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세상에서 가장 딱한 사람은 사랑에 목매는 사람이야.”
꼿꼿한 고개, 맹랑한 시선, 능청스러운 농담
희망 없음에 대응하는 최미래식 애티튜드
“어딘가 징그럽고 적나라해 보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주체적이고 야성적인 사랑. 감춤도 숨김도 없는 이 사랑은 고이고 흐르다가 마침내 우리에게 닿았다.”
_전청림(문학평론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무엇을 막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기어코 안간힘을 쓰고야 마는 시간. 모두가 지나왔지만 정작 그 풍랑 속에서는 그 시절을 통과하고 있다는 실감도 없이 흘려보내는 한때. 열띤 얼굴로 이상하게 휘청거리고 춤추듯 버둥거리는 청춘의 조각들을 살뜰하게 건져올리는 최미래의 새 소설집 『돼지 목에 사랑』을 문학동네에서 펴낸다. 제47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을 포함해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모두 불안과 절망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번뜩이는 강렬한 에너지를 예리하게 간파해낸다. 도무지 마음 붙일 곳 없는 버석거리는 현실 속에서 유난히 맹렬하게 박동하는 심장과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지는 욕망. 최미래는 과장도 미화도 없이 이들의 가장 정확한 마음과 얼굴을 비추는 거울로서 우리 앞에 당도해 있다.
‘미진’하고 ‘미달’될지라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아
사랑은 쉽지. 생각보다는 쉽지 않지. 사랑은 차가울까 뜨거울까, 온몸이 재가 되어버릴 만큼 시린 것일까. 이런 고민은 부질없고 재미도 없어.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면서도 미진은 사랑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_「돼지 목에 사랑」, 37쪽
표제작 「돼지 목에 사랑」은 사랑이 너무나 하고 싶어 사랑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는 ‘미진’의 이야기다. 미진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걸 하나 가지고 있다는 비밀이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다. 미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것까지 감싸안으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줄 사람을 원한다. 그러니까 미진이 원하는 건 “그저 그런 사랑 말고, 제대로 된 사랑”(38쪽). 마음과는 달리 매번 지지부진하게 끝나버리는 연애에 이제는 스스로가 딱하기까지 하다. 반면 이런 미진의 바람과 꼭 같은 사랑을 이미 한 사람, 「얕은 바다라면」의 ‘나’는 그 모든 불완전함과 결핍까지 전부 끌어안으며 사랑한 ‘선정’과의 만남과 이별을 되돌아본다. 회를 뜨고 남은 서덜로 끓인 얕은 바다맛 라면이나 다시다로 향만 낸 소고기뭇국처럼 겨우 흉내만 낸 음식을 나눠 먹곤 하는 두 사람에게 언제고 살아 있는 유일한 진짜는 생동하는 마음이다. 부풀었다가 꺼지고 찌그러졌다가 한순간 활짝 펴지기도 하는 그 마음.
한편 「오래된 원숭이, 현재의 손님」의 ‘미달’은 광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에게 “‘광적’이라는 건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안다는 뜻”(263쪽). 영화에 미쳐 있던 첫사랑 ‘케이’처럼 자신 역시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하고 간절히 바라고 정신없이 미쳐 있는 상태이고 싶다. 가졌다가 끝내 잃어버릴지라도. 지금처럼 살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위기의식, 점점 익숙해져가는 실패와 유예와 도태의 감각 속에서도, 미달은 원치 않는 간여와 위로만은 단호히 밀어내며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제가 알아서 할게요.”(299쪽)
돈을 개꿀로 벌면서 쉽게 잘살고 싶다
그러면 안 되나요?
최미래의 소설에서 가진 것 없고 잃을 것 없는 상태는 힘과 자유가 생겨나는 조건으로도 작동한다. 온 세상이 만만하게 여겨 벗겨 먹으려고 달려들 때, 마음은 쪼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야성적인 본능으로 들끓는다. 인간으로 하여금 한결 대담하고 거침없이 행동하게 하는 그 짜릿한 에너지를 최미래는 ‘와일드’라고 이름 붙인다.
근데 그거 알아? 와일드를 빼앗기면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게 돼. 이상한 짓. 어이없는 짓. 남이 보면 ‘쟤 왜 저래?’ 싶을 만큼 비상식적인 행동들. 심지어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거야.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자기를 돌보면서 잘 사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있잖아. 왜 그런 줄 알아? 망가져서 그래. 줏대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거지. 사람이 망가지면 안 하던 짓을 한다. 이상한 짓을 해. _「쉽게 잘살고 싶다 33화」, 201~202쪽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과 「쉽게 잘살고 싶다 33화」는 이 ‘와일드’가 태어나는 자리와 발현되는 조건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 보이는 소설이다.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의 ‘나’는 어린 ‘서라’를 돌보는 시터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무도 감시하는 사람 없이 널찍한 집을 마음대로 누리며 몸도 마음도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이 일자리가 ‘나’는 아주 만족스럽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이윽고 서라 아빠가 등장하며 은근한 긴장이 감돌기 시작한다. 「쉽게 잘살고 싶다 33화」에서는 작금의 청춘 세대가 가진 삶의 조건들과 이들이 지닌 절박하고 솔직한 욕망이 한층 더 정밀하게 드러난다. 이 복합적인 감정의 혈관들이 다른 이와 관계 맺을 때 어떻게 드러나고 또 증폭되는지를 최미래의 소설은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위의 두 작품이 사회 또는 세계에서 개인이 점유하는 자리 그리고 타인과 맺는 관계를 짚는다면, 연작소설로 읽을 수 있는 「과자 집을 지나쳐」와 「대망의 정금매」는 네 살 터울의 두 자매가 가진 사연을 각각 담아내며 취약한 상태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없는 집에 살고 있는 ‘두리’와 ‘금매’는 절망에 지지 않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각자의 생존법을 모색해간다.
낙담할수록 또렷해지는 진심
가라앉을수록 솟아오르는 욕망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를 시기심과 질투, 가슴속을 휘도는 분노와 울분…… 금전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열악한 상황일수록 마음의 모양과 관계의 질감은 선명해진다. 발 디디고 선 땅이 흔들리더라도 온몸을 쥐어짜내 한 방울 한 방울 모은 자신감을 어깨에 턱 걸치고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걷기. 최미래가 만든 세상 속 인물들은 힘없이 고꾸라지는 법이 없다. 이는 최미래가 그들을 응원하는 방식이기도 할 터. 그리고 또하나, 그들은 결코 혼자인 법이 없다.
무작위로 매칭되는 사람과 호흡을 나누며 함께 뛰는 앱 ‘브리드라인’으로 연결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귀엽게 생각해」와 독자에게 말을 건네듯 편지 형식으로 쓰인 「살 것」은 쪼글쪼글 메말라가는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소설이다. 지친 당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고,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우물만 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 일단 계속 살아보자고. 그 다독임에, 흐물흐물해졌던 마음은 다시금 힘을 얻는다. 고였던 마음이 흐르기 시작하고, 그렇게 우리는 최미래와 함께 “아래로, 아래인 줄 알았으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살 것」, 125쪽) 한 걸음 내디뎌본다.
작가 소개
최미래
2019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녹색 갈증』 『모양새』 『돼지 목에 사랑』이 있다.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목 차
얕은 바다라면
돼지 목에 사랑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살 것
과자 집을 지나쳐
대망의 정금매
쉽게 잘살고 싶다 33화
귀엽게 생각해
오래된 원숭이, 현재의 손님
해설|전청림(문학평론가)
사랑이 많은 곳에 살게 해줄게
작가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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