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나무

불완전한 사랑밖에 품을 수 없는 나와
완전한 사랑이 아니면 용납하지 못하는 당신,
둘 중 어느 쪽이 더 추한 걸까.

★제158회 나오키상 후보작★
때로는 레이스처럼 섬세하고, 때로는 뱀처럼 요사스럽게 빛나는
사랑과 관계에 관한 일곱 가지 은유

2017년 나오키상 후보에 오른 아야세 마루의 소설집 『치자나무』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2010년 단편 「꽃에 눈멀다」로 등단한 이래,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뼈를 물들이다』 등 잔잔하고 섬세한 필치가 두드러지는 작품들로 주목받아온 아야세 마루는 『치자나무』에서 독특한 상상력과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한 세계관을 선보이며 작가 이력의 전환점을 맞았다. 인간의 신체를 자유자재로 분리할 수 있는 세상에서, 헤어진 연인을 대신해 그의 일부이자 마지막 선물인 왼쪽 팔과 생활하는 여자를 그린 표제작 「치자나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인간을 숙주 삼아 사랑에 빠지도록 조종하는 곤충을 다룬 「꽃벌레」, 남자는 낮을, 여자는 밤을 지배하고, 때로는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먹어치우기도 하는 세계를 무대로 한 「짐승들」 등, 기묘하고 환상적인 단편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작가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호평을 받으며 출간 당해 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18년에는 직전 1년간의 나오키상 후보작 가운데 고교생이 뽑은 최고의 작품에 수여되는 고교생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증명해 보였다.

❝지금껏 리얼리티가 강한 작품들을 주로 써왔는데, 물론 모두 만족스러운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틀에 박힌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나름대로 독자에게 위로를 주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사춘기 시절 제 안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보다 무서운 어떤 것이었거든요. 기존의 가치관을 뒤흔들거나, ‘이런 걸 써도 되는 건가’ 싶은 내용이거나,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구나’ 느끼게 하는, 내면의 영역을 넓혀주는 이야기 말예요.❞

아야세 마루는 『치자나무』와 관련한 일본 현지 인터뷰에서 독자들이 놀랄 만한 이야기, 그러나 이면에서는 극히 일상적인 주제를 건드리며 내면의 변화와 확장을 유도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초현실적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큰 이질감 없이 읽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 풍경 속에 ‘사랑’과 ‘관계’라는 인류 보편적 감정과 현실에 대한 은유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자기 외의 다른 사랑이 있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나머지, 그의 몸을 해체해 자신을 배신한 마음을 도려내버리는 「치자나무」의 아쓰타 부인,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상대를 말 그대로 잡아먹어버리는 「짐승들」의 여자들은 사랑의 배타성과 맹목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깊이 사랑하면서도 낮과 밤처럼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부부(「짐승들」)는 ‘인간은 결코 타인의 인생을 온전히 체감할 수 없다’는 타자 이해의 불가능성을, 운명이자 축복이라 믿었던 사랑이 한낱 벌레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 남녀(「꽃벌레」)의 이야기는 사랑의 덧없음을 말한다.
아야세 마루는 현실과 다른 듯하면서도 한없이 맞닿아 있는 세계관 속에서 특유의 섬세하고 관능적인 문장으로 우리가 쉽게 ‘본능’이나 ‘본질’이라 부르고 싶어 하는 것들의 실체를 드러낸다.

❝‘계속 믿고 싶은 것’을 하나씩 부수려는 시도였어요. 믿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 일들을 하나씩 부숴감으로써, 거기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죠. 자유로워지면 더 다양한 것들이 보이고, 이해도 확장될 것 같아서요.❞

그러나 그 끝에서 독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숙명처럼 좇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쓸쓸함’만이 아니다. “저 멀리 보이는 꽃밭처럼, 닿을 수 없는 것만 좋아하게 되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면서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감정을 아름다운 옷으로 승화시키는 「사랑의 스커트」의 결말이나, 자신과 정반대의 삶의 방식을 택한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죽음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기억하려 애쓰는 「산의 동창회」 속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엇갈리는 관계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그리고 그러한 비극적 결말을 알면서도 맹목적으로 뛰어들고 마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아름다움’ 또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다.

■ 수록 작품 소개

치자나무くちなし
떠나간 연인을 대신해,
그의 일부이자 마지막 선물인 한쪽 팔과 함께 사는 여자

꽃벌레花虫
운명이라 믿었던 사랑이
한낱 몸속에 기생하는 벌레로 인한 환상이었음을 알게 된 부부

사랑의 스커트愛のスカート
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꽃밭처럼,
닿을 수 없는 것만 사랑하고 마는 두 남녀

짐승들けだものたち
남자와 여자가 낮과 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랑하면서도 서로에게 너무 먼 존재가 되어버린 부부

얇은 천薄布
평생을 가족에게 헌신하다 공허함과 권태로움으로
이민자 소년과의 아슬아슬한 ‘인형 놀이’에 빠져드는 중년 부인

가지와 여주茄子とゴーヤ
남편이 불륜 상대와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이혼을 감행하고 홀로서기에 나선 아내

산의 동창회山の同窓会
종족 보존을 위해 산란을 마치고 죽음을 맞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홀로 독신으로 남아 친구들의 삶과 죽음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여자 

지은이 : 아야세 마루
1986년 일본 지바현 출생. 조치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10년 ?꽃에 눈멀다?로 제9회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뼈를 물들이다』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등의 작품으로 스며드는 듯 잔잔하고 섬세한 필치를 선보여 주목받았고, 2016년 『이윽고 바다에 닿다』로 제38회 노마문예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리얼리티가 강한 기존의 작풍을 벗어나 독특한 상상력과 은유가 돋보이는 소설집 『치자나무』를 발표했으며, ‘작가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호평을 받은 이 작품으로 제158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 그 밖의 작품으로 2019년 오다사쿠노스케상 후보작인 『숲이 흘러넘치다』와 『주옥』 『부재』 등이 있다.

옮긴이 : 최고은
도쿄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일본 전후 문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무라타 사야카의 『소멸세계』, 기리노 나쓰오의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이사카 고타로의 『서브머린』 등 다수가 있다.

 치자나무
 꽃벌레
 사랑의 스커트
 짐승들
 얇은 천
 가지와 여주
 산의 동창회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