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엔도 슈사쿠가 쓰고 읽고 들려주는 구원의 소설, 소설의 구원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다” 엔도 슈사쿠, 『침묵』
“모리아크는 테레즈를 구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 『테레즈 데스케루』
“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성인을 제외하면 죄인이다” 그레이엄 그린, 『사건의 핵심』
“인간 누구에게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 있다” 쥘리앵 그린, 『모이라』
“마지막 대사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 해요’는 어떤 의미인가”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예수는 무력한 남자였고,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의지가 강한 사람과 나약한 사람은 같은 곳에서 만난다” 엔도 슈사쿠, 『사무라이』
“사회에서 부정당하는 자신이야말로 신이 안아주려는 대상이다” 엔도 슈사쿠, 『스캔들』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쓰고 읽은
여덟 편의 소설 속 약하고 슬프고 더러운 인간, 그 구원의 가능성
『침묵』 『깊은 강』 『바다와 독약』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강연집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엔도 슈사쿠는 ‘신과 구원의 문제’, ‘그리스도교의 아시아적 수용’이라는 묵직한 주제의 종교소설을 주로 발표한 작가로 알려졌었고, 간간이 밝고 유머러스한 산문과 대중소설도 출간되었으나 강연집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 강연집에서 엔도는 자신의 대표작 『침묵』을 비롯한 『사무라이』와 『스캔들』에 얽힌 창작 비화와 집필 의도를 밝히고,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와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등 20세기 유럽 문학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와 인간의 모습을 위트 있는 말솜씨로 풀어나간다.
1966년부터 1986년에 걸쳐 기노쿠니야 홀과 ‘스튜디오 200’에서 진행했던 아홉 차례의 강연을 엮었다. 특히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과 소통하려는 엔도 슈사쿠의 모습과 뜨거웠던 반응도 확인할 수 있어 마치 현장에 앉아 엔도의 강연을 듣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밟아야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밟겠습니까?“
_자신의 꿈과 신조, 동경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위로와 지침
이 책의 원제 ‘인생의 후미에(人生の踏?)’는 『침묵』의 독자가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따온 표현이다. ‘후미에(踏?)’는 에도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동판에 새겨 나무판에 끼워 넣은 것으로, 이를 밟으면 용서받지만, 밟지 않으면 곧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는다. 독자는 편지에서, 후미에 이야기는 자신과 관계없는 먼 시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읽다 보니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나름대로 ‘시대의 후미에’, ‘생활의 후미에’, ‘인생의 후미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각자의 후미에가 있기에 소설을 자신의 인생이나 생활에 투영해서 읽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인간의 약점과 그로 인한 고뇌, 슬픔을 알아주는 엔도의 말은 자신의 꿈과 신조, 동경하는 삶을 배신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된다.
“에도시대 기리시탄의 후미에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우리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기는 신조, 동경하는 삶, 그런 것을 흙 묻은 신발로 짓밟듯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전후(戰後)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 역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후미에’를 갖고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17쪽)
“우리는 순교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배교한 사람들을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밟았을지 모르니까요.” (25쪽)
“저는 소설가라서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_소설가의 일과 고민: 진정한 인간을 그릴 것, 거짓 심리를 그리지 않을 것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저는 대설가(大說家)가 아니라 소설가라서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소설가 나부랭이’라 부르는 엔도 슈사쿠가 하는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다. 아니, 작기 때문에 커다란 의미와 울림이 있다. 소설가는 대설가가 아니기에 『침묵』 역시 타인이나 사회를 판단하는 것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라고 한다.
“역사가 침묵하고 교회가 침묵하고 일본도 침묵하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생명을 주고, 그들의 탄식에 목소리를 주고,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조금이라도 말하게 하고, 다시 한 번 그들을 걷게 하며 그들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정치가나 역사가의 일이 아니라 역시 소설가의 일입니다.“ (25쪽)
소설가 역시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의 수수께끼에 다가가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며 그는 소설가를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이라 부른다. 그렇게 헤매는 목적은 ‘인간의 진실’을 그리기 위함이며, 소설가가 어떤 주의나 사상의 올바름을 증명하기 위해 작품을 쓴다면 소설가의 의무를 등지는 것이라고 한다. “작중인물은 소설가가 조종하는 인형이 아니다”라는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말을 소개하며 엔도는, 그 말은 옳지만 현장에서 소설을 쓰는 소설가로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털어놓는다.
“아무래도 제가 “우향우”라고 말하면 역시 작중인물은 오른쪽으로 향합니다. 제가 “좌향좌”라고 했는데도 작중인물이 “아니, 난 싫어. 여기서 왼쪽으로 도는 것은 인간의 심리에서 보면 거짓이야”라고 선언하며 멋대로 다른 방향으로 자꾸 가버리는 느낌은, 글쎄요, 서너 번밖에 경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49쪽)
“그 함정의 일부분만이라도 소설에 쓸 수 있다면
그 소설은 그리스도교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_그리스도교 문학이란 무엇인가
엔도 슈사쿠는 소설가로서 진정한 인간을 그리기 위해서는 인간 내면의 어둡고 지저분한 부분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소설가가 그리스도교 신자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금기시하는 죄와 악도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신을 우선시하여 그런 부분을 피해버리면 ‘그리스도교는 좋은 것’이라고 선전하기 위한 소설밖에 쓸 수 없다. 하지만 소설가의 의무로 그런 부분을 깊이 파고들면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신이 파괴될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다보면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간접적으로 많이 맛보게 되며, 때로는 스스로 확실히 죄를 범했다고 느끼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작가들의 고민과 갈등이다.
“만약 그리스도교 작가가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인간의 아름답고 깨끗한 부분만 쓰는 게 아닙니다. 보통의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더러운 부분, 추한 부분, 눈을 돌리고 싶은 부분을 씁니다. 보통의 소설가와 다른 것은 그 작품 안에서 악이나 죄에 빠진 인간을 고독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돌파하고 지양해서 더욱 절대자로 향하는 지향을, 얽히고설킨 인간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그리스도교 작가의 한 가지 일입니다.” (99쪽)
엔도의 말처럼 그리스도교 소설가라는 게 있다면, 자신의 주인공을 고독과 어둠 속에 내버려두지 않고 구원의 길, 빛의 세계로 이끌려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는 구원의 가능성을 어렴풋이, 신중하게, 상징적으로 한두 줄이라도 써넣기 마련이다. 엔도는 청중들과 함께 그런 부분을 찾아 읽어나간다. 행동으로 드러나는 심리보다 더 깊숙한 곳, 무의식을 넘어서는 내면이 바로 그런 부분에 나타나 있기에, 그렇게 깊숙한 내면까지 그려내 교향악적인 울림을 주는 작품이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교 문학이라고 이야기한다. 같은 맥락에서 죄나 악, 세상이 부정하는 자신의 모습 역시 신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려는 함정이라고 말한다.
“어떤 죄 안에도 신을 지향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고, 어쩌면 어떤 죄 안에도 신이 그 인간을 바로 옆으로 끌어당기려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좀처럼 알 수 없지만, 작가가 그 함정의 일부분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그 소설은 그리스도교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99쪽)
번역에 들어가기 전 이 책을 검토한 일본 인문, 소설 분야의 대표 번역가 송태욱은 “지금껏 많은 책을 검토해왔지만, 이 책만큼 망설이지 않고 추천하기로 한 책은 별로 없었다”며 “이 책의 내용 자체로 번역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지만 이 강의를 즐기는 데 신앙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는 문학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일반 문학 독자에게는 소설을 맛있게 읽는 법과 창작의 비화를 듣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또한 대략의 줄거리를 말해주며 이야기를 전개해가고 있어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들을 읽지 않았어도 강의를 즐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진지한 자세로 소설을 읽어나가려는 독자들에게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엔도 슈사쿠
Shusaku Endo,えんどう しゅうさく,遠藤 周作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가톨릭 신자인 이모의 집에서 성장하였으며, 이모의 권유로 열한 살 때 세례를 받았다. 게이오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 가톨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결핵으로 인해 2년 반 만에 귀국한 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5년에 발표한 『하얀 사람』(白ぃ人)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으로 신쵸샤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고 일본의 대표적 문학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엔도는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후, 유럽의 [신의 세계]를 경험한 [나]가 결국 동양의 [신들의 세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자전적 소설 『아덴까지』를 발표했는데, 그 6개월 뒤에 『백색인白い人』을 발표하였고, 또 6개월 뒤에 『황색인黃色い人』을 발표했다. 그리고 백색인으로 1955년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다. 『아덴까지』의 작품 의식을 기반으로 한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 역시 엔도가 유럽과 동양의 종교문화의 차이로부터 겪은 방황, 갈등의 요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또한 [백색인]과 [황색인]은 인간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악과 선의 대립만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신이 절대적 가치를 갖는 서구인 [백색인의 세계]에서도 그 신을 믿는 인간과, 그 신을 부정하는 인간이 상호 존재하고 있으며, 이 둘 역시도 항시 대립하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은 설혹 신을 부정하며 신과 격렬히 투쟁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투쟁을 통해서 이르게 되는 어떤 섭리에 대한 고백성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작품은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66년에 『침묵』(沈默)을 발표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96년 타계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종교소설과 통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문학의 거장이자 일본의 국민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침묵』, 『예수의 생애』,『내가 버린 여자』, 『깊은 강』 등 다수가 있으며 1996년 9월 29일 서거. 東京 府中市 가톨릭 묘지에 잠들어 있다.
역 :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교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세설』, 『만년』, 『환상의 빛』, 『탐구 1』, 『형태의 탄생』, 『눈의 황홀』, 『윤리 21』, 『포스트콜로니얼』, 『트랜스크리틱』, 『천천히 읽기를 권함』, 『번역과 번역가들』,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소리의 자본주의』, 『베델의 집 사람들』, 『매혹의 인문학 사전』,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핀란드 공부법』, 『빈곤론』, 『유럽 근대문학의 태동』, 『세계지도의 탄생』, 『십자군 이야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바이바이, 엔젤』,『관능미술사』등이 있다.
목 차
문학과 종교 사이의 골짜기에서
| 첫 번째 강의 | 교향악을 들려주는 것이 종교
| 두 번째 강의 | 사람이 미소 지을 때
| 세 번째 강의 | 연민이라는 업
| 네 번째 강의 | 육욕이라는 등산로 입구
| 다섯 번째 강의 | 성녀로서가 아니라
| 여섯 번째 강의 | 그 무력한 남자
의지가 강한 자와 나약한 자가 만나는 곳 - 『침묵』에서 『사무라이』로
진정한 ‘나’를 찾아서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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