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feral, rewilding, 活生
‘활생活生’은 영어의 ‘feral’, ‘rewilding’을 번역한 단어로 ‘rewilding’을 직역하면 ‘재야생화再野生化’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마치 어떤 특정 상태로 정확히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다. 옮긴이 김산하 박사는 야생의 자연은 언제나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기에 특정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것 자체는 비현실적이고 자연의 과정에 반反하는 개념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재야생화’보다는 저자가 ‘feral’이나 ‘rewildling’을 사용할 때의 의도처럼 과거의 어떤 특정 시기나 특정 생태계로의 복귀가 아니라, 자연이 알아서 제 갈 길을 갈 수 있도록 허락하고 도와주고 지켜본다는 의미에 가까운 번역어를 고심했다. 이에 따라 어딘가로 되돌아가는 의미의 ‘재야생화’가 아니라 생명체들의 삶이 추동하는 집합적 의사결정이 도달하는 새로운 야생 상태를 지칭하는 의미에서 ‘활생’이라는 단어가 태어나게 되었다.
● 21세기, 대멸종과 생물다양성의 소실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활생은 간단하게 말하면 야생 동식물의 보전과 복원이다. 극소수만 남은 종을 보호하고, 한때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종을 되돌려놓는 작업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오늘날의 대멸종과 생물다양성의 소실은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며, 그 속도가 너무 급격해서 생태계가 이에 충분히 대응 및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괴와 교란의 행위를 멈추어 자연에게 최소한의 운신의 폭을 제공하는 노력과 함께,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공든 탑의 조각들을 최대한 모으고 보존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사라진 종은 최대한 복원해야 한다.
그중에는 소위 무서운 동물도 포함된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 특히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최상위 포식자의 중요성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그들이 먹이 동물을 사냥하고 잡아먹음으로써 생태계의 위에서부터 아래로 퍼지는 탑다운(top-down) 효과가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각종 연구를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사납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문명이 배척했던 이 동물들은, 바로 그 동일한 야성으로 자연의 체계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제야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동식물이 온전하게 갖춰진 생태계일수록 탄소 흡수 및 저장 능력이 높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 물길을 바꾼 늑대, 누비스개코원숭이의 증가와 장내기생충의 증가, 독수리의 감소와 광견병의 확산…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늑대를 재도입하고 나서 일어났던 극적인 변화들이다. 공원에서 멸종된 지 70년이 지난 1995년에 늑대가 재도입되었다. 늑대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넘쳐나는 붉은사슴이 식생을 모두 뜯어 먹어 개울가와 강변이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늑대가 오자마자 사정은 변했다. 늑대는 코요테를 잡아먹기 때문에 토끼나 쥐와 같이 작은 포유류의 수가 늘어나는 데 일조하고, 이는 매, 족제비, 여우와 오소리의 먹이를 증가시키는 결과가 됐다. 사체를 먹는 대머리독수리나 갈까마귀는 늑대가 먹고 남긴 사슴의 사체를 먹어치웠다. 늑대의 귀환은 곰의 개체수도 늘렸다. 곰은 늑대가 남긴 사체를 먹기도 하고, 사슴이 줄어든 덕에 더 많아진 관목의 열매도 먹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슴에게 뜯어 먹혀 자라지 못했던 강변 나무 중 일부는 늑대가 오고 나서 6년 사이에 키가 5배나 더 자랐다. 그들 나무는 물에 그림자를 드리워 수온을 식히고 물고기나 다른 동물들의 은신처를 제공함으로써 야생동식물의 군집을 바꾸었다. 씨앗과 묘목의 생존률도 높아졌다. 황량했던 계곡은 사시나무, 버드나무, 미루나무로 덮이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명금류의 증가였다. 다시 자란 나무의 숲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노래참새, 미국초록개고마리, 아메리카솔새, 버드나무긴꼬리딱새 등의 개체수가 증가했다. 옐로스톤의 늑대 복원 사례는 단 한 종을 자연 상태로 되돌려놓으면 생태적으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강의 흐름과 형태, 땅의 침식 등 물리적 지형 자체도 바꿔놓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상위 포식자를 인위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재앙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많은 곳에서는 초식동물의 개체수와 생존율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 아래 초기 유럽 사냥꾼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사자와 표범을 죽였다. 그러자 뜻밖에도 아누비스개코원숭이가 증가했다. 그 후 원숭이들이 농작물과 가축에 일으키는 피해가 워낙 극심해서 학교 다니는 학생들까지 동원해서 쫓아내는 일을 해야 했다. 그 원숭이들은 주변에 사는 인간들에게 장내기생충을 감염시키고, 초식동물의 새끼를 잡아먹음으로써 오히려 개체군을 감소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하게 플로리다의 환경운동가들이 바다거북을 보호하기 위해 알을 먹는 너구리를 죽이자 오히려 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걸 발견했다. 너구리가 더 이상 달랑게를 잡아먹지 않자 달랑게가 바다거북 알을 더 많이 먹은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은 가장 기묘한 사례는 인도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독수리의 감소와 광견병의 확산이다. 매우 짧은 기간에 독수리가 거의 멸종했는데 디클로페낙이라는 가축용 약물이 우연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독수리가 이 약물을 투여한 가축의 사체를 먹으면서 폐사했기 때문이다. 독수리의 수가 크게 줄자 그들이 먹던 사체를 야생 개들이 먹기 시작했다. 야생 개를 줄이려는 당국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수리의 감소와 함께 개들은 급격히 증가했다. 인도에서 광견병으로 인한 사망의 95퍼센트가 개에 물려서 일어나므로 개의 증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걸릴 확률의 증가를 의미한다. 독수리들은 감염된 고기를 먹어치움으로써 브루셀라병, 결핵, 탄저병 등 가축 전염병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 비버, 북극여우, 멧돼지, 늑대가 만들어내는 세상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생태학자들은 영양단계 캐스케이드(trophic cascades, 영양단계가 위에서 아래로 폭포처럼 내려오는 효과를 지칭한다)가 자연계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반응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동물들에서 시작되어 맨 밑에까지 도달한다. 포식자와 대형 초식동물은 그들이 사는 공간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토양의 속성, 강의 흐름, 바다의 화학적 조성, 심지어는 대기의 성분까지 변모시키기도 한다. 자연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신비롭고 정교한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연구 결과들은 말해준다. 생태계의 작동원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키고 기존의 자연보전관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대형 포식자와 없어진 종들을 재도입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증거를 제시한다.
저자가 영양단계 캐스케이드와 더불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핵심종이다. 핵심종은 존재하는 수보다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생물종을 말한다. 가령 비버, 북극여우, 멧돼지, 늑대 등이 이에 속하는데, 핵심종이 서식지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종의 서식 조건을 결정한다. 최상위 포식자와 핵심종은 자신도 모르게 토양의 조성에 이르기까지 환경을 재건축한다. 핵심종을 없애면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이들을 과도하게 사냥하거나 남획하지 않는다면, 자연생태계는 토착종이 폭증하는 것을 막고 외래종의 침입을 조절할 수 있다. 또한 기후변화, 오염, 질병, 태풍 등 다른 교란에 대한 대항력도 강해질 수 있다. 먹이그물이 망가지기 전의 지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동식물에 의해 자체 조절되었다. 생태계의 원리와 관련해 점점 축적되고 있는 이러한 증거들은 지구 전체가 하나의 자체 조절 시스템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생태적 권태에 맞서, 자연의 신비와 경이를 좇아
하지만 저자는 사라진 동물이 복원되기를 원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말한다. 과학적인, 경제적인, 역사적인, 보건위생적인 논거를 들 수도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활생을 바라는 진정한 동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들이 아무리 이로운 부대효과라 하더라도 말이다. 자연의 신비와 경이, 풍요와 무한한 놀라움, 그리고 무엇을 보게 될지, 숲과 물속에 무엇이 살며 어떤 눈이 나를 바라보는지 모르는 채 광활한 대지와 대양을 누비는 자유와 전율. 이것이 이유이다. 저자는 그런 동물 없이는 이 생태계란 반쪽짜리, 생략되고 결손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한발 물러나 비록 코끼리와 코뿔소의 재도입이 현실에서 성사되지 않더라도, 이러한 추측만으로 우리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지 않는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나무들이 코끼리에 적응되어 있다는 것, 그 그림자에서 인간과 함께 진화한 웅장한 짐승들을 보며, 어느 공원과 길가에 난 식물에서 그 동물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세계에 새로운 신비감을 불어넣는다. 그것은 마법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조지 몽비오(George Monbiot)
탐사 저널리스트이자 환경운동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후 BBC에서 라디오 자연 프로그램과 환경 탐사 프로그램 등을 제작했다. 첫 르포 『독화살Poisoned Arrow』을 쓴 후 브라질로 건너가 약 2년 동안 체류하게 되는데, 이때 원주민의 땅을 지키는 저항운동에 참여하면서 광범위한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이후 케냐, 탄자니아 등에서 원주민들과 저항운동을 함께했고, 영국에 돌아온 뒤 언론인과 환경운동가로 일하면서 절멸에 이르고 있는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해오고 있다. 1995년 공동 설립한 ‘모두의 땅이다The Land is Ours ’라는 단체는 토지 사용 결정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고, 1996년부터 매주 『가디언』에 기고하고 있는 칼럼은 독창적인 관점과 깊이 있는 조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 『무인 지대No Man’s Land』, 『도둑맞은 세계화The Age of Consent』, 『아포칼립스여 오라Bring On the Apocalypse』, 『잔해 밖으로Out of the Wreckage』 등이 있다. 탁월한 환경 업적에 대해 수여하는 ‘UN 세계 500대 상’을 넬슨 만델라로부터 받았다(1995). 2019년 대대적인 생태계 복원 캠페인의 일환으로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 출연한 다큐멘터리 〈지금 자연은Nature Now〉은 6천만 뷰를 기록하면서 웨비(Webby)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 김산하
서울대학교 동물자원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 국립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를 연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이다. 생태학자로서 자연과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할 뿐 아니라 생태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 영국 크랜필드대학교 디자인센터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생명다양성재단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비숲』, 『김산하의 야생학교』, 『습지주의자』, 『살아있다는 건』, 그림 동화 『STOP!』 시리즈 등이 있다.
목 차
서문
1 소란한 여름
2 야생의 사냥
3 전조들
4 도망
5 보이지 않는 표범
6 사막을 푸르게
7 늑대여 돌아오라
8 희망의 작업
9 양의 파괴력
10 쉬쉬하기
11 내부의 짐승
12 자연보전의 감옥
13 바다의 활생
14 바다의 선물
15 마지막 빛
옮긴이 후기와 저자 인터뷰 _찬란한 활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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