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다시 읽고, 쓰고, 말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제 시작이다.
“페미니즘은 비-정치의 영역에 있던 억압들을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방식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선을 의문시하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장을 가시화함으로써 말이다. 아무리 전위적인 정치나 미학일지라도 그것이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공회전에 그칠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근본적인 질문과 계속해서 부딪혀 나아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낡고 식상한 반격에 허물어져 버리지 않도록 날선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예술이 계몽의 역할을 자임하던 시대는 한참 전에 끝났다. 하지만 예술의 종언은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하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우리 앞에 도래한 페미니즘은 기존의 틀에서 배제되었던 몫 없는 자들을 그 싸움터에 불러 모으고 있다. 이제 정치와 미학의 새로운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2층과 3층 사이에서)
“제1부 ‘문학의 종언 이후’는 활기를 잃어버린 문단에서 시인들이 느끼는 위기의식과 불안감, 그리고 그 속에서 방향을 타개해 보려는 노력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춘기적 반항, 찌질한 ‘병맛’ 감성, 마니아 혹은 오타쿠적인 것으로 평가절하되는 것들이야말로 망가져 버린 이 세계에서 망해 가는 주체들이 ‘다른’ 세계를 모색하고 있는 증거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진보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린 시대에 ‘실존하는 기쁨’(황인찬)을 지켜 내기 위해서는 혐오와 불안을 넘어 미지의 취향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제2부 ‘가면의 고백’은 강남역 사건 이후 스스로를 여성 평론가로 정체화하면서 쓴 글들이다.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문학 텍스트를 독해한다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구속되거나 ‘정체성 정치’의 한계에 갇혀 남성에 대한 혐오와 문학에 대한 편견을 표출하는 행위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주의적 이슈를 무분별하게, 소모적으로 이용하는 태도를 경계하면서 페미니즘을 통해 정치와 미학의 새로운 연대를 고민하였다. 우리가 젠더 이분법의 해체를 도모하는 텍스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야 하는 근거를 밝히는 한편으로, 피해/가해 이분법으로 해결될 수 없는 폭력의 구조적 측면을 직시하고자 했다. ‘틀어막혔던 입에서’라는 책의 제목은 제2부에 실린 글에서 가져왔다.
제3부 ‘고통의 좌표들’은 문학은 고통에 대해서 증언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작품들을 쓴 시인들에게 공감과 경의를 표하며 쓴 글들이다. 한국 문단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시인들이 굳어진 관념과 낡은 관습을 갱신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2018년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의 시를 비롯해서, 고독과 죽음의 쓸쓸함에 매료되어 이들의 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성속(聖俗)이 교차하는 일상의 순간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이들 문학의 원동력은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냉소적 나르시시즘으로 쉽게 모순을 해소해 버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계를 깊이 사랑하기에 가능한 도저한 허무주의는 내가 오랫동안 안고 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제4부 ‘시가 되지 못한 것들의 시’는 최근의 문학이 어떻게 형질 변환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시론적 성격의 글을 모았다. 2000년대 이후 서정시의 문법을 갱신해야 한다는 당위와 마침내 그 당위를 성취했다는 열광이 한국 시단을 지배했다는 것은 알려진 바와 같다. 나는 과연 이러한 진단이 적절한 것인지를 성찰하며 ‘시적인 것’의 의미를 재맥락화해 보았다. 이를 위해 황지우나 김수영의 시론을 다시 읽으며 ‘시적인 것’이 이동해 온 궤적을 추적하고, 무엇보다 시 쓰기의 수행성에 강조점을 두었다. 시가 정치적일 수 있다면 시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그 시를 쓰는 자의 신체에 어떠한 변용이 일어나는지를 논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책머리에―인간에 대한 예의?)
안지영 평론가는 서울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천사의 허무주의>를 썼고, <부흥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를 함께 옮겼다. 현재 청주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틀어막혔던 입에서>는 안지영 평론가의 첫 번째 평론집이다.
작가 소개
서울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틀어막혔던 입에서> <천사의 허무주의>를 썼고, <부흥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를 함께 옮겼다.
현재 청주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 차
005 책머리에 인간에 대한 예의
제1부 문학의 종언 이후
019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 2000년대 시와 근대문학의 종언
036 쓰레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 김승일의 시에게
049 취향의 헤테로토피아 - 황인찬의 「희지의 세계」 읽기
065 진정성을 대리보충하기 - 안미옥 시를 경유하는 질문들
083 젊은 예술가의 초상 - 배수연, 문보영, 장수진의 시와 ‘예술의 죽음’에 대하여
제2부 가면의 고백
107 2층과 3층 사이에서
117 가면의 고백 - ‘미래파’의 기원으로 여성시 다시 읽기
126 퀴어비평은 어떻게 ‘클리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황병승과 김현의 시
140 종언, 종말 그리고 미러링
152 틀어막혔던 입에서 - 임승유의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다시 읽기
제3부 고통의 좌표들
167 카메라 옵스큐라, 그리고 고독의 냄새들 - 이현승 - 송재학 - 김수복의 시
176 역원근법 세계의 풍요로움 - 홍일표론
188 쓸쓸한, 고통의 신비 - 유안진 - 최승자의 시
198 그가 저녁에 이야기하는 것들 - 고영민의 시
208 인간이라는 악몽에 대한 반성 - 허수경론
218 참을 수 없는 ‘돼지’의 불편함 - 김혜순의 「피어라 돼지」
226 여성, 새하다 - 김혜순의 「날개 환상통」 읽기
제4부 시가 되지 못한 것들의 시
243 시가 당신을 쓴다
249 눈먼 사람들
258 파편화된 신체와 완성되는 전율
266 시적 언어와 내파되는 상징
276 ‘슬픔의 근원’을 횡단하기 - 이수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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