡고, 먼 이야기는 투명하다. 때론 진하고 때론 옅은 낱낱의 그림자가 또 다른 그림자 위에 겹쳐진다. 그림자 안의 그림자, 그 오묘한 명암의 계조를 주시하는 시선. 김소윤은‘여성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가장 깊은 곳을 탐색한다. 삶은, 문학은 언제나 주목하는 시선에 의해 제 빛깔을 드러내는 법. 김소윤은 우리 시대가 주목해야 할 시선이다.
― 김병용(소설가)

소설가는 자신의 공간을 구성하는 존재들에 대해 세밀한 인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김소윤 또한 마찬가지다. 김소윤의 시선은 읽는 이의 시선을 어느 한 지점으로 강제하여 지금까지 우리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어떤 소실점을 가진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마주하지 않은 타인의 고통을 인지할 수 있다. 그들은 공동체의 가장자리에서 우리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은 채 위태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출구 없는 지옥의 문을 나서기」해설 중에서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결핍과 상처를 지니고 있어서, 쓰면서도 고통스러웠다. 그들의 치유와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고 내가 그래줄 수 있기를 소망했지만, 아마도 그건 내 몫이 아닐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이들을 끌어내 세상 속에 세우는 일뿐이었다. 소설을 써내려가면서 그들의 슬픔과 절규를 들었다. 세상을 향한 외침을 들었다. 설령 그것이 어느 개인이나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 작가의 말 중에서

출구 없는 지옥의 문을 나서기

표제작인 「밤의 나라」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미호는 언니와 함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아 북한에서 탈북한 여성이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태국과 라오스를 거쳐 한국에 이르는 동안 미호는 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와의 이별 등 다양한 고난을 겪는다. 그렇게 간신히 도착한 한국에서 언니는 동업하는 한국 여성에게 속아 재산을 날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미호는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밀항하지만 그곳에서마저 밀항선의 선장에게 사기를 당하고 낯선 곳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미호는 자신이 이 세계에서 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언니를 위해 자신이 살아야 한다는 것만은 안다. 그 과정에서 미호가 깨달은 건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는 건 좋은 일”(25쪽)이라는 사실이다. 오래전 홉스의 언명처럼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유권을 양도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살길을 찾은 미호는 일본에서 무카키라는 남자를 만나 그가 속한 조직의 소유물이 된다. 미호는 조직에서 위조 여권이나 신분증을 전달하는 등의 수상한 일을 담당한다. 미호는 자신의 행동으로 “누군가 이것을 통해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13쪽)를 바라지만 사실은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하지만 미호는 자신의 역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20쪽) 의문을 품지 않는다. 다수의 의지로 구성된 시스템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스템 구성원들의 인지불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조직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역할에 의문을 가지는 순간 조직은 위기에 봉착한다.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로 연동된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알지 못하며 알아서도 안 된다. 아무도 전모를 알지 못하는 흐릿함 속에서 서로는 서로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피해를 입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삶을 비극으로 향하는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르는 미호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무시로 사라져가는 이 시스템 안에서 모두는 서로가 익명의 가해자이자 동시에 그 피해자라는 이중의 지위를 가진다.

미호가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고향에서 온 소년에게 관심을 보이는 순간 조직에 의해 대가를 치르는 이유다. 조직의 의사를 거부하고 미호의 다른 삶을 주선하는 무카키의 미래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형 육계 가공업체들과 납품 계약을 맺은 양계장들이 있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 「그 해, 봄」의 등장인물들 또한 앞서의 인물들과 유사한 속성을 가진다. 약간의 정신지체와 우울증을 가진 은정은 함께 살던 노모가 죽자 요양원으로 간다.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는 요양원의 생활은 마치 “거대한 사육장”(177쪽)과 같다. 견디지 못한 은정은 요양원을 탈출하고, 닭 튀김집을 운영하는 철우와 살게 된다. 그곳에서 은정은 철우의 아버지 한 씨가 운영하는 양계장에서 나온 닭을 손질하고 튀긴다. 기이한 점은 은정이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닭을 키우며 애지중지하는 점이다. 이는 “닭 잡는 년이 닭을 키운다”(171쪽)는 아버지 한 씨의 말대로 본질적으로 모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은정의 행동을 마뜩치 않게 보는 한 씨와 철우의 사고와 행동 또한 은정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키우는 닭을 육계 가공업체의 이익을 위해 매일매일 도살한다. 하지만 그들은 조류독감으로 인해 자신들의 닭이 죽어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닭이 죽어야 하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죽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우는 자신의 친구이자 군청의 공무원인 문식과 충돌하면서까지 닭의 학살을 막으려 하지만 그런 노력과 무관하게 닭들은 한 마리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 내린 판단에 어떠한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들 역시 미호나 무카키처럼 시스템의 한 부품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의 삶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다른 삶을 도살하는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안티테제인 문식 또한 마찬가지다. 문식도 체제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은정과 문식을 포함한 그들 모두는 “거대한 사육장”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오직 은정만이 이 사육장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마을을 떠난다.

자신의 선택이 비극적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듣지 못한 말」도 마찬가지다. 청각장애를 가진 연홍은 어린 시절 밤일을 하는 엄마로부터 보육원에 버려진다. 성장 후 보육원에서 식모처럼 일하던 연홍은 구호단체에서 하청 일을 하던 남편 선우를 만나 “동화 속의 세상”(79쪽)을 꿈꾸며 보육원을 나온다. 연홍이 선우를 따른 이유는 아무도 자신을 동등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연홍을 대등한 인간으로 봐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가 연홍이 알지 못하는 빚의 존재로 감옥에 들어간 순간부터 연홍의 삶은 피폐해진다. 연홍의 선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갈 곳이 없는 연홍에게 방을 내준 노인은 연홍이 잠을 자는 틈을 노려 성폭행을 시도한다.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 연홍은 고소는커녕 노인에게 항의조차 못한 채 아이들을 데리고 방을 나온다. 어렵게 찾아간 시누이는 갓난아기만이라도 자신에게 맡기거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보라 권유하지만 연홍은 고집스럽게 자신이 아이를 기르겠다며 거절한다. 허드렛일을 대가로 간신히 방을 얻은 여관의 주인이 권한 “거래”(91쪽)을 거절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거절은 연홍의 경험에서 유래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이 어떤 멸시로 돌아오는지, “밤일이 잦아지던 엄마”(93쪽)가 보육원에 버린 아이의 삶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기억이 그 내용이다. 연홍은 아이들의 삶이 자신의 삶을 반복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도주하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연홍의 선택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실패로 돌아간다. 아이의 빈 사탕 통을 본 연홍은 “눈 딱 감고”(92쪽) 밤일을 시작한다. 연홍이 밤일을 나간 사이 딸은 배고픔을 보채는 갓난아이에게 나프탈렌을 먹여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체념에 빠진 연홍은 딸을 결국 보육원에 맡기고 떠난다. 원하지 않는 사건을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 역설적으로 그 사건을 발생시킨 것이다. 신이 정한 숙명을 피하기 위해 도주한 것이 결국 자신의 숙명을 이루게 되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그에게 저주 받은 신탁을 내린 아폴론이라는 인격신이 자본이라는 물신物神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괜찮습니다. 나는」의 운정은 어느 날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내 조이를 잃는다. 조이는 필리핀 여성 에리카와 한국 남성 사이 혼혈로 ‘코피노’라 불린다. 그녀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 업무에 매진하던 그는 자신의 친구들이나 가족의 위로가 “아내를 위한 것은 아니”(151쪽)라는 걸 통해 그들이 조이의 삶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을 깨닫는다. 문제는 자신 역시 조이의 삶에 대해 파편적으로 밖에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운정은 조이의 삶의 흔적을 추적하고 그녀를 위한 애도를 빌어줄 사람들을 찾기 위해 조이의 고향이 자리한 필리핀으로 여정을 떠난다.

그곳에서 운정이 발견한 것은 그가 지금까지 알지 못한 조이의 삶이다. 조이의 아버지와 에리카가 이혼한 후에도 조이는 그럭저럭 자신의 삶과 공간을 사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부모가 각각이 새로운 가정을 꾸린 데 있다. 조이의 의사가 배제된 새로운 가족 공동체는 조이를 소외시켰고, 어느새 조이는 두 개의 국가 공동체와 두 개의 가족 공동체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의 삶을 산 것이다. 그녀가 모든 걸 버리고 조희라는 이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인으로 변경하기를 희망한 이유도 이 지점이다.

운정은 조이의 삶의 복원을 통해 자신의 슬픔을 이겨낸다. 조이에 대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호세와 에리카와의 만남이 그 원인이다. 운정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이로 인한 새로운 인연을 다시 자신의 삶에 틈입시킨다. 이로써 운정은 조이에 대한 애도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자신의 삶으로 귀환한다.

하지만 모두가 운정처럼 성공적인 애도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애도를 종료하고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 망각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에 연동된 타인의 흔적을 소거한다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망각을 거부하고 영원히 진행되지 않는 시간 속에 남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화려한 장례」의 현수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현수의 누나는 1995년 열다섯 살의 나이로 실종된다. 아버지의 시간이 멈춘 것도 그즈음이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반복된 날을 살고 있었다.”(241쪽) 현수의 아버지는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누나의 인적사항이 담긴 전단지를 들고 집을 나선다. 시간이 멈춘 것은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무신론자이던 어머니는 여러 종교에 귀의하며 초자연적인 현상에 몰두하다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지게 된다. 누나의 상실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은 영원히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아킬레스의 거북이처럼 누나의 죽음을 언제까지나 유예한다. 어긋난 시간 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251쪽) 현수뿐이다. 현수는 누나가 차라리 죽기를 바랐다. “죽지도 못한다면, 이 지옥의 문은 출구도 없”(257쪽)는 것이다.

부모와 단절되어 자신의 삶을 살기로 한 현수는 나름의 사회적 성공을 거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슬처럼 엮인 질긴 인연의 끈은 소멸되지 않는다. 누나의 장례를 치르기까지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을 깨달은 현수는 누나와 관련된 온갖 잡동사니들이 있는 부모의 집에 방화를 한다. 흩날리는 불꽃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나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현수의 몸에 불꽃이 옮겨 붙은 순간 그동안 멈추어 있던 시간이 드디어 흐르기 시작하고 현수는 부모의 얼굴에서 “두 노인의 늙음을 똑똑히”(263쪽) 확인한다.

누군가의 부재로 시간이 멈추어 있다는 점에서 「J의 크리스마스」도 위의 작품과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 어머니의 사망 후 J와 아버지는 어머니의 희생이 가족을 유지하는 원동력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무엇 하나 잘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집단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희생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불편한 진실을 다른 구성원들이 알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들의 책임이라 믿는다. “차마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후회 때문이었다”(235쪽). J가 자칭 “직장을 기다리는 사람”(207쪽)에서 마트의 생선코너에서 일에 집중하게 된 것과 구멍가게를 닫은 아버지가 하루 종일 홈쇼핑을 시청하며 어머니가 사용하던 각질제거기를 부여잡고 각질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어쩌면 J와 아버지가 두려워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면 어머니의 존재는 망각되어도 괜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J가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정육코너 ‘김’의 접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새로운 인연의 생성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인연의 지분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J는 자신이 일하는 마트의 사물死物들처럼 자신을 죽은 것으로 여긴다.

작품의 서사를 요동치게 하는 것은 장롱 위의 여자가 나타난 다음이다.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각질 때문에 그녀는 불법적인 침입에도 불구하고 J와의 기묘한 동거를 허락받는다. 몇 번의 대화를 거친 J와 여자는 함께 주문진에 여행을 간 후 싱싱한 밀복의 존재를 통해 자신이 죽어 있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집으로 돌아온 J는 어머니의 죽음을 비롯한 아버지의 몰락이 아버지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고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아버지의 각질을 벗겨내며 다시 그들의 시간은 흐르게 된다. 이로써 J와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애도를 마무리하고 다시 그들의 삶을 새로이 시작한다.

*

이렇게 헤어날 수 없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자리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굴하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는 무얼까. 그들의 고통에 감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치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약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것이다. 김소윤의 서사에도 이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발끝으로 서다」의 비정규직 여성인 ‘나’는 직장 상사이자 유부남인 K와 연인 관계에 빠진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머니가 가출한 후 아버지의 학대 아래에서 자란다. 아버지의 학대는 자기모멸로 이어지고 이는 성장한 후에도 ‘나’의 정신적 외상으로 남는다. ‘나’가 인간의 애정을 찾은 것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산 다음부터다. 외할머니는 ‘나’를 인간으로 봐준 유일한 사람이다. 외할머니가 사망 후 ‘나’는 다시 인간의 애정에 굶주림을 가진다. ‘나’가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며 “사랑의 완급을 조절하기보다 한껏 사랑하고 피투성이가 되는 쪽이 훨씬 쉬”(107~108쪽)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K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K의 생각은 ‘나’와는 다르다.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연인으로서의 유대가 아닌 자신의 능력을 외부에 과시하기 위한 성적 파트너에 지나지 않는다. 관계의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정규직이자 회사의 선임인 ‘J’도 마찬가지다. J는 계약직 처지인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것은 사실 J와 같은 선임들이”(103쪽)다. 그리고 J가 ‘나’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유리천장으로 인해 더 이상의 신분상승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는 간단한 방법은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곁으로 오지 못하도록 하면 그만인 것이다. ‘나’가 K와 관계를 가지는 현실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애정뿐만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이나 근무지를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권력자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K’와의 관계가 파탄 나고 강릉으로 발령이 나면서 마무리 된다. ‘나’는 마지막까지 ‘나’를 기만하는 K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그의 차를 파손시키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많은 것을 잃게 되겠지만”(127쪽)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 ‘D’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유대란 애초에 조건이 필요 없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처음부터 끝까지 맺어준 친구 ‘D’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붉은 목도리」는 소수자들 사이의 연대를 통해 서로가 자신의 존재를 승인받는 이야기다. 서사를 이끄는 두 주인공은 탈북여성인 정순과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로 강제 징용된 문옥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이 공동체의 보호에서 배제되어 그 육신이 성적으로 착취되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정순과 문옥이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이 인과율에 따른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들의 운명은 문옥의 항변과 같이 누군가 희생이 되면 누군가는 살아남은 가혹한 제로섬의 세계에서 확률의 영역에 무방비로 던져져 있는 것이다.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그들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야 죄 없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재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죄악의 징표인 것이다. 정순이 수시로 “내 잘못이 아니다.”(41쪽)를 중얼거리는 것이나, 문옥이 “그거이 문옥 씨 탓이 아니라니께요.”(52쪽)라는 남자의 진술에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은 전혀 다르지만, 참람한 고통만은 서로의 복사판”(49쪽)인 두 여성 사이의 연대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타인의 고통을 체감할 수 있는 것은 동일한 층위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뿐인 것이다.

*

위안부, 탈북자. 코피노, 장애인 등 김소윤의 서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구성원으로 상정하고 있는 표준적인 모델이 아니다. 그들은 반지하에서 “창문 너머로 이름 모를 여자의 검은 구두”와 “털이 부숭부숭한 종아리”(77쪽)와 시선을 맞추는 연홍과 같이 우리 시선의 높이에 자리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명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소설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가는 자신의 공간을 구성하는 존재들에 대해 세밀한 인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김소윤 또한 마찬가지다. 김소윤의 시선은 읽는 이의 시선을 어느 한 지점으로 강제하여 지금까지 우리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어떤 소실점을 가진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마주하지 않은 타인의 고통을 인지할 수 있다. 그들은 공동체의 가장자리에서 우리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은 채 위태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삶도 체념을 통해서는 극복되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시험하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 은정과 같이 광기로 대항하거나 정순과 문옥처럼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싸운다. 때로는 현수처럼 방화를 통해서라도 저항한다. 아무리 비루한 삶이라도 살아지는 이 끈질긴 생명의 힘. 김소윤의 서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미호와 같이 마지막까지 길을 찾는 이유다. 그 이후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모두의 바람과 같이 아름다운 길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간다. 기대도 체념도 없이. 그것이 이 고해로 가득 찬 지옥 속에서 그들, 아니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 김대현(문학평론가)

작가 소개

저 : 김소윤

1980년 전북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물고기 우산」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 단편소설 「벌레」가 2012년에 제1회 자음과모음 ‘나는 작가다’에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가 당선되었다.
가족 테마소설 『두 번 결혼할 법』과 음식 테마소설 『마지막 식사』에 공저로 참여하였으며, 저서로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가 있다.  

 

목 차

밤의 나라 007
붉은 목도리 037
듣지 못한 말 067
발끝으로 서다 099
괜찮습니다, 나는 129
그 해, 봄 164
J의 크리스마스 203
화려한 장례 237

해설 / 출구 없는 지옥의 문을 나서기 / 김대현 265
작가의 말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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